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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환자의 영어공부
    카테고리 없음 2023. 9. 8. 08:50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갑작스레 생긴 종양이 발견되었고 '암이 의심된다'라는 결과를 받았다. 엠알아이를 받아야 한다. 

    '암'이란 병은 참 이상하다.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도, '암일 가능성'이란 말이  잠시 '죽음의 선고'와 같은 충격을 주니 말이다. 이제까지 나의 무수한 크고 작은 건강 문제에도 동요하지 않던 남편도 이번에는 놀라서 말을 잊었다. 나의 가장 큰 걱정은 엄마.  엄마는 내가 감기만 걸려도 걱정하시는데, 암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

    처음 이틀간 머리도, 마음도 아주 복잡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간은 참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든다. 이제까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문제들---예를 들어, 내가 암투병을 하게 된다면. 암투병을 하고 계시는 엄마의 케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혹시 내가 병이 걸려 죽는다면 짐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하지 등등--온갖 상념/상상에 빠져 눈물 콧물 짜는 비극을 쓰면서 하루 이틀 보낸 뒤, 마음을 바로잡았다. 엠알아이로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기까지 3 주가 남아 있었고 정확한 진단이 나온 것도 아닌데 미리 걱정을 당겨서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  

    엄마는 자식이 직면한 큰 일들을 알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께도 말씀드렸다.  엄마는 예상대로 큰 충격을 받으셨고, 눈물을 흘리셨지만, 엄마 또한 며칠 뒤 마음을 추스리셨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엄마의 삶의 원동력은 모성이다.  엄마는 딸을 지켜야 한다는 모성 본능과 신앙심으로 낙담이나 두려움을 물리치고 계신다.

    나의 경우, 걱정과 두려움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큰 것같다.  몇 년 전부터 나의 블로그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버린 노년, 질병, 죽음, 케어 등등의 주제가 갑자기 나의 개인적인 문제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약간 우중충한 나의 현재 상황이 다행스럽게도 내 마음을 흐리게 만들고 있지는 않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과 같은 찬란하고 즐거운 빛은 없지만 그래도 꽤 밝은 상태이다. 나의 현재의 삶과 마음의 상태를  날씨로 묘사하자면 '강한 바람이 불지만 맑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맑음'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참 많다. 성경 묵상과 기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

    내가 암의 가능성 소식을 들은 첫 이틀,  나는 '왜....지금 (=엄마가 암투병을 하고 계시는데)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와 '건강식에 운동에, 나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왜 점점 더 건강이 나빠지기만 하는 거지?' '이건 아니지...' '하나님은 내 상황 잘 아시면서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 거람.'.... 라는 사고에 사로잡혔다. 하나님께 섭섭했다. 꼭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듯한 기분을 하나님께 느꼈다는 게 정확하겠다.

    그런 불만은 나에겐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 30 년 그러해왔다.  내 계획, 내 생각, 내 의지와 다른 일이 벌어진다거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라던가, 너무 힘든 일이 생기면 당장 하나님을 소환해 툴툴거린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그 하나님 탓이었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 탓하는 버릇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좀 달라진 건 있다. 요즘은 하나님 탓을 오래 하지는 않는다. 나잇값을 하는지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내 삶의 무수한 경험들은---내가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경험조차도--하나님의 심오한 계획이자 축복이었음을 나는 체험해왔다.  그래서 이제는 --바로 며칠 전처럼--하나님에 대한 불만에 사로잡히고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툴툴거릴 때조차도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에 대한 회의는 없다. 부모 사랑을 많이 받은 사춘기 아이가 부모에게 입을 삐죽이면서 따지고 반항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부모의 사랑을 믿고 의심하지 않듯이, 나 역시 그렇다.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이다.

    10 년 전, 오빠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그렇다.  내가 간절히 소망하여 절규하며 드렸던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고 오빠는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내 마음 곳에 회의가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리라.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오빠의 죽음은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가슴 사무치게 슬픈 일이지만, 오빠의 죽음을 통해서 일어난 많은 일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주셨고 우리의 삶은 축복으로 차고 넘치게 되었다.

    오빠 일만이 아니다. 그 후에도, 그리고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그 전의 많은 일들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때로는 뒤늦게나마 어렴풋이, 때로는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곤 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9-11)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나에게 항상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을 체험해오고 있다. '좋은 것'이 '내가 구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어느 새인가  하나님을 믿는 자의 삶은 하나님이 도처에 예비해 놓고 장치해 놓으신 보물 찾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보물이 단순히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고, 가끔 내게 너무 힘들게 느껴질 때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나의 삶의 가치관이 하나님의 뜻과 주파수가 정확히 맞춰져, 내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혼란스러움은 사라져 벼린다.  

    보물 찾기의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기도, 기도를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사랑을 체험한다. 그런데 기도는 기다림과 인내를 요구한다.  젊었을 때는 마치 기도가 현금자동인출기의 비밀번호인양 착각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받고 싶어 하는 기대감을 갖기도 했었다. 지금도 그럴 때가 없지는 않으나 다행히 ---again, 나잇값을 하는지--- 금방 정신을 차린다. 그래서 기도가 당장 이뤄지지 않는다고 좌절하던 젊은 날과 달리 기다림의 기간을, 그 기간이 지속적인 혼란의 시간일지언정 고통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좀 느긋하게 보물 찾기를 하고  살게 된 것 같다.

    암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은 가끔 회오리바람처럼 내 마음을 흔든다. 그러나 그 회오리바람 중에도 밝은 햇빛에 눈이 가고,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은 나에게 부활절 날, 정원을 구석구석 뛰어다니면서 엄마 아빠가 숨겨놓은 부활절 달걀을 찾는 어린 아이의 확신과 소망 ('분명 달걀/보물이 있을 거야') 이 있어서이다. 즐겁게 노는 아이들은 세찬 바람, 예기치 않은 소낙비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아이들 마음의 순수성에는 못미치지만 나 역시 보물찾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다소간 비슷한 소망, 확신, 즐거움을 갖고 있다.

    '암일지도 모른다' 라는 진단 뒤에 일어난 신기한 변화가 몇 개 있다.

    하나,  '암의 가능성'이란 말을 들은 뒤 62 년의 삶의 흔적인 나의 주름살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눈에 주름이 안 보인다. 아니, 보이는데, 아무 의미가 없다. 아침저녁으로 세안을 할 때, 크림을 바를 때 눈에 들어오던 움푹 파인 주름살, 잔 주름살.  

    어려서부터 여성들을 미의 잣대 중의 하나인 주름의 담론외 세뇌되어왔다. 나 역시 나이 먹어가면서 (한국) 친구들로부터 '피부는 관리를 해줘야 해' '그것도 자기 관리야, 이왕이면 젊고 밝게 살아야지' '팜펨도 눈 밑은 좀 만져야겠어' 등등의 말을 듣는데, 거기에 대해 뭘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안하지만 막연히 나의 주름을 문젯거리로 보는 습성이 생겼던 것같다. 그런데 건강의 위기를 맞이하니 주름을 둘러싼 젊음, 노화, 미에 대한 억압적 사회적 잣대가 무의미해진다.  주름은 그저 자연 노화, 반복적 표정, 태양 노출의 결과일 따름이다. 젊어보이려면 주름은 교정되고 숨겨지고 관리되어야한다라는 사고...다 나랑은 관계가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내 얼굴의 주름을 평안하게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해 본다. 내가 내 얼굴에 대해서 이렇게 평안한 적이 과연 언제였었나? 피부가 팽팽했던 젊은 시절에도 이렇게 편안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참 이상한 해방감을 경험하고 있고, 그건 꽤 유쾌한 일이다.

    또 하나, 요즘 나는 내 삶을 시간적 순서로 회고하고 수많은 관계, 사건, 인연들을 돌이켜 생각해보고 있있고, 나는 감사함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너무너무너무 감사, 감사, 감사하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연이 이어진 사람들이나, 연이 끊어진 사람들이나, 참 고마운 마음뿐이다.  후회가 없는 삶은 없는 법, 내가 무지해서 마치 금덩이를 강에다 퍼부어버리듯 낭비를 했던 시간, 돈, 관계들도 있었고, 쉽게 삼켜지지 않는 감정의 응어리들도 남아 있지만 그러나 그 모두 것들이 다 나에게는 필요한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낭비를 낭비라고 볼 수 있는 시각은 성장과 변화의 결과이고, 내 원대로 되지 않는 일들은 피가 끓는 젊은이가 갖기 힘든 겸손함을 주었으니, 다 감사하다. 살아온 것이 다 감사하다.

    내가 삶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역경들도 감사하다.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과거의 모든 어려운 일들은 다 삶의 '실전문제' '예행연습'이자  재난 대비 훈련이었구나 싶다.  '팜펨아, 62 년간 재난대비 연습을 여러 번 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잘해나가 보자...'라고 마음먹는다.  단지, 내가 아직 연약한 인간인지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역경이 주어지기를 바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엄마가 나에게 '너는 요즘 더 활기차 보인다'라고 하신다. 그건 내가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좀 더 능동적으로 삶의 보물 찾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나님의 계획은 무어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암이 아니면 참 좋겠지만 설사 암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저버리시는 것은 아니다. 암이니, 암이 아니니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보물은 그것을 뛰어넘는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상황에서 내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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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쓰다 보니 나가 무척 신앙이 깊고 성숙하고 자기 제어가 잘 되고, 감정 조절을 잘하는 사람같이 들리는데.... 그건 참 진실과 먼 소리이다.  나는 감정 덩어리이며, 멍 때림 속에서 의식의 흐름은 끊임없이 일어나며, 그 속에서 하염없이 피어나는 갖가지 생각들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많다.  그러나 나를 나의 생각과 감정에서 지켜주는 말씀 중의 하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신 게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을 주셨다"(디모데후서 1:7)이다. 나는 그 말씀을 따라 두려움 없이 내 생각을 절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MRI 받을 때까지 3 주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분명 그동안 수시로 '암일까? 암이면 어떻게 하지? 암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게 뻔했다.  내 생각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몇 가지 계획을 세워 실천해오고 있다. 하나는 떠듬떠듬 치던 짧은 피아노 곡 하나를 외우는 것. 그래서 하루에 30 분 정도 피아노를 친다.

    또 하나는 3 주간 집중적으로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스페인어 경우는  'MRI 스페인어 프로젝트'라고 이름도 붙여줬다.

    내가 스페인어를 단기간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예전 여름휴가 때 열심히 공부한 적이 두 차례 있다. 물론 휴가 끝나고 나서 몇 주 안에 배운 것을 대부분 다 잊어버렸다. 그래도 공부하는 게 재밌었다. 이번에도 분명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 같다 싶었지만 다시 책을 꺼내 들고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 3-4 시간 정도, 매일 꾸준히 공부해오고 있다.  

    문법을 숙지하고, 동사 변형 연습하고, 단어 외우고, 스스로 시험 문제 내고, 틀리고 고치고 하는 작업을 2 주를 하다 보니 원래 내가 공부를 시작한 목적-- 내가 절제의 마음 (self-discipline)을 실천하여 암에 관한 쓸모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함-- 은 당연히 이루었고, 이제 나는 즐거움마저 느끼고 있다.  생소한 단어를 쉽게 외우기 위해서 어원을 찾아보고, 나의 수준으로는 읽기 어려운 텍스트들도 무작정 붙들고 씨름하고, 내가 관심이 가는 주제들에 대한 단어들 리스트들도 만들어보고... 그래봤자 영원히 반복되는 초보 수준이겠지만, 스페인어 공부를 안 했더라면 '암'의 생각에서 허우적거렸을 텐데, 이렇게 즐거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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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스페인어 공부를 하면서 영어 공부를 포기하셨던 엄마도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하셨다. 나는 엄마가 내 리드를 받아들여 공부를 시작하셔서 참 감사하다.

    이제까지 영어 공부와 좀 다른 것은 내가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방식으로 엄마에게 문장을 만들게끔 유도하고 간혹 높은 수준이라 여겨지는 단어들도 사용하실 수게 하는 영작과 표현 중심의 공부라는 점이다. 엄마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엄마가 안하겠다고 하시면 내가 밀어붙일 수 있는 공부가 아니었다.

    그런데 엄마는 공부를 시작하셨다. 이미 엄마의 하루는 엄마가 세운 많은 계획들로 스케줄이 촘촘하게 짜여 있었는데 거기에 영어 공부 시간을 더하셔서 주야로 공부하신다.  그렇게 매일 하는 공부, 연습, 복습의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엄마는 '내가 이런 문장을 만들 수 있다니!'라고 놀라신 뒤, 더더욱 열심히 하신다. 엄마가 '나도 공부를 하면 되는 건가 보다!'라고 하실 때 나는 너무도 기쁘다. 

    우리의 수업 시간은 매일 아침 산책 중, 우리의 교실은 전망 좋은 한적한 호숫가 벤치.

    엄마랑 앉아서 공부를 할 때 내가 '암'에 대한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롭냐면, 그렇지는 않다. 그럴 수가 없는 게 우리의 매일매일이 '암'에 대한 여러 계획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암환자인 엄마가 CT scan을 받고 그다음 날 내가 MRI를 하게 되어있고, 둘 다 그전에 피검사를 하게 되어 있고, 약 주문이니, 간호사와의 통화 등등 때문에  '암'에 대한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호수를 걷고, 한적한 곳의 벤치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기도도 하고, 성경 구절을 같이 읽고, 경치를 보고 감탄하고, 옛날 얘기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암'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간혹 암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긴 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아프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면 아프니까, 서로 상대방이 가여워서, 서로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눈물로써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사랑을 표현하면 속이 시원해진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발걸음은 가볍고 엄마도 나도 마음이 항상 즐거움으로 가득 차있다. 우리에게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으로 되어버렸다. 암이 있건 아니건....

    아름다운 것으로 마음이 채워지고, 감사함이 심장을 뛰게 하는 한, 우리의 육체를 침범하는 어떤 병도 우리의 영혼을 꺾을 수 없다는 확신은 다시금 새로운 용기를 준다. 이렇게 여러 긍정적인 감정들을 매일 삶에서  체험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큰 축복이다.

    MRI의 결과가 무엇일까...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까.....

    내가 암이 아니면 참 좋겠다.

    그런데 설사 암이 아니더라도 나의 장기는 이미 많이 손상되어 있다고 하니, 어떤 식으로든 '병약함'은 나를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평생 나를 떠나지 않을 '병약함'을 나의  베스트 프렌드라고 여기고 다정하게 얼르면서 잘 살아봐야지 마음먹는다. 앞으로도 삶이 여러 방법으로 주는 많은 축복들을 똑바로 볼 수 있기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보물 찾기를 하려한다.

    그 보물찾기 과정에서 힘과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십사 기도한다. 


     

    엄마와 나의 영어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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