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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막에서 맞은 한 할머니의 죽음
    부모님 이야기 2019. 3. 25. 22:30

    (2012. 12. 30)

     

    올해 마지막은 아주 쇼킹한 경험으로 귀결지어졌다.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계속 되돌아 생각하며 그 의미를 음미하는 중이다.

     

     

     

    우리 가족은 22 일 토요일에 멕시코를 당일로 다녀온 뒤, 바로 그 다음날 사막 집에 갔다.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내가 운전을 잘 못하는 고로 운전을 싫어하는 에릭이 모든 운전을 담당하느네 자그마치 7 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은 뒤, 바르 그 다음날 짐을 꾸려 사막집에 갔으니 말이다.

     

    사막집에 도착한 것은 23 일 저녁, 다들 피로에 지쳐 쓰러졌다. 다음날 24일 죠셉과 매리네가 얼바인에서부터 놀러와 하루 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성탄절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짐을 꾸려 얼바인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사막을 떠나기 전, 잠시 우리의 이웃, 노마 아줌마 가족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고 찾아갔다. 오후 세 시 경이었다.

     

     

    내 또래의 노마와 그녀의 엄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지난해부터 각종 병으로 시달리는 노마도,

     

    얼마 전에 심장 수술을 하신 할머니도 다 평소보다 밝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우리는 사막집에 자주 가지도 못할 뿐더러, 가더라도 짧은 시간 머물기때문에 잠시 산행하고 푹 자고 서둘러 짐꾸려 얼바인으로 돌아오기에 노마와 할머니를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가니 그들은 무척 기뻐했다.

     

     

    웬만한 배우 못지 않게 시원하고 잘생긴 미모의 할머니를 뵈면서 갑자기 '이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준비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정정하시니 먼 훗날 쓰게 되겠지만 여하간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노년의 사진을 찍어두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싶었다. 노마네 집이 경제적으로 쪼달리는지라 할머니의 사진을 챙길 리 없다.

     

     

    그러나 어르신께 영정사진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할머니, 다음 번에 오면 제가 할머니 사진 찍어드릴께요. 지금 참 예쁘세요."

     

     

    라고 했다.

     

     

     

    할머니는 표정이 활짝 피었다. 무료한 일상에 누군가 찾아온다는 것이 기쁜 것인지, 사진을 찍어준다니 기쁜 것인지 모르겠으나, 밝은 얼굴로 우리가 언제 다시 올 거냐고 물었다.

     

     

     "오늘이 25 일이니까 가서 며칠 쉬고, 28 일, 금요일에 올께요. 에릭 하루 휴가낼 거에요. 예쁘게 하고 계셔요."

     

     

    나는 할머니께 뵐 때마다 화려하고 정열적이 색상의 옷을 입고 계신 게 참 인상적이라고, 참 아름답다고 말씀드렸다. 사진도 밝은 색 옷 입고 찍자고 했다. 할머니는 좋아하면서 본인이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중에 드레스가 하나 있는데, 그걸 입고 찍겠노라고 했다.

     

     

    할머니는 우리가 빈손으로 떠나는 게 아쉬우신지 본인이 만들어두신 멕시코음식 '타말레'를 꺼내주셨다.

     

    큰 비닐봉지에 든 타말레들을 다 갖고 가라고 하는데 그러긴 너무 죄송해서 "제가 욕심이 많은 고로 6 개를 갖고 갑니다" 라고 하고 여섯 개를 집어 들었다. 애들이나 남편이나 예전에 먹어본 할머니의 타말레가 얼마나 맛있는지 기억하고 감사해했다.

     

     

     

    그렇게 즐거운 대화를 나눈 게 화요일이었다. 수, 목, 연말에 처리해야할 일들을 다 처리하고 금요일 아침 일찍 사막집으로 갈 준비를 하던 중에 전화가 왔다.

     

     

     

    노마 아줌마의 둘째 아들, 마이클이었다. 우리랑 한번도 전화를 건 적이 없는 마이클, 아니, 사막에서도 말을 나눈 적이 없는 조용한 아이인데 우리에게 전화를 하다니? 

     

     

    나더러 다짜고짜

     

     

    "우리 할머니 사진을 찍으셨어요?" 하고 묻는다.

     

     

    "아니, 안 찍었는데?"

     

     

    왜 그런지 궁금해 물어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놀라 펄쩍 뛰었다. 그게 무슨 소리? 내가 화요일에 뵈었을 때 아주 건강해보이셨는데? 나랑 오늘 만나 사진 찍기로 했는데?

     

     

     

    언제 돌아가셨냐니까 전날, 목요일 새벽에 돌아가셨단다. 충격에 휨싸여서 곧 사막에서 만나자고 대강 인사를 하고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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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오후, 사막집에 도착하자마자 꽃과 부조금을 챙겨들고 노마네 집으로 찾아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경책을 들고 갔다.

     

     

     

    노마의 집은 아주 작다. 일자형으로 되어 있는 그녀의 집은 아주 좁아 나는 갈 때마다 '수저통'같다 생각하곤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코앞에 대형 티비가 놓여있다. 바로 그 옆에 식탁이, 그 식탁을 돌아서 할머니의 방이 있다. 노마의 방은 식탁을 두고 할머니 방의 반대편.  내가 그 집을 방문할 때마다 노마는 바로 문 옆의 소파에 앉아 코 앞의 티비를 시청하고 있었고, 할머니는 방에서 가까운 식탁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노마와 할머니의 거리를 기껏해야 1 미터 반, 그렇게 좁은 공간에서,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두 여성은 수십년 함께 존재했다. 모녀로서 베스트 프렌드로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노마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식탁 구석의 할머니 자리의 빈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노마는 나를 보자마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진정하게끔 소파에 앉히고 옆에 앉았다. 에릭은 침통한 얼굴로 티비 옆의 소파에 앉았다.

     

     

    노마가 감정에 북바쳐 두서없이 이야기를 해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흐느끼는데 그녀의 커다란 몸이 마치 폭풍우에 휘둘리는 나무처럼 마구마구 떨렸다. 나는 노마의 어깨를 잡기도 하고, 껴안기도 하고, 눈을 마주치면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모든 것을 다했다. 그러나 내가 하는 무엇도 노마에게 위로를 줄 수 없는 게 확실했다. 내가 혼돈스럽고 비통한데...무슨 위로를 어떻게 줄 수 있으랴.

     

     

    노마가 우니까 평소에 동상처럼 무표정한 마이클이 눈물을 참으며 다가와 노마의 소파 뒤에 걸터앉아 어깨와 팔을 잡았다. 

     

     

    "엄마, 할머니는 좋은 곳에 가신 거야. 울지마" 하면서 자기 스스로 눈물을 흘렸다.

     

     

     

    그 상태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 내가 노마에게 물었다.

     

     

     

    "노마, 내가 성경읽고 기도해줘도 되? 그러고 싶어. 그런데 싫으면 안 할께."

     

     

     

    고통스러운 표정의 노마가 망설임없이 '기도해줘!' 하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 엄마는 성경을 매일 읽었어. 기도도 많이 하고. 나더러 시편에서 이런 말씀이 있다, 오늘은 이런 구절이 좋구나 라고 나랑 성경 구절을 나누려고 했지만 나는 관심을 안 보였어." 

     

     

     

    그랬구나....

    내가 가져간 성경책을 찾아 위로의 말을 나눴다.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 위시해 몇몇 구절을 읽어주었다.

     

     

     

    말씀을 읽는 동안에 덜덜 떨면서 울던 노마의 몸이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울음 대신에 아기가 숨쉬는 소리같은 새근새근하는 숨을 쉬면서 앞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나는 노마를 품에 안고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고 눈을 뜨니 노마의 표정이 훨씬 더 안정되었다. 그녀는 '기도가 도움이 된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아주 침착하게, 무슨 다큐멘터리 나레이션을 하듯이 시간적 순서로 이야기해줬다.

     

     

    노마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7 일 목요일 새벽 두 시였다. 엄마의 방에 불이 켜져있어 들어가보니 엄마가 목욕을 하신 뒤에 얼굴에 크림을 바르고 있더란다.

     

     

    "엄마, 이 늦은 시간에 뭐하는 거야?" 하고 물었더니

     

     

    "팜펨네가 이번 주에 온다고 했지? 분명히 온다고 했지?" 하시더니, 사진을 찍기로 해서 준비를 하는 거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최근에 실족한 적이 있고 심장 수술도 했기때문에 혼자 샤워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할머니는 혼자 샤워를 한 뒤에 새벽 두시에 머리를 단정하게 손질하고 피부를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더 이상한 것은 할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드레스 중, 새해에 입겠다고 아껴두었던 보라색 옷을 꺼내두신 거였다.

     

     

     

    "나 좀 있다가 이 드레스를 입어볼 거야." 

     

     

     

    노마는 새벽 2 시에 안하던 일을 하는 엄마가 이해가 안되었다. 목욕에 피부 손질에, 드레스 입어보기까지....그래서 엄마더러 그만 주무시라고 했단다. 이에 할머니의 답은?

     

    "걱정 마.  Just let me rest in peace." 

     

     

     

    노마는 그 표현이 약간 이상하게 들렸다. 영어로 명복을 빈다는 의미가 "Rest in peace (평화 속에 쉬소서)" 인데 엄마가  그 상황에서 더 자연스러운 "Let me rest (날 쉬게 그냥 둬)" 라는 표현 대신에 "Let me rest in peace" 이라고 한 게 잠시 불편하게 들렸다.  그러나 "마치 틴에이저가 데이트를 하러 가는 것처럼" 설레서 준비하는 엄마가 너무 행복해보여서 다른 소리를 하지 않고, "Good night, Mommy.  I love you!" 하고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I love you, too" 라고 했고, 그게 할머니가 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5 시간 후, 아침 7 시에 바로 옆집에 사는 노마의 며느리 나오미가 할머니의 아침 식사와 약을 챙겨드리러 왔다. 할머니 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나오미는 부억 싱크대에서 물을 틀면서 노마를 쳐다보지 않고 노마에게 말했다.

     

     

     

    "어머니, 한번 할머니 방에 들어가보세요. 좀 이상해요."

     

     

     

    노마가 불길한 예감에 뛰어가보니 할머니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맥은 없으나 몸은 아직 따뜻한 상태. 두 아들이 뛰어와 119 에 전화를 하고 구급대원들이 오는 동안 전화로 지시하는대로 할머니의 몸을 바닥에 내려 눕히고 응급조치를 했으나 할머니의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다. 잠시 후 경찰과 구급대가 와서 할머니의 죽음을 확인했다.

     

     

    노마는 마지막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잠시 다시금 슬픈 감정이 솟구쳐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다시 안정하고 이야기를 했다.

     

     

     

    "팜펨, 믿어지지 않아. 우리 엄마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계셨어. 그 옷을 입고 이렇게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함) 가슴에 곱게 손을 얹은채 주무신 거야. 그렇게 아름답게 돌아가셨어. 엄마는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안 걸까? 왜 그렇게 가신 거지? 엄마는 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나는 이해가 안 가. 너무 행복해보였는데...근데 왜 나를 두고 가신 거지?"

     

     

     

    나는 대답할 길이 없었다. 가만히 손을 잡고 노마의 눈을 바라볼 밖에....

     

     

     

    나중에 병원으로 옮긴 뒤에 발견한 사실은, 할머니가 반지와 팔찌를 다 벗어두셨다는 것이었다. 절대로 빼지 않던 반지를 왜 빼씬 거지? 마치 본인이 죽을 것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노마는 이해가 안 되는 게 너무 많았다. 

     

    나는 나대로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었다. 왜 내가 이 여성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앉아 있지? 노마에게 어머니의 죽음만큼 기이한 일은 아니지만 나도 이상한 게 있긴 했다. 우리가 7 년간 사막 집을 소유해왔지만 한 주간에 두 번을 사막집에 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여행짐을 두번 싸는 것도 힘들거니와 에릭이 운전하는 것을 싫어해서이다.

     

     

    그러므로 이번처럼 멕시코에 당일로 다녀와서 녹초가 된 상태에서 사막집에 와서 이박 삼일을 보내고 얼바인으로 돌아갔다가 이틀 후에 다시 내려온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우리는 사막에 오고 싶었지? 

     

     

    우리가 평소에 하지 않는 아주 특별한 결정을 한 것이 할머니의 아주 특별한 죽음이란 사건과 맞물려지면서

     

    나는 우연과 우연의 만남은 필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일어서려는데 노마가 미안해하면서 나에게 부탁했다.

     

     

     

    "네가 기도를 해주고 성경을 읽으니 마음에 평화가 왔다.  참 이상하다. 엄마의 죽음도 이상하고, 네가 와서 성경을 읽는 것도 이상하고, 기도를 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이상하다.

     

     

     

    팜펨, 내 첫째 아들 리키가 지금 너무 괴로워하고 있는데, 너 혹시 오늘 밤이나 내일 와서 같이 기도해줄 수 있겠어?"

     

     

     

    물론이지!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에릭과 노마의 집을 나서는데, 사막의 오후 다섯시는 깜깜한 밤, 겨울 바람이 차가웠다. 달이 밝았다.

     

    온 세상이 고요했다.

     

     

    우리집에서 150 미터 떨어진 노마의 집에서부터 에릭과 말없이 손을 잡고 걷는데 이 온 우주에 이 사람과 나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이 죽음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는가? 육체의 죽음과 사별이란 고통이 리얼한 만큼, 동시에 영혼의 세계의 존재가, 마치 내가 꼭 잡고 있는 에릭의 손처럼 구체적이고 리얼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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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돌아와 누웠다. 너무 피곤했다. 며칠 간 피로로 입이 부르터있고 혀 안이 따끔거리는 상태였다.

     

    이렇게 힘이 들어서 다시 노마에게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에릭이 자기가 저녁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펠릭스와 누워서 충전했다.

     

    7 시에 노마가 아들 리키가 집에 왔다며 와서 기도해줄 수 있냐고 한다. 물론이지~~~!!! 기뻐서 승낙했다. 그런데 이미 노마랑 나눈 격렬한 대화의 여파로 몸보다 영적으로 많이 피곤했다.

     

     

     

    "에릭, 내가 지금 영적으로 고갈되어 있는데 어쩌지? 내가 영적으로 충전이 안 되었어."

     

     

     

    놀라운 일, 에릭이 에밀과 꼴렛을 부르더니만 다함께 손을 잡은 뒤 기도를 했다. "엄마가 위로의 말씀과 기도를 해줄 수 있게끔 영을 회복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기도를 들으며 지난 17 년간, 에릭의 영적인 변화---너무 차갑고, 너무 이성적이고, 너무 서서히 진행되어 '변화'같이 보이지 않았던 그 변화--를 눈으로/귀로/손으로 확인하면서 나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에릭이 나를 품에 안아 주었다. 여전히 차갑고 이성적인 이 남자, 얼마 전부터인가 좀 더 편하게 영성의 세계를 인정하기 시작한 (혹은 자기가 인정함을 남에게 드러내기 시작한) 그가 하나님과 같은 큰 사랑으로 나를 품에 안아 주었다.

     

     

     

    밤은 아까보다더 더 깜깜했다. 손전등을 켜고 아이들과 함께 노마의 집에 가서 성경을 읽고 두 가족이 다 손을 잡고 서서 기도를 나누었다.  내가 일어서기 전, 노마가 자기 엄마의 성경을 보여주었다. 형광펜, 볼펜으로 노트를 하고 줄을 친 낡은 성경책이었다. 스페인어라서 노마는 엄마의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나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엄마의 낡은 성경을 품에 안으며 위안을 받았다. 자기랑 하루 종일 한방에 있었지만 혼자 성경읽고, 혼자 기도하던 엄마가 떠난 뒤 그녀는 엄마의 성경을 손에 쥐면서 엄마가 아마도 그리도 그렸던 천국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희망을 갖는 듯했다. 

     

    집에 돌아왔다.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정신이 빠릿빠릿하게 살아나니 몸도 살아났다. 노마를 껴안고 기도를 하는 내가 그녀를 도운 것인지, 나의 품에 앉아 애통해하는 그녀가 나를 도운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아니,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한 인간이 이 물질의 세상을 떠나 영혼의 세상으로 입성하는 그 장엄한 사건을 바로 '옆'이라는 특별한 자리에서 목격하고, 그리고 죽음을 통해서 내가 살아있는 이웃과 좀 더 강하게 연대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이 감사했다.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 잃는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 영적 동면에서 깨어나, 적어도 한번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고,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의 답이 안나오는 질문을 곰씹게 된다. 공짜로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여기게 된다. 죽음에 겸손해지고 삶에 감사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남에게 의지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선선히 안고 싶게끔 만들어준다. 어쩌면 그런 각성과 변화가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죽음을 통해서 주고 가는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마 어머니는 노마에게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큰 선물을 주고 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은 나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12 월 27 일은 여러모로 큰 선물을 받은 날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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