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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복입고 추는 디스코--자유부인이 되다
    스치는 생각 2019. 8. 19. 08:25

    여행에서 돌아온 후, 엄마와 꼴렛과 함께 아버지 묘소에 가서 기도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엄마의 기도는 여전히 힘차고 신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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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에릭은 고열 몸살로 된통 아팠는데 이틀 확실하게 아프고는 어제 오전에 회복되었습니다. 저도 입술이 부르텄었는데 엄마가 해주시는 밥 먹고 야채 쥬스를 마셨더니 금방 회복되었습니다.

    어제 오전 중에 둘 다 몸이 좀 좋아져서 저의 절친 '쑤우'의 딸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만찬 후에 춤을 추는 시간에 에릭이 저더러 춤을 추자고 했습니다. 거절했습니다. 치렁치렁하는 한복을 내려다보니 춤 추다가 꽈당 넘어지기 쉽상. 그렇지 않더라도 한복과 디스코는 안 어울리지요.  아름다운 한복의 명예를 제가 춤으로 손상시킬 수는 없다! 하고 춤을 참았습니다. 

    그/러/나, 디제이가 결혼식에 참석한 나이 지긋한 부모 세대들이 스테이지에 뛰어들게끔 80 년대 음악을 계속 트는 거에요.

    한복 입고 디스코는 안될 말이지...난 절대 안 춘다.

    그렇게 저는 지조를 지키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독약과 같이 진하고 맛없는 커피를 조금씩 마시면서 환상적인 불빛아래 신나게 춤추는 무리들을 보면서 마음이 점점 복잡해졌습니다.

    어머머...마돈나네...

    어머머...마이클잭슨이야.

    아,  "I wanna dance with somebody" 는 정말 춤추기 최고...

    아바? 아, 정말....어쩌라고!!

    허...결국 흥을 못이겨서 뒤뚱거리면서 뛰어나가 춤을 추고 말았습니다. 꽈당 넘어질까봐 치마를 잡은 채. 번쩍이는 하이힐 날이 부러질까 조심하면서.

    흥겹습디다....(흑..연륜이 묻어나는 나으 말투.)

    춤추면서 깨달은 사실 하나. 빳빳한 속치마로 확 퍼지는 한복 치마 덕에 좁은 무대에서 영토 확보 신경전이 필요 없다는 사실~ 그냥 그자리에서 팔을 들지도 않고 다리로 박자만 맞주고 서 있어도 세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해주는 한복치마! 

    그러나 처음에는 즐겁게 춤추면서도 '이게 뭐지? 내가 뭐하고 있지?' 의 자의식이 저의 뇌리를 지배했습니다. 한복의 우아함과는 전혀 맞지 않는 디스코를 추면서, 누가 보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어요. (이미 다 보고 있는데!!) 추고 싶다! 의 욕망과 이건 아니지! 의 자아비판의 갈등이 춤을 추는 저의 마음은 60 년대에 한복 입고 몰래 카바레를 드나들던 바람난 아줌마가 느끼던 (놀고싶다는) '욕망'과 (들키면 어쩌나는)'두려움'의 갈등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흑백 화면의 뉴스로 보았던 옛날 카바레의 한복 입은 아줌마들 영상도 생각나고...그 유명했던 소설/영화, '자유부인'도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저의 옆에서 춤을 추는 남편을 위시해서 외국인 친구들은 제 머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이 휙휙 지나가는지 상상을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심지어 린다는 춤을 추니 한복이 더 예쁘게 보인다고 (쟁쟁 울리는 음악에 맞서서) 저에게 고함질렀습니다. ㅠ

    친구들은 '오늘 어쩌다 한복을 입은 팜펨, 즐겁게 춤추고 있네' 라고 생각하지, '팜펨이 한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스코를 춘다' 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춤을 추던 제 주위의 사람들은 그걸 그냥 '흥'으로만 볼 거라는 생각에 일말의 자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추자, 추자, 추자! 와이 낫! 나도 내후년에 환갑이야! 따지지 말고 순간을 즐겨라, 팜페마~~~!!

    의식에서의 자유, 그거야 말로 진정한 자유!

    그렇게 저는 진정한 자유부인이 되어 즐겁게 춤 췄습니다.

    파티가 끝난 뒤 늦은 시간, 한복 치마를 양손으로 들쳐 올린 채 아픈 발로 터벅터벅 걸어 주차장의 차로 향하면서 오랫만에 아주 아주 행복한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몸은 늙어서 낑낑대며 춤췄지만 과거로의 여행 덕에, 자유로움의 경험 덕에 마음이 젊어졌습니다. 

    자유부인은 아주 푹 잘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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