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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 몽키를 쓰다듬으며....
    스치는 생각 2019. 8. 1. 23:26

    --이 글은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을 공개해도 된다는 허락 하에 쓴 것입니다--

    베트남 고아원의 ’몽키’라는 별명의 아가는 troublemaker 이다.

    사랑스러운 골칫거리.

    (‘몽키’라는 별명이 마음에 안들지만 그게 그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이 되어 버렸으므로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겠음)

     

     

     

    몽키는 몸이 많이 불편한 아이들과는 달리 뛰어다닐 정도로 몸은 정상이나 언어 능력이 없다. 요양소/고아원 직원 말에 의하면 몽키에게는 자폐, ADHD, 강박증 증상들이 있는 듯하며 그 외에도 진단되지 않은 장애들이 있는 것같다고 한다. ‘장애가 분명히 있는데 뭔지 잘 모르겠는 상태’의 몽키에게는 고아원이 그의 상태에 딱 맞는 공간이 아니다. 그는 몸이 몹시 불편한, 중증 장애의 아이들과 함께 살기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중증 환자 어린이들을 돌보느라 이미 너무도 바쁜 직원들과 봉사자들은 자기 몸 가눌 줄 아는 몽키는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할 일도 없고 놀아줄 사람도 없으니 몽키는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몽키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가장 성가신, 일은 대형 선풍기 넘어뜨리기 작업이다. 선풍기는 고아원에서 아주 중요한 물건이다.  환자 어린이들은 하루에 2 시간 마당에 옮겨져 바깥 공기를 쐰다. 아무 것도 안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하노이의 더위에 지친 아이들에게 선풍기 바람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헉’ 소리나게 더운 하노이의 더위에 지친 나에게도 빙빙 도는 선풍기 바람이 나를 향할 때마다 내심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 선풍기를 넘어뜨리는 게 몽키의 사명이다. 그는 자기 키의 두 배가 되는 선풍기를 바닥에 팽개치기 위해 몽키는 살살 눈치를 보면서 직원들 몰래 선풍기에 접근해서 한번에 넘어뜨린다.

     

    직원들은 이미 몽키의 꿍꿍이속을 잘 알고 있어서 몽키의 접근을 막지만, 그러나 가끔은 일이 너무 바빠서 잠시 몽키를 잊을 때가 있다. 몽키는 그 순간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재빨리 선풍기를 넘어뜨리고는 선풍기가 넘어지는 순간에 귀를 막고 ‘악악’ 소리를 지른다. ‘넘어지면 부서진다’ ‘넘어지면 소리가 난다’의 원리를 아는 지능이 있는 몽키는 자기가 혼날 것도 예상해서 발빠르게 도망갈 채비를 한채 소리를 지른다. (어디로 도망갈까를 가늠하면서 발을 바쁘게 놀리는 모습을 보면 마치 축구 선수들이 멀리 있는 공이 언제 어디로 날라올까를 예측하면서 슬슬 발놀림을 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몽키의 선풍기 넘어뜨리기 작업은 그렇지 않아도 일손이 모자라 쩔쩔매는 직원들에게는 아주 성가신 일이다.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휠체어에 조심스럽게 앉히고 있는데 옆에서 선풍기가 쿵 소리 나면서 쓰러지는데, 분리가 된 상태에서 빙빙 돌고 있다면 위험한 상황. 그 옆에서 꺄악꺄악 소리지르면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는 몽키....

     

    언젠가부터 나와 꼴렛은 몽키를 저지하는 작업을 담당했다. 몽키가 선풍기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쓰러지는 선풍기 잡아 올리고, 분리가 된 선풍기 갖다 붙이고, 그리고 어쩌다가 베트남 직원에게 현장범으로 잡힌 몽키가 대포함성에 속사포 속도로 혼날 때 몽키를 저지하는 척하면서 안아주기...등등이 우리의 일이 되었다. 

     

    어느 날 꼴렛이 휠체어에 아이를 앉히려고 분주한 나를 불렀다.

     

    “엄마, 몽키가 내 몸에서 안 떨어지려고 해. 내려가지 않으려고 해.”

    올려다보니 몽키가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꼴렛의 품에 안겨 있었다. 

    바로 옆에 선풍기가 서 있건만 관심도 없다. 눈길은 옆을 향하고 있고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 찰싹 품에 안기기보다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지만 얼굴에 편안한 미소마저 머금고 있다.

     

    “그냥 계속 안아줘라. 걔는 엄마 품이 그리운 나이야.”

     

    꼴렛은 몽키를 품에 안고, 덩실덩실 춤추면서 왔다갔다 했다. 몽키는 꼴렛 몸에 점점 더 찰싹 붙었다. 

    한참 후에 꼴렛이 다른 일을 하려고 몽키를 내려놓으려했는데 몽키가 바닥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정도까지 내려간 상태에서 꼴렛의 팔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온 몸이 거꾸로 뒤집어지는 상황이 되어도 발로, 손으로 꼴렛의 몸을 감고 떨어지지 않으려했다.

     

    ”오늘은 그냥 안아줘라. 몽키는 몸이 성하지만 관심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 아기니까...”

     

    그 후에 나도 여러번 오랜 시간 몽키를 품에 안았다.

     

    ——

     

    어느날 아이들이 목욕을 한 뒤 옷을 먼저 입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목욕이 끝날 때까지 침대에서 기다려야했다. 

    나는 여러 침대를 전전하면서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나눠주고 있었고 꼴렛은 한 침대에 들어가 몽키를 위시한 여러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엄마, 여기 좀 봐~” 

     

    돌아보니 몽키가 누워있고 꼴렛이 몽키의 몸을 만져주고 있었다.

     

    ”엄마, 몽키가 팔을 만져달라고 해서 만져주니까 몸을 돌리는 거야. 등을 만져달라는 거같아서 한참 만져주니까 이번에는 팔을 번쩍 들어 배를 내놓아. 만져달라는 거지? 너무 귀여워!”

     

    내려다보니 몽키가 세상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나도 몽키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잠시 후에 본격적으로 만져주기 위해서 나도 침대에 올라갔다.

    몽키를 쓰다듬는 꼴렛을 보면서 든 생각.

     

    마치 자기가 엄마가 된 듯이 몽키를 어루만지고 있는 꼴렛은  ‘터치’에 아주 민감한 아이로, 어려서부터 많이 요구했었다.

    ’엄마, 나 만져줘~ 엄마, 나 만져줘~’ 하면서 내 품을 파고들곤 했었다. 계속 부드럽께 쓸어 만져주다가 혹시 잠이 들었나 싶어서 살짝 멈추면 금새 눈을 뜨곤 나의 손을 잡아당겨 자기 팔을 다시 애무하게 하곤 했었다.  나도 만지고 만져지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우린 둘이 부비부비하면서, 마치 뱀들이 엉켜자는 것처럼 구불구불 엉켜서 같이 잠들곤 했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나도 엄마에게 만져달라고 요구하곤 했었다. 엄마의 몸을 만져야 행복했고, 엄마가 나를 만져줘야 행복했다.

    나는 엄마가 화장실을 가도 (재래식 화장실) 엄마 옆에 앉아 있어야 마음이 놓였던 나.

    어렸을 때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대학원을 다니던 20 대 중반에도 엄마 옆에 누워서 ‘엄마, 내 팔을 쓰다듬어줘’ 하고 응석부리곤 했다.

    엄마가 하염없이 쓰다듬다가 쓰다듬는 속도가 좀 느려지면

    “엄마, 멈추지 마” 라고 다구쳤다.

    석쇠에 고기를 굽듯이 팔의 한쪽 면이 다 쓰다듬어졌다 싶으면 슬쩍 돌려서 다른 면도 만져달라고 하고, 오른쪽 팔이 충분히 만져졌다 싶으면 왼쪽 팔을 갖다 대었다. 나에게 ‘터치’는 ‘사랑’이었다.

     

    유학을 떠났고 결혼을 했고 아기를 낳았다. 나는 사랑했고, 육체관계도 가졌고, 아기를 키우면서 행복했다. 

    나름 사랑이 가득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런 만족한 삶에도 뭔가 결여된 것이 있었다. 그것을 난 꼴렛이 아직 갓난아기였을 때 에밀과 꼴렛을 데리고 부모님께 갔을 때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두 아이를 혼자 돌보면서 나는 많이 지쳤었다. 몸이 ‘너덜너덜’해졌다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친정에 오자마자,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는 지친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 두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옆에서 나도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아주 부드러운, 사랑이 가득한 터치가 느껴졌다.

    두 팔을 뻗고 자는 내 옆에서 엄마가 옛날처럼 내 팔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엄마 손길. 

    이런 따뜻하고 다정한 손길을 느껴본 게 얼마만인가.

    눈물이 주루륵 흘렀다.

     

    어린 아이들의 엄마로서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의 쓰다듬기를 해주는데에만 급급했고 내가 받던 사랑/터치는 완전히 잊고 살고 있었다.

    매일 아이들 목욕 시키고, 로션 발라주고, 지저귀 갈아주고, 뽀뽀해주고, 안아주고, 만져주고...나는 터치로서 나의 사랑을 표현했고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으나 나의 몸은 그런 사랑의 터치를 받을 길이 없었다.

     

    물론 남편이 나를 다정하게 애무해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미 ‘성적인 의미’가 있는,  언제 다른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그런 욕망이 깃들어있는 터치였고 딸의 팔을 하염없이 쓰다듬어주는 엄마의 사랑이 담긴 쓰다듬과는 다른 성격의 터치였다. 

     

    몽키 옆에 앉아서 몽키의 배를 부드럽께 쓸어주면서 꼴렛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줬다.

    너도, 나도 사랑의 쓰다듬에 무척 민감한 스타일이네..

    이 어미는 옛날에 너 낳고 나서 할머니가 만져주는 터치에 눈물을 흘렸네...

     

    그 말에 꼴렛이 “엄마, 무슨 말인지 알 것같아!” 라고 하면서 훌쩍거렸다.

    몽키때문이었다.

     

    ”몽키가 너무 가엾어.

    몽키는 안아주니까 이렇게 편안해지는데...

    우리가 가면 누가 안아주지?

    물론 다른 봉사자들이 오겠지만 결국은 다 떠나잖아.

    몽키 뿐만이 아니라 모은 애들이 가엾어.

    배고픔, 목마름, 따뜻함, 시원함, 다정한 애무...

    육체적 욕구를 누군가가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게 어렸을 때의 행복인데 아이들이 너무 가엾어.”

     

    나도 마음이 아픈 부분이었다.

     

    “꼴렛아, 맞아. 너무 가엾어.

    그러니까 우리가 계속 관심갖고 참여하는 수밖에 없어.

    고아원에서는 하루 세 끼 먹여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일주일에 몇 번 목욕 시켜주고...그건 생존에 촛점을 맞춘 케어이기에, 그리고 그 외에 신경을 쓸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므로 아가들이 느끼는 수많은 욕구는 충족될 수 없을 거야.

     

    그래도 아이들의 귀중한 생명이 보존되고 있다는 게 정말 중요해.

    고아원이 조금씩이나마 개선되어가고 있으니까 그걸 감사해하고, 더 좋아지도록 노력하자.”

     

    꼴렛은 나와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엄마, 나는 뭐가 개선된 건지 모르겠어.

    몽키같은 아이는 육체적으로는 건강하잖아. 그런데 왜 얘가 중증 환자들이랑 같은 대우를 받고 있어야하는 거야?

    왜 몽키는 변변한 장난감도 없어?...”

    (그 외 몇가지 불만을 토로했다)

     

    ”꼴렛 말이 다 맞아. 그리고 너같이 문제 제기를 해야지 개선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문제 제기는 정말 필요해.

    그러나 고아원은 재정과 인력이 부족해서 아이들 개개인에게 맞춤형 돌봄을 해줄 수가 없는 것이잖아.

    그러니까 너같이 생각하는 봉사자들이 참여하고, 후원하는 게 필요한 거야.

     

     

    너의 눈에는 안 보이겠지만 이 고아원도 옛날보다는 아주 많이 개선되고 좋아진 거야.  한 예로 아빠랑 에밀이 왔던 4 년 전에는 아이들에게 휠체어도 없었고, 아이들이 하루에 한번씩 바깥 공기를 쐬는 스케쥴은 존재하지도 않았어. 그리고 그때는 애들이 울지도 않았단다. 울어도 들어주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소란하잖아? 애들이 울고 표현하고 하니까...아이들의 울음, 그게 바로 개선의 증거야.

     

    우리가 원하는 만큼 아이들이 편하고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프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훨씬 더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좀 더 나아진다는 것을 믿고 우리가 계속 참여하는 수밖에 없어.

     

    우리의 삶이 아무리 바빠도 경제적 지원하든가, 아니면 직접 몸으로 와서든 봉사를 하던가 하자.”

     

    꼴렛이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몽키를 이리저리 굴려가면서 쓰다듬으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주말에 하노이에 가서 몽키를 위한 손선풍기를 샀다. 그걸 보고 경이로워하는 몽키의 표정, 내 마음의 사진기로 찍어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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