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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크리스마스 스타킹
    카테고리 없음 2023. 1. 23. 08:18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나는 엄마로서의 책임감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곤 했다.

    그러나 요리니, 인테리어니에 관심이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나는 아이들이 좀 큰 뒤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게 고역같이 느껴져서 슬슬 손을 떼었다.

    크리스마스 시기에 해외/국내 여행을 계획해서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가족들의 관심을 분산시켜 은근슬쩍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삶의 사소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경향의 남편과 딸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어느 해 겨울, 나에게 묻더라. “우리는 트리 안 만들어?” (허걱!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아무 말 안 했다. 만들려는 계획이 없었기에 ‘곧 만들 거야!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안 만들 거야’ 라고 대답하면, ‘왜 안 만들어?’라는 더 무시무시한 질문이 따를 수도 있으니 함구가 답.

    사실, 아주 정직한 대답이 가능하긴 했다.

    ‘엄마가 너무 게을러서 트리를 안 만드는 거란다,’ 혹은 ‘엄마는 너희들에게 크리스마스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는데 그다지 관심이 없단다,’

    혹은 그 둘이 합해진 진실, 즉,

    ‘엄마는 너희들에게 크리스마스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는데 노력하기에는 너무도 게으르단다’ 이란 답이 있지만, 굳이 진실을 밝힐 이유가 있으랴…

    내가 못들은 척, 바쁜 척, 미적거리면서 며칠이 흘렀고, 나에게서 답이 없으니, 남편과 딸은 마치 정전되면 촛불을 켜듯이, 밥도 반찬도 없으면 라면을 끓이듯이 자기들끼리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못들은척 하면서 귀를 쫑긋하니 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내 아무리 뻔뻔해도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엄마로서의 나의 숙명 ㅠ) ‘우리가 만들자’ ‘조만간 만들자’ 등등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로의 변화가 이뤄졌다.
    그들이 정작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려고 나선 날은 12 월 23 일, 크리스마스이브 전 날이었다.
    (그들도 부지런하지는 않다. 게으름은 우리 가족의 DNA. ㅠ)

    창고를 아무리 뒤져도 플라스틱 크리스마스 트리가 없었다.
    오래된 트리가 분명히 있었는데 어디갔지?

    갑자기 떠올랐다.
    이사 오면서 내가 남에게 줘버렸다는 사실이.
    남편과 딸에게 미안해서 같이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러 가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종일 돌아다녀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할 길이 없었다. 어딜 가든 품절!

    밤늦게까지 사러 이 가게 저 가게 가서 허탕을 치면서 우리는 아주 뻔한 현실—-크리스마스이브 전 날 트리를 구입하려고 하면 너무 늦는구나!—를 깨달았다.
    다행히 Christmas tree market (크리스마스트리 농장에서 직접 가져와 파는 임시 마켓)에 원목 트리가 남아 있다는 정보를 입수, 남편과 서둘러 달려갔다.
    거의 9 시가 다 되어 마켓은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트리는 몇 그루 남아있지 않았다.
    남아 있는 나무들은 아무도 원치 않는 구부러지고 뒤틀어져 왜 팔리지 않았는지 알겠더라.
    어쩔 수없이 우리는 그중 하나를 골라 차에 실었다.
    마치 동물 병원에서 아무도 안 데려가는 아픈 고양이를 잘 돌봐주리라 마음먹고 입양해 오는 듯한 기분이 느껴지더라니…
    남편이 트리를 세워주고, 장식은 딸이 담당했다. 그 해 우리에게 전통이 세워졌다.

    남편이 12 월 23 일에 크리스마스트리 마켓에 가서 남아 있는 원목 나무 중 하나를 사 오면 딸이 장식을 하는 전통이…. 그런 굳건한 전통 아래 지난 몇 년간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그 전통이 무너졌다. 아니, 그 전통을 내가 부수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내가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복합적인 이유와 상황이 있다.



    아이들이 멀리 살다 보니 온 가족이 다 모이는 절기는 크리스마스가 유일하여 그 어떤 때보다 소중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암투병 중인 어머니.
    현재까지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시고 계시는 엄마가 손자 손녀와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 크리스마스. 엄마는 손자 소녀를 볼 기대감에 몇 주 전부터 얼굴에 빛이 나시고,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크리스마스에 잠깐 오는 딸은 ‘이번에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최소한 하고 할머니랑 많이 놀 거야’라고 작정하고 있었다.
    아들도 새로 얻은 직장에서 휴가르 내기 어렵지만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휴가를 내었으니,
    그 어떤 때보다 특별한 크리스마스였다.

    거기에 덧붙여 나와 남편이 크리스마스 직전에 벨기에에 다녀오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남편은 암이 급격히 진전되어 고통으로 신음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이미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고, 그런 상태에서
    크리스마스 직전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심신이 지친 남편에게 크리스마스트리 쇼핑을 시킬 수는 없었다. 남편에게도 따뜻하고 포근한 집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혼 이후에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진짜로 내가 원해서 집안 장식을 하기를 원했던 것이…

    남편은 땡스 기빙 다음 날 일찍 벨기에로 떠났다.
    그날 저녁 나는 크리스마스트리 마켓에 나무를 사러 갔다.
    내가 혼자 운송할 수 없어서 친구, 팀과 케이트가 도와주었다.
    마켓이 열리자마자여서—크리스마스 한 달 전이니—싱싱하고 향기롭고 예쁜 나무들이 가득했다.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구입해서 집에 갖고 온 뒤 팀은 나무 기둥을 자른 뒤 거실 구석에 세우고, 물을 주고, 케이트는 내 키가 안 닿는 꼭대기에 별 장식을 달아주었다.
    케이트와 팀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관심이 없는 내가 혼자 처음으로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게 영광이라며 농담을 했다.


    내가 원하는 색깔/스타일로 장식을 했다.

    집안 구석구석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계단마다 반짝거리는 불을 달고,
    엄마와 아버지가 여행하면서 모은 ‘종’들을 진열하고, 종들이 잘 보이게끔 조명설치를 하고, 현관에도 작은 트리를 만들고,
    대문 앞에도 꽃 화분들은 놓고 반짝이는 종들을 걸고
    낡은 카펫들을 밝은 색상으로 갈고….

    엄마는 게으름뱅이 딸이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너무도 놀라고 기뻐하셨다. 네가 이러는 거 처음 봤다.
    세상에…이런 일도 있구나… 하시면서 나를 구경하셨다. ㅠ
    (오마니, 오래오래 사시옵소서! 이런 이상한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엄마만 놀란 게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무렵 다 모였을 때 딸도, 아들도 남편도 ‘우리 집이 바뀌었네!!’ ‘엄마가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다니!’ ‘집이 cozy 하게 변했어!’ 라며 기뻐하고 놀라워했다.

    (나의 요리 실력이 형편없으니 한국 음식이라고 김치볶음밥에 달걀 프라이 하나 해주면 아이들이 ‘엄마, 너무 고마워!’ 하는 것처럼 평소 잘하는 일이 없으니 어쩌다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고 이런 찬사를 받네 싶었음)
    자….. 이제까지는 서론.

    이번 크리스마스에서 가장 큰 서프라이즈는 내가 만든 크리스마스트리와 집안 장식이 아니었다.
    진짜 대박 서프라이즈는 따로 있었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다섯 개의 크리스마스 스타킹!!!

     


    ——————————————————

     

    엄마께 크리스마스 스타킹을 만들어 주십사고 한 부탁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린 나의 잡다한 생각의 결과였다.

    나는 작년에 대대적인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언젠가 세상을 떠난 뒤에 가능한 한 아이들에게 쓰레기를 덜 남겨주기 위해 물건 정리를 해서 많이 버렸고 많이 기부했다.
    물건들을 숙고해서 분류하고, 보관과 처분의 결정, 미래 언제 처분하는가 등등을 계속 정의하는 엄청난 작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물건을 버리기 위해서도, 간직하기 위해서도 ‘의미의 정의’라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남겨둘 이유가 없는지’ ‘왜 남겨져야 하는지’를 확실히 정의해야 과감하게 버리고 과감하게 보관할 수 있는 것. 물건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존재가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의 문제는 내가 물려주려고 하는 물건의 경우, 물건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기록되어야 하지, 그냥 물건만 덩그러니 남겨주면 나중에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갖고 있자니 의미 없고 버리자니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건들의 의미를 숙고해 보면 나에게 의미 있으나 내가 세상을 떠난 뒤, 아이들에게는 의미가 없을 듯한 물건들이 꽤 많았다.
    더군다나 한국어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나의 엄청난 글/편지 등은 아이들에게는 골칫거리일 것이었다.

    그래서 많이 버렸지만 동시에 나는 나의 소유물을 ‘미래의 아이들의 입장’에/서/만 보고 함부로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싶었다.
    아직 나는 잘 살고 있고 내게 소중한 것을 내가 소유하고 사는 것도 중요한 것이므로..

    중학교 때 일기, 초등학교 때 그림들, 부모님께 쓴 편지 등등…. 아이들에게 물려줄 일은 없지만 당장 버리고 싶지는 않아서 그런 물건들을 보관하는 박스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열어볼 필요 없음. 그냥 버려도 됨’이라고 적어 놓았다.

    나에게는 소중한, 센티멘탈한 가치를 갖고 있는 물건들이라 함부로 버리지 못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만큼 큰 의미가 없는 물건들의 예를 들어보자면…

    돌아가신 오빠의 넥타이들,
    아버지가 3 년간 누워계실 때 매일 착용하셨던 (엄마가 손뜨개질을 하신) leg warmers,
    엄마의 손으로 만든 것들.
    아버지가 2015 년 쓰러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입으셨던 정장 조끼,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남편이 한국에서 샀던 추억의 스웨터…. 둥둥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던 중 나는 혹시 ‘나에게 소중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애매모호한 의미’의 이 물건들을 이용해서 크리스마스 스타킹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나는 능력이 안되고, 뜨개질, 바느질이든 뭐든 아주 creative 하게 척척 만들어내시는 봄에 여사가 계시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엄마께 여쭈니 흔쾌히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새로운 일, 더군다나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을 만드는 작업이라니 엄마는 너무도 기뻐하셨다.

    우리는 실을 사러 돌아다녔고, 엄마는 재단하고, 자르고, 깁고, 짜고, 붙이고,….. 하셔서 한 달이 안되어 아래의 작품을 완성시키셨다.

    나는 엄마가 아주 예쁜 스타킹들을 만들 것이라 확신했었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빨간색과 베이지 색의 스타킹.




    중간의 알록달록한 ‘가방’은 2016 년, 한국에 가서 부모님 집 처분을 하면서 짐을 꾸리던 중,
    분명 엄마가 손수 만드신 것일 거라는 확신으로 챙겨 온 것이다.



    엄마께 ‘이게 뭔지 모르지만 스타킹에 사용해 주실 수 있냐’고 여쭸더니
    엄마가 반가워하셨다.

    “팜펨아, 넌 기억 안 나지? 이거, 네가 여섯 살 때 내가 만들어줬던 치마야.

    너 이 옷 입었을 때 정말 귀여웠었단다. 초등학교 들어간 뒤에는 옷이 작아졌고, 그래서 도시락 가방으로 리폼했어.

    아마 2 학년 때까지 이 가방에 도시락을 싸서 다녔을 거야.”

    아, 엄마께 보여드리기 잘했구나!! 난 너무도 기뻤다.
    나에게 아무 의미 없이 존재해 왔던 그 가방은 자그마치 55 년이 된, 나의 소유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이라는 ‘의미’를 찾게 되었으니 말이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스타킹.


    노란색 넥타이는 오빠의 소유였다. 2013 년 오빠의 유품 정리를 하면서 몇 장 집어온 넥타이 중 하나.
    파란색 실은 아버지가 3 년간 사용하셨던 레그워머를 엄마가 풀어서 스타킹으로 다시 짰다.

    나와 3 년간 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리고 옷을 입혀드린 세뇨라 버지니아와 로마나는 이 사진을 보자마자 ‘아부지의 레그 워머네!’라고 알아보았다. 엄마는 아주 얇은 실크 넥타이와 두툼한 털실이 잘 어울리게 붙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엄마의 생명과도 같은 아들과 사랑하는 남편을 떠올리면서 만드시느라 마음이 힘드셨고, 동시에 큰 보람을 느끼신 작품.

    파란색과 하늘색 줄무늬 천의 스타킹.


    파란색 모는 에릭의 스웨터.
    하늘색 줄무늬는 2015 년 여름 아버지께 맞춰드렸던 정장의 일부였던 조끼.
    9 월에 사고를 당하셨으니 마지막으로 입으신 정장이 되었다.
    돌아가신 뒤 양복은 기부했으나 조끼는 내 옷장에 간직하고 있었다.

    양복을 사드리러 양복점에 갔을 때 아버지가 만류하셨다. ‘내가 언제 입을 일이 있다고 돈을 쓰니…
    네가 잘 가는 구세군 가게에 가면 5불이면 살 수 있는 걸 텐데…’라고 하셨다. ‘구세군 옷은 젊은 제가 잘 사 입을 테니, 아버지는 깨끗한 옷 입으세요.
    앞으로 제가 아버지께 좋은 옷 해드리는 게 몇 번이나 되겠어요!’라고 우기면서 옷을 해드렸다.

    아버지는 새 정장을 입고 우리와 크루즈 여행을 잘 다녀오셨고,
    지인의 결혼식도 참석하셨다.
    새 양복을 입은 아버지는 새신랑처럼 젊어 보이고 아름다우셨다.



    새로 실을 구입해서 짠 스타킹.


    엄마는 낡아서 버린 쿠션 카바를 리폼하여 스타킹 걸이를 만드셨다.

    자칫 밋밋할 수 있었던 스타킹을 빛나게 만들어준 것은 악센트 리본과 브로치.

    엄마는 말씀하셨다. “팜펨아, 이 브로치 역사를 모르지?
    이건 내가 1952 년 부산 피난 시절에 샀던 거야.
    상업은행에서 근무할 때 월급으로…”

    오오! 이렇게 귀한 브로치라니!
    나는 이 브로치를 본 적이 있었으나 1952 년, 피난 시절의 추억이 서린 물건임은 모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스타킹 작업 덕에 그 의미를 발견하게 되어, 나에게 보물이 되었다.



    마지막…
    딸아이가 몇 해 전에까지 입었던 재킷,
    그리고 오빠의 넥타이와의 만남.


    ‘오빠는 옷을 참 잘 입으셨지요? 넥타이들도 멋진 게 참 많았어요.’
    ‘그래, 그리고 너의 오빠는 성품도 그렇고 스타일도 그렇고 단정하고 깔끔했어.’
    ‘그러게요. 방이 얼마나 잘 정돈되어 있던지 유품정리하면서 놀랐어요.’
    ‘그때 네가 혼자 유품정리 하면서 고생한 거 생각하면 내가 미안해서 지금도 눈물이 난다……
    너 없었으면 우린 그냥 죽었을 거야. 어떻게 살 수 있겠니. 아들이 죽었는데… 너 덕에 버텼다…’
    ‘당연한 일이지요. 오빠를 사랑하니까… 오빠가 엄마 아버지 사랑하는 거 아니까….’

    우리는 이렇게 두런두런 오빠의 기억을 되새기고 옛날 일을 추억했다.

    결국은 다 감사할 일 투성이었다.


    ——-

    나는 엄마가 하나하나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환호했다. 이제껏 용도와 존재 가치니 모호해 버려질 위기에 처해있던 낡은 물건들이 엄마의 손을 통해서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유용한 물건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이 신기하고 기뻤다.

    게다가 이제까지 몰랐던 의미를 알게 되고 잊혔던 의미를 찾게 된 것도 큰 선물이었다. 남편도, 아이들도 엄마가 만든 스타킹을 보고 감격했다.

    '어무니의 대작이 또 하나 탄생되었네!’ (남편)

    ‘할머니, 고마워요. 너무 예뻐요. 소중히 잘 간직할게요.’ (딸)


    엄마가 스타킹을 만드시는 동안 나와 엄마는 행복한 추억 여행을 했다.
    이제는 온 식구가 크리스마스 때마다 돌아가신 오빠와 아버지를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기억할 것이다.

    빨강/베이지 치마를 입은 귀여운 여섯 살배기 팜팜을 상상하며 미소 짓고

    피난민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꾸렸던 19 세 소녀였던 할머니의 빛나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브로치에서 발견할 것이고. 3 년간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미소를 잃지 않았던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자유로운 영혼, 멋쟁이 삼촌을 추억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가 떠나시고 난 뒤,
    우리는 할머니/엄마의 정성이 담긴 스타킹들을 쓰다듬으면서
    할머니/엄마의 따스한 손길을 느낄 것이고,
    할머니/엄마를 추억하고,
    할머니/엄마를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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