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내리사랑, 치사랑 다시 읽기
    부모님 이야기 2019. 3. 15. 05:58


    우리 속담에 ‘사랑은 내리사랑’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네이버 사전은 이 속담을“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는 하여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좀처럼 어렵다는 말”이라 풀이하고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손윗 사람이 손아래 사람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나, 손아래 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물이 아래에서 위로 치솟아 역류하듯이 쉽지가 않다는 소리다.


    나는 아버지 수발 들기 전에는 이 속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흔히 듣는 소리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아버지 병수발을 들기시작한 뒤에‘사랑은 내리사랑인데 수발을 들려니 얼마나 힘들겠냐’는 식의 소리를 두어 번 들으면서 새롭게 들렸다. 특히‘치사랑이 없다’라는 말이 흥미로웠다. 


    내가 아는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효 사상이 투철한 한국 사람들에게 치사랑이 없다니? 




    '치사랑' 다시 읽기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의 문화와 비교하자면 한국의 ‘효’사상의 기준은 차원이 다르다. 내가 아는 내 또래의 서양 친구들 중에서 부모의 부양에 관해 한국 친구들만큼 고민하는 사람들은 없다. 집에 모시냐 마냐로 고민하는 사람은 전무하고, 따로 살 경우도 무리하면서 정기적으로 찾아가지 않는다. (물론 미국이 땅덩이가 커서 부모가 멀리 살아 자주 찾아가는 게 어려운 경우도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한국 사람들처럼 부모가 어느 정도 연세가 되면 용돈을 드리거나 생활비 보조를 하던가, 아니면 아예 모든 경제적 책임을 떠맡는 경우도 흔치 않다. 분명 개인차는 있겠지만, 서양에서 부양의 의무는 아무래도 훨씬 더 선택적이고 자율적이다. 


    며느리의 경우를 보자면, 한국 기준으로 못된 며느리도 서양 기준으로는 엄청 착한 며느리이다. 한국 며느리는 시부모가 오면 며칠은 물론 몇주를 머물로도 함부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참고, 심지어는 정성들여 밥을 차려낸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절대로 나타내지 않는다. "손님들은 생선같아서 사흘 후부터는 비린내가 난다" 라는 말이 있는 미국에서 시부모가 결혼한 아들,딸 집에 가서 자기 집인양 몇 주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는 것은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한국 여성과 국제결혼을 한 시부모가 감지덕지하는 이유이다.)


    나는 가끔 온라인 게시판에 오르는 글 들 중 며느리들의 하소연을 읽으면서 많이 놀라곤 한다. 성차별적 언행을 밥먹듯이 하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뻔뻔한 시부모와 시댁 식구들에 대한 화를 직접 내지 못하고 참으면서 게시판에서 스트레스 풀고, 다른 이들로부터 위로와 조언을 구하는 한국 며느리들, 만약 ‘세계 며느리 효도 지수’라는 게 있다면 한국 며느리들은 세계 1, 2 위를 다툴 것이다.  서양에서는 자식이든 며느리든 불편하게 하는 (시)부모와는 마음 상하면서 억지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그렇게 효는 지금까지도 실천되고 있는 한국 문화의 근간인데, 왜 치사랑이 없다는 속담이 있을까? ‘내리사랑은 있고 치사랑은 없다’는 말은 단순히 ‘부모의 사랑의 숭고함’만이 아니라‘효심의 부재’의 은밀한 비판이 아닌가? 부모는 헌신적으로 희생하면서 자식을 ‘내리사랑’으로 키웠는데 자식에게서 그에 상응하는 효도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효도라고 하는 것같지만 진정한 효심이 없다는 것도 되겠다. 


    아버지 서류 문제로 한국 영사관에 갔을 때 만난 할머니가 한 소리가 있다. 그분은 한국에서 아들이 한국 재산 정리를 하자고 요구를 해서 서류를 보내주려기 위해서 영사관에 와서 서류 기입을 하는 중에 어려움을 겪어 내가 도와드렸다. 주소를 쓰는 것 조차 어려운 분이 재산을 포기하는 서류를 쓰려한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했다.


    "할머니, 이거 할아버지랑 상의하신 거에요?"

    "아니..애아버지는 1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나 혼자 살아요."

    "왜 한국 재산을 지금 정리하시려고 하는 거에요?"

    "아들이 해달라고 하니까...나 죽고 하면 더 복잡하다고 지금 하겠다고...평소에는 전화를 걸지도 않는 놈이 새벽마다 전화를 해서 서류 작성해 본내라고 해요."


    할머니는 미국에 이민와서 리커 스토어 (liquor store--술과 음식물, 잡화들을 파는 작은 동네 슈퍼)를 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는데 자식들은 한국에 다시 돌아가버렸고, 할머니 부부만 남아 살고 있다가 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영사관을 오기 위해서도 지인들에게 어렵게 운전을 부탁해서 왔다고, 다시는 오지 않아도 되게 서류를 다 보내버리고 싶다고 했다.


    "다 줘야지요. 그걸 원하니. 그러나 한국에는 안 들어갈 거에요. 아이들이 분명히 원치 않는 거 아니까 나혼자 미국에서 살다가 죽을 거에요."


    옆에서 서류 작성을 하던 노부부가 그 말을 듣고 안타가워했다. 짧은 은발에 세련된 용모의 할머니가 주소 못쓰는 할머니를 위로했다.


    "참... 자식들이라는 게...우리 아들네는 40 분 거리에서 살아서 한달에 한번 꼭 찾아오고 명절에도 찾아와요. 그러나 오면 우리가 돈을 많이 써요. 아이들 장난감도 사주고, 외식을 해도 꼭 우리가 내고 그래요. 일년에 한번, 온 가족이 북부의 골프장에 여행가는데 그때도 우리가 많이 부담해요. 며느리랑 직장 다니면서 돈을 버는데도…. 40 이 넘었는데 아직도 철이 안들었는지 부모가 늙었다는 건 눈에 안 들어오나봐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는 당신 탓이지' 하고 잠시 끼어드셨음)


    나중에 늙어서 우리는 그냥 요양원에 들어갈 거에요. 아들아이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에요. 할머니도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자식이 옆에 있든 멀리 한국에 있든 다 같아요. 요즘 애들은 자기 것만 알아요."



    나를 가운데 두고 금방 친구가 되어 서로를 위로하는 할머니들, 그들의 가족사를 모르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어르신들의 속마음을 알게되면서 안스러웠다.


    효심이란 전혀 없는, 홀로 남은 어머니의 집문서를 차지하려는 아들, 그리고 형식적으로만 부모를 챙기는 아들--이들은 다 '치사랑이 없다'는 말을 증명하는 케이스들이다. 노부부의 경우에는 꼬박꼬박 해야할 일을 하는 것같지만 '자발적 사랑이 없는 효'는 기대하지 않겠다고 마음의 정리를 한 경우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은 알아서 챙겨주지 않는, 그래서 돈 더 올려달라, 생활비를 보태라, 우리랑 같이 살자라고 요구를 해야만 해주는 자식이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식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것이리라. 부모 입장에서 '나는 어렵게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자기를 키워줬건만..' 하고 원망의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늙은 부모를 등쳐먹는 그런 불효나,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는 둘 다 치사랑과 내리사랑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니까 차지하고, '진정한 사랑이 없는 형식적인 효'와 '치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애초에 부모와 자식이 인간적인 소통 없이 그저 책임이란 굴레로 묶여 있다면 치사랑은 가능하지 않은 것같다. 부모와 자식이 친하고 부모가 어느정도는 보고 싶고 부모에게 안스러운 마음이 있다면 사랑이 저절로 나오리라.


    반대로 만약 부모가 자식에게서 경제적 보조, 부양의 의무, 수발을 기대하다 못해 떳떳이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그걸 진정으로 좋아서, 기쁨으로 할 자식은 없다. 선택권이 없는 일을 하면서 자발적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잔뜩 받은 숙제가 재밌지 않지만 그래도 해야하는 거라 생각해서 쩔쩔매면서 하고 있는 학생한테, ‘넌 왜 기쁨으로 숙제하지 않냐’ 며 야단치는 꼴이다. 그러므로 '치사랑'이 없다 한탄하기 전에 효도를 강요하는 문화를 되돌아봐야한다.


    자식을 존중하고, 며느리, 사위를 존중하여, 공짜 심뽀 버리고, 감사해하는 시/부모가 치사랑을 받을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진다. 자식 입장에서는 기쁘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예의를 갖추어 자식이 베푸는 기쁨이라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부모의 현명한 배려가 아쉽다. 




    '내리사랑' 다시 읽기


    부모의 사랑은 아름답다. 나도 엄마이고, 내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은 딸로서, 자식에게 사랑을 주기도 하고,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기도 한다. 부모사랑이 분명 본능적이고, 무조건적인 요소가 있고 그래서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알고 있고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무조건적’인 단면이 내리사랑의 위험한 부분이기도 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은 이란 사고는 ‘사랑’과 ‘흐르는 물’의 유사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물은 ‘아래로 흐른다’는 사실 하나로서 사랑의 본질을 정의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흐르는 물이 관리가 되지 않고 적절히 유도되지 않으면 농사도 망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흐르는 물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하는 노력들이 얼마나 많은가. 돌도 필요하고, 땅을 파야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댐도 필요하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 ‘내리사랑’이라면 그 내리사랑은 흐르는 물처럼 어느 정도의 관리가 필요하다.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내리사랑의 문제는 더 있다. 물이 아래서 흐르듯이 부모의 자식 사랑이 당연하다는 것은 자식이 부모에게 사랑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저 내려오게 되어 있는 사랑이니, 자식은 자연스레 받기만 하면 되고 당연히 주어지는 것을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우리 주위에 내리사랑의 병폐가 차고 남친다. 우리가 주위에서 목격하는 많은 ‘병든 관계’나 ‘병든 자아’는 왜곡된, 무분별한 내리사랑의 병폐적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인이 된  자식에게 무조건 퍼주기만 하는 부모, 그걸 당연히 여기고 손내밀고, 넙죽넙죽 받아먹는 의존적인 자녀, 적절한 훈육없이 사랑만 받고 자라 부모는 물론 주위 사람에게 무례한 사람들, 다른 부모들은 풍족하게 잘 지원해줬는데 네가 ‘부모 못 만난 죄로’ 고생하는구나 죄의식 느끼는 부모, 그리고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그 지독한 고부간의 갈등----이 모든 것은 물길을 잘 만들어주지 않고, 물꼬를 제대로 틀어주지 않고, 그냥 흐르는대로 놓아둔 내리사랑이 만들어낸 불행한 관계/상황이다. 무분별한 내리사랑은 자식을 치사랑이란 사랑을 실천 할 수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움은 자식이 독립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내새끼' '나의 연장'이 아닌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독립적 개체, 즉 '남'으로 만드는 것이다.


    왜곡된 내리사랑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식의 독립을 격려하기는 커녕 경제적/정신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게 해버린다는 데 있다.자식을 ‘내새끼' '나의 연장'으로 사랑하면‘너’와 ‘나’가 불분명한 수직적/세습적 관계가 불가피하다. 내가 너 이만큰 사랑했는데 왜 넌 나에게 잘하지 않니? 식의 채무자 부모에 자식들은 영원히, 변재될 수 없는 사랑의 빚쟁이가 되어버린다. 


    무조건적 내리사랑의 본연의 의미가 잘 실행되고 그 병폐가 없는 때가 있긴 하다. 자식이 태어나 생존하기 위해 부모의 본능적인, 무조건적 사랑이 필요한 생후 2-3 년의 짧은 시간이다. 자식이 육체적으로 부모에게 온전히 의지하고, 부모는 (방긋방긋 웃는 것 외에는) 자식에게 기대하는 것 없이 본능적으로, 무조건적 사랑을 주는 시기이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부모의 양육의 목적은 뚜렷하다. 아이가 혼자 밥 먹고, 혼자 서고, 혼자 걷고---그렇게 서서히 부모로부터 독립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헌신과 사랑으로 (내리사랑) 아이가 육체적 독립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 부모가 바로 그 내리사랑으로써 

    자식의 정신적 독립을 방해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내리사랑은 있으나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은 부모의 자식 사랑이 자식의 부모 사랑보다 더 크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분명 맞는 말이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분명히 자식의 부모 사랑보다 숭고한 일면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것을 딸로서, 엄마로서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내리사랑/치사랑'을 대립 구조로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사랑을 상호 배타적인 개념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애초에 '사랑'과 '물'의 유사관계에 문제가 있고, 또한 그런 사고방식이  부모 자식간의 건강한 관계에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리사랑, 치사랑'의 개념은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유교 사상, 수직적 인간관계의 정서와 가치관의 표현일 따름이다.  

    옛날부터 내려온 속담이라는 이유로, 마치 그게 어떤 진리를 담고 있는양 무조건 받아들일 필요도, 그래서도 안된다. 옛말에 '내리사랑은 있고, 치사랑은 없다고 그랬잖아. 그러니까...' 라고 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도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니까 그냥 받아들여야한다는 식의 억지와 다름없다.

    가치관도, 속담도 잘못된 것일 수있고, 바뀔 수 있다. 과거의 통속적인 관념과 행동윤리를 반영하는 칠거지악과 같은 속담은 의의를 제기하고 바꾸어가고있지 않은가? "아들은 장가들이면 반 맘 되고 딸은 시집 보내면 온 남된다" 라는 말은 엣날에는 맞는 소리였겠지만, 지금은 완전히 반대이지 않은다. 마찬가지로 '내리사랑은 있고, 치사랑은 없다' 라는 속담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고, 그래야한다.


    부모 자식이 수평적 관계를 맺을 때 저절로 피어나는 치사랑


    나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일 때,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독립적일 때 자식의 부모 사랑이 저절로 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 주위의 몇몇 '성공적 가정'의 사례들을 봐도 그렇다. 

    부모가 자식과 수평적 관계를 맺는다고함은 자식이 부모랑 친구가 되어 서슴없다 못해 버릇없이 구는 것을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친근하지만 예의를 갖추는 친구관계, 그러면서도 부모로서 존중하는 관계. 나는 주위에 그런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들을 꽤 많이 알고 있다. 그중 가장 이상적인 것은 케이트와 박홍관 목사님 댁 가족. 그 가족과 함께 있자면 올림픽 폐막식의 선수단 입장시 미국 선수단의 행진과 같이 질서있게 전진하지만 그 안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그래서 즐겁기만 광경이 떠오른다. 부모와 자식간의 질서가 있지만 그 질서가 무겁게 눌러 식구들의 언행을 제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가정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사실 나도 그런 억압적이지 않고 상호 존중하는 민주적 가정에서 자랐다. 그런데 부모와 우리 삼남매의 민주적 관계는 우리가 싸워서 쟁취한 것이 아니다. 부모가 그렇게 시작해줬다. 

    부모님은 내가 어려서부터, 그리고 20 대 초반부터는 분명히 나를 인정해줬고 내 의견을 존중했다. 내가 하고자하는 것을 막지 않고 믿어줬다. 나는 그들에게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해갔고, 우리는 언젠가부터 무늬는 부모관계, 내용은 친구 관계인 그런 수평적 관계를 유지했다. 내가 부모님 대접을 해드리지만 부모님은 나에게 부모님으로 군림하지 않고 나를 친구처럼 대했다. 좀 진지한 친구라할까?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서 배우고, 도움을 주고받는 그런 친구이니 말이다. 나에게 부모님은 인생의 연륜과 경험으로 분명 나보다 지혜로울 거라는 가능성이 좀 더 큰 그런 친구들이다.   

    우리는 좋은 친구이다. 내가 독신 시절, 부모님은 60 대 어르신들이 선호하는 단체 관광 대신에 나와 무거은 베낭을 지고 기차로 유럽 여행을 같이 다녔다. 1991년, 1992 년, 두차례의 여행, 합해서 한 달간의 여행 동안 부모님은 단 한/번/도 음식과 숙소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 도착할 때마다 호기심으로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고, 가이드 책을 꼼꼼히 읽으면서 역사와 경치를 감상하고, 새로 배운 것을 두고 두고 이야기했다. 기차 파업으로 일정을 바꿔야했고, 버스를 놓칠번 해 죽어라 뛰어야했으며, 예상치 않은 날씨 변덕으로 덜덜 떨었고, 심지어는 자는 중 침대 다리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지만, 그들은 어떤 상황에도 긍정적으로 즐겼으며 '이렇게 여행을 잘 짜줘서 고맙다' 라는 칭찬만 했다. 여행하기에 최고의 친구였다.

    철없던 내가 부모님을 사랑하고 인정하게 된 것도 부모님을 한 인간으로 보게 된 이후였다. 사람들은 고생을 해봐야 부모 사랑을 안다고 하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맞다. 외국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받아든 날, 그 귀한 돈을 내가 벌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돈을 세고 또 세면서 즐거워하다가, 갑자기 '강대건 이춘산은 평생 나를 위해 이렇게 귀한 돈을 맨날 썼왔구나' 하는 자각에 감사함으로 펑펑 운 적이 있다. 그 이후 나이를 먹어가면서 막연하나마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시하지는 않고 감사했던 것같다.  30 대부터 부모님 말년은 내가 지켜드리겠노라 장담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엄마가 병을 얻고 입원을 하고, 엄마 아버지의 삶에 깊게 개입하게된 2009 년 이후로 부모님이 우리 삼남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하는 모든 노력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이 눈물나게 절약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열심히 운동하는 이유가 자식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절약해서 돈 더 모아서 재밌게 살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노후에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함이고, 건강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즐겁게 살자가 아니라 어떻게든 건강을 유지해서 가능한한 늦게까지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지 말자가 그들의 삶의 목적이었다. 

    매일매일, 그들은 그 목적을 위해서 살아가는 부모를 보면서 우리 삼남매를 이렇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뭘 했다고 부모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가? 하는, 내가 정말 이들의 사랑의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다가 나의 부모가 되어서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고 있는가.. 나는 내가 그들을 부모로 택하지 않았듯이, 그들도 나를 택한 게 아니라는 사실, 그냥 내가 그들에게 운명적으로 딸로 태어난 거고, 그들은 열심히, 자신의 삶 끝까지 나를 위해 사록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부모를 독립적 개체로, 운명적으로 나의 부모가 된 '남'으로 보니 보이는 게 너무도 많았다. 그것은 부모의 '내리사랑'이었다. 부모님은 마치 나의 친구와 같은 존재이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기대하지 못할, 그리고 건강한 친구 간에서는 함부로 기대하면 안되는 그런 ‘무조건적 사랑’을 나에게 주어왔다.  그들은 ‘남’인 나의 똥기저귀 갈아주고, 세 끼 먹어주고, 목욕 시켜주고, 아픈 나를 위해 밤을 새웠고, 맛있는 것 한껏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 원없이 하지 못하고 내 생명을 거두어주었다. 나를 위해 기뻐하고 슬퍼했으며, 내가 힘들 때 나보다 더 괴로워했다. '남'인 내가 자신감을 갖고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해줬다. '남'인 나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남'인 나에게 공짜를 바라지 않았다. 당연히 '치사랑' '효도'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어쩌다 드리는 용돈에 감지덕지하면서 그걸 간직하다가 소중히 사용했다. 국제결혼한다고 할 때도 '내가 이제까지 어떻게 희생했는데 이제와서 우릴 배반하냐'며 반대하지 않고 축복해주었다. 자신의 희생을 빌미로 내 인생을 조종하지 않았다. 나를 자유롭게 해줬다.

    내가 두려움 없이 자신감에 꽉 차 세계를 놀이터삼아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언제든 돌아갈 수있는 집이 있었고, 나를 품어줄 부모가 있어서였다. 그들의 희생은 내 독립을 위한 거름이었으나, 그것을 공짜로, 당연히 여겼던 이기적인 딸, 나. 

    나는 침대에 갇혀 일어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가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와 같다 느낀다. 자식은 그에게 떳떳하게 요구하였고 그는 아낌없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자식에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자식은 그를 잔인하게 상처주는 방법을 알고 실천도 했으나 그는 자식에게 상처주지 않았다. 자식은 그를 훌쩍 떠날 수 있었고, 그를 떠나기도 했으나, 그는 절대로 자식을 떠나지 않았다. 열매도, 가지도 다 잘려나가고, 마지막에는 밑둥만 남아 그자리에 아이를 기다리는 나무, 그게 나의 아버지였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사랑처럼 부모의 자식 사랑은 어리석다. 밑지는 장사이다. 우리 부모님만이 그런 장사를 한 게 아니라 세상의 많은 부모가 밑지는 장사를 하면서, 그게 행복하다고 하하하하 웃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부모 사랑을 아이들에게 주고 있다.)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어야 그림이 제대로 보이듯이, 부모를 ‘남’으로 보면서, 즉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서 인정할 때 부모의 사랑이 똑바로 보인다. 부모의 사랑이 무조건적 '내리사랑' 이라는 것도 독립적인 개체로 따로 설 때만 보인다. 부모의 내리사랑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치사랑은 자연스레 생겨날 것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라는 말이 부분적으로는 맞다. 지금 내가 부모님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은 기껏해봐야 부모라는 내 친구들에게서 많은 것의 일부분을 돌려주는 것일 따름이므로.


    나에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고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 그 그루터기 밑둥에서 피어나는 새싹에 물을 주는 건 효도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할 일 하는 것이다. 그 나무는 아직도 내가 걸터앉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나무이다. 가까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주고 일면식 없는 사람들도 위해 기부하면서 사는 마당에 나에게 가장 많이 배풀어준 나의 친구인 부모님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공평하다.


    건강한 동료의식과 우정으로 뭉쳐 친구들과 일하는 것은 힘든 순간도 즐겁게 이겨낼 수 있게 해준다. 그게 ‘수발’이란 거창한 이름이 붙을지라도, 책임이니, 효니 끈적끈적한 사고에서 해방되어 맺는 협력 관계는 쌈박하고 유쾌하기 이를데 없다.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내리사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 치사랑도 아니고, 부모님과 나는 함께 흐르는 물이 되어 하루하루를 같이 흘러가고 있다. 또한 한 어머니로서 모쪼록 나는 나와 아이들도 함께 흐르는 물이 되고 싶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