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는 열일중~

from Felix the Cat 2019.03.11 16:28

우리 동네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합니다.

주야로 순찰을 도는 코코 덕에


(밤에 수면바지 입고 개줄에 질질 끌려 산책하는 팜펨을 상상하시압)


코코는 밤에 날아요, 날아. ㅠ



아침 일찍 순찰.

코코의 매력적 뒷태를 감상하시와요.


낮잠은 꼭 챙겨 주무십니다.

제 침대에서. 펠릭스랑.



비가 온 뒤에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웬일로 코코가 점잖게 걸어서 

아버지와 걷던 길을 즐겼습니다.


나무마다 킁킁,

분명 다른 강아지들의 소변의 흔적을 훑는 것인데

그 코로 저를 부비부비하는 거죠. ㅠ



동네 개들이 많이 나왔어요.

인사하고 지나치는데

어떤 아줌마가 코코 예쁘다고 하시고

코코처럼 점잖고 착한 개 처음 봤다고 하셔서 

으쓱으쓱하다보니 30 분 수다를...



왼쪽의 개는 '타시'란 개인데,

눈이 안보이고 귀가 안들린데요.

그래서 갑자기 다른 개가 (반갑다고) 달려들면 

감으로 누군가 달려드는 것만 느끼기때문에

무척 긴장하고 공격적으로 된다고 해요.


코코랑은 킁킁 거리면서 친선만세하고 땅에 앉아서 쉬기도 했어요.

16 년 반 동안 타시랑 함께해온 아줌마는 

타시의 마지막 날이 점점 다가오는 것같다고

슬프다고 하셨어요.



코코 덕에 많이 걸어요. 


코코 엄마는 지금 멀리사는, 혼자 남은 아버지는 어떻게 돌봐야하는가로 

고민하고 있어요.

긴 문자로 

짝 잃은 부모님 돌보는 이야기를 같이 나눴어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나는 오랫동안 꽃을, 특히 화분이나 화병에 꽂힌 꽃들이 예쁘다고 느끼지 못했다


화분의 꽃은 내가 관리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고, 화병의 꽃이 말라서 버려질 것이라는 생각이 우선이니 꽃을 즐길 없었다. 결혼 초기에 남편에게도 나에게 선물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었다. 

경상도 사나이같이 무뚝뚝한 나와 달리 시를 사랑하는 소년의 감수성을 그대로 간직한 연세가 아버지는 꽃을 무척 사랑했다. 아니, 아버지의 사랑은 그의 자연 사랑의 부분이었다. 아버지는 자연을, 웅장한 위용의 대자연만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존재--나무, 조약돌, 나뭇잎, 곤충, 들꽃---- 관심을 갖고 신비로움에 경탄하고 사랑했다. ‘city girl 나는 어려서는 그런 아버지가 이해가 안되었다.

유학 가기 나와 아버지는 등산을 자주 갔다. 나는 빨리 관악산 정상의 산장에 가서 풋고추를 넣은 라면과 달콤한 커피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서둘러 산을 올랐지만 아버지는 마치 산을 품에 안기라도 하려는 천천히 산을 탔다


수시로 멈춰서 작은 , 돌틈에 비집고 나온 나무 뿌리, 인사를 하듯 서있는 나무들의 모양새와 건강한 나뭇잎들을 보며 '....' '....'' ...' 하고 경탄하며 시간 끌고,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의 전공인 18 세기 영시, 19 세기 낭만주의의 자연관, 마쓰오 바쇼와 윌리엄 워즈워스의 비교, 하이쿠, 중국 철학에서의 자연관을 이야기하시는 통에 나는 조갑증이 났다빨리가서 라면 먹고싶은데...


어느 더운 날 산에 오른 날, 몇 걸음 안 가서 지쳐 불평을 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더운 날 산을 보는 것도 즐겁다, 계절마다의 자연의 변화를 느끼면서 사는 게 지복이라면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를 인용했던 기억이 난다. “계절이 지나는대로 계절 안에 살라. 계절의 공기를 마시고, 계절의 음료를 마시고, 계절의 과일을 맛보고, 계절이 주는 영향에 자신을 내맡겨라  (Live in each season as it passes; breathe the air, drink the drink, taste the fruit, and resign yourself to the influence of the each). 일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오르던 관악산은 아버지가 사계를 경험하는 행복의 원천이 되었다.


언젠가 아버지의 지인인 일본의 부자집에 초대를 받아 적이 있다. 최고급 호텔에 머물면서 끼를 산해진미를 먹고, 유명한 관광지를 구경하고, 저녁에는 파티가 열렸다. 아버지는 사흘 후에 슬픈 얼굴이 되어 나에게 말했다.


“나는  책상이 그리워. 하루 종일 읽고, 엄마가 해주는 먹고, 동네 뒷산 다녀와서 목욕하고 나서 막걸리 때가 제일 행복한데.." 라고 하며 당신은 '호의호식보다 책의 바다에서 하염없이 수영하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모르는 것을 배우면서 그 깨달음에 기뻐하는 학자, 아버지는 모든 면에서 윌리엄 워즈워스가 권면한 '소박한 삶, 고결한 사고' (plain living, high thinking) 을 실천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유명한 명소의 대자연을 대상화하면서 감탄하는 것보다는 삶에서 발견하는 소박한 자연과 소통하는 것을 즐겼다. 지금도 내가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 있다


2011 아버지가 나에게  들꽃의 선물. 


엄마가 건강에 이상이 응급실에 가야했다. 한번은 단기 기억상실증, 두번째는 혈압. 나는 당시 가족여행차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아이들과 남편은 먼저 미국으로 보내고 남아, 병원에서 엄마 간병하고, 집으로 와서 아버지를 보살폈다. 


엄마가 퇴원하고 집에 돌아온 , 나는 며칠간 잠을 못자며 간병하고, 밥도 제대로 먹고 일처리를 하다 집에 돌아오니 긴장이 풀리며 허기가 느껴졌다.  엄마가 거실에 누운 것을 확인한  부엌으로 직행했다


우리와 함께 차에서 내린 아버지는 무슨 일인지 집에 들어오셨다. 그러나 신경 쓰고 나는 서둘러 밥을 차려서 먹기 시작했다. 현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세요? 어디 다녀오셨어요?”


나는 형식적으로 인사하고 밥을 계속 먹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를 방해하기가 미안하신 , 가만히 계셨다. 마치 점심시간 교무실에서 짜장면 먹고 있는 선생님 앞에 단정히 학생마냥. 내가 의아해서 아버지를 올려다보니, 아버지가 무엇인가를 든 손 내미셨다.


"신주야. 이거, 우리 아파트 들어오는 옆에 있는 화단의 관목들 밑에 있던 거야. 너무 아름답지?”


뭔가 보니 아버지 손에 새끼손가락의 손톱만큼 작은 자주색 들꽃 하나가 사뿐히 놓여 있었다.

어리둥절한 나는  "예쁘네요" 라고 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 , 너에게 주고 싶어. 이번에 엄마랑 나를 돌봐줘서 너무 너무 고마워. 마음을 받아줬으면 좋겠어."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마음에서 뭔가 울컥 올라왔다. 뭐라고 말을 하면 눈물이 터질 같았다 나와 달리 너무도 순수한 아버지의 시선에 나는 말을 잊었다.


지난 며칠 병원과 집을 오가면서 많은 일을 치루고 밥을 '퍼먹으면서' 나는 아직 질퍽한 현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노령 부모의 지병, 응급실의 쇼크, 고지서와 약봉지 꾸러미, 부모님만큼 낡은 아파트---모든 범벅되어 있는 현실을 뒤로 하고 나는 며칠 미국으로 돌아가야했다. 지쳤고 마음이 어두웠다.


피곤함에 절은 탁한 눈으로 그저 나는 그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에만 골몰하고 있었으나, 같은 상황에서 아버지는--분명 나보다 더한 마음 고생을 겪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아파트 현관 구석에  피어 있는 들꽃에 시선을 두었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누구나 무심히 지나치는 꽃이 아버지에게는 딸에게 줄 감사의 마음을 실을 만큼 아름다웠 것이다.


아버지의 선물은 소박했지만 그의 사랑은나에 대한 사랑, 꽃에 대한 사랑-- 너무도 순수하고, 꽃만큼 예뻤다. 나의 마음이 정화되는 것같았다. 모든 걱정이 아무 것도 아닌 것같고 뭐든 있을 것같았다. 현실적으로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노인, 맑은 마음으로 평생을 살며 자기가 있는 모든 것을 나에게 사람을 젊은 내가 지켜주고 싶다는 보호본능이 나를 불태웠다. 에너지 드링크를 사발로 들이키기라도 기운이 났다. ( 모든 일을 해결했다.)


보랏빛 들꽃을 받는 순간, 나는 하나의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아버지의 시선이다. 아버지 덕에 나는  아무리 현실이 구차하고 복잡하고 심난하게 만들지라도, 고개를 들어 돌아보면 우리 주위에는 아름다움이 존재하며, 그것은 우리를 현실에 전복되지 않게 잡아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오빠가 돌아가신 뒤에는 나의 꽃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꽃이나, 꽃병에 꽂혀있는 꽃이나, 친구들이 보내준 사진 속의 꽃들이나, 예쁘게 보였다. 결국은 덧없이 사라지고 마는 꽃과 우리네 인간의 삶의 유사성을 절실하게 깨달아서인가,  스러지는 꽃을 아쉬워하고  꺾어진 꽃이 죽을 거라는 안타까와 사랑하기를 거부하느니 잠시라도 꽃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찬송하고 즐기고 싶어졌다.


아버지 병수발을 들게 후에 나는 완전히 변했다. 이제는 꽃을 사들였다. 자연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하루 종일 방에 갇혀 있는 안타까워서 뭐라도 아버지께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이기도 했다. 철쭉, 장미, 국화, 해바라기꽃, 맨드라미, 안개꽃, 튤립, 가리지 않고 샀다. 엄마도 정원에서 꽃을 꺾어 작은 유리컵에 넣어 아버지가 향기를 맡게 다음에 아버지 눈에 띄는 곳에 놓아드렸다.


아버지와 나는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한국 산에는 진달래가 한창일텐데요. 학교 주위의 개나리가 예쁘단다.  약수터의 철쭉이 그립구나. 아파트 단지 앞에 목련이 고왔어요. 오빠 묘소에 들어가는 길목의 매화가 너무 아름다웠단다. 설악산에 갔을  벚꽃이 눈처럼 흩날렸었지요..... 이야기만으로도 아버지는 생기를 찾았다. 


어느  아버지는 큰 꽃 선물을 받았다. 나의 친구 쥴리엣이 아버지의 창가에 화분 정원을 꾸며준 것이다. 아버지 방의 커다란 창문 밖은 회색 울타리였고 바닥은 콘크리트,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아버지 시선이 머무는 곳이 썰렁한 회색 담이라는 마음에 걸려 언젠가 아버지를 위해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계획을 들은 쥴리엣이 '수발로 바쁜 네가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공사를 어느 세월에 하겠냐' 하더니만 , 꽃나무, 화분, 정원사를 데리고 와서 순식간에 예쁜 정원을 만들어주었다. 아버지는 매일 큰 창문 밖에 피어있는 각양각색의 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행복해하시면서 쥴리엣에게이리도 유쾌한 꽃무리와 함께하니 어찌 시인이 즐겁지 않겠냐라고 하시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아무도 그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지만 사실은 그것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 ‘수선화에서 나온 구절이었다. 


시인의 감수성이 없는 나에게도 화단은 즐거움을 준다. 아침에 아버지방 창문을 열면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각양각색 꽃들이 생글생글 인사를 한다. 동글동글 이슬을 먹은 꽃망울, 풀포기를 뜯다가 분주히 도망가는 토끼,  만개한 꽃들 사이를 여유있게 윙윙 나는 벌들과 빠른 날개짓을 하는 귀여운 허밍버드도 아버지를 모두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는 자연의 친구이다. 덩달아 화분에 물을주고, 볕을 받게 이리저리 옮기고 청소를 하는 엄마와 나의 마음도 유쾌해진다. 


어느 아버지가수선화 마음으로 번역했다며 들려주셨다. 아버지가 손을 못쓰시니 머리로 기억해서 번역한 것이다. (번역을 그렇게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아래가 아버지의 번역과 시 원문이다. 



수선화 

(강대건 )


하늘 높이 떠도는 구름장처럼

계곡과 언덕을 외로이 떠돌아다니다가

나는 문득 보았네

호숫가 나무 아래,

산들바람에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는 

무성한 황금빛 수선화 무리를.


은하수의 빛나고 반짝이는 별들처럼

수선화는 호수의 가장자리를 타고 

줄지어 한없이 뻗어나갔지.

무수한 수선화가 머리를 살랑살랑대며 흥겹게 춤추는 것을

한눈에 나는 보았네.


물결이 옆에서 춤췄으나

반짝이는 물결도 수선화의 환희를 당해낼 없었다네.

그리도 유쾌한 꽃무리와 함께하니 

어찌 시인이 즐겁지 않으랴.

나는 바라보고 바라보았네.

수선화의 장관이 얼마나 귀한 생각거리를 가져다 주었는지를

미처 깨닫지 못한 .


내가 종종, 멍하니, 아니면 쓸쓸한 생각에 잠겨

의자에 누워 있노라면

고독의 축복인 내면의 눈에

수선화들이 번쩍 떠오르고,

그러면 마음, 기쁨으로 가득차서

수선화들과 함께 춤을 춘다네.



Daffodils   

(William Wordsworth)


I wander'd lonely as a cloud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When all at once I saw a crowd,

A host of golden daffodils,

Beside the lake, beneath the trees

Fluttering and dancing in the breeze.

Continuous as the stars that shine

And twinkle on the milky way,

They stretch'd in never-ending line

Along the margin of a bay:

Ten thousand saw I at a glance

Tossing their heads in sprightly dance.

The waves beside them danced, but they

Out-did the sparkling waves in glee: -

A poet could not but be gay

In such a jocund company!

I gazed - and gazed - but little thought

What wealth the show to me had brought.

For oft, when on my couch I lie

In vacant or in pensive mood,

They flash upon that inward eye

Which is the bliss of solitude;

And then my heart with pleasure fills

And dances with the daffodils.

*시의 첫머리를 '계곡과 언덕 위로 외로이 떠도는 구름처럼 정처없이 걷던 나' 라는 해석이 맞지 않냐, 아버님이 실수하신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그것을 고려하신 뒤에 현재의 번역을 택하신 것입니다. 



단순한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풀어써보겠다. "하늘 높이 떠도는 구름장처럼" 계곡과 언덕을 외로이 떠돌아다니던 시인은 문득 호숫가 나무 아래에서 살랑살랑 춤추고 있는 무성한 황금빛 수선화 무리를 발견한다. 은하수의 빛나고 반짝이는 별마냥 호수의 가장가리를 타고 줄지어 끝없이 뻗어나가는 수선화들의 흥겨운 춤이 그에게 한눈에 들어왔다. 환희의 춤은 바로 옆의 호수의 반짝이는 물결의 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시인은 수선화가 주는 즐거움을 "이리도 유쾌한 꽃무리와 함께하니 어찌 시인이 즐겁지 않으랴" 라고 표현하는데, 매료되어 수선화 무리를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수선화 무리의 모습이 자신에게 엄청나게 귀한 재물--, 귀한 생각거리-- 주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난 , 시인이 의자에 누워 종종,  멍하니 (vacant), 또는 슬픈 생각(pensive) 잠기면,  그의 고독한 의식 속에 갑자기 속에 수선화 무리의 모습이 번쩍 떠오르고, 그러면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차올라 '수선화들과 함께 춤을춘다.


아버지가 쥴리엣에게 인용한 구절은 "이리도 유쾌한 꽃무리와 함께하니 어찌 시인이 즐겁지 않으랴로서 화단의 꽃들을 보며 기쁜 마음의 적절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번역과 원문을 읽으면서 황금빛 수선화의 기억에 기뻐하는 시인의 묘사보다는종종’ ‘멍하니’ ‘슬픈 생각에 잠겨있는이란 구절에 눈이 가는 것일까?


아버지는 '슬픈 생각' 잠길 많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 아들이 죽었고, 자신의 건강을 잃었고, 고향도 잃었다. 이제는 몸을 움직일 없게 되어, 침대에 누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주위에서 아무리 병수발을 정성들여 한다해도 그가 매일 대면하는 것은 침묵과 절대적 고독과 우울함이다.


아버지가 수선화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는 멍하니슬픈 생각에 잠겼을  수선화의 시인처럼 자연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기억을 통해서 기쁨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더 중요한 관점일 수도 있는데, '아름다운 자연을 떠올리면서 슬픔을 극복하는 시인'에게서 현재의 고통을 이겨낼 영감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가 평생 탐독하고 외우고 사랑한 많은 아름다운 시가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사는가어떻게 사는가에 관한 수많은 답을 제시해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시를 통해 얻는 진리를 수시로 나와 나누셨기때문이다. 


그러나 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에 봉착한 아버지에게 시의 의미는 더 크다. 시는 노년의 슬픔과 불구의 고통 속에 아름다움과 진리의 창구이기 때문이다. 시는 매일매일의 양식처럼, 기도, 성경말씀처럼, 시는 아버지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아버지의 침대맡에서 많은 시를 읽어드린다. 한국시, 영시, 한시, 일본시...가리지 않고. 아버지는 자주 감동에 젖어 눈물 흘리신다


얼마전 아버지가 김소월의 산유화를 읽어달라고 하셨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읽어드리니, '아...정말 좋구나...' 하시더니 일본의 김소월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가 생각난다고 하시면서 직접 읊으셨다.


동쪽 바다의 조그만 바닷가 백사장에서

   나 울다 젖은 채로

   게와 어울려 노네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신주야,  정말 너무도 아름답지 않니?’


나는 의 아름다움보다는 그런 아버지의 그런 말랑말랑한 정서가, 그리고 아버지의 힘든 상황에서 여전히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그것에 열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 말을 잊었다.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에게는 '시'가 곧 '수선화'임을. 황금빛 수선화들이 외로운 워즈워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면, 수많은, 아름다운 시는 아버지 뇌리에 메아리치면서 아버지를 고독 속에서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80 대 때 아파트 현관이 들꽃을 소중하게 손에 담아 나에게 선물했던 아버지, 이제 90 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시를 사랑하고 시를 낭송하며 눈물짓는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아버지, 병마와 싸우면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진리를 찾으며, 진리에서 삶의 힘을 얻는 아버지, 그는 나에게는 불가사의이다. 아버지를 '시'에 비유하자면 단순한데 의미가 깊어서 여러번 읽고 음미해야하는 시일 것이다.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자꾸 읽게 되고, 읽으면 읽을 수록 즐거움이 느껴지는 시, 그게 나의 아버지이다.


소양이 부족한 나는 이해가 안된다. 고난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통해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러나 먼훗날 내가 늙어서 병약해서 침대에 누워 멍하니 슬픈 생각에 잠기는 날이 온다면, 지금의 아버지를 떠올릴 것같다. 고독과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보았고, 아름다움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은 아버지의 기억이 번쩍 떠오르는 순간, 늙은 나의 슬픈 마음은 나도 모르게 기쁨의 춤을 출지도 모른다. 수선화의 기억이 번쩍 떠오른 순간 워즈워스의 마음이 환희의 춤을 추었듯이 말이다.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강아지 코코가 온 뒤에 우리집에 활기가 감돈다.

펠릭스도 코코가 오니 좋아하는 듯하다.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밥 달라고 부엌에서 설치는

 코코와 펠릭스의 밥을 챙겨주시면서


"신주 넌 양로원 원장이었는데 이제는 동물원 원장이 되었구나" 

하시며 웃으신다.

엄마도 코코랑 펠릭스를 예뻐하신다.


코코와 펠릭스는 사이가 좋다. 

펠릭스가 가는 길에 코코가, 코코가 옆에는 펠릭스가, 

둘은 같이 있는 것을 즐긴다.


(펠릭스 옆에서 대놓고 애교를 부리는 코코.

점잖은 펠릭스가 당황해함.)



코코의 엄마, 멜린다가 동부로 떠나면서 나에게 한 말,

 

'우리 코코는 밖에 나가질 않아. 

비를 특히 싫어해서 잠깐 뛰어나가서 

용변만 본 뒤에 뛰어들어와.

산책을 좋아하지 않아서 개끈을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어' 라고 했건만,


아니었다.

코코가 비를 좋아하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그까짓 비! 하고 용감히 밖으로 뛰어가나는 스타일!

온 몸이 축축히 젖어도 바닥을, 나무를, 돌을 

킁킁 거리면서 돌아다닌다.


혼자?

아니다.

 개 줄을 잡고 있는 나와 함께...


그러니 내가 축축히 젖는다.


코코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언제 밖에 나가나 기대에 차서 나를 졸졸 쫓아다니고

마음이 약한 나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커피 한잔 마시기도 전에 같이 산책 나간다.


개줄을 잡은 내가 코코를 리드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개줄에 잡혀 질질 끌려다닌다. ㅠ


신나서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모습을 뒤쫓다 보면

코코가 유쾌한 휘리릭~ 휘파람을 부는 것같이 보이고

질질 끌려가는 나도 어느 새인가 

마음으로 휘파람을 불고 있다.



코코의 애교, 코코의 신경질, 코코의 울음, 코코의 시선,

코코는 나를 자기 맘대로 조정할 줄 안다.

코코는 자기가 여왕인 줄안다.

(기. 가. 막. 혀.)


그래서 밤마다 나의 통통한 배는

코코의 베개가 되어 우리는 쿨쿨 잔다.

여왕님 코코가 원하니까 어쩔 수 없다.

(나의 '깨갱' 이다)


산책 마치고 돌아와도 집 문턱에서 앉아서 

준엄하게 나를 꾸짖는다. 


"고작 이게 산책이라고? 노! 난 집에 안들어가! 

아직 산책은 끝나지 않았어."

(기.가.막.혀.)



'여왕님, 그럼 집 앞 잔디까지만 다시 나갔다 오시지요' 

하며 나는 개줄에 질질 끌려나간다.

(나의 '깨갱' 이다)


에릭은

분명 멜린다는 코코를 잘 훈육한 것같은데

당신은 코코 맘대로 다 하게 두냐,

밤에 왜 한 침대에서 자냐.

당신은 필시 그 가족은 안 데리고 다녔던 산책을 

하루에 몇 번씩 데리고 다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툴툴...

하더니만


결국은 에릭도 여왕님을 모시고 있다. 



(에릭의 '깨갱' 이다)


그러나 난 너무 좋다.

코코가 기가 살아서 자기 멋대로 하는 게 좋다.


나에게 코코를 맡기고 간 멜린다는 

지금 어머니 장례 준비로 마음이 아픈 상태이다.

슬픈 멜린다가 나에게 '강아지 딸'을 맡겼는데

그 강아지 딸이 의기소침해서 조용히 음식 먹고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자기가 여왕인줄 알고 맘대로 하는 코코의 소식은 

멀리 동부에서

부인을 잃고 눈물을 흘리던 할아버지께 웃음을 주고

엄마의 수의를 고르고,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는

 멜린다의 마음을 밝게 해주며,

멜린다의 12 세 딸, 클레어는 

매일 코코의 소식을 고대하면서 즐거워한다.

캘리포니아의 코코의 팔팔한 기 덕에 동부에 가 있는 코코네 가족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밝아진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코코의 목소리가 커지고, 눈매가 또렷하니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요구할 때 그 매력에 매료되어

'깨갱' '깨갱' 하면서 다 해주면서 

나는 동물도 자기 맘대로 하게 해주는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온갖 응석을 받아주는 할머니가 

손자 손녀의 기를 펴게 해주듯이

나도 코코의 할머니가 되어주고 싶다.

 

나는 코코 덕에 각기 다른 시간대에, 

시간마다 변하는 기후에

바깥 구경을 많이 한다.

그 덕에 5 개월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랑 다니던 길을 

하루에도 몇 번씩 걷게 된다.

그래서 여왕님 코코를 모시고 다니는 게 

한층 더 행복한지 모른다.










나는 30 세 때부터 '내 기저귀 갈아준 부모님, 이제 내가 해드리리' 라고 했었다. 2 년 전에 수발을 들기 시작했을 때 나의 동기는 분명 부모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수발을 들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수발은  따뜻한 마음, 사랑, 정성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사랑은  수발이 가져오는 육체적, 감정적 소진, 거기에서 오는 피해의식이나 실질적인 피해에서 나를 보호해줄 수 없었다. 

수발은 여러모로의 '관리' '경영'이 필요한 일이다. 사랑, 시간, 돈, 간병인, 나의 건강...모든 것이 관리되어야한다. 현명한 경영 없이는 순수한 열정은 무능과 기능부전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속으로 매일 상기하는 모토가 있다. 

'따뜻한 마음을 차갑게 경영하자' 

전업주부인 나에게는 '차가운 경영'이 새로운 도전이다. 아버지 건강은 물론이고 나와 어머니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 그리고 도우미들을 인터뷰하고 고용하고 관리하는 것, 다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육아의 경험을 통해 배운 여러 노하우가 도움이 되고 있다.


시간 관리, 건강 관리.

간병인이 와있는 2시부터 4 시까지의 두 시간은 엄마와 내가 쉬는 시간이다. 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는 내가 누워 쉬시라고 하면  "나 피곤하지 않아. 누워도 잠이 안 올거야' 라고 하신다.  나는 안 주무셔도 좋으니 그냥 누우시라고 우긴다.. 24 시간 집에 머물면서 수발을 드는 나와 엄마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휴식은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누운 뒤 몇 분 후에 깊이 잠이 든다. 다행이다.)

중간 휴식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내가 건강을 위해 꼭 지켰던 철칙이다. 나는 엣날에는 노산이라 여겨졌던 서른 다섯이란 나이에 첫아이를 낳았고 초기에 육체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아무리 운동을 하고 잘 챙겨먹으면서 관리를 해도 내내 피곤했고 밤에는 완전히 녹초가 되버렸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내가 한 두 가지 행위--- 아침 산책과 낮잠--은 나를 구해주었다.

아침 10 시에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무조건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비가 와도, 추워도, 우리 셋의 아침 일정은 한결같았다. 큰 아이는 자전거를 타거나 걷고, 나는 둘째를 유모차에 태워 걷거나 아니면 등에 업고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나무들을 만지고, 돌을 세고, 차들을 구경하고, 호수의 새들을 쫓아갔다. 아이들도 나도 행복했다. 점심은 놀이터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집에 돌아와서 1 시부터 3 시까지는 아이들도 나도 낮잠을 잤다.  집의 셔터란 셔터는  내려 깜깜하게 하고조용한 음악을 틀고 쉬었다. 아침 산책을 마친 뒤라 우리들은 다 곤히 잤다.

동네 아줌마들에게도 부탁했다낮잠 시간에는 전화도 하지 말고 방문하지 말아달라고.... 어떤 사람들은 이해해줬고 어떤 사람들은 섭섭해했다.  '저 집은 문턱이 높다' '저 언니는 좀 차갑다' 라는 말을 들었다.  그 반응에 섭섭하지는 않았다. 약속 하지 않고 불쑥 찾아가도 되는 것도 정감의 표현이고가끔은 맛있는 음식을 해들고 찾아가는 것도 미덕인데 ' 시간에는 전화도 하지 말고찾아 오지도 말라 하는 건 분명히 매정한 처사라고 느껴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엄마들보다 6-8 세 나이가 많았고, 애초에 허약한 체질이었다. 하루의 중간에 취하는 휴식이 없는 날은 오후 5  경부터 밤까지 너무도 힘들었다. 아이도 지긋지긋하고, 남편도 밉고, 삶이 고역이 되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아침 산책과 낮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육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50 중반을 넘었고 성인병도 갖고 있다. 그래서 '환자가 환자를 돌보니 얼마나 힘들겠니' 라고 하신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긍정적인 태도도 잃지 않고, 유쾌한 마음으로 수발을 들고 있다. 그것은 옛날에 초보 엄마로서 내가 엄수했던 철칙--'하루에 한번 산책' 과 '낮잠'---을 아버지의 일상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식이 없다면 부모님을 잘 부양하겠다는 나의 의지의 탑이 무참히 흔들리고 결국은 무너져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So far, so good! 이다. 

"아버지의 건강" 이 우선, 나머지는 대강대강


전업주부로 살면서 나디아 할머니 말고는 고용해본 적이 없던 나는 어느날 덜컥 사람을 고용해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간병도우미의 고용과 관리는 대소변 수발보다 더 힘들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장수하면서 요양보호사의 수요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어서 간병 도우미를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고, 구한다 하더라도 도우미들은 자기에게 조금 더 유리한 직장이 생기면 떠나버린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요즘 요양병원이 겪는 어려움이라고 한다.) 요양보호사 일이 워낙 힘들어서 나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유리한 일--직장의 거리, 시급, 수발의 난이도--을 쫓아가는 게 이해된다. 그래서 나는 구인구직 사이트를 검색하여 우리집에서 15 분 거리 내에 사는  요양보호사 구직 지망생들의 경력과 리뷰들을 읽고 급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나의 고용 기준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경험 여부, 성격, 인상, 가격협상, 태도. 짧은 면접 시간에 파악해야할 것이 많기도 했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인상이 좋아도 아버지, 그리고 나와의 케미스트리가 중요하므로 면접을 통과한 사람은 급여를 지불하는 '트레이닝' 기간을 두어 일을 배워주면서 사람을 파악하고 결정한다..


이제까지 간병도우미의 고용주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본 것, 그리고 고용할 때 강조하는 점은,  '신뢰성'이다. 나는 가능한한 근무 시간을 바꾸지 않기, 피치못해 바꿔야할 경우에는 1 주일 전에 통고하기, 근무시간 엄수등을 요구한다.  만약에 우리집보다 더 근무 조건이 좋은 곳으로 가고 싶다면 충분히 이해하니 적어도 나에게 미리 통고를 해서 내가 준비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내 경험으로 일을 조금 못하더라도 시간을 정확히 지켜주는 직원의 민폐가 유능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직원보다 민폐가 훨씬 덜하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다정하고, 친절하고, 공손하고, 유쾌한 사람이라도 구차한 이유로 시간을 자꾸 바꾸고 지각을 하는 사람은 아쉬워하지 않고 해고한다.


일단 직원을 고용하면 나는 일꾼들마다 장단점이 있고, 나는 내 직원들이 어느 정도는 자기 결정권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준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각기 다른 시간에 짧게 일을 하고 가므로 일들이 일관성있게 이뤄지려면 관제탑인 나의 역할이 중요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일어나는 골칫거리 상황에서 내가  어떤 것을 용인하고 어떤 것을 용인하지 않는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도 업무의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해야만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건강과 안녕' 이다. 아버지의 건강이 잘 지켜지는 한 나머지 일들은 좀 설렁설렁 넘어가기로 했다. 단지 아버지 건강에 관해서 내가 모진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은 아버지를 위한 것이니 개인적으로 상처받고 불쾌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미리 해두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간병도우미들은 대략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실수를 자주하는데, 실수를 통해 배우지 못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

실수는 없으나 매사를 자기 식으로만 하려든 융통성 제로의 완벽주의자, 

그리고 경험도 많고 실수도 없고 사고방식도 유연한 사람. (할렐루야!) 

올림피아는 첫번째 케이스로 성품은 착하나 실수가 잦고, 실수를 기억하지 못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 주위 사람 화나게 만든다. 세탁기에 기저귀를 넣고 돌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지 않으며, 가장 큰 문제는  '그릇을 깨는 능력'이다. 평생 쌓인 스트레스를 우리집 그릇에 풀기 로 작정했는지, 그릇들을 요란하게 다루고 깨곤 한다. (그녀가 그릇을 다루는 소리는 이층에서 귀마개를 하고 자는 에릭을 깨울 정도이다)  내 대학교 은사가 주신 아름다운 다기 세트를 컵 하나 남겨놓고 완파하셨고, 튼튼한 유리컵 세트는 어느샌가 한 개만 남아 있다. 그러나 성품이 워낙 정직해서 "미스 신주, 제가 깼어요" 하고 고백한다. 몇 번 조심해서 다뤄달라고 부탁했고 그녀의 대답은 시원하게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깨진 그릇을 발견하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그녀를 해고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아버지의 안녕과 건강에 관한 한 그녀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몸을 찬찬히 살피고 조그만 물집을 찾아내서 이야기해주고 나에게 '아버지 타월이 좀 더 부드러웠으면 좋겠다' 라고 요구한 것도 그녀다. 스페인어로 '사람의 발' (el pie) 과 '동물의 발' (la pata) 은 다른 단어인데, 같이 일하던 멕시코인 도우미가 급하게 서둘다가 아버지의 발을 동물의 발을 일컫는 단어로 사용했을 때 아버지가 스페인어를 모른다고 그런 실수를 하면 안된다고 주의를 준 것도 그녀이다. (나중에 멕시코인 도우미가 이야기해줘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신뢰한다. 그녀가 아버지에 관한 한 아버지를 존중하고, 아버지의 안녕을 진심으로 원한다는 것을 알기에--그리고 그런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녀를 절대 해고하지 않는다. 애초에 대단히 귀한 그릇도 없고, 이가 나간 사기 그릇 쓰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우리 집안의 역사인데, 뭐.. 하고 넘어간다. (그래도 에릭이 좋아하는 와인잔은 키가 작은 그녀의 손이 안 닿는 뒷편으로 놓게된다)


두번째 케이스는 주인의식이 너무도 강한 직원이다. 올림피아와 반대로 실수는 없지만 융통성이 없는 버지니아가 그 케이스이다. 버지니아는 매사를 조심스럽게 하여 실수가 없고, 성실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일까지 찾아한다. 책임감, 성실함이 100 퍼센트인 도우미를 두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단 한가지 문제가 있다. 주인의식이 지나치다보니 정작 집주인을 황당하게 한다.  그릇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놓고, 물건이나 옷을 포장해서 자기가 아는 곳에 보관해서 우리가 한참 찾게 만든다. 밤 늦게 아버지 안마기를 찾느라, 아침에 아버지의 안약을 찾느라, 가습기를 찾느라...주인의식이 강한 직원 덕에 이른 아침, 늦은 밤에 뜬금없는 보물찾기를 하다보면 열불이 난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아버지의 건강에 직결되는 것은 아니고 잠시 불편한 것이며, 그녀의 정리벽은 내가 갑자기 바꿀 수 없는 심리적인 문제인 것을 알기에 느슨하게 넘어간다. 사소한 일을 갖고 투쟁하다가 중요한 일에 피해가 갈까해서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때도 있다. 버지니아의 완벽주의가 아버지 건강에 해를 줄 때이다.  아버지 건강에 관한 일을 나의 상의 없이 혼자 (틀린) 결정을 해서 아버지 건강을 악화시킬 때, 나는 아주 따끔하게 지적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아버지를 휠체어로 옮길 때 성격이 급한 그녀가 아버지께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안주고 마음대로 들어서 옮겨버릴 때, 나는 소리친다. "버지니아, 멈춰요. 아버지를 불안하게 하지 말아요!" 라고. 아버지의 팔이 마치 마른 빨래라도 되는 양 접듯이 개어 아프게 할 때, 아버지의 팔꿈치 욕창을 조심스럽게 소독하지 않아 아프게 한다거나 하면 나는 그자리에서 따끔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그녀는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내가 언성을 높이는 것은 아버지의 안녕에 관한 일일 것이고 그것을 개인적인 공격으로 듣지 말아달라고 해왔으므로 불쾌함을 훌훌 털어버린다. 감사하다.




갑질 하지도 않고, 갑질 당하지도 않는 고용주가 되기위한 노력  


식당 주인이 요리할  알아야 위급한 상황에 요리를 직접 할 수 있고, 그래서 셰프와 존중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소위 직원이 갑질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소리인데,  그것은 현재 우리집 상황에 딱 들어맞는 소리다.


나는 힘쓰는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의 주체이다. 아버지의 침대의 기울기의 정도목욕 수건을 사용하는 순서발에 놓는 쿠션의 각도손톱발톱머리운동 식사...세세한 모든 것들을 내가 정하고 내가 직접한다.  간병인들과 협력하여 일할 때도 소위 '궂은 일'은 내가 한다. (예로 아버지 용변 후 닦는 일은 내가 하고, 갖다 버리는 것은 도우미에게 시킨다) 나는 언제고 아버지를 지킬 수 있는 백업 일꾼이다. 


관리자로서의 나의 역할은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간병도우미들마다 일하는 방식과 열정의 정도가 다르기때문에 내가 원하는 수준의 작업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을 무지막지 열심히 하는 사람은 쉬게 만들고일에 꾀를 부리는 사람에게는 정확히 일감을 정해주는 것이 관리자로서의 나의 임무다. 


그래서 무리해서 자기 몸에 상할 위험을 무릅쓰면서 일하는 버지니아한테는 '당신이 집에 가서 혼자 끙끙대면서 신음하는 모습 상상하기도 싫어요!  이 모습을 당신의 엄마가 당신을 보면 좋겠어요?  당신의 엄마를 대변해서 당신을 막는 거에요. 자,  이제 우리집에서 나가요!" 하고 등을 떠밀어 쫓아낸다. (내 마음을 알고 웃으면서 나간다.)  어떨 때는 허리가 아픈 도우미를 강력한 안마기로 안마를 해주기도 하고, 과테말라의 엄마의 병환 소식에 마음이 무거운 올림피아에게는 "설거질 거리는 우리의 베스트 프렌드.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까 너무 서둘러서 일해야할 필요 없어요. 앉아서 차를 한잔 해요' 라고 한다. 


그게 꼭 관리인지는 모르겠다. 도우미들은 그 누구보다도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내가 힘들 때 나를 가장 먼저 안아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잘 챙기고 싶다. 좋아서 하는 일이다.  고된 일, 힘든 가정사로 어두운 표정, 지친 기색으로 일하는 사람이 과일 몇 조각, 커피, 토스트로 위안이 온다면, why not!  어려운 처지에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칭찬, 격려해주고, 힘든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다보면  내가 마음이 기뻐진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에는 꽃다발을 선물하기도 하고, 일주일의 피로를 씻으라고 조각 케이크를 선물하면서 나도 금요일의 시작을  축하한다.  그네들의 부모님의 기일이라던가, 크리스마스, 생일 등에는 식사를 같이 하고 여행을 갈 때는 꼭 보너스를 챙겨준다.  나의 삶이 장미빛만은 아니지만 주위의 열심히 사는 사람들과 소통하다보면 그들에게서 내가 용기를 얻게 된다. 문화, 교육수준, 언어가 다르고 나와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수발은 육아와 마찬가지로, '그냥 보는 것'과 '해보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내가 병수발을 직접 해보면서 요양보호사들의 노고를 존중하게 되었고,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표현하는 감사와 존중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진심이다.  더군다나 나의 아버지의 몸을 만지는 그들이 나에게 소중하고, 그들이 아버지와 함께 할 때 이왕이면 밝고 긍정적인 spirit 을 가질 수 있었으면 바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려는 것이다. 나는 우리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들이 마음이 밝아지게끔, 그리고 우리집을 떠나는 순간, 몸이 지쳐도 마음은 밝고 기쁘게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일을 한다. 


내가 솔선수범하고 도우미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려는 노력이 꼭 훈훈한 민주적인 관계로 귀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아버지 용변 수발을 내가 솔선수범해서 할 때 그것을 보고 감동받는 도우미도 있지만, 그런 나를 상하관계의 아랫사람처럼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도우미는 나에게 "이렇게 해주세요" 라고 'please' 를 넣는 완곡한 표현 대신에 '이렇게 하세요!' 라고 명령형을 사용하였다.  또 다른 도우미는 식사를 하지 않고 온 것같아서 (일을 하려면 힘이 드니까) 한끼를 차려줬는데, '왜 오늘은 통밀빵을 안주고 하얀 빵을 주냐'고 따지기도 했다. 내가 아버지방 빗질을 하는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야단친 사람도 있다.


그런 무례함은 왜? 내가 고용주였지만, 직접 일을 하면서 경험 많은 도우미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적이 많고, 모든 일을 무릎을 꿇은 채 직접 하는 나를 내려다보는 경험많은 요양보호사들에게는 내가 자기들의 '보조' 정도로 여겨질 수 있었다. 수평적 사고니, 존중하는 태도 대신에 '쩔쩔매면서 일하는' 사람,  간병도우미 구하기 어려운 요즘, 자신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나는 권위있는 고용주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어떤 도우미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권위주의적  (authoritarian) 태도를 취해 강압적이고 엄격하게 굴면 오히려 나를 존중했다. 내가 갑질을 해야만 나를 존중해준다니...슬픈 현실이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내가 갑질하는 고용주가 아닐 때 나에게 갑질을 하는 고용인을? 내가 갑질을 안하면 나를 존중하지 않는 고용인은 또 어떻게 해야하나? 


둘 다 내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다. 나는 여전히 민주적인 관계를 원하는데...도우미와 내가 비즈니스 관계 속에서 친절함, 상호 존중,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것은 아주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내가 고용주로서 요구하는 것이, 나를 고용주로 인정하지 않는 도우미에게는 마치 부당한 명령처럼 들리게 된거나,  내가 친절하다는 이유로 상하 구조에서 내가 '을'의 위치가 되어 무시를 받는다면, 그것은 기분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의 병수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에 나는 내가 도우미들과의 관계에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양육 원칙 "kind and firm"  (친절한 그리고 단호한) 태도를 적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키울 때 사랑을 주되, 그 사랑이 아이들을 망치지 않게 하려면 절도 있고, 단호해야한다는 지혜는 아이들 교육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관계에 적용되는 원칙이었다. 그런 원칙을 따라 나는 도우미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하면서, 동시에, 넘지 않아야되는 '예의'의 선을 확실하게,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가면서 긋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없어서 못 준 통밀빵 타령을 하는 직원에게는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 통밀빵이 없어서 그런 건데, 흰빵 싫으면 버리세요," 그리고 "다음 부터는 우리집에서 뭐 드실 필요 없습니다"  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녀가 받을 자격이 없는 친절은 배풀지 않았다.

평소에 일을 허술하게 하는 한 도우미가 일 끝내고 나가는데 내가 예의상 "수고하셨어요. You did a good job.  감사합니다" 하했더니 다짜고짜 "그러니까 돈 올려주세요" 라고 했을 뜬금없는 무례함에 당황했지만 단호하게, 합리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나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당신이 하는 일이 세뇨라 버지니아보다 많습니까, 적습니까?"

"....."  (말도 안되게 적은 일을 하고 있으므로 할 말이 없음)

"저는 당신의 노동에 적당한 액수를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우리의 계약이었고요. 만약 노임을 올린다면 당신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세뇨라 버지니아 부터 올려줄 겁니다. 지금 액수가 만족치 않으면 다른 직장을 찾으세요. 2 주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다른 직장을 찾지 않았다. 우리집은 낮에 자기가 필요한 시간 짧게 일할 수 있어서 좋다고, 우리가 항상 돈을 정확하게 지불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

불필요한 갑/을 관계를 피하기 위해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것---절실함과 간절함의 상황을 피한다! 나는 그 누구라도, 아무리 일을 잘하고, 내가 아무리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더라도 '당신 없으면 이 일은 절대로 할 수가 없는 일'이라는 식의 사고는 애초에 하지도 않고, 그와 비슷한 표현조차  절대로 안한다. 그거야 말로 내가 '을'의 위치를 온 팔을 다 벌려서 껴안는 형국이다. 대신에 나는 ''당신이 없더라도 나는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그런 태도를 지켰고 실제로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항상 새도우미를 고용할 준비를 했다.

성심성의껏 일하는 나의 귀한 일꾼,  세뇨라 버지니아가 하루는 일 끝내고 나가는 길에 함박 미소를 지으면서 "아, 나 지금 가면 나 2주간 안 돌아올지도 몰라요" 라고 말했다. 그녀의 유쾌한 표정으로 보아 그것은 농담이었고, 분명 그녀는 나의 "어, 안돼요! 세뇨라 없으면 나 어떻게 하라고요!!" 라는 반응을 기대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평소에 자기와 내내 농담을 주고받는 내가 웃으면서 받아줄 것이라 생각해 한 농담임을 알았지만, 그녀의 비위를 맞추는 대신에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럼 휴가 가세요. 2 주간.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내 입장에서는 버지니아가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이 훌륭한 일꾼이지만, 자신의 가치를 그런 식으로--즉, 아버지를 '인질' 삼아--증명하려는 무례한 농담은 받아줄 수 없었다. 나와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고 의존하는 도우미로서 그녀는 '힘' 과 '권위'가 있었고, 자기가 없으면 우리가 곤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농담을 던지면서 내가 비위에 맞춰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라고 이야기하기를 은근히 요구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미묘한 심리적 갑질이다. 

내가 그녀에게 '그럼 가세요' 라고 한 것은 절대로 그런 갑질은 농담으로라도 하면 안된다는 선을 긋기 위함이다. 당신만큼 일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당신만큼 주인의식이 없을지 몰라도, 당신보다 아버지를 덜 사랑할지 몰라도, 누군가가 당신을 대치할 수는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야만 했다. 사실 그게 진심이었다. 그 누구도 너무 힘들어서 떠나고 싶으면 떠나는 게 나에게도 더 좋다. 미묘한 심리적 갑질이 없이 일하는 게 더 유쾌하므로.  (그후 그런 농담은 없어졌다)

상호 존중, 감사, 협력, 민주적 관계는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님을 나는 매일 느끼고 산다.  민주적 관계란  그 관계를 목적으로 두고  끊임없이 관계의 줄을 밀고 당기면서 이뤄지는 균형이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적 관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래서 기대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적 관계보다는 상하 관계를 선호한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적 관계를 감사해하고 당당하고 자주적인 일꾼이 된다. 이러한 여러 사람들의 유형을 만나면서, 나는 여전히 도우미들과 동역자로서,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관계를 맺기를 소망하고 노력하고 있다. 친절과 단호함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

감사하게도 현재 나를 위해서 일하는 직원들과는 꽤 만족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면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갑질'의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2018. 01)






아래는 내가 병수발이 뭐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1997 년 브뤼셀의 에릭의 이모님과 그녀가 돌보는 전신마비 상태의 이모부님을 만나뵌 경험을 기록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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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의 이모님 중에 연세가 가장 많은 쟈닌 이모님은 칠십대 초반으로 브러셀의 중심가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계시다. 소위 '부자'이다.

쟈닌 이모님보다 20 세 연상의 이모부님의 성공적인 커리어 덕에 부자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그분들에게 자녀가 없기 때문이다. 50년이 넘도록 금슬좋은 부부인 그들은 애초에 자녀를 원치 않았다. "아이 하나가 집 한 채" 라는 말이 맞는 게, 에릭네 부모님들은 자식이 네 명이니 살림이 소박하지만 쟈닌 이모의 삶은 풍족하고 화려했다. 이모님 부부는 음악, 문학, 미술에 조예가 깊었고 그림을 수집하는 게 취미였다. 그래서 현재 쟈닌 이모님의 아파트는 벽마다 재산가치가 뛰어난 그림들로 꽉 차있다. 

남편, 죠우는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고아로서 부르주아 가정에 입양되어 좋은 교육을 받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서 부를 축적했으나 원래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갖지 않기를 원했다. 쟈닌 이모님은 맏딸로서 어려서부터 5 명이나 되는 어린 동생들을 돌보면서 이미 육아의 경험을 해볼만큼 해봤으니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갖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죠와 쟈닌은 아이들 없이 연인처럼 살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살았다. 자유롭게, 행복하게, 그리고 부부로서의 신뢰를 지키면서. 젊었을 때의 사진들 중, 비키니를 입은 할머니의 탄탄하고 균형잡힌 모습이라던가 죠의 단단한 근육질 몸매의 흑백 사진은 그들이 원했고, 선택했고,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뤘던 그들의 사랑과 결혼을 요약해주는 듯했다. 

쟈닌은 활발하고 긍정적 기운이 넘쳐 흘렸다. 젊어서의 자신만만한 미소는 70이 넘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쟈닌 이모님은 남편 사랑도 변함이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이 반짝거리고, 신났다. 죠우, 죠우, 죠우....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그는 구교가 국교인 벨기에에 그리 많지 않은 개신교도였어. 죠는 여행을 좋아했고, 특히 중동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단다.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사교 모임의 중심이었고.... 나는 죠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이모님은 안타까워했다.

"신주, 네가 좀 일찍 우리의 삶에 들어왔다면 죠우를 만났을 텐데...죠우랑 너랑 참 잘 통했을텐데..."

에릭에게 죠우 이모부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뭔가 참 재밌는 분 같은데, 어린애들에게 잘 해주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농담 같은 것이 약간 우울하고 독특했어. 나는 어려서 이모부 옆에 있을 때에 어떻게 응대해야하는가를 몰라 쩔쩔맸던 기억이 있어" 고 했다.

그러면서 에릭이 덧붙인 말...
'신주, 당신이랑 이야기하면 잘 통했을지도 모르는 사람' 이라고 했다.

에릭만 그런 게 아니었다. 시어머니도 '신주, 너랑 죠우랑 만났다면 둘이 잘 통했을 거다' 라고 했다.
그런데...죠우를 만날 길이 없었다.

죠우는 살아 있었다. 브뤼셀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죠우가 전신마비 환자이었기 때문이다. 말도 못하고 거동도 못하는 환자.

물론 죠우를 본 적이 있긴 했다. 1995년 처음 벨기에를 방문했던 해, 쟈닌 이모님 댁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 이모님은 집안 구경을 시켜주겠다면서, 어느 방의 방문을 열고 잠깐 죠우를 보여줬었다. 그는 자고 있었다.  쟈닌 이모님은 집 구경을 시켜주면서 죠우가 마비가 된 후에 아파트를 완전히 개조해서 수발이 좀 편하게 했다고 했다. 샤워도 의자에 앉은 채 할 수 있게, 대소변 가리는 것도 쉽게, 거실에서 침실로 옮기는 것도 쉽게.....

그러나 친구들과 식구들은 다들 쟈닌이 어리석다고 했다.

'마비가 된 게 벌써 몇 해냐. 치매도 왔으니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데...네 스스로의  생각도 좀 해야지... 저렇게 하다가 탈이 날까 두렵다' 의 주제였다.  

먹여도, 기저귀 갈아줘도 반응이 없는 사람, 하루 종일 티비 앞에 앉아 있는 마비환자 죠.....그는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었다. 그 옛날, 근육질 몸매를 뽐내고, 음악과 춤, 사교계의 중심으로서, 돈이 많아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사람 부리고 싶은 대로 부리고 살던 남성..아이 키우는 구질구질한 일을 싫어하고, 문화, 교양, 세련미, 로맨스의 화신으로 살아온 죠는 이제는  없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죠를 위탁 시설로 옮기라고 종용했다. 위탁 시설에 옮겨지면 대부분은 일 년을 못 넘기고 사망한다지만 산 사람이 살아야하지 않겠냐는 거였다. 사람들은 쟈닌을 설득하려 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라..
죠는 죽은 사람이다. 벌써 몇 년 째냐?
당신의 몸도 약해지고 있다.
죠를 가게 하라.

그런데 쟈닌은 그게 아니었다. 그런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나에게 죠는 항상 죠이다. 지금 이렇게 전신마비 상태지만...그는 내가 평생 사랑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를 끔찍히 사랑한 사람이다. 내가 이렇게 돌볼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축복이다.' 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쟈닌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라도 그렇게 돌보는 쪽을 택했을 거 같았다. 전신마비 환자라고 '죽은 사람'이라고하는 것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나는 내가 죠우라면 그냥 죽고 싶을 거 같았다. 폐되게 사는 거, 무척 힘들 거 같았다. 그래서....죽은 사람을 치워버려라! 식의 생각보다는, 죠우의 "폐되지 않게 죽고 싶다"는 마음을 존중한다면 쟈닌이 죠우를 포기할 수도 있고, 그러는 게 바람직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95년도, 첫 방문 때 내가 알게된 죠와 쟈닌 이모의 이야기였다. 그리고나서 2년 후, 나는 벨기에를 방문한 것이다.

2 년 사이에 죠우의 상태가 악화되어  쟈닌의 힘으로는 혼자 돌볼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래서 의료보험에서 지불하는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야한다고 했다. 쟈닌은 자신의 어깨가 아프고, 발목이 쑤시고, 허리가 아픈 상태에서도 죠우를 포기하지 않았다. '집에서 편안히 죽게 하겠다' '내가 돌볼 수 있을 때까지 돌본다' '죠우가 전신마비이지만 죽은 사람은 아니다' 라며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식구들은 쟈닌의 어리석음에 답답함을 느끼다 못해 약간 화마저 났다. 다들 쟈닌을 아끼기 때문이었다. 노상 남편의 옆에 붙어 앉아 있어야하는 쟈닌에게는 이제 사회활동도 점점 축소되어 크리스마스 같은 큰 명절에도 쟈닌은 자기와 한마디도 나눌 수 없는 마비 환자 남편과 단 둘이 앉아 티비를 보면서 죽음과도 같은 내면의 정적과 씨름해야했다.

우리가 벨기에에 머물던 당시, 7월의 어느 날, 벨기에 날씨답게 좀 음산하고 우울한 비오는 날이었다. 에릭이 쟈닌의 생일이라며, 나더러 쟈닌 이모님 집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우리는  에밀을 시부모님께 맡기고 동네의 조그만 빵집에서 가장 조그만 케잌을 하나 샀다. 죠우는 케익을 못 먹을 것이고, 나와 에릭과 쟈닌 이모님만 먹을 것이니...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였는데 우리는 걷기로 했다. 걸으면서 좀 우울했다. 몇 해 전 잠자는 죠우를 본 이후로 처음으로 만나는 건데 전신마비 환자를 만나서 어떻게 행동해야하고, 이모님께 어떻게 처신해야하는 건지 전혀 감이 안 왔다.  누구의 표현을 따르자면 "개와 고양이만큼도 반응하지 못하는 마비환자"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해야하는가, 이제까지 내가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혹시나 내가 처신을 잘못해서 이모님께 상처를 줄까봐 걱정되었다.  이미 찟길 대로 찟겨진 이모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속으로 오늘도 죠우가 자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모님은 우리를 반겨 맞아주셨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죠우가 어딨나 두리번 거렸다. 약간 어두운 거실의 한 중앙에 죠우가 앉아 있었다. 그는 티비를 보고 있었다.

이모님은 그의 유일한 낙이 티비로 콘서트를 보는 것이고, 가끔 만화영화를 보여주면 좋아한다고 설명하며나를 거실로 데려가더니 큰 소리로 죠에게 말했다.

"죠우, 에릭이 왔어. 에릭의 부인, 신주도 왔어. 신주!  신주는 한국사람이야. 당신, 기억하지? 2년 전, 크리스마스 때 얘들이 왔었잖아"

이야기...말...이라기보다는 '외침'에 가까운 쟈닌의 음성.
죠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전의 풍채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콧구멍과 가슴에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지만, 널찍한 어깨에 맑은 피부, 그리고 체크무늬 남방이 잘 어울리는 젊어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쟈닌이 나를 끌어당겨 죠 앞으로 내세웠다.  


"여기, 얘가 신주야. 에릭 부인!!"

나는 죠를 향해 미소지었다. 제발 이 미소의 뒤에 숨어 있는 나의 이 어색한 기분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면서.  죠우의 눈을 바라보았다. 공허한 그의 눈과 나의 시선이 만났다.

공허한?

나는 깜짝 놀랐다. 죠가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무심하게 허공을 향한 게 아니라 정확히 나라는 대상을 향해 있었다. 그의 눈에는 호기심마저 어려 있었다. 

에릭도 나와 죠의 시선이 만나는 순간을 옆에서 목격했는데 나중에 에릭이 자기도 그의 또렷한 시선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죠가 마치 놀란 것같았어. 뭔가를 인지한 시선이었어"라 했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죠의 눈을 보면서 내가 했던 생각이었다.

적어도 그의 눈은 '죽은 사람과 다름 없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나는 놀라움을 감추고 그와 눈맞춤을 유지하면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죠우, 저는 신주에요. 만나서 반가와요."

그리고 그의 손을 부드럽게 쓸었다. 손으로 소통이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쟈닌은 이런 순간을 혼자 경험하고 사는 건가? 그래서 쟈닌이 죠우를 포기할 수 없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쟈닌과 죠 옆에 앉아서 가만히 쟈닌이 죠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아니, 잘 들으라고 소리쳐 외치고 있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죠우를 만나러 오기 전에 느꼈던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를 알 것같았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정신과 몸이 다 마비된 환자"를 만나는 게 아니라, 삶과 죽음 사이에 위태롭게 걸쳐져 있는 사람--즉 살 가치가 있냐 없냐의 혼란스러운 질문을 야기할 그런 존재를 만나는 것이었다. 이제 그 환자를 만났다. 그리고 내 머리속이 하애졌다.

죠는 1 년생 아기를 둔 초보 부모인 에릭과 나에게 너무도 익숙한 '돌봄'을 받고 있었다. 주는대로 먹고, 용변을 보면 그것을 남이 치워주고,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갓난아기 에밀과 다름 없는 인간이나, 점점 성장을 해갈 갓난아기와 달리, 하루가 다르게 마음과  몸이 굳어질 것이며, 누구와 아무런 소통을 하지 못한 채 서서히 죽음이라는 암흑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선은 뭐지? 치매, 전신마비로 얼음처럼 굳어진 그의 얼굴에 스치듯 반짝인 그의 호기심의 눈빛을 어떻게 해석해야하지? 

우리는 죠우 옆에서 생일 케익을 잘랐다. 아이들의 떠들썩한 생일잔치에 익숙한 에릭과 나에게는 참으로 생소한 생일 파티였다. 생일 축하합니다, 고마와, 키스, 웃음...다 있었으나 기쁨이 없었으니 말이다. 쟈닌은 이미 남편의 죽음을 마음으로 준비한 채 5 년째 수발을 들어오고 있는데, 그들의 거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의 사자가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데, 우리가 밝은 얼굴로 해피 버스데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게 유치한 연극, 뻔한 거짓말 같았다.

쟈닌은 죠우에게도 음식을 줘야한다하며 주사기 모양의 음식 주입기를 들었다. 우리가 에밀에게 약을 억지로 먹여야할 때 쓰는 기구와 똑 같은 것이었다. 단지 세 배 정도 컸다.

쟈닌은 죠의 고개를 뒤로 젛히더니 음식을 주입했다.

"죠우, 먹어야 해. 먹고 건강해야지? 어서...옳지...아니, 먹어야한다니까! 죠우, 먹어야지!"

쟈닌의 목소리가 절박하게 들렸다. 
억지로 먹이는 것는 잔인한 행위같기도 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약을 억지로 먹이는 엄마의 모습이 엿보이는 그런 고역스런 행위이기도 했다.
지금은 우리가 옆에 있지, 평소에는 단둘이 있을 때, 쟈닌은 대답할 수 없는 남편에게 저렇게 매일 투쟁하면서 음식을 먹이겠지? 이 아파트에서 '대화'란 저렇게 일방적으로 음식을 먹일 때 뿐이겠지?

내가 깊은 생각에 빠진 것을 눈치라도 챈 듯이 쟈닌이 나를 보고 웃었다.

"내가 아기 없이 평생 살았는데, 이제 아기가 생긴 거 같지?"

그러나 죠우는 음식을 먹자마자 뱉어냈다. 토한 것인지, 뱉은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단지 음식의 액이 줄줄 흘렀다. 죠의 가슴의 앞받이 수건이 지저분하게 되었다. 쟈닌은 펄쩍 뛰었다. 음식을 잘못 삼키면 기도로 들어가 큰 사고가 나기도 한단다. 쟈닌은 죠의 목을 똑바로 세우더니 죠우의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죠우, 이럼 안 돼! 죠우, 음식을 삼켜야지? 당신을 할 수 있어! 삼켜야지. 삼켜야지! 당신은 할 수 있어!!"

죠우는 가만히 있었다. 나는 차마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다.

죽음과 삶의 싱갱이를 보는 거 같았다. 아무리 회피하려고 해도 죠의 얼굴의 표정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무표정하리라고만 예견했던 마비환자의 얼굴에 안타까움, 슬픔과도 같은 표정이 담겨 있는 것은 내 착각일까? 내 선입견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나는 그 때 죠우가---생각하는 능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죽음을 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문제다.  죠우를 돌보려는, 살게 하려는, 죽는 순간까지 돌봐주려는 쟈닌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 동시에, (평소에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로 비추어볼 때) 독립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죠우에게는 이러한 의존, 이러한 무력함, 이러한 처절함이 스스로에게 용납하기 힘든 고통이리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그렇다고 요양소에 보내버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가?  아니었다. 죽는 순간까지 남편을 돌보고 싶어하는 쟈닌의 마음이 지옥일테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던 그들은 아플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게 꼭 아이가 없어서 생긴 일은 아니었다.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죽음으로 이별해야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을 문제였다.

나는 그만 눈물이 터졌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급히 구석에 가서 엉엉 울었다. 에릭이 나를 쫓아와 나의 등을 도닥거렸다.

쟈닌이 죠우의 옷을 갈아 입히고, 죠우를 방에 눕히고 나서 거실로 돌아왔다. 나는 퉁퉁 부은 얼굴로 녹초가 되어 소파에 눕듯이 앉아 있었다. 쟈닌이 나에게 말했다.

"신주, 울지 마. 이게 매일 있는 일이란다."

"울어서 죄송해요. 그냥...슬펐어요."

"아니, 울지 말라는 소리를 잘못 한 거 같다. 울어도 돼. 울고 싶으면 울어...."

쟈닌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신주, 죠우가 처음 쓰러졌을 때, 내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를 거야.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지금도...."

나는 쟈닌이 울음을 터뜨릴까 걱정 되었다. 그랬다간 나는 그냥 통곡할 거 같았다. 슬프고 말고를 떠나, 죠우와 첫 대면부터  모든게 너무 일이 너무도 격렬했고, 깨끗이 정리될 수 없는 생각들이 엉켜버려 있어서였다. 풀 수 없는 문제, 울어서라도 마음을 진정해야할 상황.

쟈닌은 말을 이었다.

"지금도 내 가슴에는 피눈물이 흐른다."

'피눈물'이라는 게 아픔의 묘사가 아니라 그냥 문자 그대로 피가 눈물로 나온다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만큼 그녀의 고통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런데 운다고 해결되는 게 없더라. 내가 해야할 일은 그냥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어. 그리고 그러기로 마음 먹었어. 죠우가 가는 날, 나는 웃으면서 보낼 거다. '여보, 우리 참 행복하게 잘 살았지? 당신이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이제 잘 가!' 하면서 보낼 거다."

에릭과 나는 숨을 죽이고 쟈닌의 말을 들었다.

"우리는 자식이 없었기에 참 행복했어. 지금 이 순간도 자식이 있었더라면...하고 아쉬움을 갖질 않아. 사람들은 그렇게들 이야기해. 자식이라도 있었다면 지금 더 쉬울 거 아니겠냐고. 그런데, 우리는 자식을 원하지 않았거든? 그리고 그래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도 많았거든? 그러면 됐지, 이제와서 자식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후회하는 것은 웃긴 일이야. 

진심으로 나는 나와 죠우의 단 둘만 살아온 그 삶에 감사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남편과 같이 택할 수 있었던 인생은 행운이었어. 그리고 그 선택이 잘 한것이었음을 매 시간, 매 분 느끼면서 살게 해준 나의 남편에 감사해. 내가 지금 돌보는 것도 너무 행복해. 관절이 쑤시고, 허리가 아프고 하지만 나는 행복해."

나는 가만히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이 있더라도 입을 다물어야했다. 한 인간의 진솔한 삶의 회고에, 삶의 정의 내리기 작업에 끼어드는 것은 무례한 짓이었다.  

나는 쟈닌의 이야기를 들으며 약간 위로를 받았다. 그는 감상주의에 빠져서 남편을 돌보는 게 아니었다. 전신마비 남편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해서 절박하게 남편의 쓸모없게된 몸에 매달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고,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의연히 자기가 해야할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것, 남편을 몸소 돌보기로 한 것처럼 남이 하지 않는 선택을 할 때 감수해야하는 몰이해, (선입견에 가득찬) 비판도  그녀는 의연하게 감수하고 있었다. 

이모님의 집을 나선 것은 밤 늦은 시각.. 아까 내리던 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에릭과 나는 말없이 걸었다. 말할 기운이 없었다.

속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랑 이 남자는 어떻게 인생을 하직하게 될까? 나랑 이 남자도 병수발을 드냐마냐 선택을 내려야하는 상황이 닥칠까?  우리들은 어떤 엔딩을 맞을까?  나랑 이 남자의 아이들은 우리의 죽음에 어떻게 반응할까?  나는 마치 한번은 꼭 봐야할 아름다운 사랑 영화, 그러나 너무 비극적이라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보고 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심결에 옆을 보았다. 에릭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한손으로는 우산을 잡았으니 눈물을 닦지 못해 얼굴이 엉망이었다. 이미 펑펑 울었던 나는 더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호주머니에  시무룩하게 꽂았던 손을 빼어 우산을 잡은 에릭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에릭이 소리내어 울었다. 결혼식 날, 첫 아이를 낳은 날, 에릭이 눈물을 흘렸으나 소리내어 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건장한 체격에 자신감이 넘치는 죠를 이모부로서 바라보고 자란 에릭에게는 오늘의 경험이 더 큰 충격이고 슬픔이 있겠다 싶었다. 남성으로서 또 한 남성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도 나와는 다른 감정을 일으켰으리라. 어쩌면 그도 나처럼 평생을 사랑한 연인들의 마지막 이별 과정이 얼마나 혹독할 수 있는지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감정이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만 결국 우리는 그들과 비슷한 상황에 놓일 것이니 말이다.

늦은 밤이라 차가 없었다.  침묵 속에 비에 젖은 코블스톤 길을 밟으며 우리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갑자기 에릭과 내가 첫아이를 낳은 뒤 이렇게 단둘이 걸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 옆에서 함께 걷는 에릭이 오랫만에 애인같이 느껴졌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직 2 년밖에 안된 우리의 결혼생활,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낼까? 어떻게 걸어갈까? 우리가 맞이하는 노년은 어떤 것일까?  만약 우리가 헤어지지 않고 잘 살아낸다면,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계속 자란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만큼 이별도 아프리라. 쟈닌과 죠우처럼. 사랑하면 좀 아파도 된다...

이렇듯 나만의 생각에 잠겨있는 나와 내가 모르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있는 에릭은 미로와 같이 복잡하고 아기자기한 브러셀의 골목길을 조용히 걸었다. 


ps. 죠는 1 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20 년이 지난 지금까지 쟈닌 할머니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시다. 작년에 뵈었는데 여전히 죠우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시며 행복한 옛날을 떠올리시고, 죠우의 유품 중 조그만 역기 피겨를 나중에 에밀에게 물려주겠노라 약속하셨다.  




어제 아침 8 시, 전화가 왔다. 이른 시간인데 누구지? 

멜린다 (가명) 였다. 5 분 거리에 사는 나의 베스트프렌드.

불길한 예감에 당장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나의 첫 질문은 "Melinda, are you OK?" 였다.

멜린다가 흐느끼며 말했다.

"My mother died!"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바로 크리스마스때 부모님을 뵙고 왔는데 건강에 이상이 없으시다고 다행이라고 했었다. 더군다나 멜린다는 2 주 전 나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너는 어떻게 부모님이랑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니. 우리 부모님은 받아들이지를 못하셔. 다행히 지금 건강하시니까 시간이 좀 있는데 내가 부모님이랑 이야기하는 법을 좀 배워야겠어" 라고 했었다. 그런데 어제 새벽에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my mom passed away)가 아니라 '죽었다' (die) 라고 한 멜린다. 그 '죽다' 라는 단어는 어떤 말로 치장을 해도 감출 수 없는 죽음의 잔혹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어제는 오빠의 생일이었고, 아침에 몇 가지 계획했던 일이 있었다. 엄마의 이해와 지지로 모든 것을 다 취소하고 멜린다에게 달려갔다.

그녀의 남편이 같이 있었다. 둘 다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멜린다는 동부 출신으로 부모님은 동부에 사신다. 캘리포니아에 이사를 온 뒤 그녀는 엄마와 하루에 한번씩 꼭 통화를 하는 딸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고--낮에는 친구를 만나고, 아버님과 외식을 하시고--저녁에 잠자리에 들었다. 갑자기 호흡 곤란이 와서 물을 드시고, 아스피린을 복용했지만 소용이 없어서 구급대를 불렀단다. 그러나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 심폐소생술이 도움이 안되어서 급히 병원으로 옮겼다가 돌아가신 것이다. 그 처참한 과정을 어머니와 평생 단짝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혼자 다 목격해야만했다. 

멜린다가 '세상에 나의 부모님처럼 사랑하는 커플을 본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로 깊은 사랑을 누리면서 살아온 노부부는  새벽의 응급실에서,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못한 채, 쇼크와 혼돈 속에서 작별했다.

멜린다가 이야기를 들으며 내 경험이 되살아났다. 엄마때문에 방문했던 응급실, 오빠를 보았던 중환자실, 아버지의 응급실, 중환자실의 아픈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을 부드럽게 다독이면서 멜린다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멜린다의 입장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 멜린다가 물었다. "넌 어떻게 했니?" 라고 물었다. 어떻게 아버지와 오빠의 죽음을 견디어 냈냐는 소린데, 한마디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죽음에 이르는 상황과 죽어가는 자와 살아있는 자의 관계에 의해서 사람마다 너무도 다르게 경험되어지는 게 사별의 경험이기에. 

멜린다는 나의 엄마의 반응을 이야기했을 때 위로를 받는 듯했다. 아침에 멜린다의 전화를 받은 뒤에 엄마께 멜린다의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것같다고, 집에서 병원으로 옮긴 뒤에 심폐소생술이 효과가 없어서 그대로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 엄마의 첫 반응은

"아, 멜린다의 어머니는 축복을 받았네" 였다. 그리고 "난 멜린다 엄마가 너무도 부럽다" 라고까지 하셨다.

엄마는 '남겨져 있는 사람들이야 할머니가 덧없이 떠난 것같아 아쉽고 안타깝겠지만 어머니들은 누구든 자식 힘들게하면서 오래 살고 싶지 않은 거'라며, 멜린다 엄마가 그렇게 깨끗하게 고통이 짧게 간 것이 정말 부럽다 하셨다.

엄마의 입장을 전해들은 멜린다는 "정말? 정말 부러워하셨다고?" 라고 하며 그 말을 당장 받아들이지는 못하면서도 위로를 받는 게 역력했다. 이후에 멜린다가 여러 질문을 했고 대답을 했고 그런 두서없이 나누는 대화 중에 멜린다는 점점 안정을 찾았다. 처음 나와 대화를 시작했을 때는 

"신주,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한다는 그런 교과서가 있었으면 좋겠어. 일주일이 지난 뒤에는 이걸 해야하고, 한 달 후에는 저걸 해야하고..."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게 불가능하며, 오히려 교과서처럼 정해져 놓은 규범과 일정이 애도의 과정을 방해하기만 할 수 있으며 애도가 결국은 'solo' 로 해결되어야하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 둘은 눈물이 날만큼 웃었다. 갑자기 정신이 난 멜린다가

"어머, 내가 웃고 있어!" 했다.

나는 멜린다에게 말했다.

"멜린다, 애도의 순간에도 웃을 일이 생겨. 그러면 웃어. 절대로 죄의식 느끼지 말고. 그것도 애도의 방법이야." 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너의 엄마는 네가 웃는 거 보고 좋아하실 걸! 이라 했더니 믿겨지지 않지만 그런 사고 자체가 죽음의 무게를 가볍게 해줌은 분명했다.

멜린다는 누구에게도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장은. 그녀는 아버지 돌아가시자마자 내가 했던 생각과 똑같은 말을 했다. "'엄마' 가 '죽었다' 라는 두 단어는 절대로 어울릴 수가 없는 단어다"라고. 너무도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멜린다의 남편은 비행기 티켓을 구입했다. 내일 편도로 가고 가서 상황을 보아서 언제 돌아올까를 정할 것이라고 했다. 

"코코는 어떻게 할 거야?"

나는 구석에 앉아 있는 멜린다의 개 코코가 눈에 들어왔다.  평상시에 내가 가면 자기 몸의 빙글빙글 구르면서 반가워하는 코코는 고개를 푹 숙인채 우울하게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코코, 이리와 봐' 했더니 냉큼 오더니만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내 발치에 누웠다. 

"코코도 뭔가를 느끼나봐."

멜린다가 말했다.

"내가 슬퍼하면 그걸 알아. 코코는 매우 센서티브해."

나는 잠깐 생각해봤다. 멜린다는 이웃들과 서로의 개를 돌봐주므로 이런 상황에 분명 코코를 맡길 곳이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멜린다가 제일 하기 싫은 말, "My mom died" 를 해야한다. 엄마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그녀에게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믿어지지 않는 상태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분명 쇼크받고 위로를 해줄텐데, 당장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다.  

나는 코코를 내가 우리집에 데리고 가겠다고 제안했다. 개를 집 안에서 키워본 적이 없는 엄마, 터줏대감 펠릭스, 요새 들어 부쩍 할 일이 많아진 에릭의 반응이 어떨까...생각이 들었지만 이해해주리라 확신했다. 

코코를 우리집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주고 하루에 한번씩 낮에 멜린다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몇 시간 코코가 익숙한 공간에서 지내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오후에는 다시 우리집에 데리고와서 놀려주고.  빈 집에 사람이 들낙거려야 안전하고, 코코에게도 그게 좋을 것같다고 했는데 멜린다는 내가 요즘 애도 심리치료 차원의 글쓰기로 바쁜지 아는지라 미안해했다. 그러나 코코를 돌보면 내가 더 많이 움직이게 되고 즐거울 것이라 확신했다.

멜린다와 3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돌아왔더니 에릭에 오빠 생일 축하하며 어머니께 보낸 꽃다발이 거실에 놓여 있었다. 오빠의 생신이 오빠를 제대로 기리지 못하고 지난 것같아서 미안했다. 엄마가 '아니라고, 신열이가 천국에서 좋아할 거라' 고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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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에릭와 이야기를 나눴다.  

'코코 데리고 올 거다.'

'오케이. 그대신 내 침대에선 재우지 말아라.'

'그래도 침대에 올라오면 쫓아낼 수는 없지 않냐. 난 맘 약해서 그건 못한다.'

'그럼 침대에 담요 하나를 더 깔아서 깨끗하게 해달라.'

'그거 문제 없다.'

.....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내가 멜린다를 상심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했다.

평생 행복하게 산 노부부의 마지막 작별이 그렇게 잔혹했다는 사실이 온 가족에게, 특히 할아버지에게 준 상처가 큰 것같다고 했더니 에릭은 "죽을 때 마지막 인사 나누고 어쩌고는 픽션이야. 멜린다가 그 픽션을 사실이라고 믿을 필요가 없다고 봐." 라고 말했다.

(음...내가 장장 3 시간 동안 한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 

또한, 할머니께서 평소에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해서 절대로 안가겠다고 버티셨다고, 그래서 지금 할아버지가 '내가 억지로라도 아내를 병원에 데리고 다녔다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텐데' 하면서 괴로워하신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에릭은 '할머니 연세가 몇이야?' 라고 물었다. 최근에 80 세 생신을 지내셨다고 했더니

"80 이란 숫자는 무시할 수 없게 긴 세월이지. 할머니는 그 긴 세월을 마지막 순간까지 정말 자기가 원하는대로 살고 잠깐의 고통 후에 돌아가신 거네. 그러니까 할머니를 안스러워하고 할머니한테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 말 들으면서 든 생각, 엄마와 에릭과 내가 함께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경험'을 겪어냈지만, 그 경험에서 얻은 감상과 사고는 각기 다 조금씩 다른 것같다. 아니, 다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지만 각자의 사고방식과 가족관계때문에 강조하는 포인트가 다르다고나할까? (예로, 엄마는 엄마의 입장에서 다른 어머니의 죽음을 부러워했고, 에릭은 과학자이고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죽음에 관한 '픽션'을 거부하는 태도가 확실했고...) 

오늘 새벽에 멜린다가 비행기 타기 전 문자를 보내왔다. 멜린다에게 에릭이 한 이야기를 전해줬더니만 멜린다의 답장이 흥미로웠다.

"신주, 나는 사실 에릭이 어떤 소리를 할까 아주 궁금했하고 있었어. 에릭은 나한테 언제든지 자기 방식으로 현명한 위로의 말을 해주니까. 너, 어머니, 에릭이 해준 이야기 내가 잊지 않고 꼭 아버지와 나눌 거야.고마워."

'하트' 이모티콘이 찍혀진 문자에서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다행이다.

나는 우리 가족이 겪은 두 차례의 죽음의 경험이 이제 큰 혼돈과 좌절에 빠진 나의 친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했다. 또한 멜린다가 이제까지 나와 정말 친한 친구이지만 상실과 고통의 경험을 같이하면서 우리의 우정이 더 깊어지고, 마음이 더 가깝게 되는 게 느껴졌다. 


코코가 어떠냐고 물으니 새벽에 온 식구가 나가니까 혼돈스러워하더라고 했다. (귀여워라!!)

코코~~걱정마!! 곧 이모가 간다!!!

아, 코코랑 산책하고, 목욕시켜주고, 펠릭스랑 놀릴 생각하니 너무도 즐겁다!!! 코코을 즐거운 소식은 저 멀리 동부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멜린다의 기분을 밝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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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멜린다에게 코코의 업데잇을 해줌. 너무 좋아했음. 

    이모 집에 가자니까 망설임없이 올라타심

집앞에서 맘대로 뛰어 놀으심

 "이 구역의 짱은 나다" 포스. 펠릭스.ㅠ

이건 '소리내어 웃다 (LOL)' 이모티 콘 대신 사용 가능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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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멜린다가 아침에 엄마가 없는 거실로 내려가기 전에 슬픔을 토로한 문자를 보냈다. 누구도 완화해줄 수 없는 그런 슬픔. '너무 힘들겠구나...' 라고 답장을 한 뒤에 몇 시간 지나서 아래의 문자를 보냈다.

"멜린다, 이제까지 너의 식구들이 강아지 세계의 제니퍼 애니스톤과 살고 있다는 것을 난 몰랐네. 이것좀 봐라!"

아래의 사진 두 장 첨부.

   

멜린다의 답장~

"Oh My Gosh! I love these pictures! They break up the heaviness! Thank you!!"

무거움을 부숴주는 사진들에 자기는 물론 13 세의 딸아이가 보고 많이 웃었다고 했다. 

그래, 멜린다, 아무리 슬픈 애도의 순간이라도 웃을 수 있으면 웃자꾸나!

애도와 웃음은 상호 배타적인 게 아니니까! 너의 어머니도 네가 웃는 모습에 흐믓하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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