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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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기도스치는 생각 2021. 7. 29. 23:04
3 주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말을 많이 한 여행이었는데도 마치 기도를 오래 한 피정을 다녀온 듯 정신이 맑고 몸도 예상보다 훨씬 더 가뿐하다. 그 이유는 여행 중 글을 많이 쓸 수 있어서였다. 블로그에 올린 글이 열 개가 넘고, 그냥 따로 쓴 글도 여럿이다. 매일 아주 바빴지만 아침 일찍, 저녁 늦게 생각을 글로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고, 숨가쁘게 지나가는 순간들을 잡아서 기록하고 이미 지나가 버린 일들을 다시 기억해내 글로 옮긴 덕에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시간을 잡으려 허둥지둥하는 꼴이 아니라, 내가 시간의 고삐를 잡고, 삶의 주체로서, 내내 평온한 마음으로 지냈다. 글쓰기의 기도 효과. 매일 기도를 하면서 건강한 ‘기도 근육’을 키워나가다보면 번잡스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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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스치는 생각 2021. 7. 19. 17:53
벨기에에 오자마자 우리는 아버님이 웃지 않으시고 말씀을 안하신다는 사실에 적지 않이 놀랐다. 아버님은 원래부터 좀 걱정이 많으신 성격이긴해도, 바로 그런 부정적 성향을 십분 활용해 농담도 잘 하시고 대화를 즐기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봉쥬르, 아버님!” 하고 인사를 드리면 “글쎄….” 라고 하시면서 얼굴을 찡그리시고 아버님이 어디가 불편하신가에 대한 대화 몇 마디 주고 받은 뒤에 혼자 가만히 우울한 생각에 잠기어 계시곤 했다. 친정 아버지도 넘어지신 뒤 몸을 못 쓰게 되시자마자 극심한 우울증에 걸리셨던 적이 있어서 시아버님의 우울함이 생소하지 않다. 그러나 팔을 가슴 높이로 올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장애의 상태가 심각했던 아버지와 달리 시아버님은 정상적으로 걷는 것만 못하실 따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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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스치는 생각 2021. 7. 19. 08:55
2018 년, 브러셀에 가족 여행을 왔을 때 아주 아주 아주 힘든 일이 생겼었다. 아니, 아주 힘든 일이 있었음을 발견했다고 해야 맞겠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로 놀랐고, 미안했고, 안타까웠고, 아팠다. 원래는 브러셀 가족 여행이 아니라 남편과 나, 단 둘이 퀘벡 여행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부부 여행이 아니라 가족 여행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전면 수정해서 ‘가족 여행’이라는 구실로 아이들과 브러셀에 왔는데 암스테르담에서 브러셀 도착하는 날, 큰 일이 터졌고 2 주 내내 마음 고생하고, 다시 계획을 수정해서 아이들과 런던에 가서 다들 마음을 추수린 뒤 집으로.. 두 번 바뀐 뒤죽박죽 일정, 비행기 표를 구할 길 없어 아들, 딸, 나와 남편, 다 따로따로 비행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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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스치는 생각 2021. 7. 18. 01:50
폭우를 뚫고 에어비엔비 이사를 했다. 남편이 비가 약간 수그러졌을 때 시동생이 빌려준 전기 자전거를 타고 (빨리 달릴 수 있으니까) 어머님 댁에 잠깐 들렀다가, 바지가 너무 젖어서 드라이어에 말리고, 자전거 안타고 우비 입고 걸어 돌아왔다. ‘비가 대단하네…’ 우리는 이사를 하느라 바빠 뉴스를 못 들었다가 시동생 집에 저녁 먹으러 갔을 때 벨기에 동남부를 강타한 폭우와 홍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쌍동이 조카들이 마르세이유에 캠핑을 갔다가, 어제부터 현재 홍수 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에서 캠핑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홍수로 취소되어—-캠핑 하고 있는 중에 물난리 났으면 큰일이었겠지요—-무사히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온 식구들이 마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환영하듯이 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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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러셀의 택시 기사—수호기사스치는 생각 2021. 7. 16. 21:55
시동생 집에서 저녁을 먹고 에어비엔비 숙소로 가려고 택시를 주문한 시각은 자정이었다. 여자 조카 중의 한 명이 우리 에어비엔비 근처에서 살아서 우리와 택시를 같이 타고 가다 내려주기로 했다. 조카의 아파트는 중심가에 위치해있었다. 브러셀의 옛 아파트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아파트의 문들은 창문이 없는 큰 철문/나무문이고 열쇠로 열어야한다. 우리와 작별인사를 하고 내린 조카가 내려서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려고 하는 내내 택시가 가만히 서 있었다. 남편은 기사가 다음 행선지인 우리 주소를 못 찾는 줄 알고 “xxx 아뷔뉴 루이즈 입니다” 라고 주소를 말해줬다. 기사가 “주소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 여자분이 안전히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려고 기다리는 거에요” 라고 했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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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카테고리 없음 2021. 7. 15. 16:51
도착한 지 열흘이 되는 오늘 숙소를 옮긴다. 열흘,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낸 이 집을 떠나 2018 년, 우리 온 가족이 함께 묵었던 에어비엔비 숙소로 옮긴다. 열흘간 마치 잘나가는 연예인 수준의 바쁜 일정을 소화했지만 오늘은 이사하는 날이라서 종일 계획이 없고 저녁에 시동생 집에 가서 조카들과 밥을 먹을 예정이다. 새로 가는 에어비엔비에서 청소때문에 체크인을 5 시로 해달라고 했는데 다행히 지금 에어비엔비 주인이 우리더러 내일 아침에 나가도 된다고 해서 천천히 짐을 꾸려도 된다. 오늘은 비가 아주 많이 온다. 바로 8 시간 후부터 무척 그리워하게 될, 커다란 유리창으로 보이는 비오는 브러셀. 천천히 짐을 꾸리면서 창밖의 비를 만끽할 것이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들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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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메 여사 생신 축하엄마 2021. 7. 13. 18:15
봄메 여사가 …에….아….. 2021-1934= ? 생신을 맞으셨다. 벨기에로 떠나기 전 날이 생신이어서 분명 짐싸느라 경황이 없을 것이라 미리 축하를 했다. 연세가 연세인만큼, 한번 축하로는 성이 차지 않아 두 번! 여전히 우리 집안의 이벤트 메니저인 딸아이가 도움을 줬다. 엄마가 온 식구를 해변의 식당으로 초대해주셨다. (수호야, 너가 왔을 때 갔던 식당이야) 다음에 이벤트, 이번 생일의 서프라이즈, 떡 케이크! 55 년 전, 엄마가 젊었을 때, 고생스러웠지만 행복했던 태능의 집을 추억하며, 연탄!! 우리가 태능에 살았던 때가 이미 55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여대 옆의 하얀 울타리, 장미꽃이 만발했던 작은 우리집은 그 시대의 여느 집과 다름없이 연탄을 땠었고, 어린 아이가 젓가락을 처음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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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안마/ 브러셀의 하늘카테고리 없음 2021. 7. 13. 09:54
백신을 받으신 아버님이 시동생의 부축을 받아 50 미터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드셨다는 희보가 날라왔다. 6 월 초에도 집 근처의 카페에 가셔서 점심을 드셨다는 소식이 왔다. 우리는 아버님이 점점 회복되시는가보다, 이번에 가면 우리도 아버님 모시고 나가자! 들떠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하기 하루 전, 아버님이 극심한 통증으로 거동을 못하시게 되었다. 1 주일이 지났지만 아버님은 여전히 의자/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신다. 나는 애초에 아버님을 맛사지 해드리려고 크림을 챙겨왔지만 통증으로 너무 고통스러워하셔서 혹시나 내가 아버님 몸을 만지다가 잘못될까봐 두려워 마사지를 삼가했다. 사흘 전에 아버님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 병원에서 아버님 발을 손질하는 사람이 파견되어 왔다. 그가 아버님의 양말을 벗기는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