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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선화, 아버지.부모님 이야기 2019. 3. 11. 12:22
나는 오랫동안 꽃을, 특히 화분이나 화병에 꽂힌 꽃들이 예쁘다고 느끼지 못했다. 화분의 꽃은 내가 관리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고, 화병의 꽃이 곧 말라서 버려질 것이라는 생각이 우선이니 꽃을 즐길 수 없었다. 결혼 초기에 남편에게도 나에게 꽃 선물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었다. 경상도 사나이같이 무뚝뚝한 나와 달리 시를 사랑하는 소년의 감수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연세가 든 아버지는 꽃을 무척 사랑했다. 아니, 아버지의 꽃 사랑은 그의 자연 사랑의 한 부분이었다. 아버지는 자연을, 웅장한 위용의 대자연만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존재--나무, 조약돌, 나뭇잎, 곤충, 들꽃----에 관심을 갖고 그 신비로움에 경탄하고 사랑했다. ‘city girl 인 나는 어려서는 그런 아버지가 이해가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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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없는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부모님 이야기 2019. 3. 4. 09:33
아래는 내가 병수발이 뭐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1997 년 브뤼셀의 남편의 이모님 (쟈닌). 과 그녀가 돌보는 전신마비 상태의 이모부님 (죠) 을 만나뵌 경험을 기록한 글이다. ---------- 쟈닌 이모님은 칠십대 초반으로 브러셀의 중심가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계시다. 소위 '부자'이다. 그녀보다 20 세 연상인 남편의 성공적인 커리어 덕에 부자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그분들에게 자녀가 없기 때문이다. 50년이 넘도록 금슬좋은 부부인 그들은 애초에 자녀를 원치 않았다. "아이 하나가 집 한 채" 라는 말이 맞는 게, 남편의 부모님들은 자식이 네 명이니 살림이 소박했지만 이모의 삶은 풍족하고 화려했다. 이모님 부부는 음악, 문학, 미술에 조예가 깊었고 그림을 수집하는 게 취미였고 그들의 아파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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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병수발과 사마리아인의 이웃사랑부모님 이야기 2019. 2. 25. 08:28
(2017. 04.) 아버지 돌아가시기 1 년 반 전. 주위에 집에서 병수발 드는 사람이 없는지라 우리집 일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다. 수발에 대한 일반적 반응은 ‘너무 힘드시겠어요’ 이다. 내가 엄청난 희생을 한다고 칭찬도 자주 듣는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애들도 나중에 자매님처럼 날 부양해줄까?’ 하고 농담삼아 진담을 한 분도 있고, 자신이 이기적이라 부모님을 품지 못했다고 반성하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동갑내기인 필리핀 친구 다이앤은 나의 희생을 우려했다. “정말 괜찮다고? 일에 너무 빠져있는 거 아니야? 너 스스로를 챙겨야지. 신주, 너의 부모님이야 좋으시겠지만, 네 희생이 너무 커.” 나름 나를 챙기면서 일하고 있는데 같은 지붕 아래 살지 않으니 증명할 길이 없다. 부모님 모시는 일을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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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이야기 (6) --섬김의 인연부모님 이야기 2019. 2. 22. 17:09
내가 빅토리아와 같이 다닌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가 차가 없어서였다. 캘리포니아의 대중 교통 시스템은 한국에는 비교가 안되게 낙후되어 버스가 드문드문 다니며, 버스 노선도 많지 않아서 불편하기 짝이없다.두 군데 직장을 다니는 빅토리아는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하루에 5 시간을 길에서 보낸다. 그러니 암환자인 그녀가 몸이 많이 지치는 것은 물론이고 효율적으로 병원의 일처리를 할 수 없었다. 내가 빅토리아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빅토리아는 내가 매일 같이 다닐 수 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내 도움이 꼭 필요할 때만 나와 같이 다니려고 했고, 방문해야할 병원과 사무실이 정해지면 맨 먼저 주소과 버스 노선을 확인하여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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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이야기 (5)-- 웃음과 유머로 싸우는 암부모님 이야기 2019. 2. 21. 14:30
빅토리아의 매니저로서 서류 처리를 하고 전화 업무를 하는 동안 나는 그녀가 치료를 받을 때까지 긍정적인 태도와 희망을 잃지 않게끔 이왕이면 많이 웃게해주자 마음 먹었다. 평소에 눈물이 많고 웃음도 많은 나는 내가 지치지 않기 위해서도 웃어야했다. 다행히 이미 빅토리아가 밝은 성격이라서 그녀는 나의 유머에 금방 반응해줬고 나에게 농담을 걸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다니는 내내 많이 웃었다. 죽음과 암에 관해서도 농담을 하면 한없이 큰 걱정거리와 두려움도 어느새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을 달콤하게 해줬다. 우리가 웃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를 더 담대하게 만들어줬다. 악순환이 아니라 선순환이었다. 예로, 고속도로 공포증이 있는 나를 대신해 운전해서 고속도로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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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이야기 (4) -우리의 엄마들부모님 이야기 2019. 2. 21. 04:12
나는 한 간호사가 빅토리아와 나의 관계를 물었을 때 '우리 여성들은 서로에게 엄마 역할을 한다' 고 했었다. 내가 빅토리아를 도울 때 나를 도와준 친구들이 있었다. 몇몇 엄마들은내가 일이 늦게 끝나서 방과 후 시간 맞춰서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없을 때 기꺼이 아이들을 픽업해줬고 격려해줬다. 그 외에 빅토리아에게 직접 응원의 말을 전해주고 빅토리아의 힘을 덜어주려고 학교 일을 자원해 도와준 엄마들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 또래의 자매를 둔 비키는 우리 애들과 놀리면 자기가 덜 힘들다면서 아이들을 많이 봐줬다. 봄방학 동안에는 아이들이 집에 있는데 부모님께 종일 아이들을 맡기고 나가는 게 죄송해서 고민하니까 자기가 하루 아이들 4 명을 데리고 디즈니랜드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집은 몇 번 가본 적이 있고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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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이야기 (3)- 이상한 자매를 도와준 은인들부모님 이야기 2019. 2. 20. 01:42
이상한 자매애 리셉셔니스트, 간호사, 의사들은 우리를 보면 의아해했다. 우리는 어떤 공통점도 없는 관계였다. 빅토리아는 셔츠에 청바지, 아주 캐쥬얼한 차림이고 화장끼는 전혀 없었다. 그 옆에서 조잘거리는 호피무늬 코트에 와글와글한 긴 파마머리, 화장이 진한 동양여성, 우리는 ‘친구’가 가질 수 있는 공통 분모가 하나도 없는 것같았다. 나이, 인종, 언어, 스타일 모두 다르지만 항상 붙어다니는 우리는 마치 완전히 다른 성격과 스타일의 두 형사가 활약하는 영화—버디필름 (Buddy Film) 의 주인공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호피무늬 아줌마가 매니저처럼 가방에 빅토리아의 모든 병원 기록과 서류들을 다 관장하고,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운전면허증 번호까지 척척 나오니 의아해했다. 우리나라 주민증 번호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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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이야기 (2)- 암이 맺어준 우정부모님 이야기 2019. 2. 20. 01:42
‘암’이 맺어준 우정 나는 2004 년,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유치원 유치원에서 청소부/요리사로 고용된 빅토리아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나보다 10년 연상이지만 항상 밝고 유머센스 있고 다정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고 나와도 예의를 갖추는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2005 년 1 월, 유치원이 개학한 뒤 며칠 후 어느날 아침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가는 길에 부엌을 지나치는데 조리대 앞에 서 있던 빅토리아가 넋나간 표정이었다. 심상치 않아 보여 그녀에게 아무 일 없냐고 물었다.그녀는 여전히 넋나간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저한테 암이 있답니다" 그녀는 ‘주말에 하혈이 너무도 심해서 달려간 응급실에서 생각지도 못한 암 진단을 받았다. 전문의를 만나서 정밀 진단을 받아야하고, 보험이 없어서 극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