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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행복한 때가 언제였냐면….엄마 2021. 11. 1. 08:23
며칠 전 엄마가, “나는 내 인생에서 언제가 제일 행복했던 때였나 생각해보았어.” 라고 말을 꺼내셨다. 언제일까? 궁금함과 동시에 나는 답을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종종 태능 시절이 참 좋았다고 떠올리시곤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강의하시던 서울 여대 옆의 하얀 울타리의 작은 집, 정원에 장미꽃과 뒤뜰에 호박넝쿨이 무성했던 그 집은 나, 오빠, 언니에게도 행복한 유년의 추억의 장소로 남아 있다. 그러나 엄마는 나의 예상을 뒤엎는 말씀을 하셨다. "어렸을 적, 북한에서 살 때였어. 난 참 행복했었어." 오? 처음 듣는 소리여서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의 유년기의 이야기를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의 옛날이야기는 북한에서 기독교인으로서 받은 탄압과 작은 어선을 타고 내려온 피난의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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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peical Sister"--뇌성마비 여동생을 기리는 오빠의 부고스치는 생각 2021. 9. 24. 08:11
지난 일요일 아침, 평상시처럼 커피를 마시면서 엘에이 타임스 신문의 부고란을 읽고 있었다. 짧은 한 부고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A Special Sister" 라는 타이틀 바로 밑에는 "욕심과 걱정이 전혀 없었던 나의 여동생을 기리며"라는 부제가 따랐다. 장애인 여동생의 이야기구나 싶었다. ('special' 은 '특별한'이란 의미 말고도 '특수 장애를 가진'이란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A Special Sister"라는 타이틀은 특수 장애를 가진 누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가가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짧은 한 문단에 이미 감동이 왔다. 나는 지난 10 여년간 열심히 부고란을 읽었지만, 가족이 아닌 한 사람이, 그것도 망자의 자녀가 아닌 오빠가 동생을 위해 올린 부고는 처음이어서 흥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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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때가 있다부모님 이야기 2021. 9. 20. 09:49
며칠 전, 시아버님이 잠시 요양원에 들어가셨었다. 혼자 수발드시던 어머님이 너무 지치셨고, 아버님은 제대로 된 케어를 받으실 수 없어서 급히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계시다.) 우리는 딸아이가 직장 발령지로 떠나기 전에 분주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그 소식을 들어 충격이 컸다. 원래 계획대로 저녁 식사를 했고, 식사 후에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만들어두었던 동영상들을 열 편 정도를 같이 보았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어렸을 때 모습, 부모의 좀 젊었던 모습을 보면서 재밌어서 박수치며 웃었다. 우리가 저랬냐, 저 때 생각난다! 하고 즐거워했다. 동영상 중에는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의 동영상도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고, 현재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는 시부모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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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부모님 이야기 2021. 8. 9. 15:59
남편이 브러셀에서 돌아왔다. 원래 간단히 여행하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큰 가방 하나를 더 들고 왔다. 쟈닌이 남겨준 그림 두 점을 잘 포장해서 넣다보니 가방 하나가 필요했단다. 남편이 거실 테이블에서 큼직한 포장 하나를 뜯었다. 이름있는 화가의 작품이란다. 성모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이었다. 둘 다 별 특별한 감흥 없이, ‘피에타이구나’ 하고 두번째 박스를 꺼냈다 작은 그림이었다. 그림을 본 순간, 나는 ‘앗, 에릭!’ 하고 외쳤다. “쟈닌 생각이 나!” 남편이 의아해햐며 그림을 바라보았다. “하얀 지팡이야. 쟈닌의 지팡이처럼!” 남편이 “오, 맞다! 정말 하얀 지팡이네!’ 하더니만 “진짜 쟈닌같다…쟈닌이네, 쟈닌…”이라 혼잣소리를 했다. 자기가 지난 밤에 포장을 하면서 꽤 찬찬히 살펴봤던 그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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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랑했던 너는 어디에 있니스치는 생각 2021. 8. 6. 22:39
나는 이스라엘 어머니, 오프라와 일주일에 한 번, 화상 채팅을 한다. 우리는 한 시간 동안 꽤 열정적으로, 각자의 삶, 가족, 문화, 책, 영화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팽팽하게 맞서서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고, 남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눈다. 브러셀 여행으로 한 달간 채팅을 못했는데 어제 회포를 풀었다. 어머니의 근황과 나의 여행이 주요 토픽. 오프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랑 채팅을 한 게 이스라엘 시간 밤 10 시였는데 오전 중에 자기 집의 세미나실에서 5 시간 동안 그룹 웍샵을 했고, 오후에는 줌으로 한 시간 동안 상담치료를 했다고 했다. 85 세이신데… 대단한 정력에 대단한 열정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가 운동을 하라고 하는데 운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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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 2 :시아버지카테고리 없음 2021. 8. 2. 02:16
어머님과 엉엉 운 뒤 마음이 좀 차분해졌다. 아버님과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같았다.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버님께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가닥이 잡혔다. ————————————— 노년의 부부는 '노년'이라는 아주 까다로운 시험을 치루게 되는 것같다. 기존의 대화방법, 가치관, 자아/타자에 대한 견해 등이 다 테스트에 붙여지는, 부부관계의 마지막 테스트. 친정 부모님도 그 시험을 치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마무리지어졌다. 어렵게 치룬 시험이었지만 성적이 꽤 좋았다. 왜냐면, 젊어서는 많은 갈등을 겪었지만 노년에 갈등을 극복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였고 자손들에게 노년과 죽음을 어떻게 살아내야하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맨 마지막, 아버지의 수발은 받는 이도, 돌보는 이도 힘든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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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1: 시어머니카테고리 없음 2021. 8. 1. 02:16
시댁을 떠나기 전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자클린 이모가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기다리고 계셨다. 이번에 쟈클린 이모님과 오붓하 시간을 두 번 가졌고, 우리는 더 친해졌다. 쟈클린 이모는 자기에게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고 하고, 여러 덕담을 해주셨다. 이모님 눈에 고인 눈물을 보는 순간, 나의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모님이 가신 뒤, 아버님께 작별인사를 드릴 차례였다. 어떻게야할지 난감했다. 멀찌감치서 아버님 방을 바라보니 의자에 깊숙히 앉아 있는 아버님의 옆모습이 보였다. ‘아버님은 우리가 떠난 뒤 하루의 대부분을 저 모습으로 계시겠지’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났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아버님께 갈 수 없었다. 거실에 계시는 시어머님께 부엌으로 와주실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