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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Speical Sister"--뇌성마비 여동생을 기리는 오빠의 부고
    스치는 생각 2021. 9. 24. 08:11



    지난 일요일 아침, 평상시처럼 커피를 마시면서 엘에이 타임스 신문의 부고란을 읽고 있었다. 짧은 한 부고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A Special Sister" 라는 타이틀 바로 밑에는 "욕심과 걱정이 전혀 없었던 나의 여동생을 기리며"라는 부제가 따랐다.

    장애인 여동생의 이야기구나 싶었다. ('special' 은 '특별한'이란 의미 말고도 '특수 장애를 가진'이란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A Special Sister"라는 타이틀은 특수 장애를 가진 누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가가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짧은 한 문단에 이미 감동이 왔다.

    나는 지난 10 여년간 열심히 부고란을 읽었지만, 가족이 아닌 한 사람이, 그것도 망자의 자녀가 아닌 오빠가 동생을 위해 올린 부고는 처음이어서 흥미로웠다. 동생이 올해 61 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구나.. 내 또래네... 나는 재빨리 부고를 읽어 내려갔다. (편의상 대강 번역함)

    "선천적으로 뇌성마비로 태어난 카렌이 아는 단어는 세 개 였다.
    1)'엄마.'
    2) '도널드'(카렌은 맥도널드 버거를 좋아했다).
    3) '피아노.' (그녀는 음악을 사랑했다.)

    지난 2 년간 코로나로 카렌을 만나는 것은 극도로 어려웠고, 최근에서야 우리의 삶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우리 아버지는 2007 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올해, 2021 년 5 월에 돌아가셨다.

    내가 카렌을 마지막으로 본 날, 우리는 (여럿이 같이 페달을 밟는) 자전거를 탔다. 카렌은 소리 내어 웃고, 박수를 쳤다.
    호수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카렌이 '엄마, 엄마' 라며 엄마를 찾았다.
    나는 카렌의 손을 잡고 "엄마는 더 이상 여기에 계시지 않아"라고 말했다. 카렌은 전혀 하지 않던 일을 했다.
    자신의 머리를 나의 어깨에 기대었고,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다. 카렌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었다.

    2 주 후, 카렌은 세상을 떠났다. 엄마와 무척 함께 있고 싶었던 것 같다.
    카렌아, 내가 한 번만이라도 더 너를 웃게 해 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너를 필요로 했단다. 사랑해.
    오빠, 에릭.'


    이제까지 읽어왔던 그 어떤 부고문보다 먹먹한 감동을 준 카렌의 부고에 나는 눈물을 훔치면서 기사를 사진 찍었다.
    맞은편에 앉아서 신문을 읽던 남편이 왜 기사 사진을 찍냐고 말했다.

    "이 부고문 평생 간직하고 싶어서.. 부고를 쓴 이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고 싶어. 엘에이 타임스에 보내면 전해줄까?"

    하며 남편에게 부고 내용을 읽어주었다.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의 눈이 얇게 떨리는 것을 보니 그도 감동을 받은 게 역력했다.
    금방 사라지지 않는 감동에 나는 남편에게 두서없이 이야기했다.

    "이 짧은 부고가 나에게 너무 많은 생각을 일으키고 있어. 당신이 병상에 누워있는 친정아버지께 미국에서 같이 살자고 하면서 "아부지, we need you. We want you" 했던 게 생각나더라.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당신이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아버님을 모시고 나가 산책시켜드릴 수 있다면...' 라면서 슬퍼했던 것도…생각나고. 카렌의 웃는 모습에 아버지 웃는 모습이 떠오르고. 왜 모든 게 다 겹쳐서 읽혀지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눈물이 나."

    남편이 말했다. “엘에이 타임스에 편지를 보내면 오빠에게 전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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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침 신문을 열었는데 작은 헤드라인에 'A Special Sister' 란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엊그제 읽은 부고문을 떠올리는 그 구절이네?
    아, 이게 여동생과 오빠의 사진이구나! 내 마음에 곱게 간직했던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사진으로 보니 너무도 반가웠다.


    기사를 읽어보니 나만 감동을 받은 게 아니었다. 카렌의 부고가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는 기사였다.
    기사는 기자가 어떻게 카렌의 부고를 접하게 되었는지, 인터넷 상의 뜨거운 반응에 대한 오빠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장애를 가진 카렌과 가족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등등 내 궁금증을 다 풀어주었다.

    모든 일의 시작은 기자의 부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도 나처럼 부고란을 즐겨 읽는지, 일요일 아침 부고를 읽던 그녀는 눈물을 삼키면서 자기가 읽은 부고를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기자도 부고를 읽은 뒤 먹먹한 감동을 느꼈고, 부고가 사망한 여동생의 '본질'을 잘 그려내고 있지만, 동시에 그녀의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해 트위터에 올렸다.


    그의 트윗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루 만에 그의 트위트는 184,000 개의 좋아요를 받았고, 20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코멘트를 남겼다.
    트위터 기록에 따르면 자그마치 천만 명이 트윗을 읽었다. (현재 그 트윗은 250 만 5 천 개의 좋아요에 3천 개의 댓글이 달림)

    기자는 부고의 저자인 카렌의 오빠, 에릭이 소셜미디어 상에서의 열렬한 반응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에게 연락을 취했고, 인터뷰를 한 뒤 기사를 썼다.
    다음은 기사 전문.
    https://www.latimes.com/california/story/2021-09-20/la-me-obits-karen-sydow

     

    How a brother's obituary for his 'Special Sister' became a poignant internet phenomenon

    Erik Sydow's tribute for his sister, Karen Sydow, who had cerebral palsy, struck a chord online — and that has left Sydow, who remembers his sister as a "warmhearted little girl," deeply moved.

    www.latimes.com


    카렌은 1959 년 생으로 뉴욕주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그녀가 뇌 성마 비인 줄 3 세까지 모르고 있다가 뇌성마비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에게 필요한 케어를 해주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더 나은 의료 케어를 받을 수 있게끔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했다.

    카렌네 가족의 주말 전통은 카렌을 즐겁게 해주는 '맥도널드가서 버거 먹기' 전통이었다. 맥도날드가 가까운 거리에 위치했지만, 아버지는 차를 몰고 멀리 있는 맥도날드로 가곤 했다.
    왜? 카렌이 자동차 타는 것을 좋아해서 차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니까...

    이후 요양시설에서 살게 된 카렌을 방문할 때마다 에릭은 가족의 맥도날드 전통의 한 일환으로 카렌이 가장 좋아하는 치즈버거, 프렌치 프라이즈, 코카 콜라를 사다 주곤 했다고 한다.

    카렌이 어렸을 적, 아빠가 직장에서 돌아와 잠시 낮잠을 자는 동안 카렌은 아빠의 등에 기어올라가곤 했다.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그 전통은 호스피스에서 아빠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아버지는 쇠약하셨음에도 카렌이 기어 탈 수 있게 해 주셨어요. 제가 '아빤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 고 했지만 아빠는 꼼짝 않으시면서 동생이 올라탈 수 있게 해 주셨지요."

    카렌과 에릭의 아버지는 2007 년에 돌아가셨다. "여동생은 아버지께 제1 순위였어요. 돌아가시면서 별다른 말씀/지시를 남기지 않으셨지만.... 그저 카렌이 계속 행복하기를 원하셨지요."

    그리고 카렌은 행복했다. 30 년간 복지 센터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피아노 레슨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아냈다.

    에릭은 케어가 필요한 친척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지 않는 사람들이 실망스럽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가족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거나, 장애를 부끄러워해요. 전 그런 게 못마땅해요."

    에릭이 카렌을 마지막으로 본 날, 그들은 호수 공원에서 가족용 자전거를 탔다. (여러 명이 타고 함께 페달을 밟는 자전거).
    바람으로 얼굴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에 즐거워하고, 자전거의 벨소리에 소리 내어 웃었던 카렌.
    이제 에릭은 부모님과 카렌의 유해를 (가족들이 매년 휴가로 갔었던) 캄브리아의 조용한 해변에다 뿌릴 계획을 하고 있다.

    에릭에게는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 또 하나 있다.
    동생을 방문할 때마다 헤어지기 전, 그는 그녀를 껴안고 키스를 해주곤, "사랑한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약 10 년 전쯤, '피아노' '엄마' '도날드', 세 단어만 알고 있는 동생이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동생이 두 번 말했어요. 아주 똑똑하게. 'I love. I love'라고. 그렇게 말한 것은 그날 딱 한 번이었답니다."

    그는 무엇이 동생으로 하여금 'I love. I love'라고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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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심도 없고, 걱정도 없고, 단어 세 마디로서 살아온 카렌이 이해했던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녀는 '사랑'이라는 추상적이고 심오한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또한 '엄마. 엄마' 하며 엄마를 찾던 카렌은 '죽음'이란 개념을 어떻게 이해한 것일까?  알듯하면서 알지 못하겠는 게 그녀의 감정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있다. 특수한 (special) 장애를 갖고 있는 카렌의 존재에 식구들은 모두 행복을 느꼈고, 그녀가 행복할 수 있게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임종 직전의 아버지도 그러했고, 매번 맥도널드 햄버거를 챙겨서 방문한 오빠도 그러했다.
    부고의 마지막 부분, "I needed you too"는 보살핌의 대상과 보살핌의 주체의 관계가 일방통행이 아님을,  보살펴주는 이는 보살피는 가운데 엄청난 사랑의 경험을 하고, 그 사랑은 그 사람의 삶에 행복과 의미를 줄 수 있음을, 간략하나 웅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카렌의 오빠는 사람들이 흔하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고받는 알러뷰란 말을 동생으로부터 평생 단 한번 들었지만 10 년 후에도 그 말을 들었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가 받은 감동은 이후 수십 년 후 그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생생할 것이다.

    사고/언어 체계가 극도로 단순하여 아무런 표현을 못하는 카렌이지만, 그렇다고 그녀에게 표현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기쁨으로 반응했다. 웃음으로, 박수로서, 그 떨리는 행복감을 표현했다.
    복잡한 인간관계, 언어 체계 속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기쁨의 순수한 표현은 그녀의 가족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행복은 그녀에게 행복을 주려고 노력을 했던 가족에게는 커다란 선물이었고, 그녀는 가족에게 '짐'이 아니라 '필요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special sister 인 것이다.

    'A Special Sister' 이야기는 대가 없이 주는 특별한 사랑 (special love)과 그 희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수 장애, 불구, 노년 등,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돌보면서 사랑과 행복을 경험한 가족, 친지들은 누구나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을 것이다.
    기자가 인용한 자신의 트윗에 대한 댓글을 보면 공감의 폭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 수 있다.

    카렌의 선생님이었다고 자신을 밝힌 한 여성은 "모든 학생들은 소중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누군가의 아기이던가, 형제자매이던가, 사랑받은 존재이기 때문이지요"라고 썼고,
    뇌성마비 자녀를 둔 부모들은 돌봄의 기쁨과 고통에 공감했다. 어떤 어머니는 자신의 뇌성마비 아들에 대해서, "나의 아들은 어메이징 한 사람이에요. 우리가 서로에게 작별을 고하게 될 시간이 두렵습니다"라고 했다. 에릭의 글에 대해서 '부고문의 목적이 독자가 망자에 대해 잘 알게 해 주고, 그래서 그의 사망을 애도하게 하는 것이라면, 카렌의 오빠가 그렇게 짧은 글에서 그 목적을 달성했다는 게 놀랍다' 라며 '에릭, 당신의 여동생을 우리와 함께 공유해줘서 고맙습니다'라고 감사를 표현한 독자도 있었다.

    '주는 사랑, ' 특히 '대가 없이 주는 사랑'은 대부분 '희생', '안타까움, ' '고생'의 한정적 프레임으로만 인식되기 마련이다.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무조건 적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은 종종 오해의 대상이 되곤 한다. (예를 들어, 너무 힘들겠다, 분명 우울할 것이다. 희생이란 위험한 것이다 등등).
    그런 프레임을 깨기는 쉽지 않다. 왜냐, 실제로 대가 없는 사랑은 위험한 것이고, 희생은 조심해야 할 일이고, 남을 돌보는 일은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막에 피는 선인장 꽃처럼, 간혹 가다는 그런 프레임의 밖에서, 척박한 토양에서, 고통 중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있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이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고, 그와 함께 하는 순간이 행복하니, 그를 돌보는 것이 희생도 아니고 아닌 그런 관계가 존재한다.
    그 누구도 특수 장애, 불구, 노년 등의 상황을 원하지 않겠으나, 그런 역경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역경 덕/분/에 ‘스페셜'한 사랑이 태어나는 것.
    그러한 역동적인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누구든 카렌의 가족의 이야기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를 잃고 공감하고,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는 것이리라.
    나도 그중 하나이고...

    카렌의 이야기는 참 고무적이다. 장애를 가진 딸/여동생과 나눈 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한 오빠의 목소리는 하나였지만, 그 이야기에 반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기억, 사랑에 대한 감사, 감동의 메시지는 하나의 노래를 부르는 합창이 되고 있다.  
    부고를 읽을 때 나는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하고 그 사랑의 열매인 행복을 누린 가족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그 가족과 공감하고, 가족을 격려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존재함을 알게 해 준 기사는 나에게 희망을 준다. 힘이 난다.



    이 세상에 밝은 빛을 남기고 간 카렌,
    Rest in peace!

    카렌의 어머니가 직접 만든 맥도날드 유니폼을 입은 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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