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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망했다’를 축하하는 나이스치는 생각 2021. 7. 9. 03:43
얼마 전부터 딸아이가 ‘엄마 환갑 해야지!’ 하며 계획을 세웠다. 여러 사람 초대하고 케이터링해서 크게 할까? 아니면 집에서 조촐하게 할까? 물었다. 당연히 간단하게 하는 거지! 코로나 시대에 무슨 파티냐! 딸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며칠 후에는 엄마를 미역국과 환갑 떡을 꼭 먹여야겠단다. 떡은 오케이, 미역국은 No! 미국에서 자라 환갑잔치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딸아이가 사명감을 갖고 내 환갑을 차려주려고 하는지 기특했다. 다시 며칠 후, 환갑 기념으로 온가족이 한복을 입자고 한다. 그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남편은 25 년 전에 맞춘 한복이 있다. 나는 몇 해 전 맞춘 한복—-내가 원하는 대로 ‘로동당 간부가 입을 법한 촌스러운 색상의 한복’-이 있고 어머님은 스스로 만드신 모시 개량한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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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발, 사랑, 공감 (시부모님)부모님 이야기 2021. 7. 8. 15:51
브러셀의 아침 6 시.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한 시간 전에는 이렇게 앉아 있었다가… 유리창에 반사되는 아침 햇살이 예뻐서 자리를 바꿔 앉았다. 저 반짝임은 얼마 지속되지 않았지만… 도시 중심가인데 새 소리가 청명하다. 비둘기떼가 날개를 퍼덕이며 힘차게 하늘로 솓더니만 다 뿔뿔이 흩어진다. 한 시간 전에만해도 차 소리가 전혀 안 들렸는데, 조금씩 트럭 소리, 자동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도시가 기지개를 켜며 깨어날 때 나도 함께 깨어 있으면서 움직임, 소리, 차가운 공기 등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음이 너무도 행복하다. 오늘은 하루가 맑을 것이라는 예보가 내렸다. 바로 다음날과 당일의 기상 예보는 꽤 정확한 편이라 아마 오늘 맑고 아름다운 날씨를 즐기게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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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아, 당신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세요카테고리 없음 2021. 7. 6. 17:54
언니가 귀한 휴가 시간을 나를 위해서 내어 주었다. 언니와 엄마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나는 시댁에 왔다. 몸이 불편하신 아버님, 아버님 수발로 지치신 어머님께 사랑을 듬뿍 드리고, 앞으로 두분이 사시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덜 들 수 있게 해드릴 게 없는가 살펴보고, 폐 수술 이후에 몸이 많이 쇠약해진 시누이, 심장이 안좋은 형을 찾아가보고… 이렇게 노년을 맞은 온 식구를 만나는 것으로 여행 일정이 채워져졌다. 남편과 나는 틈틈히 우리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우리의 삶도 좀 돌아보고 미래 계획도 다져보기로 했다. ———- 1 년 반만에 하는 여행인 것도 있지만 코로나 이후에 공항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간 적이 없는지라 매사가 새로웠다. 남편은 나랑 여행하는 게 기쁜지, 비행기 여행 중,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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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에 나타난 돌아가신 이모님부모님 이야기 2021. 6. 18. 09:50
남편과 시댁에 갈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표를 예약한 뒤 숙소를 찾아보던 중이었다. 에어비엔비로 시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파트를 예약을 한 뒤 주소를 받았다. 구글 지도로 거리를 가늠해보고, street view 로 집 주위 환경을 관찰해보고 무심코 마우스를 움직여 시댁 주소의 street view 를 열었다가 우리는 둘 다 화들짝 놀랐다. 쟈닌이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쟈닌이 현관에서 문고리를 잡고 뒷모습이 구글 street view 사진에 찍힌 것이었다. 90 세가 넘는 연세에도 똑바른 등, 편하면서도 세련된 색감의 옷,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하얀 지팡이. 너무도 친숙한 쟈닌의 모습이었다. 언제고 돌아서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헬로!” 하고 인사를 할 듯하다. 쟈닌을 이렇게 보는 건 참으로 신기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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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공처가 아담과 걸 크러쉬 이브모성- doodle 2021. 5. 25. 02:23
이브는 아주 매력적인 여인이다. 호기심, 창의력, 사고력이 풍부함. 말발이 세다. (돌아보면 우리 주위에 이런 여성들 많다. 이브의 후예!) 뱀이 ‘하나님이 에덴 동산의 과일들 먹지 말라고 하셨냐’ 고 하니까 이브는 담박 ‘아니, 선악과만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고 덧붙여 이야기한다. 즉 ‘먹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명령에 자기의 해석을 가해서 그 명령이 한층 더 엄격한 것으로, 그래서 선악과가 한층 더 탐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뱀이 유혹 후, 선악과를 바라보는 이브의 눈은 열망의 꿀이 뚝뚝~ 떨어졌던 것같다. 선악과를 ‘먹음스럽고’ (입맛) ‘보기에 아름다우며’ (시선강탈),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고 이브는 자신의 호기심과 소유 욕구, 시식 욕구를 감각적인 언어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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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필사스치는 생각 2021. 5. 20. 07:51
오후 2 시, 하루의 반이 지났다. 청소가 끝난 뒤 손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널고, 빗자루로 베란다를 쓸었다. 창문을 열고, 반대편의 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이 통하고, 신선한 공기가 내 방을 채운다.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고 Oswald Chambers 의 책, “My Utmost for His Highest” 필사를 했다. 펜에 잉크를 찍을 겸, 눈을 쉴겸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베란다에 걸려있는 빨래들이 시야를 채운다. 바로 그 뒤로 하늘이 파랗고, 밝은 햇살에 나무들이 봄바람게 가볍게 춤추고 있건만.... 구석에 거구로 세워진 빗자루에 눈이 간다. ‘앗, 빗자루를 제자리에 놓는 것을 잊었었네. ‘ 등의자에 걸려있는 빨주노초파남보 화려한 색깔의 멕시코 담요도 나의 시선을 뺏는다. ‘아, 먼지를 턴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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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늙어서 미안해모성- doodle 2021. 5. 17. 14:41
나의 딸은 22 세, 어른이 다 되었다. 나와 키 차이가 많이 난다. 같이 다니면 꼭 내가 '엄마' 손을 붙들고 다니는 것 같다. 운전부터 주문, 계산, 문의 모든 것들을 랄라가 전담하고 키가 작은 이 '꼬맹이' 엄마는 그냥 옆을 졸졸 쫓아다니기만 한다. 무척 편하다. 랄라와 함께 있으면 나의 함께 사는 친정 어머니가 하시는 말이 이해가 된다. 내가 엄마를 모시고 병원, 식당, 쇼핑 등을 나서면 엄마는 "아아, 딸이 다 해주니 이렇게 편하구나!" 하시곤 한다.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서서히 우리의 '엄마-딸'의 역할이 역전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제 딸과 나의 역할이 바뀌어가는 것이다. 내가 어쩌다 몸이 피곤한 날, 그것을 단박 알아차리는 것은 친정 어머니, 내가 쉬게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딸이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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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날과 ‘김치 기도’엄마 2021. 5. 13. 02:41
어머니 날이 되기 일주일 전에 엄마는 꽃 선물을 받으셨다. 청소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들이 엄청나게 큰 꽃다발을 화병에 담아와 엄마께 드렸다. 며칠 후, 딩동! 소리에 문을 여니 아버지 수발 들 때 일을 했던 분이 꽃다발을 품에 안고 서 있었다. 백신을 맞은 그녀와 엄마는 환호하며 껴안았다. 생각지 않았던 꽃 선물 덕에 우리 거실은 ‘꽃폭탄’을 맞은 것같이 되었다. 딸아이는 ‘오, 너무 예뻐요!’ 환호하면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아줌마들께 달려가 스페인말로 떠듬떠듬 감사인사를 했다.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직진하는 남편은 거실 한 중간에 놓인 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기 서재로 향하기에 내가 ‘옆을 봐봐!’ 라고 외쳤더니 꽃을 보고 놀라서 “오, 오, 오, 오~원더풀!’ 찬탄했다. 멕시코 아줌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