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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우먼"
    카테고리 없음 2023. 9. 15. 00:26

     

    (친구들, 제가 따로따로 소식을 전할 수 없어서 여기에 올려요)
     

    아직 의사를 만나지 못했지만 이메일로 결과가 왔다.

    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남편과 나는 침묵 속에 마음을 추슬렀다.

     
    엄마께는 말씀드렸다.
    꽤 담담하게. 
    엄마의 얼굴이 절망으로 무너지는 모습에 나 역시 잠시 흔들렸지만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
    엄마가 나를 위해서 얼마가 강하신가를 잘 알고 있어서, 그 신뢰가 주는 평화가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언제 소식을 전하나가 고민되었다.

    낮에 일할 때는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밤에 하면 아이들이 생각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을까?

    여러 생각하다가 오후 늦게 두 아이 다 일을 마칠 무렵에 문자를 보냈다.

    "얘들아, 결과가 나왔어. 암이야.  다음 주에 선생님과 면담하고 어떻게 치료할지를 결정할 거야. 지금 상태에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단지, 엄마가 늬들이 어렸을 때 믿었던 슈퍼우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엄마가 그런 슈퍼우먼은 아니지만 슈퍼우먼의 힘을 다해 싸우겠다고 약속할게."

    아이들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충격, '왜 우리 엄마에게 이런 일이?' 식의 분노, 사랑과 응원이었다.
     
    ---
     
    그날 이후 딸은 그 이후로 매일 전화를 한다.  원래 딸과 통화와 문자를 자주 주고받는 지라 별다를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제 알게 되었다.

    딸이 사는 곳은 자정이 가까운 늦은 시각인데 전화를 해와 받아보니, 잠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운 상태로 배시시 웃고 있다.
    서로의 하루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나눈 뒤 딸에게 "거기, 늦었다. 어서 자야지."라고 했더니 딸이 물었다.

    "엄마, 내일 아침에 피검사하러 가지?"
    "응."
    "내일, 내가 출장을 가는데 엄마가 피검사하러 가는 시간에 일을 하고 있어서 전화를 할 수 없을 거야. 그래서 엄마하고 미리 '파이팅' 하려고.."
    "아우! 랄라야, 고마워! 근데 네가 신경 많이 쓰는구나! 그러지 마. 그럴 필요 없어. 별 것도 아닌 피검사인데.."
    "엄마, 내가 책임감으로 전화하는 거 아니야. 난 엄마랑 항상 마음으로나마 함께 하고 있어."
     
    전화를 끊은 뒤  고마움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고마운 것은 당연한 감정이고, 안쓰러움은 딸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바로 몇 년 전 노령의 부모님이 한국에서 사실 때 멀리서 내가 느꼈던 마음과 비슷한 것 같아서이다. 

    나는 단 둘이 사시는 부모님이 참 가엾었다. 병원이니 샤핑이니 다 노구를 이끌고 혼자 해야 하고, 어쩌다가 젊은 사람들이 있으면 든든할 일들도 다 혼자 하셔야 하는 노인들. 그래서 나는 전화, 문자, 영상통화 중의 하나를 거의 하루에 한 번씩 했다.  그들이 단조로운 일상을 활기찬 젊은이들의 소식으로 깨뜨려드리고 조금이라도 기운을 북돋아 드리려는 마음이었고, 그렇게 자주 연락해야 내가 속이 편했다.

    그렇게 내가 부모님을 내가 돌봐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챙겨드리기 시작했을 때 나의 나이는 40 대였었다.
    그런데 이제 고작 24 세인 나의 딸은 40대의 나의 마음이 되어 60대의 나를 돌봐주려 하고 있나 보다. 그러니 안쓰럽다.
    엄마로서 자식을 힘들게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게 꼭 그렇게 슬프거나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자위한다.

    부모님을 돌봐드리면서 나는 시간과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삶의 그 어느 것도 당연히 여길 수 없다는 사실에 감사함으로 살게 되었고, 나는 좀 더 진지하게 되었다.  그건 나에게 참 좋은 일이었다.  나의 아이들도 어려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축복을 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바라고 믿는다.  나는 그저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함께 커가는 것을 감사하면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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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랜 옛날, 첫 아이를 등에 업고서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라고 느꼈다. 나는 슈퍼우먼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도 나를 전지전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뭐든지 다 잘 알고, 뭐든지 다 잘할 줄 알고, 겁도 업고, 든든한 슈퍼우먼, 엄마!

    아이들은 커가면서 지들의 엄마가 전지전능은커녕, 허점도 많고, 실수도 잦고,  모르는 것과 못하는 것도 많고, 마음이 여린 한 여성임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몸까지 약해졌으니 슈퍼우먼이란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게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그러나 나는  아직도 (아마도 영원히)  슈퍼우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은 나를 지금도 (아마도 영원히)  슈퍼우먼으로 만들어준다. 특히 요즘처럼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나는 그걸 번번이 경험한다. 평상시에는 일상복을 입고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위기 상황에 갑옷으로 무장하고 휘휘 날아다니는 슈퍼 히어로처럼, 우리 가족이 큰  위기 상황에 놓이니 나는 저절로 슈퍼우먼의 마인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에게 초능력을 주고 책임감은 갑옷이 된다. 거기에 나에게는 기도라는 무기가 있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인지라 가끔 슬픔, 절망, 혼돈의 나락으로 추락하기도 할 때도 있지만, 바닥을 세게 친 공이 높이 튀어 오르듯이, 결국은 나는 용기, 자신감, 대범함으로 삶을 대면한다.

    내가 슈퍼우먼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의 기초는 지난 27 년간 나의 모성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65 년의 세 아이의 어머니 경력자인 나의 엄마의 삶이다.  오빠, 언니, 나는 엄마의 강인함의 원동력이 모성애임은 내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강인함과 사랑이 어느 정도인가는 10 년 전,  엄마가 '죽고 싶다' 하실 정도의 비극을 당한 순간에 증명되었다. 엄마는 자식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스스로를 지켰다. 내가  나의 암 소식을 엄마께 담담히 전해드린 것도, 엄마의 그런 강인함을 믿었고,  나를 사랑하는 엄마가 나를 위해서  절대로 절망과 공허의 늪에 빠지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이제 나는 여러모로 나의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엄마처럼 어느새  병약하게 되어  나는 자식이 주는 관심, 보호과 사랑의 수혜자가 되어가고 있다.  또한  엄마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어미로서의 어떤 식으로든 '나의 새끼'를 보호하겠다는 책임감에 불타고 있다.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게 바로 나 자신이라는 아이러니가 안타깝지만, 여하튼 나는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덜 힘들게 하기 위해 의연하게 잘해나가리라, 슈퍼마마가 되리라 마음먹는다. 그러기 위해서 당장은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슬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최소화하고, 감사와 사랑과 기쁨의 감정을 최대치로 만끽하면서 살려고 한다.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슈퍼우먼의 노력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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