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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크리스마스 스타킹카테고리 없음 2023. 1. 23. 08:18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나는 엄마로서의 책임감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곤 했다. 그러나 요리니, 인테리어니에 관심이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나는 아이들이 좀 큰 뒤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게 고역같이 느껴져서 슬슬 손을 떼었다. 크리스마스 시기에 해외/국내 여행을 계획해서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가족들의 관심을 분산시켜 은근슬쩍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삶의 사소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경향의 남편과 딸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어느 해 겨울, 나에게 묻더라. “우리는 트리 안 만들어?” (허걱!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아무 말 안 했다. 만들려는 계획이 없었기에 ‘곧 만들 거야!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안 만들 거야’ 라고 대답하면, ‘왜 안 만들어?’라는 더 무시무시한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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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졸업식카테고리 없음 2022. 8. 6. 16:51
아들이 올해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엉뚱'해서 우리에게 많은 웃음을 주었지만, 그 '엉뚱함'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는 아들. 아들이 가까스로 대학 졸업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미국의 명문 H 대나 Y 대에서 박사를 딴 것처럼 기뻤다. 길 한복판에서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대학 졸업식은 가지 않았다. 졸업식 당일, 아들 아이가 약간 아프다는 이유였는데, 사실은 남편과 나도 졸업식을 가고 싶지 않았었다. 장거리 운전을 하고 가서 주차지옥, 캘리포니아 더위가 부담스러웠다. 졸업식을 생략하자고 하니 부모를 위해서 졸업식을 가주려던 아들은 반색하는 눈치, 아들을 위해 졸업식을 가주려던 부모는 아들도 가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학교에서 하는 졸업식은 생략했지만 가족끼리 의미있는 의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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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죽음의 외줄타기카테고리 없음 2022. 8. 4. 15:48
의사에게서 엄마가 암이라는 전화를 받은 뒤 나는 다리에 힘이 빠졌다.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께는 어떻게 이 소식을 알리지... 그러나 사실대로 알려드려야 해...' 아버지를 수발들면서 여러 어려운 일을 겪는 내내 좌절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던 나인데, 엄마 암 진단은 나를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그것은 내가 엄마를 아버지보다 더 사랑해서가 아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엄마에 대한 사랑은 '크기'의 차이가 아니라 '성질'의 차이이다.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나를 태아로 품으신 동안 나와한 몸이었던 나의 분신이다. 엄마는 나의 생명의 기원이었고 내 삶의 주축이다. 그 엄마에게 암이 생겼다니 내가 흔들리는 게 당연하다. 나는 한참 동안 내 마음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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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아들과 여행카테고리 없음 2022. 7. 19. 23:53
남편은 시댁에 오래 머무르고 나와 아들은 집에 돌아오는 길 비행기 경유지인 코펜하겐에서 묵었다. 코펜하겐은 나에게 잊지 못할 기억의 장소이다. 2015 년, 부모님과의 마지막 여행인 크루즈의 출발지이자 종착지, 그 여행 뒤 2 주 뒤 아버지는 사고를 당하셨고 영원히 한국에 돌아갈 수 없게 되셨으며 3 년간 침대 신세를 지셔야 했다. 이미 쇠약하셨던 아버지가 몸이 구부 정한채 지팡이를 집고 열심히 걸으셨던 코펜하겐, 당시의 사진첩을 열어보니 아버지는 매 사진마다 행복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팜펨아, 아… 참 좋다. 아…. 참 좋다’ 하시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옛날,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사위와의 여행에 행복해하셨던 엄마 아버지의 얼굴이나 지금, 아들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 행복의 미소를 머금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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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걷기카테고리 없음 2022. 7. 18. 00:36
June, 2022 시댁에 와서 아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거의 40 명이 모인 가족 모임은 어제 성공리에 끝났고, 근 27 년 간 알아온 가족들과 한층 더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바로 몇 해 전까지만해도 어렸고 내 앞에서 쭈빗거리던 청소년 조카들은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고 30 대 중반의 조카들과는 아줌마로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바쁜 중에 나에게 매일 매일 활력을 주는 게 하나 있다. 골목길. 우리의 에어비엔비에서 시댁까지는 1 km 가 채 안되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골목길이 많아서 여러 방법으로 걸을 수 있다. 남편과 나는 아침에는 각기 다른 시간에 시댁에 ‘출근’ 하고, 저녁 시간에는 주로 같이 퇴근하는데 아침에 시댁에 출근할 때 나는 매번 여기저기 골목길을 새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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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임카테고리 없음 2022. 7. 13. 22:36
June 18, 2022 지난 두 달 동안 미국에서부터 계획해왔던 가족 모임이 잘 끝났다. 시부모님의 직계 자녀 부부, 손자 손녀와 부부, 증손자 손녀…. 다 모였다. 온 가족이 다 모인 것은 아주 오랜만이다. 시부모님들의 직계 자녀들이 조부모가 된 이후에는 각자 ‘조부모’ 역할을 하느라 각자의 집에서 모였고, 숫자가 엄청 늘어난 대가족이 다 모이기에는 부적합했다. 2015 년에 시골의 농장을 빌려서 가족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식구들 간에 약간 껄끄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누가 오면 누가 안오고 식이어서 완전체로 모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다 왔다. 초대해줘서 고맙다, 초대해줘서 감동받았다 등, 우리에게 따뜻한 말들을 해주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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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며느리, 진품 시부모님카테고리 없음 2022. 6. 17. 12:45
시댁에 와 있다. 시아버님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수발을 받으시고, 시어머님은 암투병을 하고 계셔서 남편과 나는 약간 무리를 해서 시댁에 왔다. (나의 친정어머니가 암투병 중이시라 내가 자리를 함부로 비울 수 없는 상황인데 온 것, 딸아이가 미국 본토가 아닌 곳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휴가를 다 써서 오게 한 것이 ‘무리’의 예) 내가 올 때마다 항상 나와 특별한 시간을 갖는 막내 시이모님과 나는 도착한 바로 다음날 데이트를 했다. 내가 60 세, 시이모님은 83 세. 시이모님과 같이 수다를 떨 때마다 나는 ‘아이고… 서양 시이모님이니까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나와 이모님이 산책을 하던 중 이모님은 한 빌딩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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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암투병: 살맛, 죽을맛도 아닌 그 맛카테고리 없음 2022. 6. 3. 13:36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몇 달간 저와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해주신 분들, 항상 따뜻한 사랑으로 응원해준 친구들, 문자와 이멜로 격려해주신 친구들, 폐가가 되었던 이 블로그에 글을 남겨주신 정아, 옥포동 몽실언니 님, 비니네 님 감사합니다. 엄마는 계속 암투병 중이시고, 전/체/적/으/로 잘 지내고 계십니다. 꿋꿋한 엄마 덕에 저 또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몇 달 전, 엄마의 암 선고 후 블로그의 글들을 다 닫았습니다. (지금 보니 '엄마.... 저를 믿으세요'라는 진지한 글 바로 밑에 우스꽝스러운 뼈 이야기가 있네요. 급히 방을 닫다 보니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결과. ㅠ 피식 웃습니다.) 제가 티스토리 이전, 블로깅을 시작한 것은 2003-4 년부터였지만 그 이전부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