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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죽음의 외줄타기
    카테고리 없음 2022. 8. 4. 15:48




    의사에게서 엄마가 암이라는 전화를 받은 뒤 나는 다리에 힘이 빠졌다.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께는 어떻게 이 소식을 알리지... 그러나 사실대로 알려드려야 해...'

    아버지를 수발들면서 여러 어려운 일을 겪는 내내 좌절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던 나인데, 엄마 암 진단은 나를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그것은 내가 엄마를 아버지보다 더 사랑해서가 아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엄마에 대한 사랑은 '크기'의 차이가 아니라 '성질'의 차이이다.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나를 태아로 품으신 동안 나와한 몸이었던 나의 분신이다. 엄마는 나의 생명의 기원이었고 내 삶의 주축이다. 그 엄마에게 암이 생겼다니 내가 흔들리는 게 당연하다.
    나는 한참 동안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어느 정도 평정을 찾았다고 생각되어 엄마 방으로 갔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는 내가 입을 열기도 전, 내 눈이 퉁퉁 부은 것을 보시고는--만화에서 등장인물들이 의자에서 펄쩍 뛰어오르듯이--의자에서 펄쩍 일어나시면서 "아아아아! 어쩌지! 어떻게 하니! 어떻게 하니" 하며 비명을 지르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엄마가 당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 건가? 어떻게 아셨지? 의사가 나에게 이야기했는데?
    "엄마, 검사 결과가 안 좋아서 어떻게 하지? 엄마, 암이래요"라고 하는데 눈물이 터졌다.
    그러나 엄마는 안도의 표정으로 "아유, 다행이다!!"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뭐가 다행이라 시는 거지?

    "내가 낮에 만든 카레가 좀 짠 것 같아서 네가 그거 먹고 네가 혈압이 올라간 건 줄 알고 놀랐지 뭐니.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다"
    나는 황당해서 "엄마!!!!"하고 외쳤다.
    “엄마, 무슨 소리세요? 엄마가 간경화에 간암이라는 선고를 받으신 건데 …. 내가 점심 먹고 혈압이 오르지 않았다고 다행이라는 소리가 나와요?”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다행이지! 나는 아무래도 좋아. 암이면 어떠니. 두렵지도 않고 걱정도 없어. 여기서 살면 너랑 같이 있어서 행복하고, 죽으면 천국에서 아버지랑 신열이 만나고. 나는 어디든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잠시 후 엄마는 갑자기 눈을 꼭 감더니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그런데 내가 너를 힘들게 하면 어떻게 하니! 너도 몸이 약한데.... 그러면 안 되는데..."라고 하셨다.
    하아.... 이건 무슨 모성애?
    엄마가 본인의 상황에 낙담하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걱정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정신이 들었다. 나는 내 걱정보다는 엄마 걱정으로 눈물을 흘렸으니,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엄마를 위한 마음으로) 힘들어하면 그건 되려 내가 돌보려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니 내가 정신 차려서 엄마를 돌봐드려야 한다는 자각이 생겼다.
    "엄마, 우리 앞으로 잘해나갈 수 있을 거야. 우리 함께 잘 해나 가요."
    나는 나의 염원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그 후, '우리 함께 잘 해나 가요'라는 말은 사실이 되었다. 다 엄마 덕이다.



    병원에 가는 날은 즐거운 날!
    암 진단을 받은 뒤 우리는 바빠졌다. 동네 종합병원과 LA의 큰 병원에서 동시에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했고, 엄마께 다른 증상도 생겨서 따로 정밀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해서 병원 출입이 잦았다.
    엄마는
    "팜펨아, 우리 병원 갈 때 소풍 가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가자. 옷도 말끔하게 차려입고, 끝나고 나서는 좋은 식당에 가서 맛있게 먹고, 즐거운 하루로 보내자. 엄마가 돈을 풀 거야. 돈은 이럴 때 쓰는 거지!"라고 하셨다.
    나도 엄마도 병원에 가는 날은 파티에 가듯이 옷을 챙겨 입고, 기쁜 마음으로 길을 떠난다. 어떨 때는 병원에서 나와 곧장 식당에 갈 때도 있지만 간혹 피곤할 경우에는 며칠 후에 외출을 했다. 엄마가 항상 맛있는 것을 사주시면서 "아버지도 내가 너와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내려다보시면서 좋아하실 거야"라고 하셨다. 언젠가부터는 우리는 '수요일 데이트'라고 정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 데이트를 즐겨오고 있다. 엄마가 사주시는 것을 내가 흔쾌히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이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임을 알기에 맛있게 먹고, 감사드린다.




    삶의 주인의식
    암과 살면서 지극히 평온하신 엄마를 보면서 나는 처음에는 '엄마가 속으로는 두렵지만 내가 힘들까 봐 본인의 두려움과 걱정을 내색하지 않으시는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아님이 증명되고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마인드가 딱 엄마의 마인드였다. 엄마는 평생 그러했듯이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하루하루를 알차고 살고 계시다.
    엄마의 하루는 새벽 4 시 반-5 시에 시작한다. 일어나자마자 성경 읽기, 필사 후 아침 운동을 하신다. 서서한 체조, 매트리스에서 하는 요가, pilates ring으로 다리 운동, 균형 감각 돕는 메트에서 800 보 걷기, 플랭크가 엄마의 운동 루틴.

    언젠가 가족 여행을 갔을 때도, 엄마는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셨다. 나는 거실에 커피 마시러 나왔다가 엄마를 보고 잠이 덜 깬 상태로 사진을 찍었다.
    플랭크는 이 자세로 3 분은 거뜬히 하시고 가끔 4 분까지도 하신다.

    아침 식사 후에는 산책을 나가신다. 아침 산책은 엄마가 기도를 하시는 시간이기도 하다. 39 명의 사람들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기도를 하시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그 일정을 지키신다. 엄마는 "‘나’를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서 채우는 시간이 참 행복하다"라고 하신다.


    낮에는 끊임없이 일을 찾아서 하신다. 88 세의 연세, 암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여전히 부지런하시다. 또순이 살림꾼인 본인과 너무도 다른 '살림 패배자'인 딸을 도와주려고 호시탐탐 부엌에 나와 일을 하시기는 물론, 딸의 건강을 위해 인터넷으로 계속 비건 음식 레시피를 탐색하고, 여러 정보를 종합해 본인만의 레시피를 연구하신다. 손은 내내 바쁘셔서 헌 옷을 고치시고, 양말을 기우시고, 내 옷도 고쳐주시고... 엄마는 매일 바쁘다.
    엄마는 처방약이니 영양 제니, 약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약을 제때 찾아먹는 큰 과제를 혼자 잘 알아서 하셔서 내가 그 문제에 관해서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끔 해주신다. (나는 엄마가 철저히 시간 맞춰서 약을 잡숫는 모습을 보면서 나 스스로도 좀 더 정확히 약을 지켜먹게 되었다.)
    간암 치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엄마가 항생제를 쓰셔야 할 상황이 되었다. 하루에 네 번이나 먹어야 했다. 다른 약과 달리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하는 항생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했는데, 웬걸, 엄마는 이미 시간 계산을 해서 표를 만들어 책상 앞에 붙여두셨다.

    그 밑에는 엄마가 임시로 만든 약 dispenser 가 있었다. 플라스틱 뚜껑 위에 키친타월을 동그랗게 잘라 놓고, 화살표로 약을 언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표기해 놓아서 시간 별로 약을 먹으면 되게 되어 있었다.


    '와! 엄마, 이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라고 감탄하고 칭찬해드렸다.

    그러나 다음 날 엄마는 약 dispenser를 업그레이드하셨다. 손이 닿을 때마다 움직이는 하얀 종이를 고정하기 위해 동전을 가운데 놓아 중심을 잡아주고, 약을 드셔야 하는 시간을 표기를 한 아주 훌륭한 약통이었다.

    이런 “약 복용 돕는 표” 덕에 엄마는 두 차례에 걸친 항생제 복용, 즉 20 일간의 번잡한 약 복용을 한 차례의 실수 없이 끝마쳤다. 감사한 일이다.

    엄마의 매일의 중요한 일과에는 공부가 포함된다. 내가 영어를 배워드리는데 엄마는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시고, 작년부터는 일본어 공부를 하신다. '영어는 너무 힘들고, 일본어는 재밌다' 고 하시면서도 힘든 영어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엄마가 좋아하는 한국 TV 프로그램 몇 개가 있다. 노래와 요리 프로그램인데 그것을 볼 때도 항상 수첩에 기록하시면서 본다. "세상에는 배울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젊은 사람들에게서 배울 게 많다"라고 하신다. '연속극은 중독성이 강해서 보고 싶지 않다'라고 하신다. (그러나 이번에 넷플릭스를 통해 '우영우'는 감격하면서 보고 계시다. ^^)
    엄마는 항상 바쁘다 바빠! 이시다. 외로워하실 틈이 없고, 딸과 사위가 챙겨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실 겨를이 없다. 엄마의 하루는 알차게 채워지고 있다.
    저녁에도 저녁 운동을 꼭 하신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무리 피곤한 날도, 매트를 깔고, 필라테스 링을 잡고 열심히 운동을 하신다. 어쩌다 문득 들어간 엄마의 방에서 혼자 벽을 보고 서서 체조를 하거나 바닥에 누워 스트렛칭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엄마, 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운동을 하세요? 새벽부터 공부를 하고,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운동하고... 시간 정해놓고 공부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나와의 약속이니까. 내가 나에게 한 약속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켜야지."

    아.... 나는 얼마나 나와의 약속을 날려먹었던가 부끄럽게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

    어느 날 매트에서 누워서 다리 운동을 하시던 엄마는 방에 들어온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씀하셨다.
    "언젠가 내가 몸을 쓰지 못할 날이 오겠지만 내가 이렇게 꾸준히 노력하면 너를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열심히 할 거야."
    엄마가 저렇게 성실하게 자신의 몸을 돌보고, 자신의 삶의 고삐를 놓치지 않고 살려고 애쓰시는 게, 결국은 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구나.... 엄마의 깊은 사랑에 깊은 감사와 경외심이 느껴졌다.
    노년에 나도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 성숙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봄메 할머니 학교' 교장 선생님

    내가 지난 6 월, 엄마를 혼자 두고 열흘 넘게 유럽에 가 있는 동안 일어난 일이 있다.
    여러 일정에 변경이 생겨서 집에 엄마를 혼자 남겨두고 떠나야 하게 되었다.
    열흘 넘게 집을 비우니 마음이 안 놓여 걱정을 하는 나에게 엄마는 '시어른들, 잘 보살펴드려라. 내 걱정을 하지 말고. 나를 믿어다오. 나는 잘할 수 있어'라고 하셨다.
    내가 멀리 가 있는 동안 내가 의존할 수 있는 것은 근처에 사는 나의 친구들과 CCTV 였다. 나의 친구들은 자기들이 집에 와서 자겠다, 일주일에 몇 번 찾아오겠다, 엄마를 모시고 외식을 하고 쇼핑을 하겠다는 등 도움의 손을 내밀었으나, 엄마는 ‘굳이 나를 돌봐주지 않아도 된다,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갑자기 노크 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고 부담되니 그냥 혼자 있게 해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친구들과는 비상연락망을 짜두고 제발 그 비상 연락망을 사용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기로 했다. 그런 상태라서 CCTV의 도움이 컸다. 2015 년 아버지 수발을 들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의 방에는 CCTV 가 설치되어 있다. 내가 여행을 가거나 밖에 오래 나와 있거나 할 때, 또는 연락이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설치한 것인데, 이번에 시댁에 가 있는 동안 나는 수시로 cctv를 켜서 엄마의 안전을 확인하곤 했다. 매번 볼 때마다 엄마는 늘 뭔가 하고 계셨다.
    어느 날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는 아주 바쁘시네요!"
    "그래, 난 정말 바빠."
    "엄마, 외롭지 않아요?"
    "외로울 시간이 어디 있니. 할 일이 이리도 많은데... 난 괜찮으니 내 걱정 말고 너는 네 일에만 집중해라. 시어른들 잘 보살펴드려라."
    "엄마, 내가 보니까 엄마가 학교를 차리셨더구먼요. '봄메 할머니 학교.' 체육시간, 신학 공부, 영어, 일본어, 가사시간, 시간표가 딱 짜여있던데요? 엄마가 교장 선생님이자 유일한 학생이시네요!"
    "하하하! 그렇지? 요즘은 한 과목 더 추가했어. 에릭 사무실에 피아노가 있잖아? 평소에는 에릭 사무실이라 들어가지 않았는데, 아무도 없으니까 피아노를 치면서 찬송가를 크게 부른단다. 그렇게 찬송가를 부르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
    "아, 음악 시간까지 생겼네요!"
    엄마는 '그러니까 내 걱정은 말아라. 이번 여행의 목적은 에릭을 도와 시부모님을 잘 돌봐드리는 것이니 내 걱정은 하지 마라'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셨다.
    어느 날, 미국 시간 아침 6 시 반, cctv를 열어보니 책상에 앉아 계시는 엄마의 뒷모습이 내려다보였다. 오디오를 열고 엄마께 인사를 드리려고 하는 찰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Paul and Mary went to London. It was their first time....."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엄마는 영어책을 읽고 계셨다.

    ‘이 새벽에 영어 공부를?’

    나는 전혀 상상치 못했던 상황 전개에 깜짝 놀라 정지된 상태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보는 것을 모르시는 엄마는 계속 소리 내어 책을 읽고 계셨고...
    나는 영어 공부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 마치 정숙한 예배 시간이라도 되는 양 차마 엄마를 방해할 수 없었다. 물끄러미 엄마의 영상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리 내어 영어 텍스트를 읽는 엄마는 어떻게 그럴 힘이 있지?
    아무도 하라고 강요하거나 권장하거나 독려하지 않는데 엄마는 어떻게 공부를 하실 수 있지?
    더구나 엄마는 암 환자 인데...
    나의 '분신'인 엄마, 그러나 나는 과연 엄마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엄마가 공부를 포기하시지 않고 계속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나는 엄마가 진짜로 마음이 평온하시다는 것을 확인한다.
    언어 공부를 해본 우리들은 다 알고 있듯이 언어 공부를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엄청난 인내와 self-discipline 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에서 언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88 세의 연세이니 앞으로 쓸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본어 공부를, 평소에 쓰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영어 공부를 하신다는 것은 더더욱.
    어느 날 엄마께 물었다.
    "엄마, 엄마는 어떻게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어? 어디 쓸 데도 없고, 힘들기만 하고 재미도 없는데?"
    "모르는 거 배우는 건 재밌어. 세상에 배울 건 너무도 많아. 죽을 때까지 배울 거야. 그리고..."
    "그리고?"
    "나는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해. 너희들이랑 같이 사니까 내가 아무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외롭지 않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노력을 다해서 너와 에릭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거야. 그게 나에게도 좋고 너희들에게도 좋은 것 같아."
    엄마 말이 맞다. 엄마가 언어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운동을 포기하지 않음과 마찬가지로--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데까지 지켜서 자식에게 폐를 덜 끼치려고 하시는 노력, 결국은 자식에 대한 사랑의 한 표현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선순환을 하고 있다. 자식을 사랑하니 자신의 삶을 잘 지키려 하는 것인데, 그 덕에 몸의 건강, 마음의 건강이 유지되고 삶이 평화로워지는 것이니..


    균형

    어느 날, 줌으로 주일 예배를 드리는 중이었다. 목사님께서 "암투병을 하시고 계시는 봄메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라고 광고를 했다.
    그 순간 엄마가 깜짝 놀라시는 게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엄마가 말했다.
    "내가 환자구나...."
    엄마는 예배가 끝난 뒤 말씀하셨다.
    "나는 목사님이 '암투병을 하는 봄메 권사님'이라고 하시는 순간 깜짝 놀랐어. 나는 내가 암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걸 매 순간 의식하지는 않고 사나 봐.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순간, '맞아. 내가 암환자이지!'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어."
    암투병. 암과 투쟁하면서 사는 것. 그것은 엄마의 매일 일상과는 거리가 아주 먼 생활방식이다. 엄마는 암과 싸우지 않고 암을 다스리면서 살고 계시는 것 같다. 그래서 엄마의 마음은 평화로운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불필요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해가면서 암을 다스리고 있는 엄마.
    평화가 있기에 일상을 유지하시는 것인지, 일상을 유지하기에 평화가 생기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작년 여름, '암 일지도 모른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으로 시작해서, '암 일 것 같다'라는 절망적인 진단에 이어서 '암이다'라는 진단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엄마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단 한 번도. 내가 혼돈에 빠졌을 때 나를 잡아준 것은 엄마였다. 엄마의 평온함이, 엄마의 다정함이, 엄마의 의연함과 그 지속성이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죽음으로 향하는 늙음의 과정은 위태위태한 외줄 타기와 같기 마련이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줄타기, 하루하루가 위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 외줄 타기를 마치 여린 풀이 곱게 깔린 평지를 걷듯이 평온하게 사뿐사뿐 걷는 엄마의 균형감각이 놀랍다. 나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 평강의 삶의 방식이, 평화 속에 죽음에의 준비가 가능하다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있으니, 나도 계속 노력을 하면 어쩌면 나도 언젠가 엄마의 나이가 되면 엄마처럼 살 수 있을지도, 엄마처럼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찬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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