스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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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와 민트사탕스치는 생각 2019. 12. 14. 10:09
남편은 차의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차 도어의 포켓에서 작은 알루미늄 박스를 하나 꺼내 열고는 나에게 묻곤 한다. "민트?" 박스 안의 페퍼민트 사탕을 하나 먹겠냐는 질문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그에게 하얀 사탕 두 개를 받아 입에 넣는다. 에릭이 운전을 한다. 달콤한 사탕이 스르르 녹으며 상쾌한 민트 향이 차안에 퍼져간다. 행복해진다. 나는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먼 옛날, 나에게 민트 사탕을 건네었던 한 남성을 떠올린다. 아로디. 나의 이스라엘 아버지. 아로디는 나를 이스라엘로 초청한 오프라 교수의 남편이다. 나는 그를 '아바'라 불렀다. (히브리어로 '아버지') 나는 이스라엘에 도착한 뒤 6 개월간 오프라의 집에서 살며 하이파 대학에 통학하였는데, 가끔 학교에 갈 때, 아니면 집에 돌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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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떡 출생의 비밀스치는 생각 2019. 12. 13. 10:31
간신히 자/궁을 만들었는데, 글을 한자도 못쓰겠다. 일주일동안 붙들고 있는 에세이가 있는데 끝맺음을 못하겠다. 그래서 그걸 영어로 바꿔서 써봤는데 그건 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르더니만 그것도 끝이 안난다. 책상과 의자가 생긴 뒤에 글을 못쓰게 되다니 이해가 안된다. 당황스럽고 좀 면구스럽다. 엄마도, 에릭도, 이제 내가 책상 하나를 떠억~~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매일 물어보기 때문이다. "오늘 글 좀 썼어?" 란 질문을 하루에 적어도 두 번씩 꼭 받다보니, 유명한 작가들이나 겪는 '원고 독촉'의 압력을 받는 것같아 신기하기도.ㅠ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생길 정도로 붙어서 글을 쓰고 있는데 마음에 하나도 안들고, 머리는 점점 더 멍청해져가는 이 현실에 잠시 우울해졌다가 다시 맘 바꿨다. 자궁이 애 낳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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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다 (비오는 날의 명상)스치는 생각 2019. 11. 29. 04:22
움하하하!! 호탕한 웃음으로 오늘 아침을 여는 팜페미~~ 비가 옵니다. 팜페미의 자/궁의 완성을 축하해주기라도 하는 양, 하늘이 비를 내려줍니다. 저는 '자/궁 소유자' '책상 소유자'만이 아니라 'rain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보내주는 비 사진, 비 동영상을 보며 대리만족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비가 올 거라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기다니....믿을 수 없습니다~~ 사진찍어서 올려보겠습니다. 빗소리를 듣기 위해서 문을 활짝 열어놓은터라 넘 추워서 부츠를 신었습니다. 우중충한 코트까지 걸쳐 입고도 추워 덜덜~ 그러나 이 귀한 빗방울을 내 눈으로 보고, 이 귀한 빗소리를 내 귀로 듣기 위해서 추위쯤이야 감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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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표 책가방과 회상, 엄마의 마음 수련스치는 생각 2019. 11. 23. 08:39
팜펨의 고등학교 시절을 같이 한 '우주표 책가방' 이다. 부모님 집 정리할 때 엄마가 고이 모셔둔 우주표 책가방, 가방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추억들이 많이 들어있어서 차마 버릴 수 없었다. 태평양 건너 같이 가자꾸나, 우주표 가방아~~ 집에 온 뒤에 차고에 3 년간 처박혀 있어서 먼지가 잔뜩...그런데 애초에 한국에서도 먼지가 잔뜩 앉아 있었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니, 저 먼지는 국산/미국산 이렸다. 함부로 닦고 싶지도 않다. 이 고물가방에는 먼지가 잘 어울리니까... 아마 이 가방은 고등학교 3 학년 때 가방일 것이다.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 고등학교 3 학년. 아니 나는 고등학교 3 년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나마 생각 나는 것이라면 고3 때 '들장미 소녀 캔디' 만화의 열풍 이랄까?. 친구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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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빨래스치는 생각 2019. 11. 18. 03:43
나는 손빨래를 좋아한다. 아직도 자주 손빨래를 한다. 손빨래는 행복한 추억을 갖다 준다. 소중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어려서 살던 태능집. 마당의 수세미 덩쿨 밑으로 있던 수돗가.. 나는 대야에 물을 받아 물장난 겸, 빨래 겸, 놀았었다. 내가 아무리 힘껏 빨래를 짜도 물이 뚝뚝 흐르는데 엄마가 한번 휙 짜면 모든 물이 다 빠지는 게 신기했었다. 여름, 햇볕이 좋은 날, 낮에 잠시 놀고 나면 빨래는 빳빳하게 말라있었다. 요즘 손빨래를 하면 당연히 빨래줄에 널지만, 어떨 때는 세탁기로 빤 빨래도 넌다. 에너지 절약이 주 목표가 아니라, 그냥 빨래를 너는 게 좋아서이다. 안타깝게도 깨끗하기로 소문난 우리 동네에서는 밖에서 보이게 빨래를 거는 게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이층 침실 앞의 베란다의 하얀 울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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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입고 추는 디스코--자유부인이 되다스치는 생각 2019. 8. 19. 08:25
여행에서 돌아온 후, 엄마와 꼴렛과 함께 아버지 묘소에 가서 기도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엄마의 기도는 여전히 힘차고 신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에릭은 고열 몸살로 된통 아팠는데 이틀 확실하게 아프고는 어제 오전에 회복되었습니다. 저도 입술이 부르텄었는데 엄마가 해주시는 밥 먹고 야채 쥬스를 마셨더니 금방 회복되었습니다. 어제 오전 중에 둘 다 몸이 좀 좋아져서 저의 절친 '쑤우'의 딸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만찬 후에 춤을 추는 시간에 에릭이 저더러 춤을 추자고 했습니다. 거절했습니다. 치렁치렁하는 한복을 내려다보니 춤 추다가 꽈당 넘어지기 쉽상. 그렇지 않더라도 한복과 디스코는 안 어울리지요. 아름다운 한복의 명예를 제가 춤으로 손상시킬 수는 없다! 하고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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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호신술!스치는 생각 2019. 8. 13. 22:30
허리가 부실한 나는 장거리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꼭 운동을 해야한다. 어젯밤 에릭과 저녁 먹고 산책하고 이야기 나누다가보니 운동할 시간을 놓쳤다. 그래도 건강한 여행을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한다 싶어서 기특하게도 밤 11 시 반에 gym 으로 내려갔다. 에릭이 폭신한 침대에서 시트에 돌돌 감긴채 안겨서 ‘안전할까?’ 하고 걱정하는 척한다. 엄지 척 올려주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갔다. 내가 한밤에 운동하는 게 어제 오늘에 일인가...24 시간 열린 gym 이 안전하니까 운영되는 거지... 그.러.나. Gym 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섬뜩했다. 일단 어두웠다. 좁은 공간에 아령들과 근육 기계들이 즐비했다. 달리기를 위한 Treadmill 이 안보였다. 큰 호텔의 gym 이 왜 이리 작지? 달리기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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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를 위한 노래스치는 생각 2019. 8. 7. 11:48
이 글은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을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 하에 쓰여졌습니다. --- 이 아이의 이름은 ‘마이’ 입니다. 고아원에 들어서면서 장애의 여러 모습을 보더라도 놀라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었지만 마이를 보는 순간 잠깐 멈칫 했습니다. 제 평생 사진으로도 눈이 아예 없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먀이는 종일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고개를 세울 수도 있고 앉을 수도 있지만 앉아도 딱히 할 것이 없으므로 그냥 누워 있습니다. 직원들이 죽을 줄 때도 누워서 받아 먹습니다. 먹을 때 잘 받아 삼키고 다른 장애가 없는지라 마이는 아주 깨끗합니다. 옆의 덩치가 큰 시각 장애자 아이가 가끔 심심하면 누워있는 마이를 깔고 앉아 마이를 슬프게 하는 것 말고는 마이는 아무랑 접촉이 없습니다. 봉사자 담당자인 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