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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필사스치는 생각 2021. 5. 20. 07:51
오후 2 시, 하루의 반이 지났다. 청소가 끝난 뒤 손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널고, 빗자루로 베란다를 쓸었다. 창문을 열고, 반대편의 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이 통하고, 신선한 공기가 내 방을 채운다.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고 Oswald Chambers 의 책, “My Utmost for His Highest” 필사를 했다. 펜에 잉크를 찍을 겸, 눈을 쉴겸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베란다에 걸려있는 빨래들이 시야를 채운다. 바로 그 뒤로 하늘이 파랗고, 밝은 햇살에 나무들이 봄바람게 가볍게 춤추고 있건만.... 구석에 거구로 세워진 빗자루에 눈이 간다. ‘앗, 빗자루를 제자리에 놓는 것을 잊었었네. ‘ 등의자에 걸려있는 빨주노초파남보 화려한 색깔의 멕시코 담요도 나의 시선을 뺏는다. ‘아, 먼지를 턴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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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늙어서 미안해모성- doodle 2021. 5. 17. 14:41
나의 딸은 22 세, 어른이 다 되었다. 나와 키 차이가 많이 난다. 같이 다니면 꼭 내가 '엄마' 손을 붙들고 다니는 것 같다. 운전부터 주문, 계산, 문의 모든 것들을 랄라가 전담하고 키가 작은 이 '꼬맹이' 엄마는 그냥 옆을 졸졸 쫓아다니기만 한다. 무척 편하다. 랄라와 함께 있으면 나의 함께 사는 친정 어머니가 하시는 말이 이해가 된다. 내가 엄마를 모시고 병원, 식당, 쇼핑 등을 나서면 엄마는 "아아, 딸이 다 해주니 이렇게 편하구나!" 하시곤 한다.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서서히 우리의 '엄마-딸'의 역할이 역전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제 딸과 나의 역할이 바뀌어가는 것이다. 내가 어쩌다 몸이 피곤한 날, 그것을 단박 알아차리는 것은 친정 어머니, 내가 쉬게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딸이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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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날과 ‘김치 기도’엄마 2021. 5. 13. 02:41
어머니 날이 되기 일주일 전에 엄마는 꽃 선물을 받으셨다. 청소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들이 엄청나게 큰 꽃다발을 화병에 담아와 엄마께 드렸다. 며칠 후, 딩동! 소리에 문을 여니 아버지 수발 들 때 일을 했던 분이 꽃다발을 품에 안고 서 있었다. 백신을 맞은 그녀와 엄마는 환호하며 껴안았다. 생각지 않았던 꽃 선물 덕에 우리 거실은 ‘꽃폭탄’을 맞은 것같이 되었다. 딸아이는 ‘오, 너무 예뻐요!’ 환호하면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아줌마들께 달려가 스페인말로 떠듬떠듬 감사인사를 했다.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직진하는 남편은 거실 한 중간에 놓인 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기 서재로 향하기에 내가 ‘옆을 봐봐!’ 라고 외쳤더니 꽃을 보고 놀라서 “오, 오, 오, 오~원더풀!’ 찬탄했다. 멕시코 아줌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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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스치는 생각 2021. 5. 11. 13:38
쟈닌이 떠나고 난 뒤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안락사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을 글로 썼고, 몇 개의 에세이가 거의 완성되었다. 휘르륵 한번에 나오지 않는 글들이어서 그런지, 완성을 하기 쉽지 않았다. 읽고 또 읽고, 그럴 때마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글쓰는 내내, 그리고 글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딸의 안색만 봐도 정신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시는 엄마는 내 몸에 흐르는 그 ‘불쾌하고 부정적인 기’를 읽으셨다. 팜펨, 너는 너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식구가 적어도 3 대가 같이 사니 그 중심에 있는 너는 남모르게 신경쓰는 일이 많을 거야. 내가 알아서 건강을 잘 유지할테니 며칠 나를 믿어주고 너 혼자 잠깐 밖에 다녀와라. 라는 엄청난 제안을 하셨다. 엄마의 축복, 온 가족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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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일간의 아들의 방문/ 3 대의 행복/ 어머니의 사랑엄마 2021. 3. 28. 07:10
아들이 작년 말에 집에 왔다. 자기 동네에서 코비드 검사를 했지만 할머니의 안전을 위해서 집에 오자마자 자가격리. 아들과 딸의 방 사이의 욕실은 테이프로 문틈을 다 막고 욕실/화장실을 아들 전용으로 했다. 삼시세끼는 물론이고 여러 차례 간식까지 온 식구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갖다 바치고 아들은 하루에 한번 차고에 있는 home gym 에서 2 시간씩 운동을 하는 것으로 감금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크리스마스에도 자가 격리가 끝나지 않아 우리는 1 층 식탁에서, 아들은 2 층 자기 방에서 식사를 했다. zoom 을 켜서 얼굴을 보며 밥을 먹었다. 몇 달 동안 마스크를 쓴 채 봐왔던 아들이 zoom에서 마스크를 벗고 인사를 하는 순간, 우리는 다 탄성을 질렀다. 우리집에 예수님이 오시다니! 코로나로 나갈 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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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의 장례식을 치루며...스치는 생각 2021. 1. 29. 14:24
오랫만에 처음 휴가/여행을 떠났다. 결혼 25 주년, 남편의 생일 겸사겸사, 집에서 15 분 거리의 Laguna Beach, 바다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완전한 휴식. 남편도, 나도 많이 지쳐있어서 이번 여행은 각자 마음 가는대로 보내기로 했다. 자기 멋대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 알아서 먹고,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하기— 바다에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나가고, 언덕에 산책가고 싶은 사람은 가고, 아니면 방에 틀어박혀 책읽고 그림그리고.. 온전히 자기가 원하는대로 시간 보내기. 나는 가방 한 가득 책을 싸왔다. 각기 다른 주제, 다시 읽고 싶은 책, 그냥 휘르륵 스치면서 읽을 책, 그리고 스페인어 문법책. 스페인어 공부할 시간이 안 날 가능성이 크지만, 뭔가 공부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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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기일스치는 생각 2020. 12. 16. 03:38
4 년 전, 아로디 (이스라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다행히 나는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기 3 개월 전, 아버님을 찾아뵈었다. 당시 나의 아버지 수발을 들 때였는데 ‘이번에 아로디를 못 보면 평생 후회할 것같다’ 는 직감이 있어서 무리를 해서 에릭과 이스라엘 휴가를 갔었다. 아로디는 한눈에 많이 편찮아보였다. 내가 30 년 전 이스라엘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내 짐을 번쩍번쩍 들어 날라주고 집안의 온 궂은 일을 쉽게, 씩씩하게 해치우던 아로디는 계단 몇 개를 오르면 심장의 고통을 참아야하고, 집안에서 천천히 걸을 때도 숨이 차하는 그런 약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에릭을 너무도 좋아하신 아로디, 두번째 만남인데 마치 사랑하는 친아들을 오랫만에 만난 듯이 즐거워하셨다. ‘아로디가 저렇게 즐거워하는 모습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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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을 현재로 살기스치는 생각 2020. 12. 1. 16:17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우리는 바로 몇개월전의 일상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는 소리도 있다. 1 년 전의 일들을 30 년 전의 그 옛날—손을 많이 쓰고, 발품 많이 팔고, 기다리는 것에 익숙했던 그 옛날—처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런데 1 년 전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못하지만 나는 ‘30 -40 년전의 그 옛날’을 나의 ‘현재 시제’로 살고 있다. 집밖에 나가서 누리던 삶의 자극과 즐거움이 사라진 요즘, 집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한다. 손을 많이 쓰고, 생각없이 해치우던 일들을 천천히 하면서. 2 층의 우리집 ‘안방’은 나에게는 참 재밌는 놀이터가 되었다. 부엌에서 일을 하고, 엄마랑 대화 나누는 시간 빼놓고 나는 대부분 안방에서 논다. 씨디로 음악을 듣고, 몇 개 안남은 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