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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법이 풀려도...
    카테고리 없음 2023. 11. 4. 01:20

     
    한 달 넘게 블로그에 들어오지 못했다. 최근 들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 이전에는 전체적으로는 꽤 양호한 상태였었다. 나는 겉으로는 아무런 징후가 없고 (간암 초기의 특징), 암 치료를 받으시는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받고 계시지는 않다. 엄마의 영어 공부는 계속되고 있었고, 나의 스페인어 공부도 약간 고삐가 늦춰지긴 했지만 계속 진행되었고, 묵상과 기도와 독서는 일상의 지속적으로/간신히 일상의 중심과 균형을 잡아주었다. 지인들의 기도와 사랑의 지지도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의 날씨 예보는 한동안 쭉 '가끔 흐리나 맑음'이었다.

    그러나 한 달여 전부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졌다. 매일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일들 때문이었다.

    엄마는 노령이시라 몸에 작은 문제들이 (고열, 피부 염증, 허리통증, 발 통증, 발가락 통증) 계속 일어나는데 이번에는 모든 증상들이 심했다. 그 하나라도 소홀히 하다가는 연쇄적으로 다른 문제들이 파생할 수 있고, 걷지 못하시게 될까봐 엄마도 나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 차도가 있다하지만 회복이 더디어서 걱정이었다. 수술 일정이 잡혀 있는데 몸이 불편하시니 이러다가 수술을 못 받으시게 될까봐도 걱정이었다. 본인의 고통은 차지하고 나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로 엄마의 얼굴은 내내 어두웠고, 나는 나대로 여러 증상들이 회복이 안되니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마음의 날씨 예보는 갑자기 ‘가끔 흐림’이 되더니만, 어떤 날은 아침에 맑은 마음의 날씨로 시작했다가 오후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저녁에 다시 잠잠해졌다가 밤에 비가 내리기도 했다.  기도가 힘들어지고 의욕이 상실되어 세 시간 내내 울다가 목사님과 사모님께 전화해서 ‘목사님,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하고 엉엉 울은 적도 있다.

    왜 내 마음이 이렇게 힘들지? 어떻게 하면 바로 이전의 밝고 긍정적인 마음이 돌아올 수 있을까?



     
    딸의 도움
     
     
    2 년간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랄라가 직장을 엘에이로 옮기기로 하고 집에 돌아온 지 3 주가 좀 넘어간다. 언젠가 엘에이에 숙소를 구해 나가겠지만 당장은 집에서 출퇴근을 한다.

    랄라는 올해 초 직장에서 인터뷰를 할 때, '할머니와 가까이 있기 위해서 엘에이에 가고 싶다. 그게 안된다면 다른 부서로 가겠다'라고 했을 정도로 끔찍히 할머니를 챙긴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안 분위기를 살피더니만 나더러 나와 남편에게 말했다.
     
    "엄마는 혼자의 시간이 필요해.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할머니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엄마는 쉬어야 해.“  
     
    그런 제안을 하면서도 랄라는 내가 혼자 시간을 갖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 이제는 내가 엄마를 도울께. 할머니도 엄마가 푹 쉬면 마음이 편하실 거야. 그러니 나에게 뭐든지 부탁해요."

    라고 했다. 말만 들어도 고마웠다. 그러나 딱히 부탁할 일이 있을까 싶었다.
    랄라더러 네가 우리 옆에서 즐겁게 해주는 것만해도 감사하다고 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병원에 피검사를 하러 가신다는 것을 안 랄라는 자기가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여독이 풀리지도 않은 상태인데 괜찮다고 했으나 랄라는 우겼다.

    “내가 할머니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할머니랑 함께 있는 게 좋아서 하는 거야”

    랄라는 방실방실 웃으면서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엄마는 듬직한 손녀와 병원에 다녀와서 행복해하셨다.  

    ”팜펨아, 너 말고 다른 사람과 병원에 간 게 내 평생 처음이었어. 옛날에 너 낳으러 산부인과 갔을 때도 아버지 없이 나 혼자 갔어야 했었어.  한국에서 아버지랑 내가 응급실이라던가 중요한 시술을 받을 때도 네가 와서 너랑 갔었고, 우리가 미국에 온 뒤에는 당연히 너랑 병원에 다녔으니까.. 그런데 오늘 랄라가 척척 알아서 다 처리해 주고  나를 세심하게 챙겨줘서 마음이 편했어."
     
    노상 내 걱정을 하시고 나에게 미안해하는 엄마는 최근 들어 내 건강이 나빠진 뒤에는 엄마의 미안함은 ‘괴로움'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병원에 다녀오신 뒤, 엄마 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손녀와의 외출이, 내가 잠깐 쉴 수 있었던 게 엄마를 그 정도로 기쁘게 했나 보다.
     
    랄라는 웃음이 많고, 농담도 잘하고, 재롱을 떤다. 어디까지가 천성이고 어디까지가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게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인지 모르겠으나, 여하간 랄라가 돌아온 뒤 집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
     
     

    우리는 더 자주 웃고, 딸이 경험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젊은이들의 고민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다. 저절로 마음이 젊어졌다. 어떤 날은 엄마는 몸이 불편하심에도 즐거운 외출을 하셨다.
     

    엄마는 예정된 날짜에 수술을 잘 마치셨다.
    새벽에 길을 나설 때 엄마와 나와 랄라는 껴안고 기도를 했다.
    나와 엄마와 단 둘이 기도할 때보다 훨씬 더 힘찬 기도가 흘러나왔다.
     
     
     

     

    홀로있기와 치유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것도 랄라 덕에 많은 생각이 정리가 되어서이다.

    나는 지난 주말, 남편의 삼종 경기를 위해서 근처 도시에서 1 시간 여 배를 타야 하는 ‘카탈리나 섬’에 다녀왔다.
    원래는 하루만 묵고 아침 삼종경기를 마친 뒤에 집으로 올 계획이었는데 랄라가 펄쩍 뛰었다.

    페리 타고 섬에까지 가서, 삼종경기를 하자마자, 아빠도, 엄마도 녹초가 된 상태에서 페리를 타고 집에 돌아오냐고,
    자기가 집에서 할머니를 돌봐드릴 테니까 섬에 더 머물면서 쉬고 오라고 제안했다.

    주일 오후에 친척이 오시므로 내가 일찍 와야 한다고 했지만, 랄라는 그것도 자기가 다 준비할 테니 마음을 놓으라고 했다.

    랄라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도 반색하시며 ‘나와 랄라를 믿고 맘 편히 다녀와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쉬겠니‘ 하시며 적극적으로 나와 에릭의 휴식을 권장하셨다.

    떠밀려가서 집을 떠났으나 비상시에 랄라가 잘 대응할 것이며, 엄마와 랄라가 둘만의 스페셜한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믿어서 마음은 편했다. 배를 타자마자 몇 주간의 몸과 마음의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이미 몇 차례 가본 섬이지만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설렘마저 느껴졌다.

     
    섬에서 나는 혼자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첫날밤, 남편이 일찍 잠이든 뒤 나는 호텔 테라스에 앉아서 밤바다를 오래 바라보았다.  바닷바람이 차가웠다. 스웨터를 겹겹이 입고 따뜻한 차를 마셨다.  멍하니 아무 생각을 하지 않기도 했고,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그 ‘많은’ 생각 중에 암에 대한 사고는 없었다. 







    다음 날 경기가 끝난 뒤에는 남편이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호텔 테라스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물결이 반짝이는 바다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생각나는 대로 수첩에 글을 끄적이고,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호텔 투숙객인 한 부부가 말을 걸어와 1 시간여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오후 늦게 산책을 한 뒤에 남편과 저녁 식사를 했고 식사 뒤에는 다시 테라스로 나와서 오들오들 떨면서 홀로 있는 밤시간을 즐겼다.  

     
    그런 식으로 섬에서의 나의 일상은  ‘홀로 있기’‘ 정적’으로 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바로 며칠 전까지 나의 일상과는 정반대의 일상이다.

    집에서의 나의 일상은 대부분 (아침 산책, 건강식 만들어 먹기, 운동, 병원 방문)은 암을 염두에 둔, 암과 싸우기 위한 행위들이었다.. 특히 내가 ’ 암환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 뒤로는 우리  온 가족의 삶이 ‘암의, 암에 의한, 암치료를 위한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암 중심의 삶이 되어버렸다. 물론 성실하게 암을 치료하려고 하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고, 그런 노력 속에 아름답고 보람 있는 순간을 만나기도 하지만, 암에  대한 사고가 내 의식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지라 나도, 나의 식구들도 가슴속이 시원할 정도의 즐거움이라던가 유쾌함을 누리기는 어려웠었다.


    그런데 섬에서는 ‘암’이 나의 의식을 침범하지 못했다. 섬에 오자마자 나의 마음은 깨끗이 비워졌고, 그 비워진 마음터에는 풍부한 아름다운 이미지와 감상과 판타스틱한 사고들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아무도 없는 해변을  혼자 산책할 때 아침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주면서 물 위로 서서히 올라오는 해, 그 찬란한 햇살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보트들과 건물들, 갑자기 부는 바람의 기세에 거칠어지는 오후의 파도, 바다 위로 덩실 떠오른 초저녁 보름달, 칠흑 같은 밤바다에 반사되는 도시의 불빛….들이 나의 새로운 일상. 넋을 잃고 순간에 온전한 몰입하고 있으니 암에 대한 생각이 내 의식을 디디 밀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섬은 ‘암’에 관한 모든 것에서 온전한 휴가를 제공해주었다. 나의 기는 신속히 회복되었다.  





    나는 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수시로 느꼈다. 마음이 흐려진 뒤에 무감각하게 되어버려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을 때 나의 마음은 감사함과 행복감이 넘쳐난다. 아무런, 대단한, 칭찬받을 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뭔가 이룬 것도 없고, 자랑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는 나를 하나님이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게 나에게 보내주신 보석과도 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가족, 친구, 이웃들의 존재에 대한 감사 찬송도 절로 흘러나온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내가 남을 사랑하는 원동력이 된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누는 삶은 참 행복하기 마련이다. 내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은 대부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좀 멀어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섬에서는 매 시간이 하나님의 사랑의 자연스러운 경험이었다. 바닷바람, 뜨거운 햇살, 밝은 빛, 휘영청 빛나는 달, 그리고 밤바다의 차가운 공기도 다 나의 몸을 감싸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내 입을 닫고, 내 발을 멈추니, 하나님의 속삭임이,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졌다. 하나님은 사랑. 나는 그저 파도처럼,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숨쉬기만 하고 존재하고 있을 따름인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를 느끼면서, 나의 삶의 모든 축복 (나의 삶의 의미를 거의 완벽하게 해주고 있는 가족, 친구, 이웃들,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게끔 인도해주신 것) 에 대한 벅찬 감사로 나의 마음이 일렁였다. 살아 있어서 내가 우주의 한 부분임을 첨예하게 인식하고, 창조주를 홀로 대면하는 것이 감사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뭐라고 이런 사랑을 주십니까. 하나님,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 달이나, 이 달이나, 다 같은 달인데? 
     
    마지막 날 밤, 남편은 일찍 자러 들어갔다. 나는 테라스에 혼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생각을 정리하였다.
    섬에 와서 마음도 몸도 잘 쉬고, 영혼도 새로운 기운을 얻었음이 감사했다.
     
    그런데....그럼에도 나는 뭔가 자신이 없었다. 

    섬에서의 경험이 한 여름밤의 꿈과 같은, 마법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당장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서 내가 과연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지/속/적/으/로?
     
    나는  바로 몇 시간 전 남편과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 내가 나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
    ‘집에서의 달이나 섬에서의 달이나 같은 달인데, 왜 나는 섬에서 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건가.'
     
    남편과 내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우리가 앉은 쪽의 한참 떨어진 식당 입구 너머로 바다 위로 큼직한 보름달이 떠오르는 것을 본 순간,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당 밖으로 뛰어나갔다.
     


    동그랗고 노란 달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이 가깝게 보였다. 나는 그 신비로운 달의 정경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고 나서도 한참 서서 달을 바라보았다. 마치 난생처음 달을 본 사람처럼...


    그때 갑자기 ’이런 보름달, 처음 보는 거 아닌데…‘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렇게 큰 보름달은 우리집 근처의 호수에서도, 집앞의 공원에서도, 고속도로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한번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었다. 남편이 달을 보고 감탄하면서 나를 부를 때조차, 나는 마당으로 나서기는 커녕, 창문을 통해 흘낏 보고는 고개를 돌리곤 했다.
     
    나는 약간 책망이 섞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팜펨, 너는 왜 섬에 와서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거니?
    하나님, 하나님! 하는데, 하나님의 존재를 강렬하게 느끼려고 한 시간 반 배를 타고 섬까지 와야 했던 거야?'
     
    이 문제는 나에게 중요했다.

    일출, 일몰 등의 절경이 하나님의 위대함을 즉각적으로 상기시키고,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건 맞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충격 요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를 생생하게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섬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사랑, 감사, 행복을 과연 집에 돌아가서도 지속적으로, 강하게 느끼고 살 수 있는냐 마냐는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면. 나의 삶의 터전에서 ---부엌, 거실, 나의 방, 마당, 동네 호수--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못 느낀다면 나의 마음이 흐려지는 것은 시간 문제....특히 내가 점점 내 마음대로 여행을 떠나는 게 어려워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식당으로 돌아와서 남편에게 내가 찍은 달 사진을 보여준 뒤, 약간 계면쩍하면서 말했다.

    ”집에 뜨는 달이나, 여기 뜨는 달이나 다 같은 달인데 왜 난 이렇게 수선을 피우는 건지 모르겠어. “

    남편은 다정하게 나를 변호해주었다.

    ”지금은 그걸 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된 거지.
    집에서 그러지 못한 게 당신 탓은 아니야.
    당신은 당신밖에 할 수 없는 일들, 당신만이 해야 하는 많은 책임들을 혼자 지고 있어.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 “
     
    그의 말이 약간의 위로는 되었지만 해답은 아니었다.
     
    내가 '섬의 달이나, 집의 달이나 다 같은 달인데...' 라고 골몰해서 생각하는 동안, 밤 기온은 점점 더 내려갔다. 바닷바람으로 나의 몸은 많이 식었다. 나는 다리를 양팔로 껴안고, 담요를 머리까지 덮은 채, 검은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중요한 문제였다. 뭔가 결론이 지어지지 않으면 다음 날 페리 타고 집에 가는 순간, 섬의 마법은 사라지고, 나는 얼마 안가서 나는 '암' 위주의 삶에 메몰되어 마음이 흐려질 지도 모른다. 지난 한 달 동안 경험했던 그 어두움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 생각해보니 나는 남편의 말에 어렴풋하나마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 말대로 나는 현재 다른 이가 해줄 수 없는 책임들을 지고 있다. 어느 순간에서부터--특히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엄마의 여러 건강 문제들을 정신없이 돌보면서 암 수술을 준비하는 동안---나는 정신적으로 소진된 것이다. 거기에 나의 암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었고.
     
    그렇게 일상이 ’암‘ 위주로 돌아가니 나는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여유도 없이, 숨을 제대로 쉴 여유 없이 어떻게 하면 위협적인 ’ 암‘이라는 ’적‘과 상대할까, 어떻게 하면 무너지지 않을까에 연연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나는 암에 의해 압도되고 지배되어 버린 셈이었다. 싸우기도 전에 마음이 지배된 것이니 말이다.
     
    돌이켜보니 나의 삶은 너무도 전투적이었고 그래서 진정한 평화가 가능하지 않았다. 평화는커녕, 손에 무거운 짐을 잔뜩 진 채 중심을 잃지 않으려 버둥대는 꼴이었다. 그렇게 버둥대면서 어찌 아침 해의 장엄함을 깨달을 수 있겠나, 저녁 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겠나...

    내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님, 당신께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라고 했던 기도도 내 마음이 건강할 때는 100 퍼센트 진심이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저 말뿐이었다. 나는 하나님께도 내려놓지 못했다. 아빠가 벌린 팔을 보고, 아빠가 잡아줄 것이라는 것을 믿고 물로 첨벙 뛰어드는 어린이의 믿음이 나에게는 없었다. 하나님은 온갖 방법으로 러브콜을 보내주시는데, 하나님의 손을 잡기는 커녕 돌아서서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하면서 우는 꼴이었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담대하게 내려놓고, 담대하게 비워야 한다.
    그래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균형을 유지해야 매사를 깨끗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엄마가 수술 직전에 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실 때의 담담함이 떠올랐다. 
    매분매초를 성실하게 살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셨지만, 그 성실함은 '투쟁'이 아니었다. 엄마는 평온함을 잃지 않았다. 평소 엄마의 삶이 그러했고, 나에게 유언을 남기실 때도 그러했다.  엄마의 모든 행위의 저변에는 '하나님께 다 맡기고 나는 내 일만 열심히 한다'는 담담한 철학이, 당당한 신앙심이 있다. 쉽지 않지만, 엄마를 따라하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호텔 직원이 나타났다. 테라스를 닫아야한단다.
    그게 고마웠다. 안 그랬다면 나는 몸이 꽁꽁 얼어붙을 때까지 앉아 있었을테니까.
     
    너무 오래 밖에 있었나보다. 따뜻한 방에 돌아와서도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뜨거운 물 속에서 몸을 녹였다.
    몸도 마음도 깨끗하게 씻어졌다.

     
     
    홀로 있기 훈련
     
    섬에서 기념품을 하나도 안 샀지만 나는 그 어느 기념품도 비교할 수 없는 진귀한 기억, 감사와 결단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페리를 탔을 때 내 마음의 일기예보는 ’ 밝음‘이었다.  나는 유쾌함과 새로운 생각과 소망으로 단단해졌다.

    섬에서 주어진 나만의 공간과 시간은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확실히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가도 다시금 깨달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안에서, 가족, 친구, 이웃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면서 가는 나의 복된 삶을 다시금 감사드리고 있다.
     
    암은 계속 다뤄야할 큰 골칫거리임은 분명하다. 앞으로는 한층 더 쉽게 다뤄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암의, 암에 의한, 암치료를 위한 삶을 살 것이고 그래야 하지만, 그것이 나를 압도하지 않게끔 나는 앞으로 홀로 있음, 비움, 온전한 휴식을 위해 계속 훈련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중심을 찾을 것이고, 그래야 여유가 생길 것이고, 그래야 암이 '계속 다뤄야할 큰 골칫거리' 이상의 괴물이 되어 나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페리 안에서 남편과도 나의 '홀로 있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나와 엄마의 암투병의 책임을 맡고 있고 내 주위에 친척이 없고, 언니도 멀리 살기에 내가 홀로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내 휴식, 충전의 시간이 나의 건강은 물론, 엄마의 건강에도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남편과 나는 어떤 식으로든 함께 노력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해도, 어느 삶이나 그러하듯이, 그리고, 엄마와 내가 동시에 암과 맞서고 있기에,  나의 삶은 흐린 날도 많고, 비도 많이 내릴 것이며, 폭풍우도 불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들을 현재의 내 마음가짐과 결단으로 임한다면,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어쩌면 내 마음의 날씨는 '대체적으로 맑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I hope so!). 절대자의 사랑, 가족과 벗의 사랑이 있고, 내가 그 사랑을 느끼고 사는 한, 내 마음은 쉽사리 어두워지거나, 설사 어두워진다 하더라도 그 어두운 시간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I really hope so!)  어쩌다가 허리케인이 불면 어떻고, 지진이 나며 어떠냐. 쓰러져 좀 울고, 눈물 쓰윽 닦고 다시 일어나면 되는 거 아니겠나. 

    훈련이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나는 집에 온 뒤에 의도적으로 내가 '홀로 있는 순간'을 만들고 있다. 이제까지 해온 묵상, 기도 시간, 필사 등이 물론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지만, 그것과는 사뭇 다른 나는 자연을 향해 멈추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 

     

    매일 일몰 시간을 체크해서---즘은 주로 오후 6 시 경인데--- 그 시간에는 서쪽으로 난 2 층의 작은 창문에 서서 하늘을 본다. 
    멋진 퍼레이드를 보려고 서 있는 사람처럼, 나는 석양의 파노라마를 기대하면서 서 있다.
    '섬의 달이나 동네의 달이나, 다 같은 달이지...'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타러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도, 나는 그 작은 창문에 멈춰서 하늘을 본다.
    늦은 밤에 동네 산책을 나갈 때는 마당에 선 채 꼭 밤하늘을 먼저 올려다본다.  
    별이 얼마나 많이 보이는지, 달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떠 있는지를 확인한다.

    섬에서는 마법과 같이 해가 나를 반기고, 별이 나에게 손짓을 하고, 달이 나에게 인사했다면,
    마법이 풀린 나의 집에서는 내가 멈춰서, 능동적으로 해를 찾고, 별을 찾고, 달을 찾는다.
     
    그렇게 나는 나의 공간에서---우리 동네, 우리집 정원에서,  우리집 창문에서--- 홀로 선 채 하나님과의 '접속'을 추구한다.
    오늘은 하나님이 어떻게 스스로를 나타내실까.
    오늘은 하나님이 무엇을 통해서 나에게 윙크를 하실까.
    하나님의 사랑과 한층 쉽게 접속하면서, 그리고 하나님께 나를 내려놓고 비우면서
    현재 내 마음의 일기는 '맑음'이다.
     
    이런 여유, 평화, 행복,  마음 가짐이 오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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