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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바'와 민트사탕
    스치는 생각 2019. 12. 14. 10:09

     

    남편은 차의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차 도어의 포켓에서 작은 알루미늄 박스를 하나 꺼내 열고는 나에게 묻곤 한다.

    "민트?"

    박스 안의 페퍼민트 사탕을 하나 먹겠냐는 질문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그에게 하얀 사탕 두 개를 받아 입에 넣는다. 에릭이 운전을 한다. 달콤한 사탕이 스르르 녹으며 상쾌한 민트 향이 차안에 퍼져간다. 행복해진다. 나는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먼 옛날, 나에게 민트 사탕을 건네었던 한 남성을 떠올린다.

    아로디.

    나의 이스라엘 아버지.

    아로디는 나를 이스라엘로 초청한 오프라 교수의 남편이다. 나는 그를 '아바'라 불렀다. (히브리어로 '아버지')

    나는 이스라엘에 도착한 뒤 6 개월간 오프라의 집에서 살며 하이파 대학에 통학하였는데, 가끔 학교에 갈 때, 아니면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이파 시에 사무실이 있던 아바의 밝은 비치색 (민트색) 미니밴을 얻어 타곤 했다. 

    내가 차에 올라 앉은 뒤 출발하기 전에 아바는 하이파 시의 단골 가게에서 산 하얀, 부드러운 페퍼민트 캔디 꾸러미를 나에게 건네었다. 나는 꼭 한번에 두 개씩 입에 물었다. 아바가 운전을 하는 동안 나는 입에서 스르르 녹는 달콤함과 코로 시원하게 퍼지는 청량한 민트 향을 느끼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도시와 평야의 광경을 구경했다. 스트레스와 경계심으로 지쳐있던 내 마음이 서서히 녹으면서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 행복감은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안전함에서 오는 것이었다. 나를 이스라엘로 초청했던 그의 부인 오프라와 함께 아로디는 문화 충격과 언어 충격 속에서 매일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나에게 든든한 디팀목이었다. 심리학자답게 오프라는 나를 대화로서 도왔다면 과묵한 아바는 말대신 행동으로, 미소로, 다정한 시선으로 나를 지지해주었다. 아바의 차에 타고 있으면 나는 말도 안되는 자신감--예를 들어서 이 차는 절대로 사고가 안 날것이다, 사고가 나도 우리는 절대 안 다칠 것이다--이 들 정도로 나는 어린 딸이 아빠를 의지하듯이 아바를 의지했다. 이스라엘을 떠난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들의 나에 대한 지지와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아바는 2016 년 겨울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5 개월 전 오프라와 아바를 찾아 뵈었을 때 이제는 우리가 작별을 준비해야하는구나 직감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어떤 식으로도 준비될 수 없는 법. 아바가 떠나신 뒤에 나는 그의 빈자리가 너무도 공허해 혼자 많이 아파했고, 소울메이트를 잃고 깊은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오프라와 많은 이멜을 주고받았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아버지 병수발 중에 이스라엘로 가 일주일동안 오프라랑 꼭 붙어 있으면서 함께 슬픔을 나눈 것은 오프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민트에 관한 모든 것은 나에게 소중하게 되어버렸다. 민트 허브, 민트 색깔, 민트 차는 행복의 기억을 떠올린다. 운전치인 내가 절대로 소유할 일이 없지만 그래도 갖고 싶다 꿈을 꿔보는 자동차가 민트색 폭스바겐 미니밴이라는 사실도 어쩌면 그 차와 연상되는 지난 날의 기억때문일지도 모른다. 민트 캔디를 입에 물고 아바가 운전하는 민트색 미니밴을 타고 하이파 시를 누비던 그 행복한 기억말이다.  민트향, 민트맛, 민트색은 곧 아바의 기억이다. 

    오늘은 아바가 세상을 떠나신 날. 

    아바는 이제는 나에게 사탕을 건네주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셨다. 그의 목소리가, 그의 미소가 그립다. 녹아버려도 그 달콤하고 상쾌한 맛이 오래 남아 있는 민트사탕처럼, 아바는 떠났어도 아바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바의 목소리, 미소가 생생히 다 생각난다. 서서히 행복의 기억이 나의 마음을 채운다. 

    아바, 참 그립습니다.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아바가 돌아가시기 5 개월에 찍은 마지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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