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
가족 나들이카테고리 없음 2023. 8. 31. 02:12
샌디에고에 사는 친구이자 아우 C 부부가 멀리 이사를 간다.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지난번에 엄마를 모시고 갔던 산후안 카피스트라노 시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산책을 했다. 친구와 나는 20 년 전 인터넷의 한 포럼에서 만난 사이. 이제까지 만난 횟수는 다 합쳐서 10번이 될까? 그런데 자매애는 강력하다. 한 식구같다. 친구는 나의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고, 내가 엄마 껴안듯이 엄마를 꽉 껴안고, 엄마 팔을 자연스럽게 잡고 걷는다. 영어로 솰라솰라 이야기를 할 때도 남편을 ’에릭’이라고 부르지 않고 또렷한 한국어로 ‘형부‘라고 부른다.^^ 봄메 여사는 평소 낮에는 휴식을 취하시는데, 딸과 같은 C 와의 만님을 위해 나들이를 함께 해주셨다. C를 만나시겠다는 일념으로 며칠 전부터 낮 스케줄 조정하시고, ..
-
수상록 산파카테고리 없음 2023. 8. 24. 10:03
2023. 06. 남편의 지도교수였던 J 교수로부터 문자가 왔다. '팜펨, 드디어 나의 수상록이 완성되었다. 그 수상록이 나올 수 있게 해 준 당신에게 정식으로 책을 증정하기 위해 저녁 초대를 하고 싶다'라는 내용. 남편과 나는 샴페인을 들고 가 J 교수의 출판을 축하드리고 책을 받아왔다. ----- 80 대 후반의 J 교수는 근 30 년 전, 남편을 미국에 초대해 남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분이다. 당시 같은 대학에 visiting scholar 자격으로 왔다가 우연히 남편을 만난 순간, 나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구애를 하고... 이렇고... 저렇고... 하다가 우리는 28 년을 함께 해왔다. J 교수가 나와 남편을 소개시켜준 것은 아니지만, 남편과 내가 만날 수 있는 우연은 그가 남편을 초대하지 ..
-
태풍 힐러리-그림치료- 남편이 만든 빵카테고리 없음 2023. 8. 22. 07:54
주말에 (토요일 저녁- 일요일) 멕시코와 남가주에 태풍 '힐러리'가 올 거라는 뉴스에 모두 긴장했던 며칠이었습니다. 남가주 지사가 남가주 비상사태를 미리 선포했을 정도로 큰 피해가 예상되었고, 비상사태에 대비해 준비를 하라는 권고 문자들과 이멜들이 왔습니다. 저희도 응급 상황에 대비해서 바테리들을 준비하고, 손으로 충전하는 라디오를 구입하고, 시에서 주는 모래주머니도 얻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모래주머니는 단 몇 시간 만에 동이 나서 못 받아옴) 토요일 아침, 평상시처럼 엄마와 호수 산책을 나갔습니다. 바람 한 점없이 고요했습니다. 곧 태풍이 온다는 게 믿기 어려우리만치, 평상시보다 더 고요했어요. 토요일 오후에 가벼운 바람이 약간 분 것말고는 태풍의 조짐이 없었습니다. 본격적 태풍이 예고되었던 일요일,..
-
종이 한 장의 행복카테고리 없음 2023. 8. 11. 16:57
오늘은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림도 그린 행복한 날입니다. 이것은... 다, 오늘 부엌일을 안 한 덕입니다. 엄마의 콩국수와 민들레 나물을 먹고 기운이 났습니다. --- 저녁 먹고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벌써 자정이 넘었네요. 어느 겨울, 경복궁 근처. 각양각색 한복 입은 관광객들이 신기해서 입 벌리고 구경하던 제가 급히 사진을 찍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무표정한 군밤 파는 아줌마들을 지나치던, 한복 치마 자락을 들고, 춤추듯이 걷던 중국인 관광객 여성 두 명. 표정과 분위기의, 극명한 대조, 튀는 색깔들이 이루는 오묘한 조화.. 그 사진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먼저 펜화를 그리고나서 잠시 망설였다가 결국 수채화 물감을 꺼냈습니다. 붓을 들고 색칠을 시작하기 전, 펜화에게 말했습니다. '펜화야, ..
-
고슴도치 엄마의 충전카테고리 없음 2023. 8. 10. 00:40
남편과 코로나 걸렸다 나았습니다. 3 년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서 혹시 우리가 코로아 안 걸리는 슈퍼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건 아닐까까지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네요. 언제 어디서나 마스크를 챙겨 썼던 게 도움이 된 거였어요. 이번 여행에서도 조심했는데, 하필이면 공항에서 마스크 꾸러미를 잃어버렸어요. 공항은 붐볐고... 비행기도 만석이었고. 어디서 걸렸는지는 모르지만, 다행히 저는 열 없이 콧물과 약간의 기침 증상이었고요, 남편은 고열과 몸살, 기침, 콧물로 아주 고생하고 코로나 약을 복용해야했습니다. 증상이 다르니까 서로에게 악영향을 줄까 봐 각자 방을 쓰고, 어머니께 병을 옮기면 안 되기에 바짝 긴장하고 2 층에서 격리. 잠시 내려가 차를 끓이거나 음식을 갖고 올라와 먹고... 그렇게 며칠..
-
'성공하지 못한 딸' 의 편지들카테고리 없음 2023. 8. 8. 00:05
몇 주 전, 이스라엘 어머니가 줌 채팅 중에 말했다. "너에게 조만간 소포가 하나 갈 거야. 네가 나에게 쓴 편지들이야. 내가 파일을 따로 만들어 계속 네 편지를 모아 왔는데, 이젠 너에게 돌려줘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어머니가 그 내 편지 파일의 존재에 대해 말할 때마다 해온 농담을 하셨다. "내가 왜 네 편지들을 곱게 보관했는지 알고 있지? 나는 네가 유명해진 다음에 사람들의 너의 전기를 쓸 때 네 편지를 비싸게 팔려고 했었어." 나는 그 농담을 아주 많이 들었다. 옛날에는 미래 시제였고 ("이 담에 사람들이 네 위인전 쓸 때 네 편지를 비싸게 팔거다"), 내가 그런 성공을 하지 못할 게 확실해진 뒤로부터는 과거 시제로 ("나는 네 편지를 비싸게 팔려고 했던 거였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
아주 슬픈 성과 성주의 이야기카테고리 없음 2023. 8. 4. 12:12
친구가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다.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만큼 특별한 경험이라면서 자기가 묵었던 성 (castle)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리셉션의 핑크 벨벳 소파와 보라색 카펫, 은촛대, 샹들리에, 섬세한 장식의 찻잔.... 에서 시작해 밖으로 나와 성 전체의 건물을 찍은 동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남편과 내가 1997 년에 묵었던 프랑스 남부의 13 세기에 지어진 성의 기억이.. 첫째 아이가 6 개월 무렵, 남편과 시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남편이 나의 생일이라고 서프라이즈로 프랑스 남부의 성을 예약을 했다. 언뜻 들으면 무척 잘 사는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같이 들리겠는데, 당시 우리 경제 상황은 그런 럭셔리 라이프랑은 전혀 거리가 멀었다. 사실은 어떤 벨기에 인이 그 성을 구입해 숙박업소로 ..
-
고슴도치 엄마의 그림 그리기카테고리 없음 2023. 7. 31. 08:47
여행을 잘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번은 틈틈이 그림을 그려서 더 특별했던 여행. 휴대하기 쉬운 펜과 작은 수채화 팔레트를 들고 가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을 그릴 수 없이 바쁠 때도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주변을 관찰하였던, 그런 '그림 여행'이었습니다. 문구류를 무척 좋아하는 저에게는 꼭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펜과 종이가 항상 옆에 있어 끄적거릴 수 있다는 것이 든든하고 유쾌했습니다. 질감, 촉감, 색깔이 미세하게 다른 종이들을 손으로 만지고, 삭-삭- 팬소리를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그림 공책을 품에 안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그림을 그린 뒤에 찬찬히 살펴보며 쓰다듬고... 그렇게 종이와 펜과 붓과 맺은 '육체적 관계'가 행복했습니다. 그리면서 '왜 내가 원하는 색이 안 나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