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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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peical Sister"--뇌성마비 여동생을 기리는 오빠의 부고스치는 생각 2021. 9. 24. 08:11
지난 일요일 아침, 평상시처럼 커피를 마시면서 엘에이 타임스 신문의 부고란을 읽고 있었다. 짧은 한 부고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A Special Sister" 라는 타이틀 바로 밑에는 "욕심과 걱정이 전혀 없었던 나의 여동생을 기리며"라는 부제가 따랐다. 장애인 여동생의 이야기구나 싶었다. ('special' 은 '특별한'이란 의미 말고도 '특수 장애를 가진'이란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A Special Sister"라는 타이틀은 특수 장애를 가진 누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가가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짧은 한 문단에 이미 감동이 왔다. 나는 지난 10 여년간 열심히 부고란을 읽었지만, 가족이 아닌 한 사람이, 그것도 망자의 자녀가 아닌 오빠가 동생을 위해 올린 부고는 처음이어서 흥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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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랑했던 너는 어디에 있니스치는 생각 2021. 8. 6. 22:39
나는 이스라엘 어머니, 오프라와 일주일에 한 번, 화상 채팅을 한다. 우리는 한 시간 동안 꽤 열정적으로, 각자의 삶, 가족, 문화, 책, 영화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팽팽하게 맞서서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고, 남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눈다. 브러셀 여행으로 한 달간 채팅을 못했는데 어제 회포를 풀었다. 어머니의 근황과 나의 여행이 주요 토픽. 오프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랑 채팅을 한 게 이스라엘 시간 밤 10 시였는데 오전 중에 자기 집의 세미나실에서 5 시간 동안 그룹 웍샵을 했고, 오후에는 줌으로 한 시간 동안 상담치료를 했다고 했다. 85 세이신데… 대단한 정력에 대단한 열정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가 운동을 하라고 하는데 운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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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기도스치는 생각 2021. 7. 29. 23:04
3 주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말을 많이 한 여행이었는데도 마치 기도를 오래 한 피정을 다녀온 듯 정신이 맑고 몸도 예상보다 훨씬 더 가뿐하다. 그 이유는 여행 중 글을 많이 쓸 수 있어서였다. 블로그에 올린 글이 열 개가 넘고, 그냥 따로 쓴 글도 여럿이다. 매일 아주 바빴지만 아침 일찍, 저녁 늦게 생각을 글로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고, 숨가쁘게 지나가는 순간들을 잡아서 기록하고 이미 지나가 버린 일들을 다시 기억해내 글로 옮긴 덕에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시간을 잡으려 허둥지둥하는 꼴이 아니라, 내가 시간의 고삐를 잡고, 삶의 주체로서, 내내 평온한 마음으로 지냈다. 글쓰기의 기도 효과. 매일 기도를 하면서 건강한 ‘기도 근육’을 키워나가다보면 번잡스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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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스치는 생각 2021. 7. 19. 17:53
벨기에에 오자마자 우리는 아버님이 웃지 않으시고 말씀을 안하신다는 사실에 적지 않이 놀랐다. 아버님은 원래부터 좀 걱정이 많으신 성격이긴해도, 바로 그런 부정적 성향을 십분 활용해 농담도 잘 하시고 대화를 즐기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봉쥬르, 아버님!” 하고 인사를 드리면 “글쎄….” 라고 하시면서 얼굴을 찡그리시고 아버님이 어디가 불편하신가에 대한 대화 몇 마디 주고 받은 뒤에 혼자 가만히 우울한 생각에 잠기어 계시곤 했다. 친정 아버지도 넘어지신 뒤 몸을 못 쓰게 되시자마자 극심한 우울증에 걸리셨던 적이 있어서 시아버님의 우울함이 생소하지 않다. 그러나 팔을 가슴 높이로 올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장애의 상태가 심각했던 아버지와 달리 시아버님은 정상적으로 걷는 것만 못하실 따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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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스치는 생각 2021. 7. 19. 08:55
2018 년, 브러셀에 가족 여행을 왔을 때 아주 아주 아주 힘든 일이 생겼었다. 아니, 아주 힘든 일이 있었음을 발견했다고 해야 맞겠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로 놀랐고, 미안했고, 안타까웠고, 아팠다. 원래는 브러셀 가족 여행이 아니라 남편과 나, 단 둘이 퀘벡 여행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부부 여행이 아니라 가족 여행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전면 수정해서 ‘가족 여행’이라는 구실로 아이들과 브러셀에 왔는데 암스테르담에서 브러셀 도착하는 날, 큰 일이 터졌고 2 주 내내 마음 고생하고, 다시 계획을 수정해서 아이들과 런던에 가서 다들 마음을 추수린 뒤 집으로.. 두 번 바뀐 뒤죽박죽 일정, 비행기 표를 구할 길 없어 아들, 딸, 나와 남편, 다 따로따로 비행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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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스치는 생각 2021. 7. 18. 01:50
폭우를 뚫고 에어비엔비 이사를 했다. 남편이 비가 약간 수그러졌을 때 시동생이 빌려준 전기 자전거를 타고 (빨리 달릴 수 있으니까) 어머님 댁에 잠깐 들렀다가, 바지가 너무 젖어서 드라이어에 말리고, 자전거 안타고 우비 입고 걸어 돌아왔다. ‘비가 대단하네…’ 우리는 이사를 하느라 바빠 뉴스를 못 들었다가 시동생 집에 저녁 먹으러 갔을 때 벨기에 동남부를 강타한 폭우와 홍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쌍동이 조카들이 마르세이유에 캠핑을 갔다가, 어제부터 현재 홍수 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에서 캠핑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홍수로 취소되어—-캠핑 하고 있는 중에 물난리 났으면 큰일이었겠지요—-무사히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온 식구들이 마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환영하듯이 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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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러셀의 택시 기사—수호기사스치는 생각 2021. 7. 16. 21:55
시동생 집에서 저녁을 먹고 에어비엔비 숙소로 가려고 택시를 주문한 시각은 자정이었다. 여자 조카 중의 한 명이 우리 에어비엔비 근처에서 살아서 우리와 택시를 같이 타고 가다 내려주기로 했다. 조카의 아파트는 중심가에 위치해있었다. 브러셀의 옛 아파트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아파트의 문들은 창문이 없는 큰 철문/나무문이고 열쇠로 열어야한다. 우리와 작별인사를 하고 내린 조카가 내려서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려고 하는 내내 택시가 가만히 서 있었다. 남편은 기사가 다음 행선지인 우리 주소를 못 찾는 줄 알고 “xxx 아뷔뉴 루이즈 입니다” 라고 주소를 말해줬다. 기사가 “주소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 여자분이 안전히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려고 기다리는 거에요” 라고 했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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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망했다’를 축하하는 나이스치는 생각 2021. 7. 9. 03:43
얼마 전부터 딸아이가 ‘엄마 환갑 해야지!’ 하며 계획을 세웠다. 여러 사람 초대하고 케이터링해서 크게 할까? 아니면 집에서 조촐하게 할까? 물었다. 당연히 간단하게 하는 거지! 코로나 시대에 무슨 파티냐! 딸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며칠 후에는 엄마를 미역국과 환갑 떡을 꼭 먹여야겠단다. 떡은 오케이, 미역국은 No! 미국에서 자라 환갑잔치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딸아이가 사명감을 갖고 내 환갑을 차려주려고 하는지 기특했다. 다시 며칠 후, 환갑 기념으로 온가족이 한복을 입자고 한다. 그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남편은 25 년 전에 맞춘 한복이 있다. 나는 몇 해 전 맞춘 한복—-내가 원하는 대로 ‘로동당 간부가 입을 법한 촌스러운 색상의 한복’-이 있고 어머님은 스스로 만드신 모시 개량한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