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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엠알아이, 눈물, 전쟁
    카테고리 없음 2023. 9. 11. 14:54

     
     
    MRI를 받았다.  
    두 번 눈물을 흘린 날.
    시작은 아주 활기찼다..

    현관에서 어두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께 웃으면서 바이바이~~ 잘 다녀올게요 인사.

    엄마가 억지 미소를 지으셨다. 엄마의 속생각이 다 읽혔지만 그래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딘가. 굿~~~!

    병원에 내려준 남편에게 웃으면서 땡큐, 씨유레이러!
    이른 시간, 한적한 대기실, 병원 직원이 굿모닝 인사한다.  나도 환한 미소로 답했다.

    눈매가 서글서글한 간호사가 나를 탈의실로 인도하면서 '팬티만 빼놓고는 다 벗어야 하며,  귀금속이니 머리핀도 다 빼야 하며.....'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엄마가 엠알아이 받으실 때 탈의실과 검사실에 들어가서 도와드렸기 때문에 익숙한 절차. 방긋 웃으면서 '땡큐~~' 했다.

    탈의실 문을 잠그고 옷을 하나씩 벗었다. 이렇게 속옷까지 다 벗고 병원복을 입는 것은 좀 중요한 검사를 받을 때인데, 내가 매년 한 두 번 그런 검사를 받아왔으므로 생소한 경험은 아니다. 좁은 병원 탈의실에서 말없이 환자복으로 갈아입을 때마다 어김없이 드는 생각들도 익숙하다. 그것은 '나는 그저 하나의 몸뚱이일 따름'.  '아무와도 말하지 않고 혼자 기다리고, 혼자 검사받는 거, 외롭네, 근데 뭐... 인생은 결국 혼자 가는 거니까..' 식의 사고말이다. 엠알아이 앞서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환복을 하고 옷과 전화기와 지갑을 사물함에 넣으려는 찰나, 문자가 왔다. 이 이른 시간에 누구지?

    "Sending you lots of love for your MRI appointment today Mama! Wish I could be there with you! Sarangaeyo!!" 

    멀리 사는 딸이 보낸 문자였다.

    그 문자를 읽는 순간, 오늘 내내 장착하고 있으려고 했던 미소가 내 입에서 사라져 버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의자에 앉아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외롭지 않은 척, 아무 염려 없는 척하는 것을 알는 딸이 나에게 불쑥 나타나 '엄마, 엄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속으로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깨닫게 해 주고 위로까지 해준 딸의 문자에 탈의실이 덜 삭막하게 느껴졌다.

    외로움은 덜하지만 슬픔은 깊어졌다. 시차가 있는 곳에 사는 딸이 내 검사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문자를 보낸 것을 보면--그리고 그전에도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해 내 안녕을 체크하는 것을 보면--딸이 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부모 걱정하는 자식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를 내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이 나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상황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나는 비로소 엄마가 왜 내가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갈 때마다 '너의 시간을 써서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네가 고생이다'라고 안타까워하시는지 이해가 되었다.  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은 물론이고, 더더군다나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 엄마의 마음, 그게 내 마음이었다.
    눈물을 닦고 사물함에 내 소지품들을 넣었다. 

    간호사의 안대로 엠알아이 기기 침대 위에 누웠다. 간호사는 검사 중 소음에 대비해 나의 귀에 귀마개를 꽂아주었고, 그 위에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해드폰을 씌워주었다.  지시에 따라 숨을 참아야 하며 50 분간의 촬영 중 절대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설명에 이어 나에게 폐소공포증이 있는가 다시 확인하고, 비상시에 누를 수 있는 벨 버튼을 쥐어주었다. 내가 누운 침대는 서서히 원통형 엠알아이 기계 속으로 들어갔다.

    혹시라도 작은 기계에 들어가는 순간 없던 폐소 공포증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싶어 망설여졌지만 호기심에 결국은 눈을 떠보니 그저 하얀 천장이다. 

    '아무렇지도 않구나.' '딱 관 사이즈네.''수의를 입고 관에 누운 기분이다.  이 기계 안에서 관을 상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야.'

    담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아니, 내가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상황이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따따따 따~~~ 쿵쾅쿵쾅~~ 

    검사가 시작되었다.  시키는 대로 호흡을 했다가 멈췄다를 반복했다. 검사자는 내가 심리적으로 지치지 않게끔 가끔 'you are doing a great job!' 식의 격려의 말을 했다.  

    양팔을 내리고, 발을 쭉 펴고, 배를 내놓고, 마치 동물이 항복하듯이 누워 있는 그 순간이 나에게 평화를 주었다. 의식은 명료한데 몸을 꼼짝이지 않고 누워있자니 어느 순간 내 몸에서 내가 분리가 된 것이 느껴졌다. 특히 다리 부분은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육체와 영이 죽음을 미리 체험해 보는 것 같았다.  그때 떠오른 하나의 기억. 아마도 엠알아이의 상황과 비슷해서였나보다. 

    10 년 전이었다. 나는 팬티만 입고 수건 한 장으로 몸을 부분적으로 가린 상태에서 마사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마사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고, 내가 내 발로 찾아 들어간 곳이 아니었다. 친구의 선물이었다. 

    오빠가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날아간 뒤 20 일만에 오빠가 돌아가셨고, 오빠의 장례와 삼우제를 치르고 난 뒤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 친구가 마사지로 몸을 한번 풀어주고 나서 미국으로 가라고 배려를 해준 것이다.

    마사지사 선생님은 처음 받는 마사지에 어색해하는 나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천천히,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내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내가 내 몸의 굴곡과 형태와 흐트러짐을 누군가에게 낱낱이 보여준 적이 없었고 누군가 나의 몸을 이렇게 정성 들여 만져준 적이 없었다. 마사지사의 성적 (sexual) 이지 않은 부드러운 터치, 내가 아무런 보답을 하지 않고 그저 받기만 하면 되는 그런 다정한 손길에 나는 마치 내가 아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 아버지는 내가 베이비였을 때 이렇게 조심스럽게, 내 몸을 마디마디 움직이고, 쓰다듬으면서 나를 씻겨주셨겠지…

    마사지사가 나의 팔의 위치를 옮기고, 나의 다리를 굽히고, 나의 어깨를 만지는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마치 내 몸이 나의 것이 아닌 양 싶었다.  그리고 며칠 전 치른 오빠의 입관식이 떠올랐다.

    돌아가신 오빠의 육체에 수의를 입히는 입관식은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에게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끔 해주었던 사건이었다.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는 인간들이 자기의 몸을 만지고, 면도를 하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힐 때 아무런 항거를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던 오빠... 오빠의 무반응, 부동성은 오빠의 죽음의 증거였다. 그러나 나는 오빠의 입관식에서 울지 않았고, 오빠의 장례식에서도 잠시 운 것 말고는 울지 않았으며, 그 후에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어두운 마사지실에서 마치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누워 수동적으로 내 몸이 만져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오빠의 죽음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오빠의 죽음과 싸우고, 장례를 치르고, 유품정리를 하는 치열한 과정에서 부모님을 지키기 위해서 꾹꾹 누르고 있었던 눈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나는 점점 마음이 편해졌다.  

    마사지 선생님은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내 몸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오빠의 죽음이라는 위기를 겪는 동안 몸의 세포 곳곳을 파고 들어가 나를 뻣뻣하고 피곤하게 만들었던  독소들이 천천히 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마사지가 끝난 뒤, 나 혼자 남겨진 상태에서 눈을 떴다.  어두운 조명의 마사지실의 갈색 담요, 마사지 기구들, 의자..... 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깊은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참 황홀한 경험이었다.

    바로 그 황홀한 마사지의 기억이 엠알아이 기계 안에서 떠오른 것이다.  나의 죽음을 상상하게 만드는 관짝과 같은 엠알아이 기계 안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나는 감사함으로 마음이 벅차올라 예전에 울었던 것처럼 또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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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카페로 갔다.  
    내 표정이 밝으니 남편이 기쁜 눈치였다. 남편의 미소를 보니 나 역시 즐거워졌다. 집에 와서 엄마를 꼭 껴안았다.

    아까 집을 떠날 때와는 다른 그런 '찐으로' 유쾌한 마음이었다. 느껴야 할 것을 느끼고, 내려놓아야 할 것을 내려놓고, 감사의 기억으로 채우니 유쾌해진 것.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세 가지 가능성,  암일 가능성 (크다), 암이 아닐 가능성 (적다),  암이라도 중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건 모른다), 갑자기 진행될 수도 있고 (이것도 모른다), 결국 나는 현재 아무것도 모른다. 결과가 나와도 의사의 해석 없이는 정확히 모를 것이며, 그 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 것도 모르는 일. 나는 모르는 일 투성이다.

    그런데 마음의 준비는 되어가고 있다. 
    열심히 해야지!이다.

    젊었을 적, 나의 삶의 종착역은 아주 먼 곳이라 추정되는 곳이었다.
    나의 죽음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아주 아주 먼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젊음이 주는 무지와 여유는 죽음이 언제고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암의 가능성’이란 진단 뒤에 나는 내가 삶의 종착역에서 언제고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종착역이 이제는 꽤 가까이 보인다. 마치 가는 길을 모르고, 길이 보이지도 않지만 꽤 가까이 보이는 DMZ 너머의 북한 마을처럼...

    그 종착역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싸워야 한다.
    육체적 전쟁은 물론이고, 심리적인/정서적인 전쟁.

    나의 무기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정확한 진단. 치료. 의료진의 능력과 노력.
    내 체력.
    기도, 믿음, 소망, 사랑, 감사, 기쁨…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암이든, 암이 아니든, 무엇인가 빨리 발견되어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이 감사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일 좋아했던 ‘코코‘ ❤️
    굿모닝 인사 영상을 만들어 보내주니 무척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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