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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빨래스치는 생각 2019. 11. 18. 03:43
나는 손빨래를 좋아한다. 아직도 자주 손빨래를 한다. 손빨래는 행복한 추억을 갖다 준다. 소중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어려서 살던 태능집. 마당의 수세미 덩쿨 밑으로 있던 수돗가.. 나는 대야에 물을 받아 물장난 겸, 빨래 겸, 놀았었다. 내가 아무리 힘껏 빨래를 짜도 물이 뚝뚝 흐르는데 엄마가 한번 휙 짜면 모든 물이 다 빠지는 게 신기했었다. 여름, 햇볕이 좋은 날, 낮에 잠시 놀고 나면 빨래는 빳빳하게 말라있었다. 요즘 손빨래를 하면 당연히 빨래줄에 널지만, 어떨 때는 세탁기로 빤 빨래도 넌다. 에너지 절약이 주 목표가 아니라, 그냥 빨래를 너는 게 좋아서이다. 안타깝게도 깨끗하기로 소문난 우리 동네에서는 밖에서 보이게 빨래를 거는 게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이층 침실 앞의 베란다의 하얀 울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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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껴안아주는 아이들의 문자부모님 이야기 2019. 11. 15. 16:22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벌써 1 년이 지났다. 기일은 아이들이 중간고사와 과제로 바쁜 주간이었다. 그래서 중간고사 일주일 전에 집으로 와 아버지 기일을 같이 지켰다. 오후 늦게 묘원에 갔다. 해가 뉘엇뉘엇 지는 묘원에는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서 한적했다. 새소리가 들렸다. 따뜻한 햇살을 등에 받으면서 아버지 묘에 둘러 앉고 섰다. 조용한 가족만의 시간. 아버지가 옆에 계시는 것같았다. 에릭이 기도로 아버지를 기렸다. 꼴렛은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슬플 때 듣는다며 Japanese Breakfast 라는 그룹의 노래를 틀어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에밀은 짧게 '할아버지가 삶을 통해 남겨주신 교훈을 계속 생각하며 살겠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내가 준비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힘찬 기도로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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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입고 추는 디스코--자유부인이 되다스치는 생각 2019. 8. 19. 08:25
여행에서 돌아온 후, 엄마와 꼴렛과 함께 아버지 묘소에 가서 기도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엄마의 기도는 여전히 힘차고 신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에릭은 고열 몸살로 된통 아팠는데 이틀 확실하게 아프고는 어제 오전에 회복되었습니다. 저도 입술이 부르텄었는데 엄마가 해주시는 밥 먹고 야채 쥬스를 마셨더니 금방 회복되었습니다. 어제 오전 중에 둘 다 몸이 좀 좋아져서 저의 절친 '쑤우'의 딸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만찬 후에 춤을 추는 시간에 에릭이 저더러 춤을 추자고 했습니다. 거절했습니다. 치렁치렁하는 한복을 내려다보니 춤 추다가 꽈당 넘어지기 쉽상. 그렇지 않더라도 한복과 디스코는 안 어울리지요. 아름다운 한복의 명예를 제가 춤으로 손상시킬 수는 없다! 하고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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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호신술!스치는 생각 2019. 8. 13. 22:30
허리가 부실한 나는 장거리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꼭 운동을 해야한다. 어젯밤 에릭과 저녁 먹고 산책하고 이야기 나누다가보니 운동할 시간을 놓쳤다. 그래도 건강한 여행을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한다 싶어서 기특하게도 밤 11 시 반에 gym 으로 내려갔다. 에릭이 폭신한 침대에서 시트에 돌돌 감긴채 안겨서 ‘안전할까?’ 하고 걱정하는 척한다. 엄지 척 올려주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갔다. 내가 한밤에 운동하는 게 어제 오늘에 일인가...24 시간 열린 gym 이 안전하니까 운영되는 거지... 그.러.나. Gym 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섬뜩했다. 일단 어두웠다. 좁은 공간에 아령들과 근육 기계들이 즐비했다. 달리기를 위한 Treadmill 이 안보였다. 큰 호텔의 gym 이 왜 이리 작지? 달리기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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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를 위한 노래스치는 생각 2019. 8. 7. 11:48
이 글은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을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 하에 쓰여졌습니다. --- 이 아이의 이름은 ‘마이’ 입니다. 고아원에 들어서면서 장애의 여러 모습을 보더라도 놀라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었지만 마이를 보는 순간 잠깐 멈칫 했습니다. 제 평생 사진으로도 눈이 아예 없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먀이는 종일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고개를 세울 수도 있고 앉을 수도 있지만 앉아도 딱히 할 것이 없으므로 그냥 누워 있습니다. 직원들이 죽을 줄 때도 누워서 받아 먹습니다. 먹을 때 잘 받아 삼키고 다른 장애가 없는지라 마이는 아주 깨끗합니다. 옆의 덩치가 큰 시각 장애자 아이가 가끔 심심하면 누워있는 마이를 깔고 앉아 마이를 슬프게 하는 것 말고는 마이는 아무랑 접촉이 없습니다. 봉사자 담당자인 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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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사랑을 계속해야하는 이유스치는 생각 2019. 8. 4. 22:09
이 글은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을 공개해도 된다는 허락 하에 쓰여진 것입니다. --- 고아원에 처음 방문한 날, 우리를 반겨준 두 어린이—프랭크와 조이. 그들은 능숙하게 전동 휠체어를 조정해서 마당을 누비고 있었다. 우린 처음에 아가들이 휠체어를 몰고 다니는가 놀랐으나 알고보니 둘 다 열살이 넘은 나이였다. 봉사프로그램 담당자 져스틴이 ‘왼쪽의 프랭크는 발이 굽었고, 오른쪽 붉은 티셔츠를 입은 조이는 손가락이 굽고 제 기능을 못해서 발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알려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두 아이는 고아원의 ‘스타’였다. 그럴 수밖에....극심한 신체적 장애에 지적 장애아들을 돌보면서 당혹스러운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고, 눈에 확연한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표정의 프랭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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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몽키를 쓰다듬으며....스치는 생각 2019. 8. 1. 23:26
--이 글은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을 공개해도 된다는 허락 하에 쓴 것입니다-- 베트남 고아원의 ’몽키’라는 별명의 아가는 troublemaker 이다. 사랑스러운 골칫거리. (‘몽키’라는 별명이 마음에 안들지만 그게 그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이 되어 버렸으므로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겠음) 몽키는 몸이 많이 불편한 아이들과는 달리 뛰어다닐 정도로 몸은 정상이나 언어 능력이 없다. 요양소/고아원 직원 말에 의하면 몽키에게는 자폐, ADHD, 강박증 증상들이 있는 듯하며 그 외에도 진단되지 않은 장애들이 있는 것같다고 한다. ‘장애가 분명히 있는데 뭔지 잘 모르겠는 상태’의 몽키에게는 고아원이 그의 상태에 딱 맞는 공간이 아니다. 그는 몸이 몹시 불편한, 중증 장애의 아이들과 함께 살기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중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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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어떻게 할까나스치는 생각 2019. 7. 29. 23:15
아버지 돌아가신 뒤에 짐정리를 하고 있다. 5 년 전에 이사온 뒤에 여러 일이 일어났고 열지 못하고 차고에 쌓아두었던 박스들을 하나씩 풀고 있는데... 초중학교 때 쓴 일기장들이 나왔다. 좁은 집, 다섯 명의 가족. 나만의 공간이 절실하던 때. 이 일기장을 누군가가 볼 지 모른다는 거의 공포에 가까운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면서 일기를 썼던 때. ‘일기장을 보는 사람에게는 삼대에 걸쳐 재앙이 있으리라” 라는 저주로서 나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고 했던 처절하고 무의미한 시도를 보면서 풋! 웃음이 나왔다. 어떤 일기장은 한 권이 다 내가 개발한 암호 언어로 씌여 있었다. 아...맞아....올리비어 허시 주연의 로미오와 쥴리엣을 본 뒤의 감동을 글로 쓰고 싶은데 누군가가 내 일기장을 볼까 두려워 반나절 걸려 나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