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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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동급생엄마 2023. 2. 18. 05:34
이스라엘 어머니,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나의 세 어머니들은 개인적으로는 모르는 사이. 남편과 내가 각자의 본국 (한국/벨기에)이 아닌 제3 국가에서 살다 보니 시댁/친정 식구들이 만나는 것이 어렵다. 1996 년, 미국에서 결혼식 때 시어머니와 어머니가 처음 만났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시아버지는 2016 년에야 처음으로 나의 부모님을 만나셨다. 친정 부모님이 우리 집에서 살고 계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시어머니와 엄마는 단 두 번 만나셨다. 나의 세 어머니들은 세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성격도 판이하게 다르고, 종교와 가치관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다. 평생하고 산 일도 다 다르다. 그들은 서로서로의 존재만을 알고 있었을 따름, 자신들의 삶이 바쁘다 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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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우리가 죽을 때'에 관해서...엄마 2021. 12. 2. 01:35
2013 년 오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2018 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깊이 묵상을 한 기도문이 있다. 그것은 가톨릭교의 '성모송'이다. 나는 개신교도이고, 성모송을 기도로서 기도한 적은 없다. 하나님께 직접 기도를 하는 것에 익숙한 나는 '성모님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달라고 간청' 하는 형식의 성모송에 이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기도문 중의 한 구절은 내가 오빠와 아버지의 삶과 죽음, 더 나아가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해 깊은 사고를 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는 가톨릭교, 개신교의 교리를 떠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성모송에 대한 나의 해석은 가톨릭 교리와는 관계 없는 나의 개인적, 주관적 해석이다. 문학 작품이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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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행복한 때가 언제였냐면….엄마 2021. 11. 1. 08:23
며칠 전 엄마가, “나는 내 인생에서 언제가 제일 행복했던 때였나 생각해보았어.” 라고 말을 꺼내셨다. 언제일까? 궁금함과 동시에 나는 답을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종종 태능 시절이 참 좋았다고 떠올리시곤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강의하시던 서울 여대 옆의 하얀 울타리의 작은 집, 정원에 장미꽃과 뒤뜰에 호박넝쿨이 무성했던 그 집은 나, 오빠, 언니에게도 행복한 유년의 추억의 장소로 남아 있다. 그러나 엄마는 나의 예상을 뒤엎는 말씀을 하셨다. "어렸을 적, 북한에서 살 때였어. 난 참 행복했었어." 오? 처음 듣는 소리여서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의 유년기의 이야기를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의 옛날이야기는 북한에서 기독교인으로서 받은 탄압과 작은 어선을 타고 내려온 피난의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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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메 여사 생신 축하엄마 2021. 7. 13. 18:15
봄메 여사가 …에….아….. 2021-1934= ? 생신을 맞으셨다. 벨기에로 떠나기 전 날이 생신이어서 분명 짐싸느라 경황이 없을 것이라 미리 축하를 했다. 연세가 연세인만큼, 한번 축하로는 성이 차지 않아 두 번! 여전히 우리 집안의 이벤트 메니저인 딸아이가 도움을 줬다. 엄마가 온 식구를 해변의 식당으로 초대해주셨다. (수호야, 너가 왔을 때 갔던 식당이야) 다음에 이벤트, 이번 생일의 서프라이즈, 떡 케이크! 55 년 전, 엄마가 젊었을 때, 고생스러웠지만 행복했던 태능의 집을 추억하며, 연탄!! 우리가 태능에 살았던 때가 이미 55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여대 옆의 하얀 울타리, 장미꽃이 만발했던 작은 우리집은 그 시대의 여느 집과 다름없이 연탄을 땠었고, 어린 아이가 젓가락을 처음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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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날과 ‘김치 기도’엄마 2021. 5. 13. 02:41
어머니 날이 되기 일주일 전에 엄마는 꽃 선물을 받으셨다. 청소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들이 엄청나게 큰 꽃다발을 화병에 담아와 엄마께 드렸다. 며칠 후, 딩동! 소리에 문을 여니 아버지 수발 들 때 일을 했던 분이 꽃다발을 품에 안고 서 있었다. 백신을 맞은 그녀와 엄마는 환호하며 껴안았다. 생각지 않았던 꽃 선물 덕에 우리 거실은 ‘꽃폭탄’을 맞은 것같이 되었다. 딸아이는 ‘오, 너무 예뻐요!’ 환호하면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아줌마들께 달려가 스페인말로 떠듬떠듬 감사인사를 했다.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직진하는 남편은 거실 한 중간에 놓인 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기 서재로 향하기에 내가 ‘옆을 봐봐!’ 라고 외쳤더니 꽃을 보고 놀라서 “오, 오, 오, 오~원더풀!’ 찬탄했다. 멕시코 아줌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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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일간의 아들의 방문/ 3 대의 행복/ 어머니의 사랑엄마 2021. 3. 28. 07:10
아들이 작년 말에 집에 왔다. 자기 동네에서 코비드 검사를 했지만 할머니의 안전을 위해서 집에 오자마자 자가격리. 아들과 딸의 방 사이의 욕실은 테이프로 문틈을 다 막고 욕실/화장실을 아들 전용으로 했다. 삼시세끼는 물론이고 여러 차례 간식까지 온 식구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갖다 바치고 아들은 하루에 한번 차고에 있는 home gym 에서 2 시간씩 운동을 하는 것으로 감금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크리스마스에도 자가 격리가 끝나지 않아 우리는 1 층 식탁에서, 아들은 2 층 자기 방에서 식사를 했다. zoom 을 켜서 얼굴을 보며 밥을 먹었다. 몇 달 동안 마스크를 쓴 채 봐왔던 아들이 zoom에서 마스크를 벗고 인사를 하는 순간, 우리는 다 탄성을 질렀다. 우리집에 예수님이 오시다니! 코로나로 나갈 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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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울렁증 할머니의 미국 병원 생존기 (투병기 2)엄마 2020. 9. 8. 03:12
아침에 엄마께 전화를 했다. 전화를 안받으시니 밤새 뇌진탕이 진행되기 시작했나, 심장에 문제가 있었나 걱정이 들었다.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면 병원에서 연락을 했을테니 아무 일도 없었음이 분명하지만 엄마를 병원에 혼자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려서였다. 간신히 8 시 경에 엄마와 통화가 되었다. “아... 팜펨아!~~” 밝은 목소리. 나는 안도했다. 엄마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난 잘 잤어. 근데 여기 너무 춥다. 아버지 생각나더라. 아버지 응급실 모시고 갈 때 네가 털모자랑 큰 담요를 갖고 응급차에 탔잖아? 응급대원들이 그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그런데 아버지가 그 담요 덕을 얼마나 보았니. 미국 병원은 냉장고같이 추워. 네가 담요 들고 간 거 너무 잘했다." 엇? 엄마가 옛날이야기를 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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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메 여사 쓰러지다 (투병기 1)엄마 2020. 9. 8. 00:43
오늘 (9월 6일 일요일), 42 도 라는 엄청난 기온과 싸우면서, 오늘도 더위 먹은 글쓰기를 하고 있음. (참고로 봄메는 어머니의 한자 이름의 순 한국말.) ---- 엄마의 건강에 적신호가 온 것은 4 월, 코로나바이러스와 남편의 재택근무의 영향이 없지 않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남편이 집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컴퓨터 모니터 두 개를 놓을 큰 책상이 필요했다. 나는 1 층의 나의 서재 (‘자궁’!) 를 양보하고 2 층의 딸의 방을 사용했다. 사위가 집에 24 시간 진을 치고 있으니—그것도 엄마의 공간인 엄마방, 거실, 부엌과 같은 층에서—있으니 엄마는 불편하신지 아주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엄마 방에서 안 나오셨다. 아침에 산책을 다녀오시는 것 말고는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일이 현격이 줄어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