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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메 여사 쓰러지다 (투병기 1)
    엄마 2020. 9. 8. 00:43


    오늘 (9월 6일 일요일), 42 도 라는 엄청난 기온과 싸우면서, 오늘도 더위 먹은 글쓰기를 하고 있음.
    (참고로 봄메는 어머니의 한자 이름의 순 한국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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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건강에 적신호가 온 것은 4 월, 코로나바이러스와 남편의 재택근무의 영향이 없지 않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남편이 집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컴퓨터 모니터 두 개를 놓을 큰 책상이 필요했다. 나는 1 층의 나의 서재 (‘자궁’!) 를 양보하고 2 층의 딸의 방을 사용했다.

    사위가 집에 24 시간 진을 치고 있으니—그것도 엄마의 공간인 엄마방, 거실, 부엌과 같은 층에서—있으니 엄마는 불편하신지 아주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엄마 방에서 안 나오셨다. 아침에 산책을 다녀오시는 것 말고는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일이 현격이 줄어들면서 엄마의 심장이 약해졌다. 거기에 더해서 나와 함께 시작한 채식 (plant-based diet) 의 영향도 있었다. 채식을 시작한 뒤 두 달 만에 콜레스테롤도 뚝 떨어지고, 전체적으로 몸이 아주 깨끗해지셨지만, 바로 그래서 기존의 혈압약이 적합치 않은 상태에서 계속 약을 드시면서 심장을 약하게 한 것이다.

    엄마의 건강의 악화는 아주 빨리 진행되었다. 2 월까지만해도 뫼시고 산책을 나가면 지팡이 없이 잘 걸으시고 오름길도 씩씩하게 잘 걸으셨는데 4 월애 부쩍 기운이 없어지시는 게 눈에 띄었다. 엄마는 본인의 건강의 악화를 어떻게든 숨기려 하셨지만, 딸의 직관의 레이더를 피할 수는 없었다. 지팡이를 사용하시는데도 몸이 휘청거리는 게 보였다.

    혼자 산책 나가신 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으셔서 내 마음이 졸인 적도 여러 차례. 어느 날은 차를 몰고 나가서 벤치에 앉아 계시는 엄마를 모시고 온 적도 있고, 남편과 함께 엄마를 찾아 나선 동네를 샅샅이 뒤진 적도 있다. 왜 이리 늦으셨냐고 하면, 그냥 잠깐 쉬다 온 거라고 둘러대셨지만 뭔가 불안했다. 내가 뭔가 수상해서 꼬치꼬치 케물으면 '난 괜찮다! 넌 네 건강에 신경을 써라. 난 네가 걱정이다!' 라고 하시곤 했다.

    나중에 모든 일이 다 해결된 후에 알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엄마는 어지럼증 증상이 심해서 산책 도중 쓰러질뻔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단다.
    내가 엄마께 신경쓰면 내 건강에 지장이 올까봐 엄마는 혼자 몸을 다스리려고 무단 노력을 하셨던 것이다.

    어느 날은 집에서 20 분 정도 런닝머신에서 걷는 운동을 하시던 중, 온몸에 진땀을 흘리면서 '팔이 아프다'고 누우셨다. 핏기가 사라진 얼굴에 숨가쁜 호흡, 엄마의 증상이 단순한 피로가 아님이 너무 번연했다. 엄마께 병원에 가자고 하니까, 잠시 누워 있으면 된다고, 코로나 사태에 병원을 가면 온 가족에게 위험하다고 강력히 거부하셨다. (당시는 미국의 코로나에 대한 대처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부실했던 시기라 병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정기적으로 혈압을 재었는데 정상에서 약간 높은 혈압에 맥이 엄청 낮았다. (45-55)

    어느날 엄마 모시고 산책을 나섰다. 평지를 채 5 분 걷기도 엄마 얼굴이 창백해졌고 진땀을 흘리시며 팔이 몹시 아프다 하셨다. 더 걷다가는 큰일 날 것같아 급히 근처의 나무 둥지에 앉아서 쉬시게 했다. 엄마가 약간 진정된 후 차로 집으로 모시고 와서 쉬시게 하고 당장 의사에게 전화를 했다. 의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위험하니 아침 일찍 병원에 와서 혈액검사를 받고 자기와는 전화로 상담하자고 했다.

    혈액검사의 결과는 꽤 좋았다. 채식의 효과인지 콜레스테롤 수치가 자그마치 190 에서 100 으로 떨어지고, 갑상선 호르몬 수치에 미세한 변화 외에는 모든 게 다 정상이었다.
    의사는 전화를 걸어와 우리더러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어지럼증이 심하고 팔이 아픈 증상은 왜인가 물었다.

    ‘그런 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팔이 아프실 수도 있고 가끔 어지러울 수도 있지요. 그 연세에 아주 건강하신 겁니다.”

    건강하신 거라니 위안이 왔지만 그래도 뭔가 게름칙한 게 있었다.
    나는 엄마의 맥이 50 대에서 가끔 50 이하로 떨어질 때도 있는데 그게 우려할 일은 아닌가 물었다.

    의사는 ‘그건 지금 잡숫는 약이 맥을 낮추는 심장약이므로 그렇습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질문이 많은 환자/환자 가족은 의사에게는 성가스럽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확실히 답을 얻고자 물었다.
    맥이 이전에는 55-60 사이었는데 채식을 시작하신지 두 달여부터 맥이 40대까지도 내려간다. 맥이 그렇게 낮은데 맥을 낮추는 심장약을 계속 복용해도 괜찮은 건지 물었다.
    의사는 '건강하시므로 걱정마십시오' 라고 친절하게, 그러나 더 이상의 질문은 나의 부질없는 걱정이라는 식으로 대화를 종결지었다.

    엄마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기뻐했다.
    '아, 다행이다. 그래, 큰 일 아닐 거야. 내가 너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지.' 하시면서.
    엄마는 본인이 건강하냐 아프냐보다는 딸에게 폐를 끼치냐/안끼치냐의 척도로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갑갑했다. 낮은 맥, 어지러움증과 팔의 통증, 창백함, 구역질등의 어찌보면 아주 위험한 병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는 증상들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기때문이다.

    앞으로도 엄마는 갑자기 후들후들 몸이 떨리고 진땀이 나고 어지러워서 나무를 붙들고 서계실 것이고, 벤치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오래오래 앉아 계실 일이 많을텐데, 나는 엄마를 도울 길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엄마께 '엄마, 심장 정밀검사를 받아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당장은 병원에 드나드는 게 안전치 않다고 하니, 우리 코로나 사태가 좀 진정되면 병원에 가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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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로 나는 엄마가 밖에 나가실 때마다 함께 나갔다. 함께 걷다보면 엄마의 다리에 힘이 없는 게 느껴졌다. 저러다가 본인의 발에 걸려 넘어지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발걸음이 고르지 않았다.

    5 월 2 일 토요일 오후도 엄마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우리는 집 바로 옆의 호수에 가기 위해서 한 다섯 발걸음 정도의 짧은 거리의 아주 완만한 오르막이 있다. 오르막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할 정도로 아주 낮은 경사인데, 엄마는 그 다섯발자국을 오를 때마다 힘이 부쳐서 아주 천천히 걸으셨다. 오르막을 오르면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벤치가 있어서 우리는 경사를 오르자마자 그 벤치에 앉아서 숨을 돌리곤 했다.

    그날도 좁은 산책로나 엄마가 앞에서 걸으시고 내가 뒤를 따르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천천히 가니까 우리 옆으로 어떤 이들이 'excuse us' f라고 예의바르게 인사하며 우리를 지나쳤다. 우리를 지나쳐 빠르게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던 그들을 나는 하릴없이, 그러나 유심히 관찰했다. 동양계 젊은 부부와 어린 딸. 부인은 호피무늬 레깅을 입고 있었고, 건장한 체격의 남편은 NASA 라고 씌여진 흰 티셔츠에 청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8-9 세로 보여지는 딸 아이는 엄마처럼 호피무늬 레깅에 손잡이가 달린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우리를 '스쳐 지나간' 그들이 나의 사마리아인 이웃이 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르막을 오르는데 엄마가 약간 휘청거리시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벤치에 가서 쉬셔야겠다 싶어서 올려다보니 조금 전에 우리를 지나쳐서 간 젊은 커플과 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 엄마가 빨리 앉으셔야하는데...

    간신히 경사길을 오른 엄마는 평지에 서자 마자 갑자기 '아, 왜 이리 어지럽지' 혼잣말을 하시며 휘청했다. 나는 엄마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균형을 잃는 줄 알고 급히 한 손으로 엄마의 허리를 감고 또 한손으로는 엄마의 손을 잡아 엄마를 부축하려고 했다. 그러나, 엄마의 몸은 마치 빳빳하고 커다랗고 무거운 기둥처럼 나의 부축에 호응하지 않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엄마가 뒤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당황해서 엄마의 몸을 끌어안으려 했으나 그대로 푹 쓰러지는 의식이 없는 엄마의 몸은 상상도 못할만큼 무거웠다. 엄마의 허리를 안고 잠시 버둥대었으나, 그것은 1 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이었던 것같다. 엄마의 몸은 콘크리트 바닥에 그대로 떨어졌다. 아주 큰 '쿵'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순간 너무도 큰 충격에 휩싸였다. 내내 엄마의 건강을 두고 걱정했지만, 나의 걱정은 이런 비상사태에 나를 준비시켜주지 못했다.어르신들이 쓰러져서 목이 부러졌다. 팔이 부러졌다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생각한 이미지는 '아 어지러워---' 하면서, 아주 짧게나마 천천히 다리 관절이 꺾이고 목을 잡거나 휘청거리면서 쓰러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쓰러진 것은 그런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그냥 옥상에서 돌덩이 하나를 떨어뜨린 것과 다름 없었다. 정신을 잃는 순간은 몸과 정신이 완전히 분리되고, 몸은 그냥 '물체'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황급히 무릎을 꿇고 엄마를 내려다보니 눈을 감고 있는 엄마의 표정은 지극히 편안했다.

    이게 죽음?

    바로 옆에 있는 내가 엄마를 잡았는데도 엄마가 쓰러졌고,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찧은 엄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그리고 엄마에게 심장마비가 온 건지, 뇌출혈이 있었던 건지 모르는 상황, 불확실의 공포에 휩싸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비명 뿐이었다. 나는 '엄마! 엄마! 괜찮아요? 엄마! 엄마!' --동물의 표효와 같은 나의 목소리가 나에게 생소하게 들렸다. 미칠 것같았다.

    그순간 벤치에 앉아있던 젊은 아빠가 나에게 달려왔다.

    그는 눈이 크고 뭐든 둥글둥글한----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사람과 같은--인상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에도 잠시 그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게 엄마에게 위험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내가 그 와중에 내가 마스크에 대한 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그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내가 비정상적인건지, 아니면 그런 식의 인지 작용은 자연스러운 것인지 궁금하다.)

    그가 엄마의 이마를 잡은채, '어서 119 에 전화하세요' 했다.
    엄마는 그 순간 눈을 뜨셨다. 소동이 난 것을 파악하셨는데 본인이 그 소동의 주인공임을 깨닫고
    "나는 괜찮은데 왜 그러니? 나, 일어날께" 하셨다.

    젊은 아빠는 한국어를 모르면서도 상황을 파악하고 나에게 침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No! No! No! 절대 일어나면 안되십니다.' 하더니 엄마의 눈을 내려다보면서 영어로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Everything is gonna be OK." 라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아유, 너무 미안하다. 나때문에 너도, 이 분도 이게 무슨 고생이니..." 하신다.

    나는 패닉 상태였다. 오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침착했던 '나'는 없었다. 예견했던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예견하지 않았던 사고를 당하는 것의 차이는 극명했다. 이렇게 어쩔 줄 모르는 나 스스로가 나에게 너무 생소했다.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고 젊은 아빠는 나더러 '어서 119 에 전화하십시오' 독촉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따지고 보면 엄마는 운이 참 좋았다. 넘어지신 장소는 두개의 호수가 이어지는 장소로소 유일하게 차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만약 우리가 호수에 진입해서 걷는 중에 사고가 났다면 응급차가 도착해도 진입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응급대원들은 뛰어서 호수 어딘가의 우리를 찾아야했을 것이다. 호수 입구의 주차장이라고 설명하면 금방 응급차가 오겠지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였다. 아니, 나의 표효였다.

    나는 내가 "저의 어머니가 쓰러지셨습니다. 여기는 0000 호수, 테니스코트 옆 주차장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My mom is......'%&@^$)ㅣ%^+#@#$%^&&!!!!!!!!!!" 였다.
    울부짖음..

    수화기 너머로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Ma'am, could you please speak slowly? Please speak slowly."
    오케이, 알았다.

    '나는 다시금 우리 상황이 이러하니 구급차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또 나더러 천천히 이야기해달란다. 아니, 어떻게 더 천천히 이야기하라고?! 어서 응급차가 와야하는데 왜 내 말을 못알아듣는담?
    나는 소통이 안되니 당혹스러워서 목소리가 더 커졌다.

    급기야 전화기 너머의 차갑고 또박또박한 말투의 여성이 나에게 물었다. 주위에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있냔다.ㅠ
    "Is there anybody that speaks English? Ma'am, can you find somebody that speaks English?"
    그때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표효 중이었구나. 내 영어가 영어로 안 들리는구나.
    엄마를 지켜야하는 내가 이성을 잃다니.

    순식간에 나는 변했다. 저녁 9 시 뉴스를 하는 앵커처럼 침착한 목소리로,

    "네. 저의 어머니가 실신하셨습니다. 현재 누워서 안정을 취하고 계시고요. 저희가 있는 곳은 0000 호수 두 개의 사이, 테니스코트의 주차장입니다. 근처에 0000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그녀는 고맙다고 하면서 정확한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주차장에는 주소가 없었다.
    그 순간에 지인들과 함께 우리에게서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고 있던 카키 색 바지, 회색 티셔츠, 선탠이 잘 된 키 큰 금발 청년이 (이런 게 다 기억난다 ㅠ) 마치 스프린트 선수처럼 재빨리 뛰어서 주차장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의 이름을 확인하고 달려오면서 소리쳤다. "이스트쇼어와 오텀오크!" (너무 고맙다는 생각과 함께 '저 사람도 마스크 안 쓰고 있네' 라는 정보가 내 머리에 입력되었다. 어떤 상황이든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 고질적 버릇이 병폐..ㅠ)

    응급차를 7 분 내로 보내줄 것이며, 코로나때문에 나는 앰뷸런스에 동승할 수 없으니 따로 응급실로 가야한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엄마께 나없이 큼직한 덩치의 미국 소방대원/응급대원들과 함께 응급실로 가야한다는 설명을 드렸다.
    엄마가 '왜, 나는 괜찮은데...난 지금 너무 편한데, 응급차를 부르니!' 하고 언짢아하셨다.

    그순간 엄마의 말을 알아 듣기라도한양 젊은 아빠가, "it's Ok, it's ok. You just need to be checked. Dont worry. Everything will be OK." 라고 했다. 내가 통화를 하는 동안 그는 자기 부인의 (천으로 만든) 핸드백를 엄마 머리 밑에 받쳐두고, 엄마의 이마와 손을 부드럽게 잡고 있었다. 이 남성은 어떻게 이리도 자연스럽게, 적시적소의 도움을 줄 수 있는거지? 참 고마운 사람이다...생각했다.

    잠시 후, 응급차가 왔다. 아까 나의 동물적 표효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을 깨달은 나는 여전히 9 시 뉴스 앵커의 침착함으로 설명을 했고 그동안 그들은 엄마의 상처와 혈압을 체크했다. '맥이 낮습니다. 38 입니다.' ''뒤통수가 충격으로 크게 부었습니다.'
    응급대원 중의 한 사람이 나에게 현재 맥이 38 이라는 것은 사고가 나는 순간에는 맥이 더 낮았다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신속하게 엄마를 앰뷸런스에 옮겼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이 2 분 내에 달려왔다.

    그제까지 내 옆에서 나를 도와주었던 젊은 아빠와 인사를 나눴다. 너무 너무 고맙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났다. 나는 누가 날 도와줬다고 '천사' 이니 뭐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근 60 년을 함께 해온 엄마가 순식간에 나에게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상황, 그 traumatic 한 상황에서 나를 지켜준 그는 나에겐 천사였다.
    (요즘도 나는 산책을 할 때마다 둘러보면서 그 가족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꼭 한번 다시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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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전화를 받고 놀란 남편, 어찌나 빨리 와서 어찌나 빨리 달렸는지 우리는 응급실에 응급차보다 먼저 도착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비해서 응급실 입구는 천막이 드리워져 있고, 남성 간호사 한 명과 와 경비원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10 미터 정도 거리에 다가가자 ‘여기는 금지구역입니다' 라고 외치더니, '걱정마세요. 코로나 검사는 다른 빌딩에서 하는 것입니다!' 라고 안심시켜준다.

    응급실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하면서 혹시 우리가 환자 면회를 왔으면 본관으로 가야하고, 그러나 거기에서도 입실 면회는 금지될 것이다 라고 큰 소리로 설명해줬다. 나는 멀찌감치 주차장에 선 채 그들에게 큰 소리로 ‘우리 엄마가 응급실로 오는 중이다. 나는 엄마의 통역을 위해서 들어가야한다’ 라고 외쳤다.
    간호사는 ‘병원에도 통역사가 있다’ 라고 외친다.
    나는 ‘실신해서 응급실에 실려오는 한국인 할머니가 자기 증상을 통역사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사고의 현장에 있었다!’ 라고 외쳤다.
    그는 나의 입장을 이해한 듯, ‘그럼 좀 기다려봐라. 만약 당신이 들어와서 통역을 한다고 해도 금방 다시 나아갸할 것이니 이해해달라. 환자 외에는 입실 금지가 병원 방침이다’ 라고 했다.

    잠시 후 응급차가 도착해서 우리 앞을 지나쳤다. 엄마가 생면부지의 덩치 큰 외국인 응급대원들이 자기를 내려다보는 응급차 안에 누워서 얼마나 황당하실까 싶었고 엄마가 응급실에 들어가는데 쫓아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나의 상황도 황당했다.

    앞으로 엄마는 어떻게 되는 걸까? 뇌진탕, 뇌출혈, 심장의 문제...엄마는 죽음에서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간호사가 응급실 내의 간호사와 통화를 할 수 있게 해줬다. 엄마는 본인이 쓰러지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기때문에 목격자인 나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나더러 응급실에 들어오라고 했다.

    오!!! 땡큐!!!!!

    열렬히 감사를 표했다. 남편더러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느니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나의 연락을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응급실에 들어가니 엄마는 편안한 얼굴로 누워계셨다. 표정이 또렷하고 말도 똑똑하게 하시는 것으로 보아 큰 충격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안도의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뇌진탕은 이틀 후에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니 안심은 금물이었다.

    간호사는 엄마의 몸에 여러 장치를 하면서 나에게 사고의 경위를 물었다. 의사가 엄마를 진찰하고 피검사와 소변검사 및 여러 테스트들을 지시했다.
    평소에 소란스러운 응급실은 마치 피정을 하는 수도원마냥 조용하기 이를데 없었다. 간호사는 코로나바이러스때문에 응급실이 텅텅 비어있다고 했다. 원래는 규칙상 환자 가족이 이렇게 오래 있게 해주지 않는데, 나와 엄마를 특별히 배려해주는 것이라고도 했다. 원래 간단히 통역만 하고 밖으로 나가야한다고 했는데, 그냥 있게 해주겠다고 선심을 썼다. 심지어는 응급실 외부에 있는 초음파실까지 엄마와 함께 갈 수 있게 해주었고, 씨티 스캔을 하러 갈 때도 같이 갈 수 있게 해주었다. 엄마 침대를 잡고 병원 복도를 지나가면서 마치 법망을 피해 도망다니는 범죄자같이 느껴지고, 누군가가 나를 잡아서 병원 밖으로 쫓아낼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스릴마저 느겼다.

    조용한 병실에서 엄마와 함께 기도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실신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고, 그냥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을 때 너무도 편했고, 이렇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단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시면 내가 너무 충격을 받을 것같아서 미안했다고 하셨다.

    엄마의 뒷통수의 커다란 혹을 만져보곤 놀라셨다.
    ‘내가 어떻게 넘어졌기에 이렇게 큰 혹이 났지?”

    나는 엄마가 넘어지는 순간에 퍽! 하는 뭔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힘들었지만 엄마랑 같이 있는 순간이 행복해서 농담이 나왔다.

    “엄마, 엄마는 옛날부터 머리가 김일 선수 (옛날, 박치기 전문 레슬링 선수) 처럼 단단했잖아? 나는 엄마때문에 콘크리트에 금이 갔을까봐 걱정이야. 시에서 파손된 콘크리트 도로 수리비를 물어내라면 어떻게한다지?”

    우리는 또한 이제까지 엄마가 심장 검사를 받았으면 했는데 이번에 그런 기회가 된 것같아 다행이라고 감사해했다.

    인도 출신의 의사가 검사 결과를 설명해주었다. 씨티 스캔 결과는 양호하고 피검사도 양호하다. 뇌진탕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목 근처의 관절염을 위시 여러 개의 소소한 문제들이 있지만 그 어느 하나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하는 김에 코로나 검사도 했는데 그것도 통과!

    그리고 감사하게도 의사는 내가 이제까지 너무도 궁금해했던 문제를 콕 찝어서 설명해주었다.

    어머니가 드시는 약이 맥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데, 그 약이 너무 강한 듯하고 약이 심장에 오히려 손상을 가져왔을 수 있다. 그래서 약을 중지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 약은 함부로 중지하면 안되는 약이다. 어머니가 심장 스트레스 검사도 받으셔야하니까 하루 이틀 입원하신 상태에서 약을 끊으면서 심장 테스트를 하는 게 안전할 것같다고 했다. 의사는 엄마가 채식을 하신 뒤에 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하니, 자기는 채식과 약의 부작용이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고 했다. (그도 plant-based diet 를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평생 채식을 했고, 내 몸은 아주 깨끗하다’고 듣기 좋은 자랑을 했다.)

    응급실에서 5 시간 후, 엄마의 입원이 확정된 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전화기와 충전기를 갖고 왔다. 엄마가 언제라도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할 수 있게끔.
    엄마가 입원실로 올라가기 전, 입원실 병동의 간호사가 응급실로 전화를 해 나를 찾았다. 나에게 엄마의 상태에 관해 여러 질문을 하던 중, 내가 그에게 불쑥 질문했다.
    “혹시, 당신의 이름이 ‘죠슬린’ 아닌가요?”

    그녀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자기 이름을 아냐고.
    "저의 아버지가 1 년 반 전에 입원했을 때 당신이 하루 아버지를 돌봐준 적이 있었어요."
    그 말에 그녀는 더 놀랐다. 아버지가 어떤 상태냐 묻고 돌아가셨다고하니 애도를 표하고...그렇게 통화가 마무리지어졌다.

    1 년 반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 닷새간 입원했었다. 나는 두어 차례 집에 와서 샤워를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아버지 병실을 지켰고, 그때 아버지 병실을 분주히 드나들던 간호사들과 간호 보조원들을 (그것 말곤 할 일이 없으니까) 바라보곤 했었다. 죠슬린은 아버지 병실에서 보낸 마지막 날 밤, 아버지를 계속 체크하는 임무를 맡았던 여성이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 키, 눈빛, 그녀가 아버지께 자연스럽게 건네던 말들을 관찰하면서 참 고마웠다. 아주 짧게 이야기를 나눴고, 벽에 걸려있는 근무교대 이름표에서 그녀의 이름을 보았다.

    근데 어떻게 1 년 반이 지났는데, 전화기 상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의 이름이 기억났을까? 나도 신기했다. 내가 너무 긴장해서 모든 신경과 감각이 생생히 살아있어서인지도 모른다. 호숫가에서 엄마가 넘어지는 순간의 기억을 마치 비디오르 찍은 듯이 다 기억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쇼크 상태에서 내 몸이, 눈이, 코가, 귀가 모든 것을 다 고통스럽게 흡수하고, 그게 기억으로 남아 계속 동영상처럼 반복된다면 그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의 한 증상이겠지.

    집에 돌아와 밤 11 시에 엄마 병동의 간호사에게 전화했더니 엄마가 저녁 식사는 안하시고 물만 마시고 그냥 잠이 드셨단다. 수액을 꼽고 계시니까 탈수 증상은 없으리라 믿고 걱정하지 않으리라 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잠을 못잤다. 엄마가 병실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셨는데, 주무시다가 일어나서 놀라지는 않으실까, 코로나사태로 새로이 바뀐 병원의 시스템에 엄마가 적응하실까? 마스크를 계속 쓰고 계셔야하는데 그걸 잊지는 않으셨을까, 미국 병원은 무척 추운데 엄마가 괜찮으실까? 화장실 가고 싶으시면 어떻게 하지? 갑자기 닥친 이런 상황에 엄마가 혹시 우울증에 빠지진 않으실까.. .....의 생각들이 머리를 산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낮에 엄마의 머리가 바닥을 치는 순간의 '쿵' 소리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 순간의 절망감, 당혹감, 두려움이 다시 생생히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잠을 못잔채 아침을 맞았다.

    아침에 엄마께 전화를 했다. 전화를 안받으셔서 또 걱정. 혹시 뇌진탕이 진행되고 있는 건가? 혹시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다른 병실로 옮겨진 건가? 연락이 안되니 상상의 걱정이 더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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