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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윙크
    카테고리 없음 2023. 9. 18. 01:57

     
    사촌이라기보다는 막내 동생처럼 가까운 J 가 문자를 보내왔다.
    아버지 (나의 이모부)가 위독하셔서 급히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문자를 받고 답장을 하려는데 손이 떨렸다. 이모부는 나에게 참 소중한 분이어서였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긴 비행기 여행을 하는 J의 처지가 너무도 슬프게 다가왔다. 10 년 전, 오빠가 중환자실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나는 J 가 겪을 마음고생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
    다음 날 새벽, 눈을 뜨자마자 평소에 하지 않는 일---전화기를 열고 카톡 문자를 체크했다.
    이미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있었다.
    엄마께 소식을 전해드리고 같이 울다가 문득 J 생각이 났다.

    시간을 보니 아직 비행기 안이었다.
    임종 전 아버지를 뵙기를, 그게 아니더라도 임종을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가고 있는 J는 새벽에 공항에 내리자마자  아버지의 부고를 들을 것이다.


    한국의 사촌들과 친척들로부터 새로운 소식이 올까 해서 카톡을 자주 열어보던 중,  나의 절친 정해근 목사님의 카톡 메시지가 떴다. 평소에 목사님은 성경 구절을 보내주시는데 그날따라  동영상 링크가 있었다.  목사님 자신의 설교 영상이었다. 얼마 전에 필리핀으로 가신 뒤에 근황이 궁금했던 차, 목사님/친구의 얼굴을 보니 너무도 반가웠다. 새로 사역하시는 교회인가? 앞으로는 영상으로 설교를 들을 수도 있는 건가?

    설교를 듣고 싶었지만 이모부의 부고로 내 마음이 어지러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산책을 나가려는 중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일단 오랜만에 정해근 목사님의 목소리만이라도 듣자하고  영상의 초반 --대강 설교가 진행 중일 것이라 추정되는 대목--으로 스크롤하곤 전화기를 귀에 댔다.  목사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랜덤하게 연 영상의 바로 그 대목에서 목사님은 자신이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의 임종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년 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이 주일이었는데, 급히 항공권을 구입하고 예배가 마친 뒤에 한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시작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제가 설교하면서 좀 울먹이면서 설교했습니다. 예배가 마치고 나자 한 집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우리도 고아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다 아신다는 말씀이지요. 사자성어 중에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죠.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이 불쌍히 여긴다는 말....."

    나는 영상을 정지하고 하늘/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에 하나님이 나에게 
    "팜펨아, 너 마음 아픈 거 내가 다 안다. 네가 J 걱정으로 마음 아픈 것도 다 안다. 멀리서 목회하면서 사랑하는 아버지의 임종을 못 지키는 아들의 마음을 내가 다 안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해서였다. 

    여러 생각이 스쳤다. 정해근 목사님의 아버님은 평생 아들의 목회를 항상 묵묵하게 응원하고 지지해 주신 깊은 신앙심의 소유자셨다. 나는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미국 땅에 살면서 한국의 부모님을 자주 뵙지 못하고, 결국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신 뒤에 장례를 치르러 한국에 가던 목사님의 슬픔이 헤아려졌다. 목사님은 같은 목사로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나의 동생 J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이해하리라. 내 동생이나 목사님이나 이민자 목회자로서 노령의 부모님을 원하는만큼 돌봐드리지 못하는 아들의 숙명을 공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설교를 하는 목사님/친구의 뒤에 설교의 주제가 씌여 있었다. '위로하는 사람들.'

    나는 설교 전체를 듣지 않았는데도 그냥 그 순간에 큰 위로를 느꼈다. 친구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동생을 보고 아파하는 나의 마음, 그리고 동생의 아픔을 동시에 위로해 주시는 게 느껴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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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이 공항에 도착할 무렵, 문자를 보냈다.  내가 임의로 클릭한 친구 목사님의 설교, 비슷한 상황의 이야기, 그것을 통해서 내가 얻게 된 위로 등에 대해 간단히 쓰고, 동생에게도 영상을 보냈다.  '경황이 없으니까 설교를 다 듣지 못할 거 안다. 그냥 24:24 부분만 클릭해봐'라고 했다. 나와 같은 위로를 받기를 희망하면서...

    무작정 클릭이란 '우연'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면서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고 그리고 그 기쁨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나님은 이렇듯 가끔 예상치 않은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켜주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장난꾸러기 속성도 갖고 계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눈 찡긋! 하시는 듯해서 웃음이 나고 기운도 찾는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가 주는 위로가 크다. 특히 암진단 후 어떻게 해야하나 여러 방법을 모색 중인 나에게 하나님의 윙크는 참 큰 격려가 된다.  

    (나중에 설교를 들었다. 우리의 신앙 생활으 목적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다는 것은 우리도 하나님처럼 자비와 위로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교회의 모습이며, 교회는 아픈 이들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진정한 위로를 주는 성도들의 모임. 교회는 일주일에 한번 가서 좋은 음악 듣고, 좋은 설교 듣고 쌩~~ 하고 나오는 곳이 아니라 성도들이 어우러져서 함께 사는 공동체임을 상기시켜주는 귀한 설교였고, 우리 가족에게는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그런 설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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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이모부를 한국의 빈소에서 지켜드리지는 못하지만, 여기서라도 이모부를 기억하고 작은 '빈소'를 거실에 마련했다.

    꽃, 촛불, 이모부가 쓰신 책들.
    엄마가 '꽃이 아름답다. 이렇게 여기서라도 이모부를 추모할 수 있으니 위로가 된다' 라고 하셨다. 나도 그랬다.
    이모부의 죽음을 통해서 나는, 나의 동생은 '하나님의 윙크'를 경험했다.

    사별의 슬픔 속에서도 감사함과 기쁨이 크다. 이모부를 추모하는 마음이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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