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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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메 여사가 들려주는 625 전쟁 전에 불렀던 북한 노래부모님 이야기 2021. 11. 6. 08:13
요즘 엄마에게서 어렸을 적의 이야기를 듣는다. 옛날부터 노트를 해두었지만 정리할 시간이 없었는데 이제는 좀 더 책임감을 갖고 기록을 하려고 한다. 엄마는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계신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몇 번 타보지도 못한 기차들의 기차역 순서를 외우고 계시고 어렸을 때 부르던 노래들 가사도 꽤 정확히 기억하고 계신다.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나는 너무도 솔직담백한--요즘의 북한 뉴스에서도 잘 나타나는--감정적인 언어에 웃음을 터뜨리고만다. 엄마가 815 후 가장 먼저 배운 노래: 동터오르는 백두산성 승세스러워 오늘부터 조선땅에 조선의 아이들 기운차게 일어나라 새아침이다 태극기를 들고 나가 만세부르자 태극기를 들고 나가 만세부르자 해방 축하 노래 어화 좋다 춤추어라 노래불러라 사십년간 고대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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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때가 있다부모님 이야기 2021. 9. 20. 09:49
며칠 전, 시아버님이 잠시 요양원에 들어가셨었다. 혼자 수발드시던 어머님이 너무 지치셨고, 아버님은 제대로 된 케어를 받으실 수 없어서 급히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계시다.) 우리는 딸아이가 직장 발령지로 떠나기 전에 분주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그 소식을 들어 충격이 컸다. 원래 계획대로 저녁 식사를 했고, 식사 후에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만들어두었던 동영상들을 열 편 정도를 같이 보았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어렸을 때 모습, 부모의 좀 젊었던 모습을 보면서 재밌어서 박수치며 웃었다. 우리가 저랬냐, 저 때 생각난다! 하고 즐거워했다. 동영상 중에는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의 동영상도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고, 현재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는 시부모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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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부모님 이야기 2021. 8. 9. 15:59
남편이 브러셀에서 돌아왔다. 원래 간단히 여행하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큰 가방 하나를 더 들고 왔다. 쟈닌이 남겨준 그림 두 점을 잘 포장해서 넣다보니 가방 하나가 필요했단다. 남편이 거실 테이블에서 큼직한 포장 하나를 뜯었다. 이름있는 화가의 작품이란다. 성모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이었다. 둘 다 별 특별한 감흥 없이, ‘피에타이구나’ 하고 두번째 박스를 꺼냈다 작은 그림이었다. 그림을 본 순간, 나는 ‘앗, 에릭!’ 하고 외쳤다. “쟈닌 생각이 나!” 남편이 의아해햐며 그림을 바라보았다. “하얀 지팡이야. 쟈닌의 지팡이처럼!” 남편이 “오, 맞다! 정말 하얀 지팡이네!’ 하더니만 “진짜 쟈닌같다…쟈닌이네, 쟈닌…”이라 혼잣소리를 했다. 자기가 지난 밤에 포장을 하면서 꽤 찬찬히 살펴봤던 그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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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발, 사랑, 공감 (시부모님)부모님 이야기 2021. 7. 8. 15:51
브러셀의 아침 6 시.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한 시간 전에는 이렇게 앉아 있었다가… 유리창에 반사되는 아침 햇살이 예뻐서 자리를 바꿔 앉았다. 저 반짝임은 얼마 지속되지 않았지만… 도시 중심가인데 새 소리가 청명하다. 비둘기떼가 날개를 퍼덕이며 힘차게 하늘로 솓더니만 다 뿔뿔이 흩어진다. 한 시간 전에만해도 차 소리가 전혀 안 들렸는데, 조금씩 트럭 소리, 자동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도시가 기지개를 켜며 깨어날 때 나도 함께 깨어 있으면서 움직임, 소리, 차가운 공기 등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음이 너무도 행복하다. 오늘은 하루가 맑을 것이라는 예보가 내렸다. 바로 다음날과 당일의 기상 예보는 꽤 정확한 편이라 아마 오늘 맑고 아름다운 날씨를 즐기게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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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에 나타난 돌아가신 이모님부모님 이야기 2021. 6. 18. 09:50
남편과 시댁에 갈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표를 예약한 뒤 숙소를 찾아보던 중이었다. 에어비엔비로 시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파트를 예약을 한 뒤 주소를 받았다. 구글 지도로 거리를 가늠해보고, street view 로 집 주위 환경을 관찰해보고 무심코 마우스를 움직여 시댁 주소의 street view 를 열었다가 우리는 둘 다 화들짝 놀랐다. 쟈닌이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쟈닌이 현관에서 문고리를 잡고 뒷모습이 구글 street view 사진에 찍힌 것이었다. 90 세가 넘는 연세에도 똑바른 등, 편하면서도 세련된 색감의 옷,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하얀 지팡이. 너무도 친숙한 쟈닌의 모습이었다. 언제고 돌아서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헬로!” 하고 인사를 할 듯하다. 쟈닌을 이렇게 보는 건 참으로 신기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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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한 할아버지와의 만남부모님 이야기 2020. 2. 21. 16:01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지 생신이다. 엄마와 아버지 묘소에 다녀왔다. 주중 아침의 묘원은 늘 한적하다. 날씨가 화창했고 묘원의 꽃들이 아름다웠다. 지난 주말에 왔을 때 아버지 묘소의 화병에 꽃은 꽃들의 일부는 아직도 싱싱했다. 물을 갈고 새로 사온 꽃을 꽃았다. 엄마와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했다. 뒷산에 산책가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아버지 묘소를 찾아와 이렇게 예배 드릴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등을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이 따갑게 느껴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집에 가려고 차로 갔는데 차 위에 새 한마리가 있었다. 옛날에 읽은 어떤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이 새를 보고 '아버지!' 하고 마음으로 오래 전에 죽은 아버지를 부르던 장면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 차를 타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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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머니'부모님 이야기 2019. 12. 19. 14:40
엄마와 같이 자원봉사 다녀왔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꾸러미들을 검사하고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엄마가 휴식시간 20 분 빼고는 장장 네 시간을 서서 일을 하셨습니다. (참고로 엄마보다 20 년 젊은 제 친구들 중에는 힘들어서 두번 휴식한 사람도 있습니다.) (S 양, 홍삼액 파워가 대단합니다~! 땡스!) 엄마의 건강은 아슬아슬하고, 몸을 움직이시는 게 예전보다 많이 유연하지 못하고, 힘도 많이 떨어지셨으나, 매일 열심히 운동하고, 산책하고, 기도하시면서 오히려 3 년 전보다 건강이 좋으십니다. 그게 자원봉사 하면서 확실히 증명되었습니다. 또 하나, 엄마는 영어만 쓰는 제 친구 10 명과 어울려서 일을 하시는 게 불편할 수 있음에도 용기를 내서 함께 가셨어요.(엄마는 영어로 미국땅을 정복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