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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동급생
    엄마 2023. 2. 18. 05:34



    이스라엘 어머니,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나의 세 어머니들은 개인적으로는 모르는 사이.

    남편과 내가 각자의 본국 (한국/벨기에)이 아닌 제3 국가에서 살다 보니 시댁/친정 식구들이 만나는 것이 어렵다. 1996 년, 미국에서 결혼식 때 시어머니와 어머니가 처음 만났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시아버지는 2016 년에야 처음으로 나의 부모님을 만나셨다. 친정 부모님이 우리 집에서 살고 계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시어머니와 엄마는 단 두 번 만나셨다.



    나의 세 어머니들은 세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성격도 판이하게 다르고, 종교와 가치관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다. 평생하고 산 일도 다 다르다.
    그들은 서로서로의 존재만을 알고 있었을 따름, 자신들의 삶이 바쁘다 보니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지가 없었다. 최근까지.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그들은 변했다. 그들은 자주 다른 이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듯하고 나와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마다 꼭 다른 어머니들의 안부를 묻는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어머님은 나와 줌 채팅을 시작하면 일단 나의 안부를 묻고 그다음에는 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시어머님은 시어머님대로 나에게 나의 친정어머니와 이스라엘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최근 극심한 고통 속에 환각 상태에 빠져서 금방 돌아가시나 온 가족이 걱정했던 시어머니는 의식이 깬 뒤 나와 통화를 하면서 엄마의 안부를 물으실 정도로 엄마를 생각하신다. 엄마도 혼자 사는 이스라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셨고, 본인이 항암치료를 받고 돌아온 뒤에는 '이렇게 힘든 치료를 너의 시어머니는 오래 받으셨구나. 얼마나 괴로우셨겠니..' 안쓰러워하셨다. 노년과 질병의 동급생인 그들은 친한 짝꿍을 챙기듯이 서로를 마음으로나마 챙기고 산다.

    몇 주 전 주말, 나는 두 어머니들--벨기에의 시어머니, 이스라엘의 양어머니--과 각기 다른 시간에 대화를 나누었다. (이스라엘 어머니는 금요일 아침, 시어머니는 토요일 아침)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분이 다 '나는 존엄사를 원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어머니와 대화 중 내가 4 월에 이스라엘 어머니를 방문하러 갈 비행기 표를 구입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니 어머님은 반색하시면서 "네가 오기 전에 여러 건강 검진을 다 끝마치고 네가 온 다음에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겠다"라고 계획을 세우시던 중 지나가는 말로 "3 월에 병원에 가서 무슨 검사를 해야 하는데 마취를 해야 하고, 보호자가 동반해야 한다고 해서 고민이네"라고 하셨다.
    "왜 고민이세요?"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잖아."
    "아니,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 둘, 딸, 다 어머니가 말씀하면 달려올 텐데, 뭐가 문제세요?"
    "나도 알아. 내가 부탁하면 오겠지. 그러나 내 일로 아이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자율성을 잃게 되는 노년의 불행, 독립성을 잃은 삶의 무의미함 등등으로 이야기는 흘렀고 결국은 '그렇게 사느니 존엄하게 죽고 싶다' '나는 병원에서 죽지 않을 것이다' '내 집에서 내가 택한 시간에 깨끗하게 가고 싶다'로... 귀결되었다.

    다음날, 벨기에의 요양원의 시어머니와 화상채팅을 하던 중에도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존엄사 문제로 이야기가 흘렀다.

    "어머니, 요즘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라고 여쭸더니

    "아니, 수프는 구역질이 나서 못 먹고 야크르트랑 과즙만 간신히 먹고 있어. 먹는 게 없으니 변비가 생기고, 그래서 아주 불편해. 간호사들이 와서 배변을 도와주는데 그거 할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어."라고 하셨다. '힘들다'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의미했다.
    시어머니는
    "이렇게 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 나는 이미 존엄사 서류에 사인을 했다."라고 하셨다.
    시어머님은 당장 모르핀을 주입받고 있으셔서 통증은 없고, 가족들이 (대가족) 합동해서 하루도 혼자 계시는 일이 없게끔 문병을 와 돌 봐 드리 있다. 간병의 총책임자인 막내아들은 매일 출근해 세세한 필요를 다 돌봐주고 있기에 외롭다거나 버려진 듯한 기분을 느끼실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평생 자식들에게 베푸는 데만 익숙한 어머님은 이런 식으로 돌봄의 대상이 되어 받는 관심도, 사랑도 다 불편하신 것이었다.

    시어머니께 '바로 어제 이스라엘 어머니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다'라고 하니 어머님이 반색하셨다. "그렇지? 그분은 내 마음을 알 거야. 마음 불편하게 몸만 살면 뭐 하니. 너의 이스라엘 어머니도 자식 힘들게 하면서 사는 걸 원치 않는 거야 '라고 하셨다.

    시어머니가 단호한 어조로 "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고, 행복했어.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내게 그 모든 아름다운 기억들을 다 지워버리고, 내 삶을 처참하게 만들고 있어"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바로 하루 전, 이스라엘 어머니가 하신 말과 똑같은 소리여서였다.

    이스라엘 어머니는 "나의 삶은 풍성하고 아름다웠어. 나는 지금 노년의 여러 문제가 과거의 그 아름다움을 다 파괴하는 것을 원치 않아. 나는 사고할 수 있는 독립적 인간으로서 삶을 끝내고 싶어" 하셨고 한걸음 더 나아가 "흥미롭고 감동을 주는 영화를 본 뒤에 찰칵하고 티브이를 끄듯이, 그렇게 내 삶도 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라고 하셨다.

    '찰칵'=존엄사.
    존엄사를 원한다는 어머니들의 입장이 새롭거나 놀랍지는 않다. 지난 몇 년간 그들은 '지적 능력/ 육체적 독립성을 잃은 삶은 존엄하지 않다' '자식이든 남이든 의존하는 삶은 의미가 없다'라는 사고를 천명해 왔으므로. 단지 그들의 상황이 조금 긴박하다 보니 (이스라엘 어머니는 아직 큰 병은 없으나 건강에 적신호가 와 여러 테스트를 앞두고 있고. 시어머니는 전이된 암이 치료가 불가능하여 호스피스에서 완화치료를 받고 계시다) '존엄사'라는 개념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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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늬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두 어머니와 하상채팅을 한 뒤 나의 친정어머니께 우리의 대화를 전해드렸다. 존엄사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니 엄마가 담박,
    "어머니들의 마음, 나도 동감이야. 자식 힘들게 하고 죽는 것을 원하는 엄마가 어디 있겠니. 나도 현재 그게 제일 큰 걱정이야"라고 하셨다.
    엄마는 병상의 시어머니를 가여워하면서도 부러워하셨다.

    "너의 시어머니는 자식과 손자들이 많아 모든 일을 다 나눠하니까 얼마나 복이시니… 나는 너 혼자에게 모든 짐을 다 지워서 너무 미안해."
    엄마는 평생 남의 도움 안 받고 본인이 모든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혼자 할 수 없는 게 두 개 있었다고 하셨다. 그것은 '출산'과 '죽음' 이었다.
    "출산을 했을 때는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었어. 그런데 죽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 뒷정리는 누군가가 해줘야 하므로..."
    엄마는 평소에도 자주 하시는 말씀을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나의 걱정은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너에게 폐가 되는 거야. 내가 열심히 운동하고 노력하는 이유가 가능한 한 조금이라도 덜 너에게 짐이 되고 싶어서야. 하나님께 너를 힘들지 않게 하고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
    엄마께 그렇지 않다고, 그렇게 생각하시지 말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어머니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엄마도 이스라엘 어머니처럼, 시어머니처럼, 노년의 가장 큰 고민은 ‘사랑하는 자식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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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에게 그나마 작은 위로를 준 것은 '존엄사를 원하는 이스라엘 어머니'와 ‘이미 존엄사 서류에 사인을 한' 시어머니였다.
    그다음 주말, 두 어머니와 채팅을 하던 중, 그들은 친정어머니의 안부를 물었고 나는 엄마와 나눈 이야기를 했다. 이스라엘 어머니도, 시어머니도 열정적으로 반응하셨다.
    "그게 나의 마음이야! 너희 어머니는 나의 마음을 알 거야!" 라시면서.
    그러나 내가 '엄마가 이스라엘 어머니와 시어머니는 가까이 사는 자녀들이 힘을 합하여 간병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주 부러워하시고 계시다고 하면서 나의 엄마가 내가 모든 일을 다 혼자 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신다'라고 했더니 어머니 두 분 다 펄쩍 뛰셨다.

    시어머님은,
    "아아, 그건 아니지!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 팜펨아, 어머니께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전해줘. 에릭이랑 너랑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거야"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어머니 또한,
    "너의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는데.... 너와 너의 어머니는 평범한 관계가 아니야. 그러니까 현재 상황을 평범한 시각의 틀에 놓고 생각하시면 안 돼. 그런 생각하지 마시고 암 치료에 집중하셔야지!"라고 하셨다.
    본인들은 자식에게 폐가 되기 싫어서 당장 존엄사를 택하려고, 자식에게 폐가 되기 싫어서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하는 것조차 고민을 하시면서 나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자식에게 받는 도움에 불편해하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얼까? 자기와 다른 상황에 처한 한 자매 (나의 어머니)를 이해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는 그들의 배려가 고마웠다.
    어머니께 두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전해드렸다. 엄마의 평소의 생각은 변하지는 않은 듯하지만, 그러나 '어머니'라는 같은 입장에서 해주는 말씀에 약간 감동을 받으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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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마지막 챕터에서 마지막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는 세 분의 어머니. 필시 마침표를 먼저 찍는 분은 시어머니이실 것이다. 존엄사를 택하시기 전에 돌아가실 가능성조차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 세 분의 여정에 함께 하면서 나는 그들이 '노년''죽음'이란 공통분모 덕에 일말의 연대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는다. '딸 (혹은 딸 같은 며느리)"인 나도 그들이 공유하고 그들을 엮어주고 있는 공통분모이겠고.
    그들이 서로의 안부를 챙기면서 각자의, 그리고 함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 함께 하면서 나는 복잡한 감정에 빠져들곤 한다. 나 또한 노년의 입구에 서 있기에. 나 또한 육체적 질병이 있고, 죽음이란 먼 일이 아니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알 정도로 철이 들었기에, 그리고 나 또한 두 아이의 어머니이기에 세 어머니들의 공통된 고민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머니들이 존엄한 죽음,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를 원하시지만 그들의 죽음이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나도, 어머니들도 모른다. 당장은.
    존엄한 죽음을 원하시는 어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에 그들의 삶이 존엄할 수 있게끔 세심하게 챙겨드리고 도와드리는 것은 딸로서 나의 몫이리라.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작은 소포들을 보내드리는 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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