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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 대 할머니의 노란 자전거, 그리고 사랑.
    부모님 이야기 2019. 3. 26. 22:30

    2003 년 5 월,  벨기에 시댁을 방문 중, 프랑소아즈를 만나러 빠리로 갔다.  빠리에 간 것은 결혼 후 처음이었고, 프랑소아즈는 7년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유학 시절 가장 가깝게 지낸 프랑스 여성이다. 가난한 조각가로서 조용한 성격이지만 예술가답게 식탁보를 잘라서 우비로 만들어 입고, 앞머리를 보라색으로 염색을 해도 잘 어울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것은 그녀가 미국에 작품전을 하러 왔을 때로, 나는 첫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책을 내고,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지냈지? 나는 오랜만의 만남에 흥분이 되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 앞에 아주 밝은 노란색 자전거가 서 있었다. 자전거로는 보기 드문 밝은 색깔이었고 크기도 아주 작았다. 어린이 자전거로는 좀 크고, 어른용으로는 너무 작구나 혼자 생각을 하면서 식당에 들어섰다. 날 기다리고 있던 프랑소아즈가 달려왔다. 우리는 반가이 포옹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개인 교습을 하여 생활비를 벌어 꾸준히 자기가 원하는 작품 활동을 해왔다고 했다. 건강은 어떠냐는 질문에 그녀는 말했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그런데 60이 되면서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지는구나" 

    "누가 60 이야?" 

    내가 놀라서 물었다. 프랑소아즈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나...." 

    당신이 60이라구? 설마...  나 스스로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지만, 나는 그녀가 그렇게 나이가 많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그녀가 젊어 보여서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그녀는 늙어보인다고 할 수도 있다. 가무잡잡하며 주름이 많은 피부, 마른 몸매, 조용한 목소리는 힘찬 젊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보통 우리가 60이란 나이와 연상하는 이미지와는 관계가 없었다. 

    전혀 할머니 스타일이 아님은 물론 젊어보이는 아줌마도 아니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인격체,  프랑소아즈였다.  가난한 예술가로서 사회의 주변인으로서 묵묵히 살아온 프랑소아즈, 60이 되어서 그녀는 사회가 정하는 나이 매김, 나이 값에서 벗어나 있었다. 

    역시 당신은 달라~ 하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프랑소아즈가 말했다. 

    "파리 근교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샀어. 작업실로 사용하려고." 

    어? 이건 더 놀랄 일이었다. 프랑소아즈는 돈이 없는데 어떻게..... 

    "허물어져가는 집이야. 방이 너무 조그매서 한 가족이 별장으로 쓰기에는 적합지 않고, 수도와 전기가 없고, 사람 사는 마을에서 한참 떨어져 있고 버스나 기차도 없으니 완전 고립된 원시적 공간이지. 그래서 가격이 엄청나게 쌌어." 

    알고 보니 식당 앞의 노란 자전거는 프랑소아즈의 것이었다. 크기가 애매한 이유는 그게 접을 수 있는 자전거라서였다. 그녀는 자전거를 접어서 기차를 타고, 오두막 근처의 마을의 기차역에 도착하면 역에서부터 오두막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했다. 

    "신주, 나 혼자 아주 간단하게 사는 것인데도, 수도, 전기가 없이 기본적 의식주를 해결한다는 게 엄청난 노동이더라. 그러면서 우리 이전 세대의 여성들이 온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무지막지한 노동을 했었을까 실감하고 있어. 나는 가사노동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화덕에 불을 지핀 후에 큰솥을 걸어놓고, 그 안에 각종 잡곡을 많이 넣고는 하루 종일 푹 끓여. 모든 게 다 녹아서 죽이 되는 게 그게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끼니 챙겨 먹는 것에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으니 좋고 말야..." 

    프랑소아즈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녀가 오두막집에서 작업복을 입은 채 작품을 빚고, 깎고, 오븐에 굽고, 죽을 천천히 떠먹고, 석양을 바라보며 혼자 차를 마시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십 수 년 간 혼자 살면서, 파리의 조그만 작업실에서 혼자 뭔가 만들어보려고 애쓰다가 이제 60이 되어 자기에게 익숙한 도시를 떠나 원시적인 공간을 찾아가는 프랑소아즈.  

    그녀는 더 외톨이가 되기로 하고 그것을 유쾌해하고 있었다. 

    오두막이, 고독이, 침묵이 잘 어울리는 60 세라니!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유와 고독을 즐기는 그녀를 보면서 축하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소란스럽고 분주하고 지저분한 나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그녀의 삶은 내가 결혼을 안했더라면 추구했을, 추구하고 싶었던 삶이다. 내 삶에 만족하면서 살면서도 나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그녀를 보며 나는 대리만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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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호칭, 몸매, 피부, 생김새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여성들은 그 내면의 영혼이 눈빛으로 밝게 빛난다. 프랑소아즈도 그 중의 하나였다

    작은 키, 삐적마른 몸, 평범한 얼굴, 그러나 그녀가 입을 열고, 웃고 눈맞춤을 할 때 그녀는 매혹적이다. 자기 세계가 확실한 여성의 압도적 권위와 아름다움을 나는 그녀에게서 본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닌 것같다. 많은 남성들도 프랑소아즈에게 매력을 느끼고 구애를 했다. 그렇게 그에게는 통상적인 미의 잣대를 함부로 들이댈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런데 요사이 프랑소아즈는 열렬한 사랑에는 관심이 안 가는 듯했다. 최근 자신에게 열렬한 구애를 하는 젊은 남성--삐에르--더러 헤어지자고 한 것도 그녀였다.  이제 그녀는 사랑보다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저 마음을 열고 나누는 대화를 좋다고 했다. 

    그녀가 삐에르를 만난 것은 오두막 집으로 가던 기차에서였다. 기차에 자전거를 아무 곳에나 세워둘 수 있기에 그녀는 의자에 앉는 것을 포기하고 자전거를 세워둔 통로의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곤 했단다. 그런데 어느날 프랑소아즈 앞에 자전거를 들고 탄 한 젊은이가 앉았다. 그도 앉자마자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는 '짐 모리슨의 전기'를 읽고 있었다.

    프랑소와즈는 짐모리슨 세대였다. 그녀는 젊어서 미국에 살았을 때 짐모리슨의 공연을 직접 쫓아다녔다. 그리고 그녀 앞에서 책을 일고 있는 젊은이는 짐 모리슨의 일생을 하나의 신화처럼 읽는 40 년 연하의 세대였다.

    "나는 짐모리슨의 공연을 본 적이 있어요" 라고 프랑소아즈가 말을 걸었다.

    자기 엄마/할머니 세대의 여성이 짐 모리슨 이야기를 하니 젊은이는 움찔 놀랐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그들은 대화에 빠져들었다. 짐모리슨만이 아니라, 노란 자전거, 오두막, 조각, 젊은이가 좋아하는 음악, 책, 그가 꿈꾸는 세상....

    그는 프랑소와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번 '놀랍다'라고 했단다. 

    이해가 간다. 자전거 옆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던 조그만 체구의 할머니가 자기와 비슷한 시각으로 사물을 본다는 게 놀라웠으리라. 그리고 그 할머니가 알고보니 창작에 골몰하고, 자기 멋대로 자기 삶을 빚어가는 삶의 예술가라는 사실도 놀라웠으리라. 내가 프랑소아즈를 처음 마났을 때 그러했듯이...

    그들은 열정적인 사랑을 했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젊은이에게 다른 우연을 기약하자고 하면서 헤어지자고 했다. 그녀는 남과 완전한 하나가 되는 순간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만남과 헤어짐에 자기를 뒤흔드는 고통과 부담을 원하지 않았다. 

    프랑소아즈가 '나잇값'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치열한 젊음을 살아냈다. 죽어도 좋다면서 사랑해봤고, 사랑받으려고 몸부림 치던 젊음을 살아보았다. 그래서 이제 그녀는 그 열정을 오두막에서 구워내는 작품에 쏟고 있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담담하고 자신만만하게 택하는 고독, 무소유, 자유가 아름답다.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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