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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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필사스치는 생각 2021. 5. 20. 07:51
오후 2 시, 하루의 반이 지났다. 청소가 끝난 뒤 손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널고, 빗자루로 베란다를 쓸었다. 창문을 열고, 반대편의 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이 통하고, 신선한 공기가 내 방을 채운다.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고 Oswald Chambers 의 책, “My Utmost for His Highest” 필사를 했다. 펜에 잉크를 찍을 겸, 눈을 쉴겸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베란다에 걸려있는 빨래들이 시야를 채운다. 바로 그 뒤로 하늘이 파랗고, 밝은 햇살에 나무들이 봄바람게 가볍게 춤추고 있건만.... 구석에 거구로 세워진 빗자루에 눈이 간다. ‘앗, 빗자루를 제자리에 놓는 것을 잊었었네. ‘ 등의자에 걸려있는 빨주노초파남보 화려한 색깔의 멕시코 담요도 나의 시선을 뺏는다. ‘아, 먼지를 턴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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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스치는 생각 2021. 5. 11. 13:38
쟈닌이 떠나고 난 뒤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안락사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을 글로 썼고, 몇 개의 에세이가 거의 완성되었다. 휘르륵 한번에 나오지 않는 글들이어서 그런지, 완성을 하기 쉽지 않았다. 읽고 또 읽고, 그럴 때마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글쓰는 내내, 그리고 글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딸의 안색만 봐도 정신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시는 엄마는 내 몸에 흐르는 그 ‘불쾌하고 부정적인 기’를 읽으셨다. 팜펨, 너는 너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식구가 적어도 3 대가 같이 사니 그 중심에 있는 너는 남모르게 신경쓰는 일이 많을 거야. 내가 알아서 건강을 잘 유지할테니 며칠 나를 믿어주고 너 혼자 잠깐 밖에 다녀와라. 라는 엄청난 제안을 하셨다. 엄마의 축복, 온 가족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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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의 장례식을 치루며...스치는 생각 2021. 1. 29. 14:24
오랫만에 처음 휴가/여행을 떠났다. 결혼 25 주년, 남편의 생일 겸사겸사, 집에서 15 분 거리의 Laguna Beach, 바다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완전한 휴식. 남편도, 나도 많이 지쳐있어서 이번 여행은 각자 마음 가는대로 보내기로 했다. 자기 멋대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 알아서 먹고,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하기— 바다에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나가고, 언덕에 산책가고 싶은 사람은 가고, 아니면 방에 틀어박혀 책읽고 그림그리고.. 온전히 자기가 원하는대로 시간 보내기. 나는 가방 한 가득 책을 싸왔다. 각기 다른 주제, 다시 읽고 싶은 책, 그냥 휘르륵 스치면서 읽을 책, 그리고 스페인어 문법책. 스페인어 공부할 시간이 안 날 가능성이 크지만, 뭔가 공부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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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기일스치는 생각 2020. 12. 16. 03:38
4 년 전, 아로디 (이스라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다행히 나는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기 3 개월 전, 아버님을 찾아뵈었다. 당시 나의 아버지 수발을 들 때였는데 ‘이번에 아로디를 못 보면 평생 후회할 것같다’ 는 직감이 있어서 무리를 해서 에릭과 이스라엘 휴가를 갔었다. 아로디는 한눈에 많이 편찮아보였다. 내가 30 년 전 이스라엘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내 짐을 번쩍번쩍 들어 날라주고 집안의 온 궂은 일을 쉽게, 씩씩하게 해치우던 아로디는 계단 몇 개를 오르면 심장의 고통을 참아야하고, 집안에서 천천히 걸을 때도 숨이 차하는 그런 약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에릭을 너무도 좋아하신 아로디, 두번째 만남인데 마치 사랑하는 친아들을 오랫만에 만난 듯이 즐거워하셨다. ‘아로디가 저렇게 즐거워하는 모습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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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을 현재로 살기스치는 생각 2020. 12. 1. 16:17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우리는 바로 몇개월전의 일상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는 소리도 있다. 1 년 전의 일들을 30 년 전의 그 옛날—손을 많이 쓰고, 발품 많이 팔고, 기다리는 것에 익숙했던 그 옛날—처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런데 1 년 전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못하지만 나는 ‘30 -40 년전의 그 옛날’을 나의 ‘현재 시제’로 살고 있다. 집밖에 나가서 누리던 삶의 자극과 즐거움이 사라진 요즘, 집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한다. 손을 많이 쓰고, 생각없이 해치우던 일들을 천천히 하면서. 2 층의 우리집 ‘안방’은 나에게는 참 재밌는 놀이터가 되었다. 부엌에서 일을 하고, 엄마랑 대화 나누는 시간 빼놓고 나는 대부분 안방에서 논다. 씨디로 음악을 듣고, 몇 개 안남은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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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바인 화재 (수요일 업데이트)스치는 생각 2020. 10. 29. 03:42
제가 자주 업데이트하지 않는 블로그에 화재 이야기를 업데이트하는 이유는 저랑 같이 사는 어머니께 지역 뉴스를 신속하고 정확히 알게끔 해드리기 위함이기도해요. 소방당국의 발표 (수요일 아침 10시경) 현재 1300 명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실버라도 화재 (얼바인) 진화율 24 퍼센트 13,354 에이커 전소 주택/건물 피해 0 (소방헬기 8 대, 소방차 148 대, 불도저 8 대, 급수차 12 대) —-블루릿지 화재 (얼바인 인근) 진화율 16 퍼센트 14,334 에이커 전소 건물 피해 8 (파손 7 채, 전소 1 채) (소방헬기 3 대, 소방차 38 대) 강제 대피령이 내려있던 지역들의 일부는 어제 (화요일 저녁) 대피령이 해제되었고요 (집에 돌아가면서 행복한 셀피를 찍어 보내던 친구들은 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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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바인 화재 (화요일 아침 업데이트)스치는 생각 2020. 10. 28. 00:17
궁금해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잠시 업데이트 할께요. 저희는 대피령이 내리지 않아서 집에 머물렀어요. 인근 고등학교들에 overnight shelter 가 세워져서 대피시 갈곳이 없는 주민들은 그곳에서 머물렀습니다. 소방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실버라도 캐년 화요일 아침 현재 11,199 에이커 전소 5 퍼센트 진화 건물 소실 0 (건물이 기초까지 완전히 다 전소되는 경우를 말함.) 아직도 강풍 주의보가 내려져있습니다. 오늘 저녁까지 6 시까지. 바람이 불면 불이 급속히 번지는 것도 문제이고 소방 헬기가 뜰 수가 없어서 진화 작업이 더더욱 어려워지지요. 원래 캘리포니아는 긴 여름 내내 모든 게 바짝 말라버린 뒤, 강풍이 불기 시작하는 10 월이 산불이 많이 나는 달이에요.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산불에 익숙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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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바인 화재 (실버라도 캐년 화재)스치는 생각 2020. 10. 27. 07:58
어젯밤부터 바람이 너무 심해서 바람 소리때문에 두어 번 깼어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제 행복해하면서 손빨래해서 널어놓은 옷들은 ('된장찌개 행복'에서 쓴 그 손빨래 ㅠ ) 다 훨훨 날아가 나뭇잎들더미에 묻혀있고, 음산하게 아름다운 하늘. 창문이니 문이니 다 닫혀있었지만 이미 방에 연기 냄새가 났어요. 오늘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8 시경에 운전해서 가는데 동네의 그 아름다운 나무들이 뿌리채 뽑혀서 굴러다니고 있고 (시속 100 km 정도의 바람!) 언제고 나무가 뚝 끊어져서 차를 덥칠지 몰라서 좀 두려웠어요. 주차장에서 걷는데 바람때문에 휘청거림. 도대체 밤 내내 불던 바람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렇게 기승이지? 어디에 불이 난 걸까? 뉴스를 확인해보니, 얼바인 근처의 산에서 아침 7 시 경 산불이 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