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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똥같은 (shitty) 직업을 두려워하지 마!부모님 이야기 2019. 4. 2. 14:58
따다따다, 샤악샤악, 챡챡챡챡 스윽스윽. 부엌에서 칼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살림을 시작했다. 아버지 수발을 들기 시작하면서 결혼 전은 물론이고 결혼 후에도 20 년간 남편의 이해와 관용을 밥삼아, 아이들의 무지를 반찬삼아 잘도 피하고 도망다니던 밥하기, 부엌일은 끝났다. 달걀 프라이에 김치 볶아주고, 거기에 김 몇 장 잘라주면 “엄마, 그레잇 디너! 땡큐~~!” 남발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뿌듯해하던 사깃꾼 엄마는 없어졌다. 완전 대대적인 변화가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이것저것 줒어먹을 곳도 많고, 몸이 건강하니 줒어먹어도 괜찮지만 아버지는 아니었다. 모든 음식에 구역질을 하셔서 누릉지만 드시다보니 영양 부족으로 몸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좋아하던 음식들이 다 역해지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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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발은 노는 전업주부의 몫이라?부모님 이야기 2019. 3. 29. 04:07
아버지를 모시는 동안 내가 정말 힘들었던 적이 있다. 경제력이 없는 전업주부라는 나의 경제적 무능력에 스스로에게 분노와 자괴감을 느꼈을 때와 전업주부에 관한 편견에 상처를 받았을 때였다. 부모님 영주권 신청 때 일어난 일. 아버지의 낙상으로 부모님이 한국에 돌아가실 수 없다는 게 확실해진 뒤, 에릭이 부모님의 영주권 신청을 들어가자고 했다. 변호사 비용이 한 사람당 1500 불까지 든다니 서류 작성을 내가 하기로 했다. 일 자체가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단지 아버지 건강이 안좋아서 병수발에 집중해야하는 상황이라 많은 서류를 꼼꼼히 기입하고 확인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서류가 얼마나 많던지...내가 작성해야하는 이민 초청 청원서와 부모님이 작성해야하는 영주권 신청서가 기본, 여권 사진 (아버지 몸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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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 할머니의 노란 자전거, 그리고 사랑.부모님 이야기 2019. 3. 26. 22:30
2003 년 5 월, 벨기에 시댁을 방문 중, 프랑소아즈를 만나러 빠리로 갔다. 빠리에 간 것은 결혼 후 처음이었고, 프랑소아즈는 7년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유학 시절 가장 가깝게 지낸 프랑스 여성이다. 가난한 조각가로서 조용한 성격이지만 예술가답게 식탁보를 잘라서 우비로 만들어 입고, 앞머리를 보라색으로 염색을 해도 잘 어울렸다.내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것은 그녀가 미국에 작품전을 하러 왔을 때로, 나는 첫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책을 내고,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지냈지? 나는 오랜만의 만남에 흥분이 되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 앞에 아주 밝은 노란색 자전거가 서 있었다. 자전거로는 보기 드문 밝은 색깔이었고 크기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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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맞은 한 할머니의 죽음부모님 이야기 2019. 3. 25. 22:30
(2012. 12. 30) 올해 마지막은 아주 쇼킹한 경험으로 귀결지어졌다.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계속 되돌아 생각하며 그 의미를 음미하는 중이다. 우리 가족은 22 일 토요일에 멕시코를 당일로 다녀온 뒤, 바로 그 다음날 사막 집에 갔다.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내가 운전을 잘 못하는 고로 운전을 싫어하는 에릭이 모든 운전을 담당하느네 자그마치 7 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은 뒤, 바르 그 다음날 짐을 꾸려 사막집에 갔으니 말이다. 사막집에 도착한 것은 23 일 저녁, 다들 피로에 지쳐 쓰러졌다. 다음날 24일 죠셉과 매리네가 얼바인에서부터 놀러와 하루 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성탄절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짐을 꾸려 얼바인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사막을 떠나기 전, 잠시 우리의 이웃, 노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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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친구의 죽음스치는 생각 2019. 3. 25. 09:38
뜨르를~~~ (우리 전화소리) 겨울방학이 끝나고 수업 시작하는 첫 날, 아이들이 아침에 한 소동 벌이고 학교에 가고 난 뒤 숨을 돌리려는 순간에 온 전화, 이상한 일이로다. 누가 이 아침부터 전화를 거나? 국제건화? “안녕하세요. 나는 룰루랑 같은 반인 다니엘라의 엄마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르나타라고 소개하는 그 여성과 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르나타는 나에게 필립의 소식을 아느냐고 물었다. 필립? 누구지? 룰루의 반 친구인가? “무슨 뉴스라도 있나요?” “필립이 죽었습니다. 방학 중에..” 나는 갑자기 멍해졌다. 이게 무슨 소리이지? 죽다? 아이가? 방학동안 ? 근데 필립이 누군데? 너무도 쉽고 단순한 단어들이 갑자기 생경하게 느껴졌다. 단어와 단어가 이어지는 대신, 마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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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스 할아버지가 준 노년의 교훈부모님 이야기 2019. 3. 25. 03:58
내가 무슈 페레스를 만난 것은 1990 년, 빠리에 도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는 70 대 중반의 이스라엘 남성으로 나의 은사의 오프라의 친구였다. 오프라는 내가 파리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오프라는 나더러 무슈 페레스를 만나보라고 연락해왔다. 좋은 친구가 될 거라면서.. 오프라는 페레스에 대해 사전 정보를 주었다. 그는 결혼한 지 근 50년이 되었는데 부인은 프랑스 남부의 항구 도시에 살고 있고, 그는 파리에 조그만 스튜디오를 하나 소유하고 있어 일 년의 반을 파리에서 보낸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 예술 평론가였으며 파리의 박물관과 화랑들이 너무 좋아 파리의 스튜디오를 포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재미있는 사람이리라는 기대를 갖고 그를 찾아갔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이라 꼽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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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통으로 당신을 사랑하리부모님 이야기 2019. 3. 20. 01:29
3 월, 벨기에에 정확히 5 일간 다녀왔다. 여행시간 빼면 벨기에에 머문 것은 사흘.아버지를 두고 그렇게 오래 시간을 비운 것은 에릭 큰형의 혼수상태이라는 비상사태 때문이었다. 건강하던 형이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에 에릭이 충격받아 흐느끼는 모습을 보다가 에릭더러 이렇게 울고 있느니 가서 형을 보고 오라고 권고했다. 에릭은 막내 동생이 내일 전화를 해주기로 했다면서 그와 통화 후에 가야할 것같다고 했다. "에릭, 지금 뭘 기다려? 무슨 소식을? 티에리 형이 회복이 기미가 있다는 소식, 아님 금방 돌아가실 것같다는 소식, 아니면 지금같은 상태로 계속 계실 것같다는 소식...그 세 가지 소식 뿐이 없는데, 뭘 기다려? 당신이 갔는데 깨어나셨다면 좋은 거고, 갔는데 돌아가실 지경이라면,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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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 치사랑 다시 읽기부모님 이야기 2019. 3. 15. 05:58
우리 속담에 ‘사랑은 내리사랑’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네이버 사전은 이 속담을“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는 하여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좀처럼 어렵다는 말”이라 풀이하고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손윗 사람이 손아래 사람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나, 손아래 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물이 아래에서 위로 치솟아 역류하듯이 쉽지가 않다는 소리다. 나는 아버지 수발 들기 전에는 이 속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흔히 듣는 소리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아버지 병수발을 들기시작한 뒤에‘사랑은 내리사랑인데 수발을 들려니 얼마나 힘들겠냐’는 식의 소리를 두어 번 들으면서 새롭게 들렸다. 특히‘치사랑이 없다’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