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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 날과 ‘김치 기도’
    엄마 2021. 5. 13. 02:41



    어머니 날이 되기 일주일 전에 엄마는 꽃 선물을 받으셨다.
    청소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들이 엄청나게 큰 꽃다발을 화병에 담아와 엄마께 드렸다.

    며칠 후, 딩동! 소리에 문을 여니 아버지 수발 들 때 일을 했던 분이 꽃다발을 품에 안고 서 있었다.
    백신을 맞은 그녀와 엄마는 환호하며 껴안았다.

    생각지 않았던 꽃 선물 덕에 우리 거실은 ‘꽃폭탄’을 맞은 것같이 되었다.
    딸아이는 ‘오, 너무 예뻐요!’ 환호하면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아줌마들께 달려가 스페인말로 떠듬떠듬 감사인사를 했다.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직진하는 남편은 거실 한 중간에 놓인 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기 서재로 향하기에 내가 ‘옆을 봐봐!’ 라고 외쳤더니 꽃을 보고 놀라서 “오, 오, 오, 오~원더풀!’ 찬탄했다.

    멕시코 아줌마들이 가져온 꽃들은 이제까지 우리 식구들이 주고받았던 그 어떤 꽃들에 질적/미적/양적으로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압도적으로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동시에 형편이 넉넉치 않은 이들이 꽃과 풍선에 돈을 많이 쓴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정말 고마워요! 근데 이렇게 돈을 많이 써서 어떻게 해요!’

    라고 했더니 다들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자기들이 되려 감사하다면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되려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보니 지난 5 년간, 그들은 나의 아버지가 병상에 계실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일을 함께 겪었다. 버지니아같은 경우는 20 년간 나와 동고동락을 해왔다.
    어떤 이는 남편의 죽음을, 어떤 이는 딸의 암투병을, 어떤 이는 심장병을...그 외에 셀 수없이 많은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 했었다.
    서로 격려해주고 같이 이겨나가면서 우리는 가족과 같은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거실을 가득 채운 꽃들은 지난 세월을 통해 우리가 피워낸 관계의 아름다움의 상징같이 느껴졌다.

    멕시코 딸들의 꽃들이 너무 많아서 남편과 나는 올해는 어머니께 꽃을 드리지 않았다.
    엄마가 나에게

    “팜펨아, 올해 꽃 선물 하지 말아다오. 나는 매일매일이 행복한 어머니 날이야.” 라고 부탁하셨기도 하고, 어머니 날을 ‘멕시코 딸들이 준 꽃’들의 날로 기억하는 것도 좋을 것같았다.
    남편은 그래도 자기는 꽃을 사겠다고 나가려고 했는데, 내가 막았다.

    ‘당신의 김치 기도가 엄마에게는 꽃과 같은 선물이야.’ 라고 하면서...
    (김치 기도 이야기는 마지막에..)



    주일 예배를 마친 2 시에 늦은 점심을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딸 아이가 깜짝 선물을 주었다.
    ‘할머니’와 ‘엄마’라고 새긴 스누피 컵과 카드.





    아들 아이는 올해는 어머니 날을 같이 하지 못했다.
    바로 전 날 백신 2 차를 맞았는데 2 주를 기다려야 안전하다고 해서 만나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 날인데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우리는 걱정이 되었다.
    혹 백신 맞고 아픈 건 아닌가.
    점심 식사를 하면서 꽃과 함께 찍은 사진을 문자로 보냈다.

    “어머니 날 식사 중. 몸은 괜찮니?”

    한참 답이 없다가 1 시간 후에야 (그 한 시간 동안 우리는 진짜 아픈 건가 걱정을 했음) 짧은 답문자가 왔다.

    “Nice pictures!”

    그 순간 갑자기 든 생각, ‘해피 마더스 데이!’ 라는 인사가 없네?
    인사를 기대하고 문자를 한 것은 아닌데, 의례히 하는 인사가 없으니까 좀 의아했다.

    아들과 나는 친한 사이인데...
    엄마랑 안 친해도 어머니 날에는 ‘해피 마더스 데이’ 한줄은 보내던데....

    애초에 어머니 날을 숙제처럼 챙겨야하는 날이 되고 내가 숙제의 대상의 되는 것은 원치 않았던 바이니
    아이가 인사를 안한다고 옆구리 찔러서 절을 받을 의도는 없었다. 그저 특이하다 싶어서 남편에게 말했다.

    초록은 동색이라, 남편은 픽~ 웃으면서
    “당신이 형식적인 인사치레 싫어한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라고 하더니
    “걔도 형식적인 인사를 싫어하는 스타일이고..” 라고 덧붙였다.

    참신한 해석이렸다....
    형식적인 거 싫어하는 어미의 마음을 헤아려서 인사를 안했다고?
    아들이 형식적인 거 싫어해서 ‘해피 마더스 데이!’ 한마디 안했다고?
    아들, 성삼문처럼 대쪽같은 성품을 소유자?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형식적으로 ‘해피 마더스 데이’라고는 못하겠오!’ 라고 하는 거?

    (나중에 남편이 다른 일로 아들과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아들이 ‘2 주 전부터 어머니 날 다음 주에 집에 가서 어머니 날을 축하할 계획을 세웠다’라고 하더란다.
    즉 나름 마더스 데이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걸 챙길 것이니까, 정작 마더스 데이 때는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는 생각인데.. 참신하달밖에...^^
    아, 그 와중에 아들이 할머니께는 해피 마더스 데이 인사 문자를 올렸단다. 뭐가 뭔지 아리송...ㅠ)


     
    ‘김치 기도’에 관해서...

    남편과 나는 밤에 기도를 같이 한다.
    기도는 남편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이다.
    남편은 평소에는 무뚝뚝하니 자기 일만 하고, 남의 일에 신경을 안 쓰는 스타일이라
    자식을 포함해서 남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 감사와 사랑의 표현을 잘 못하는데 (남편 그런 유전자를 아들이 온전히 물려받았음)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가슴 깊이 숨겨져 있는 따뜻함이 무장해제되어 자연스럽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어머니 날 이틀 전 밤 기도를 할 때도 그랬다.

    “하나님, 어머님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노령에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열심히 공부하시고, 열심히 운동하십니다.
    우리 가족의 영적인 기둥으로서 기도로서 우리를 지원해주시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노년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본이 되어주시는 어머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편은 엄마께는 직접 하지 못하는 달달한 이야기를 하나님께 소근소근 이야기했다.
    남편이 영적인 면, 노년의 모습에 관해 오래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요즘 시댁의 어르신들이 노년에 대처하는 모습에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그가
    이제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엄마의 영성, 그리고 영성에 영향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사고방식을 새롭게 보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아멘, 아멘, 아멘....하면서 기도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하나님, 오늘 어머니가 김치를 담구셨습니다.” 라고 했다.

    엥? 김치?
    엄마가 김치 담군 거를 왜 하나님께 이야기하지?

    남편의 기도는 이어졌다.

    “어머니는 김치를 담그시고, 떡을 만들고, 요리를 할 때 행복해하십니다.

    오늘 어머니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행복한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건강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편의 뜬금없는 ‘김치 기도’를 들으면서, ‘맞아, 엄마는 부엌 일을 사랑하시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엌 일을 싫어하는 나는 엄마가 김치를 담그실 때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엄마가 ‘나는 부엌일 할 때 행복해!’ 라고 하심에도
    그것을 진정 ‘엄마의 행복’으로 인정하지 못했는데
    남편은 부엌을 지나치면서 흘끗 어머니를 보면서도 엄마의 행복을 읽었다는 게 놀라웠다.
    남편의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나는 김치 담구기처럼 삶의 일상적인 행위가 행복의 원천이고, 그래서 넘치는 감사의 이유가 됨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또한 엄마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남편께 감사함을 느꼈다.

    다음 날, 엄마께 남편의 ‘김치 기도’ 이야기를 해드리니까 엄마가 깜짝 놀라셨다.

    ‘에릭은 나랑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내가 구석에서 뭘 하고 있는지, 내가 뭘 할 때 행복한지를 다 알고 있구나.’ 하셨다.

    감정 표현에 서툰 남편은 —-그의 성삼문파 아들처럼—-정작 어머니 날 어머니께 ‘해피 마더스 데이!’ 라고 변변히 인사하지는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꽃도 사지 않았다.

    그러나 멕시코 자매들이 보내준 꽃다발에 싸여 식사를 하면서 우리 모두의 마음은 찬란한 꽃밭이었다.
    사랑의 감정이 확인되었고, 표현되지 않아도 느껴지는 상황에서는 주고받는 다정한 눈길이 꽃이고, 따뜻한 미소도 꽃이었다.
    가끔 터져나오는 웃음소리는 만개한 꽃에서 뿜어져나오는 향기마냥 우리가 같이 하는 순간을 황홀하게 해주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를 사랑해주는 멕시코 딸들, 사위, 손녀딸 덕에 아주 행복한 어머니 날을 보내셨다.
    앞으로도 ‘해피 마더스 데이’를 많이 많이 누리시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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