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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러셀 일지 1: 출발 전카테고리 없음 2023. 3. 17. 18:41
시어른들을 돌보러 브러셀에 왔다. 두 달 전, 어머님이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완화치료를 받으시게 된 뒤 두 분이 한 방을 쓰시는 게 불가능하게 되었다. 시아버님이 독실로 옮기신 뒤 우울증에 빠지셨고, 동시에 지력과 표현력도 급격히 저하되시고 계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치매가 오셨다는 말도 들렸다. 남편과 나는 약간 안타까웠다. 아버님과는 대화를 하려면 노력이 필요한데 그만한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는 듯해서였다. 우리 생각에 보청기의 도움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청력이 안좋아지셔서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어쪄면 약간 극복이 가능한) 여러 요인이 있었다. 첫째, 아버님의 소극적 성격에 대한 이해. 항상 어머님을 통해서 남과 대화를 해오신 아버님이 갑자기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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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심리치료카테고리 없음 2023. 3. 8. 15:27
작년 말, 이스라엘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시어머님 건강 악화로 남편이 급히 브러셀로 떠난 뒤 마음이 무척 무거워 글을 쓸 수 없었을 때였다. 나는 삶에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마다 글쓰기라는 therapy를 통해서 극복해 왔는데 글을 쓸 수 없으니 참 힘들었다. 집중해 글 쓸 시간 없어서, 혹은 시간은 있는데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또는 시간도 있고, 육체적 힘도 있는데 의욕이 안 나서.... 필사도 중지. 글쓰기도 중지. 펜과 나는 멀어졌다. 다행히 내 어두움의 원인을 찾았다. 지난 10 년간 내가 적절히 애도하지 않았던 많은 '상실' 들. 숨차게 그저 앞에 닥치는 일만 해결하면서 달려오다보니 미처 돌보지 못했던 너덜너덜해진 마음. 오빠의 죽음, 부모님의 집과의 작별과, (부모님, 오빠, 언니 나로 이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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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짐정리와 성찬카테고리 없음 2023. 3. 7. 06:16
남편이 작년 11 월, 급히 벨기에로 떠났다. 시댁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식구들은 저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여 부모님을 돕고 있었지만 그래도 할 일이 많았다. 뭐라도 도움이 되려면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의 암이 온몸에 전이가 되어서 치료가 가능하지 않다는 진단이 나온 뒤 온 가족은 이제까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즉, 어머님이 아버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상황--에 직면했다. 어머님은 당신이 떠나신 뒤에 아버님의 케어를 고려해 요양원에 들어가시겠다고 하고 당신이 살아계시는 동안 집을 처분하고 싶다고 하셨다. 시누이, 조카 두 명(시누이의 두 딸), 그리고 시동생은 각자, 그리고 어떨 때는 함께, 요양원들을 방문해서 부모님께 맞는 시설을 찾고 어머님을 모시고 가서 확인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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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는 날~~~카테고리 없음 2023. 2. 24. 01:36
오늘은 엄마와 병원 가는 날~~ 아침 7 시 현재, 엄마는 지금 트레드밀에서 아침 운동을 하고 계시다. 나도 아침 운동을 마쳤고 조금 있다가 엄마도 나도 샤워하고, 꽃단장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병원에 가려고 한다. 어머니가 다니는 병원은 생전의 아버지가 다니셨던 곳,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정기검진, 백신 접종을 위해서 꽤 자주 드나들었던 병원이다. 품에 안은 젖먹이 아기가 주사를 맞고 자지러지게 울 때 안절부절못했던 초보 엄마였던 나는 몇 년 뒤에는 고만고만한 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와서 번갈아가면서 접종을 할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병원의 고통을 감지하고 생떼를 부리거나, 아이들이 듀엣으로 울어댈 때 진땀을흘렸던 곳... 예측할 수 없는 대기 시간, 대기실에는 장난감이나 놀이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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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 이민자의 '미니' 대가족카테고리 없음 2023. 2. 21. 17:17
친척이란 참 소중한 존재이다.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에만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밥을 먹는 관계든, 자주 교류하면서 친하게 지내든, 함부로 끊을 수 없는 친척이라는 운명적 관계가 참으로 소중한 것임을 나는 핵가족 이민자로 살면서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결혼하자마자 멀리 떨어져사는 벨기에-한국 식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는 매년 번갈아가면서 벨기에-한국을 번갈아가면 방문했고, 양가 부모님들은 매년 미국에 오셔서 적어도 한 달씩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하셨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가 벨기에/한국을 방문하는 것보다 양가 부모님들이 미국 여행을 오시는 게 그들에게 더 즐거운 일이다 싶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한국 여행, 벨기에 여행 횟수가 줄어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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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동급생엄마 2023. 2. 18. 05:34
이스라엘 어머니,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나의 세 어머니들은 개인적으로는 모르는 사이. 남편과 내가 각자의 본국 (한국/벨기에)이 아닌 제3 국가에서 살다 보니 시댁/친정 식구들이 만나는 것이 어렵다. 1996 년, 미국에서 결혼식 때 시어머니와 어머니가 처음 만났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시아버지는 2016 년에야 처음으로 나의 부모님을 만나셨다. 친정 부모님이 우리 집에서 살고 계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시어머니와 엄마는 단 두 번 만나셨다. 나의 세 어머니들은 세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성격도 판이하게 다르고, 종교와 가치관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다. 평생하고 산 일도 다 다르다. 그들은 서로서로의 존재만을 알고 있었을 따름, 자신들의 삶이 바쁘다 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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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와 라이터카테고리 없음 2023. 1. 30. 01:36
작년 내내 많은 짐정리를 했다. 옷, 책, 부엌용품, 가구... 한국에서 부모님 집을 처분하면서 갖고 온 나의 옛날 편지들도 정리 대상. 유학을 떠난 뒤 7 년간, 그 후 결혼, 출산, 육아의 과정을 2002 년 정도까지 편지 또는 팩스로 보냈으니 편지들이 엄청 많았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편지만 왕창 썼던 듯... 새로운 세상을 설레임으로 경험하면서 나는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나를 믿고 보내준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결혼 적령기의 딸이 이스라엘에 간다는데 아무 소리 안 하고 격려해 주셨던 부모님, 그들 덕에 나는 '시집가야지!' '하필이면 이스라엘이냐!'라는 여러 사람들의 참견과 잔소리에 상처받거나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마음 편히 내 길을 갈 수 있었다. 나를 믿어준 부모님께 내 앞에 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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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의 어머니와의 작별 준비카테고리 없음 2023. 1. 27. 08:48
나는 지금 집에서 30 분 거리에 있는 beach town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흘 간의 휴가. 엄마의 권고와 축복으로 왔다. 엄마는 내가 맘 편히 여행을 갈 수 있도록 나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내가 잘할 테니까 내 걱정 말고 며칠이라도 너랑 에릭이랑 시간을 갖고 와라.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말고 그저 너만을 생각해라." 나는 엄마를 믿기로 했다. '요즘 엄마는 기침도 안 하시고, 피곤해하지도 않으시고 드물게 건강하신 편이다. 집에서 20 분 거리에 가는 거니까 필요하면 언제든 집에 올 수 있으니 괜찮을 거다. 해외가 아니고 시간대가 같으니 내가 수시로 연락을 할 수 있다, 엄마 방에 설치해 놓은 nanny cam으로 엄마의 안녕을 관찰할 수 있다...'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면서 집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