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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질없는 사랑을 계속해야하는 이유
    스치는 생각 2019. 8. 4. 22:09

    이 글은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을 공개해도 된다는 허락 하에 쓰여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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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아원에 처음 방문한 날, 우리를 반겨준 두 어린이—프랭크와 조이.  

    그들은 능숙하게 전동 휠체어를 조정해서 마당을 누비고 있었다. 우린 처음에 아가들이 휠체어를 몰고 다니는가 놀랐으나 알고보니 둘 다 열살이 넘은 나이였다. 봉사프로그램 담당자 져스틴이 ‘왼쪽의 프랭크는 발이 굽었고, 오른쪽 붉은 티셔츠를 입은 조이는 손가락이 굽고 제 기능을 못해서 발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알려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두 아이는 고아원의 ‘스타’였다.  그럴 수밖에....극심한 신체적 장애에 지적 장애아들을 돌보면서 당혹스러운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고, 눈에 확연한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표정의 프랭크와 조이는 암흑 속의 한줄기 빛마냥 반가운 존재이기때문이다. 

    프랭크도 그렇고, 조이도 그렇고 자기들의 ‘인기’를 잘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특히 조이의 경우, 우리가 도착한 첫 날 우리에게 자기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의기양양해했다. 그의 능력이라함은 손대신 발로 물건을 잡아 멀리 던지는 것이다. 실제로 작은 인형이나 레고들을 발로 잡아서 내 머리 위로 넘어가게 멀리 던지는 것은 놀랄만한 재간이었다. 말이 안 통하는 새로운 공간에서 얼떨떨한 나와 꼴렛에과 친해지려고 하는 그의 노력이 감사하기도 했다. 우리의 ‘와, 와 와!’ 탄성은 진심이었다.

    조이는 자기가 속한 ROOM 1  에서 덩치는 가장 작지만 다른 아이들이 함부로하지 못하는 그런 권위를 갖고 있다. 15-20 명의 아이들 중 대부분은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는 중증 장애, 그 중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서너 명의 아이들은 다운신드롬과 시각 장애를 갖고 있으며 그 모두 언어 능력은 전무하다. 몸을 움직이는 서너 명의 아이들이 실내를 돌아다니면서 남을 괴롭히거나 물건을 던져서 어지럽게 할 때 조이가 ‘그만해!’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면, 조이보다 덩치가 크고 몸도 자유로운 그 아이들은 눈치를 보면서 하던 일을 멈추거나 비실비실 다른 곳으로 갔다.

    조이는 나에게도 도움을 주었다. 고아원을 관장하는 베트남 직원들은  봉사자들을 하대하고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곤 하는데—거기에 함부로 대항했다가는 봉사자 프로그램을 캔슬할 가능성이 커서 봉사자들은 조심해야한다는 사실!—어떨 때 나는 그들이 고함을 지르는 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를 추측할 수 없어 당혹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조이는 짧은 영어 단어 몇 마디로 내가 상황 파악을 할 수 있게 해주거나, 턱으로, 발로 정확히 무엇을 해야할지—예를 들어 어떤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라는 것인지, 누굴 안아서 바닥에 내려놓으라는 것인지—알려주었다.

    꼴렛과 나는 처음에 조이처럼 똑똑하고 언어 소통이 가능한 아이가 육체적/지적 중증 장애아들과 내내 같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조이는 긍정적 자극이 전무한 공간에 버려져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조이에게 맞는 케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고아원은 정부 산하의 기관이고 베트남인 직원들은 공무원들이다. 내가 속한 자원봉사자 프로그램은 정부와는 관련이 없는 비영리단체에서 만든 것이다. 정부에서 관리하는 고아원은 아이들이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기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외에 정서적인 도움과 지적인 자극은 자원봉사자들의 몫이다. 공무원 입장에서 보자면 ‘먹이고 입히고 기저귀 갈아주는 기초적인 생존 서비스’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단체로 기저귀 갈아주고, 단체로 주 3 회 목욕 시켜주고, 세 끼 죽을 퍼/먹여주는 작업을 위해서 아이들을 육체적 장애에 의해서 분류하는 게 편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에릭과 에밀이 와서 일했던 4 년 전에는 봉사자들도 많이 없었고 봉사자들이 일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도 없었다. Physical therapist 도, 그림 선생님도 없었다. 봉사자 프로그램 덕에 조이의 경우, 하루에 한번 다른 방에 가서 선생님과 그림을 그리고 글도 배운다고 했다. 그것은 옛날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개선된 상황이다. 꼴렛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현재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지만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에 촛점을 맞추고 협력해가야하리라 결론 내렸다.

    어느 날 항상 밝은 표정의 조이의 얼굴이 어두웠다. 사람이 언제나 밝은 기분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조이를 보고 있으니 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장난감도 갖다 주고, 자원봉사단체 직원도 다가와 다정히 말을 걸고 기분을 바꿔주려했지만 조이는 시무룩했다. 바로 전 날, 물건 던지기로 나를 웃게 만들었던 조이는 없었다. 아니, 자기 능력을 다 보여줘서 새삼스레 보여줄 게 없었다. 나는 조이가 다른 아이들과 공유하는 넓직한 침대로 들어가 조이가 내 품에 기대게 하고 가만히 앉아서 어떻게 하면 조이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에게 등을 기댄 조이와 한 방향으로 앉아 있던 그 20 여분, 나에게 그의 삶이, 그가 속한 현실이 똑똑히 보여졌다.

    조이 옆에는 중증 장애아 두 명이 누워 있었다. 의사 표현 능력이 전무하고 누가 일으켜주기 전에는 일어날 수 없는, 얼굴에 파리가 다닥다닥 붙어도 손을 저어 쫓을 수 없는 아이들. (그럼에도 밝은 미소를 짓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 옆에는 앉혀주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공허한 시선의 남자아이, ‘탐.’ 내내 누워서 죽을 받아먹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앉아서 죽을 먹을 수 있다는 게 능력에 속한다고나 할까. 마치 프레임 속의 사진인양 동작이 없는 그의 유일한 움직임은 발작증상이 나타날 때이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죽 속에 발작약을 섞여 먹인다.)

    그 옆의 ‘마이’는 훤칠한 키의 단발머리로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으나 눈이 안보이며, 언어 능력이 없아. ‘마이’는 남도 모르고 자신도 표현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몸으로 겪어내는지, 원형탈모가 왔다. 마이는 눈이 안보이므로 손으로 더듬거리면서 돌아다니는데 남을 때리거나 자신에게 해를 주기때문에 침대 철창에 발 하나가 로프로 묶여있는 일이 많다. 

    아이들이 어린이들이 조이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식구였다. 매일매일 한 침대를 쓰고 한 방의 공기를 마시고, 밥을 같이 먹는 식구였다. 그리고 방의 다른 아이들도 다 다소간의 개인차가 있지만 다들 비슷한 상태였다. 

    직원들은 자기 앞가림을 하는 조이는 뒷전에 놓았고, 봉사자들은 아이들 개개인의 상황에 맞게 안아주고, 잡아주고, 놀아주면서 아이들을 돌봐주지만 정작 조이랑은 놀아줄 여유가 없었다.  말할 줄 알고, 손 대신 발로 물건을 만질 줄 알고, 유머 센스도 있는 조이는 혼자 내버려졌다.조이의 일상은 또래 친구들, 아니면 자기와 지적 능력이 비슷한 아이들에게서는 분리되어 있다. 아니, 애초에 그 고아원에서 조이의 지적 능력을 가진 아이는 없는 듯했다.

    나는 ‘만약 조이가 혼자 집중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이가 조용히 혼자 놀 수 있다면, 자기의 발재간을 사용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그날 오후 일이 끝나고 나서 고아원의 봉사자들 담당자인 져스틴과 함께 동네 장난감 가게에 갔다.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아이들이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잔뜩 샀다. (베트남 물가가 싸서 많이 집어도 얼마 안나왔다.) 그러나 애초에 장난감 가게를 간 목적은 조이의 장난감이었다. 우리는 조이가 조립해서 만들 수 있는 레고 스타일 장난감을 골랐다. 

    다음날 아침 장난감을 받은 조이는 활기차게 일을 시작했다. 놀라운 발재간이었다. 그는 계속 미소를 머금은채 뚝딱뚝딱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자랑스럽게 발로 들어보였다. 매번 뭔가 만들어낼 때마다 조이의 성취감은 자랑스러운 미소, 눈맞춤으로 표현되었다. 봐달라고 “Look!” 하고 외치는 조이의 눈은 빛났다. 조이는 식사도 거부한 채 조립에 빠져들었다. 분명 조이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만큼 좋아할 줄은 몰랐었기에 나는 너무도 기뻤다.

    그날도, 다음날도 조이는 계속 집을 짓고, 이층 집을 짓고, 차고를 만들고, 헬리콥터를 만들고, 전화기를 만들었다. 뚝딱뚝딱...그리곤 그걸 보여주려고 꼭 나를 찾았다. 내가 방 반대쪽에서 바쁘게 일을 할 때도 멀리서부터 “Look!” 하고 외쳤다. 그럼 나는 격렬하게 박수를 쳐서 내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고는 서서히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장난감이 반가워 우르르 몰려든 아이들—다른 방에서부터 왔음—은 조이처럼 만들어내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여러 색깔의 조각들을 이어붙이는 것에 재미를 붙여서 같이 작업을 했다.

    그러다보니 조이가 갖고 놀 수 있는 레고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조립의 개념이 전혀 없이 모든 물건을 다 입으로 넣어 빠는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색깔의 레고 조각을 잡아 입에 물고 돌아다녔다. 레고를 넣는 플라스틱 가방은 찢어져버렸고, 레고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보여준 사진 설명서도 조각조각 찢어졌다. 얼마 후 고아원의 마당은 물론이고 멀리 있는 방의 한 구석에서도 조이의 레고 조각이 발견되었다. 하다못해 쓰레기장에서도 발견되었다. 조각들이 여러 개 사라진 레고는 무용지물이다. 조이의 놀이터는 그렇게 금방 사라져버렸다.

    베트남을 떠나기 전에 새 레고 세트를 샀다. 저스틴에게 ‘당분간만이라도 조이가 혼자 갖고 놀 수 있게 해달라’ 부탁했다. 져스틴이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당분간만이라도’ 라고 한 이유가 있다. 나는 얼마 안가서 아이들이 달겨들어 다 흩어져버리고 짝이 안맞는 무용지물 레고가 되어버릴 것으르 알다. 그게 이틀일지, 일주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단 며칠이라도 조이가 자기 것을 소유하고, 자기 공간을 누리고, 자기만의 창작 행위를 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는 게 필요하다 싶었다. 집중하여 즐기는 행복한 순간은 비록 그게 스러져버릴지라도 그 존재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소극적인 이야기이지만 그 순간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굳게 믿는다. 진정한 사랑의 행위는 절대 부질없을 수 없다. 영속하지 않는 사랑일지라도 사랑의 기억은, 그게 한 찰라일지라도 우리의 몸이 기억하고, 우리의 뇌의 어느 구석엔가 기억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찰라가 많아서 커다란 덩어리의 시간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 덩어리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포기하면 안된다.

    아무리 미약한 표현이라도 사랑의 표현이 한 순간이므로 부질없는 일이리라 지레 포기하지 않고 그 부질없는 순간들을 좀 더 많이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게 우리 모두의 몫이리라.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더 많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의 경험이, 사랑의 기억이 만들어지리라. 조이와 그의 친구들에게 사랑의 기억이 일회성이 되지 않게끔 지속적으로 노력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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