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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와 '우리가 죽을 때'에 관해서...
    엄마 2021. 12. 2. 01:35



    2013 년 오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2018 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깊이 묵상을 한 기도문이 있다. 그것은 가톨릭교의 '성모송'이다.
    나는 개신교도이고, 성모송을 기도로서 기도한 적은 없다. 하나님께 직접 기도를 하는 것에 익숙한 나는 '성모님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달라고 간청' 하는 형식의 성모송에 이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기도문 중의 한 구절은 내가 오빠와 아버지의 삶과 죽음, 더 나아가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해 깊은 사고를 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는 가톨릭교, 개신교의 교리를 떠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성모송에 대한 나의 해석은 가톨릭 교리와는 관계 없는 나의 개인적, 주관적 해석이다. 문학 작품이나 영화, 혹은 경치, 기차에서 만난 사람 등,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그런 영감의 원천이 여럿이듯이, 성모송의 한 구절도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게 맞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 해석한 것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시길...)

    2013 년 여름, 오빠의 죽음
    오빠가 성모병원 중환자실에 계실 때였다.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날아간 나는 의식 불명인 오빠를 맞이하고 큰 충격에 빠졌다.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믿어지지 않았다. 친정 부모님께는 차마 의식불명의 오빠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가 없어서 집으로 돌려보내드리고, 나는 여의도의 오빠의 집에서 올케와 함께 묵기로 했다. 올케는 큰 쇼크 상태에 있었고 올케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누군가가 항상 옆에 있어야 했었다. 올케 친정 식구들도 내가 올케와 함께 한다니까 안심했다.
    다음 날 올케와 병원에 갔다. 중환자실 면회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병원에 갔는데, 그 이유는 올케가 병원 내의 성당에서 기도를 하기 원해서였다. 나는 가톨릭 의식에는 익숙하지는 않지만, 조용한 공간에서 기도를 할 요량으로 함께 성당에 들어갔다.
    올케와 따로 앉아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기도에 집중이 안되었다. 정기적 간격으로 울려 퍼지는, 여성의 차분한 목소리로 녹음이 된 기도문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성모송'이었다.) 개신교도인 나는 고요함 속에서 기도하거나, 아닐 경우에는 피아노 소리를 배경으로 기도를 해봤지, 기도문이 방송되는 가운데 기도를 상황에 익숙지 않았다. 나는 내 기도를 하다가 방송으로 기도가 나오면 가만히 들으며 그 의미를 음미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첫 단락이 누가복음을 인용한 것임은 분명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큰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누가복음 1:41-42)
    나는 이 성경구절이 아주 친숙했다. 아주 옛날 성지순례 가이드로서 일했을 때 예루살렘 근교에 위치한 '마리아 방문 교회'를 방문했을 때마다 나는 순례객들에게 누가복음을 읽어드리곤 했었다. 성령의 힘으로 잉태를 한 마리아가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당시 엘리사벳은 세례 요한을 잉태 중이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만난 순간, 태중의 세례 요한이 기뻐서 엘리사벳의 모태에서 춤을 추었다는 내용이다.
    여하간 그래서 성모송의 첫 단락은 의미를 알겠는데, 둘째 단락이 이해가 안 되었다.
    성모 마리아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모님께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해주셔서 우리가 죽음의 유혹에 무너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간청이다.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개신교와는 다른 기도 방식. 그런 차이점이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므로 그리 문제 될 게 없었다. 나에게 문제는 '이제와 저희가 죽을 때'라는 대목이었다.
    '이제'와 '죽을 때'는 '살아있는 시간'과 '죽는 시간'의 대조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대조가 가능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죽을 때'라는 것은 짧은 시간일 텐데, 어떻게 그게 '살아있는 시간'이라는 커다란 덩어리의 시간과 같은 중요성을 갖고 대칭 대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죽는 시간/죽을 때를 나는 '숨이 멎는 순간'이라는 찰나의 의미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죽음은 한순간, 그 이후에 삶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런데 '방송 기도'에서의 죽을 때라는 것은 단순하게 숨이 멎는 순간을 지칭하는 것 같지 않았다. 확실히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훨씬 포괄적 의미의 시간 같았다. 그러나 사람이 '죽는 때'가 아무리 길다 해도 '살아온 삶'의 시간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짧을 텐데, 어떻게 '이제'과 '죽을 때'가 같은 무게로 대조가 될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나는 생각에 사로잡혀 기도를 드리지 못하고, 나중에 올케에게 물었다.
    "언니, 방송으로 나온 기도문, 뭐야? 언니도 알고 있는 거야?"
    "물론이지. 성모송이라고 불리는 기도야. "
    "성모님께 열심히 기도해주셔서 죽음이 주는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천국에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거지? 맞아?"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언니, '이제'랑 '우리가 죽을 때'의 의미가 같은 무게인 게 너무 신기해. 나는 '죽을 때'를 한 순간으로 봤는데 그게 결국은 이제까지 살아온 삶과 맞먹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말이니까... 정말 의미심장해. '죽을 때'가 한 시간일 수도 있고, 열흘 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그 시간은 아주 짧잖아? 근데 성모송에서는 그 죽음의 순간에 큰 의미를 두네. '우리가 죽을 때'라는 의미가 참 심오하고 이해가 되지 않고 그래..."
    올케는 "나에게는 너무 익숙한 기도라서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기도를 했는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라고 했다.
    나는 영어 기도를 찾아보았다. 혹시라도 뭔가 새로운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까 해서.
    Hail, Mary, full of grace,
    the Lord is with thee.
    Blessed art thou amongst women
    and blessed is the fruit of thy womb, Jesus.
    Holy Mary, Mother of God,
    pray for us sinners,
    now and at the hour of our death.
    Amen.
    우리가 죽을 때는 영어로 'at the hour of death'였다. 오히려 한국어보다 더 협소한 시간적 의미였다.
    오빠가 중환자 실에 계시는 동안, 나는 계속 성당에서 기도를 드렸고, 나는 계속 성모송 기도를 듣게 되었다. 오빠는 입원 후 13 일 후 뇌사 판명이 났고, 21 일 후, 숨을 거두셨다. 나는 오빠께는 '죽을 때'라는 시간이 22 일이었나... 혼자 생각했다.
    오빠가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던 중, 나는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하나님께 쓴 편지였다.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편지를 읽는 순간,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게 오빠의 유서였구나. 오빠는 죽음에 관한 awareness 가 있었구나.
    오빠에게는 '죽을 때'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22 일간의 기간이 아니었네... 돌아가시기 6 개월 전, 오빠가 죽음에 대해 첨예하게 인식을 하고, 삶의 정리를 하고, 하나님을 대면하고, 감사하고, 찬양했던 때가 오빠에게는 '죽을 때'였던 거구나.
    '죽을 때'라는 것은 육체가 소멸해가는 순간/지속적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첨예한 인식 없이 사는 이제 (now)'와 대비되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오빠가 살아온 56 년의 삶이란 '이제'는 오빠가 '죽을 때'에 잘 귀결되었고, 정리되었구나... 오빠, I'm happy for you...'
    이런 여러 생각들을 했다.
    오빠의 생, 56 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이다. 나는 죽음을 인지하고, 절대자와의 관계를 확실히 하고 나서 죽음을 맞이한 오빠의 '이제'와 '죽을 때'가 다 축복이라 싶었다. 그가 죽음을 예견하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기도를 해왔다는 사실에 감사와 위안이 느껴졌다.

    아버지 '죽을 때'--찬양과 감사
    2018 년, 3년간 투병하신 아버지는 뇌출혈 뒤 5 일 후 돌아가셨다. 그 5 일간, 아버지는 나에게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아버지였다. 감사하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강대건이라는 사람을 정의하던 수식어들에 하나도 어긋나지 않게, 그의 지성과 영성과 인격을 지키면서 아버지는 마지막 닷새를 사셨다.
    그 닷새를 통해 나는 아버지를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를 근 60 년 알아왔고,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눴고, 아버지의 마지막 3 년 수발을 들면서 아버지와 더 이상 친해질 수 없을 정도로 친했었기에 아버지를 참 잘 알고 있다고 믿었고, 막내딸의 특권/버릇으로 아버지께 응석 부리면서 아버지께 수시로 사랑과 존경을 표현했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죽음으로 이르는 5 일간 그가 보여준 모습을 통해 나는 강대건 씨가 내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순수했고, 맑았고, 깔끔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음을 알게 되었다.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된 아버지를 내가 그 이전에 알았더라면 생전에 더 깊이 존경하고 표현하고 사랑했을 텐데, 후회스러운 게 많다.)
    아버지의 '죽을 때'의 시작은 2018 년 10 월 19 일 밤이었다. 저녁 식사 후 아버지에게 뇌출혈이 왔고 몸은 마비가 시작되었고, 아버지는 눈을 뜨지 못하신 채 침대에 앉아 계셨다. 우리의 말에 반응하지 않으셨다. 식구들은 뇌출혈이란 상상도 못 하고 편히 주무시던 아버지가 평소에 일어나시던 시간에 왜 못 일어나시는가 이해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했다.
    내가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혹시라도 이게 아버지의 '죽음의 순간'인가 싶어서 아버지 가슴에 손을 얹고 뺨에 뽀뽀를 하면서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아버지는 가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우렁찬 목소리로, 그러나 마비로 확실치 않은 발음으로,
    "고맙다. 00야!"
    라고 나에게 감사를 표현하셨다. 눈을 뜨지 못하신. 아버지의 감사의 외침에 엄마, 남편, 나, 도우미 (세뇨라 버지니아)는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아버지가 말씀을 하시네, 다행이다, 근데 눈을 못 뜨시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아버지, 소리가 들리세요?"
    "응. 들.. 지!"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대답하시더니 말을 이으셨다.
    "나.... 지금 마음에... 노래하고 이어."
    식구들은 더 혼돈에 빠졌다. 눈도 못 뜨시면서, 말도 제대로 못 하시면서 노래를 하신다고요?
    아버지가 숨을 들이켜시더니 (눈을 감은 채로)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하셨다.
    "아늘... 가느... 밝.. 기리...... 내 아.... 이... 니..."
    발음은 무너졌지만 우리는 금방 아버지가 '하늘 가는 밝은 길이'를 부르고 있음을 알았다.
    이틀 후, 중환자실에서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부모님. 엄마는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행복했었노라고 고백했고, 아버지도 엄마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돌아가시기 12 시간 전, 병실을 찾아온 손자 손녀를 보고, 반가워서 미소 인양 입을 활짝 여셨다 (얼굴 한쪽에 마비가 와서 아버지는 웃어도 입을 미소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곤 힘들게 천천히 말했다.
    "I'm so happy!"
    그 누가 보기에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팔에 주삿바늘이 여러 개, 정상수치가 아닌 혈압, 혈당, 맥박 때문에 기계가 삑삑, 소변에는 피가 섞여 나오고 하루 반 동안 애플소스 반 컵 말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변도 볼 수 없는 그 상황에서.... 해피하시다고 하니 우리는 의아했다.
    내가 왜 행복하시냐고 여쭈니 '너희들이 와서 행복하다' (beacuase.... you.... all came)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작은 일에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었고, 수상록에서도 '주님이 주신 축복에 감사한다. 그리고 감사를 느낄 수 있는 인식의 능력을 주심을 감사한다'라고 쓰신 적이 있다. 몸이 무너지고 숨이 약해지는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감사의 능력, 행복할 이유를 찾아내서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은 퇴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12 시간 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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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이제'와 '죽을 때'의 편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죽음과 씨름하면서 서서히 숨이 멎는 시간을 향하였던 5 일간, 혼란과 고통의 순간에 아버지는 평생 내가 알아왔던 그의 모습이---순종, 감사, 찬양--- '외양적'인 모습이 아니라 뼛속까지 깊이 배어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하나님의 존재를 잊지도 않았고, 죽음에 공포에 휩싸이지도 않았다.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훼방할 수 있는 감정이나 사고의 유혹에 빠지기는커녕 모든 것을 다 받아들였다. 두려움이나 아쉬움 등, 죽음이 미래가 가져오는 여러 감정들에 현혹되지 않고, 아버지는 그 순간 조차 'now' 로서 살아내셨고, 그래서 평소처럼 감사의 마음으로 찬양하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행복감을 느낀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남에게 보기 좋은 어떤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고, 그게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믿고 살 수도 있다. 그러다가 연극을 할 수 있는 여력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죽음의 순간에 자기가 감춰왔던 연약한 모습을 직면하거나, 그런 모습을 주위에 드러낼 수 있다. 아버지도 그럴 수 있었고, 설사 그러셨다 하더라도 나는 깊이 실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도 한 인간이니까... 하고 이해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육체는 완전히 망가지고 허물어진 순간에, 그가 육체로서 죽어갈 때 (at the time of his death), 육체의 껍데기 속에 감춰져 있던 그의 영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마치 밤 내내 꽃망울을 부풀렸다가 아침 햇살에 활짝 피어나는 꽃처럼 자연스럽게.....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친구 린다가 '아버지의 유언이 무엇이었냐'라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돌아가시기 5일 전 아버지가 하나님께 드린 찬송, 나에게 남기신 '고맙다,'라는 말씀, 그리고 돌아가시기 12 시간 전에 하신 'I'm so happy' 란 말씀이 유언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아버지는 나에게 참 큰 유산을 물려주셨어. 그의 삶 자체라는 유산. 평생 찬양의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오셨고 죽음을 맞이해서도 의연하게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어. 그건 백만 달러, 천만 달러보다도 더 큰 유산이야."
    오빠와 아버지는 살아서도 그러했지만 죽음을 통해서 나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신의 은총과 사랑을 어떤 순간에서도 느끼고 찬양하는 그런 신앙인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그들의 임종을 지키는 영광을 누렸다. 오빠와 아버지가 아무리 오래 사셨다 하더라도 내가 발견할 수 없었을 모습, 즉,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절대로 발견하지 못했을 아름다운 모습들을 나는 그들의 '죽을 때'에 목격했다. '이제'를 열심히 살고, '죽을 때' 조차 감사해하면서 늠름하게 전진한 그들을 보면서 나는 죽음이 삶의 여정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다시금 확신한다.
    사랑하는 엄마도 이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신다. 질병, 고통, 죽음이란 개념이 좀 더 구체적인 위협이 된 현재 상황에서 엄마는 꿋꿋하게 '이제'를 살고 계시면서 '죽을 때'를 대비하신다. 엄마께 '우리가 죽을 때'가 아주 먼 훗날의 일이 되게끔, '이제'를 충실히, 열심히 살아내실 수 있게끔 엄마를 사랑으로 도울 것이다. 엄마와 함께 매사에 감사하고 찬양하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살아가리라 마음을 먹는다.
    주님, 엄마와 '이제'를 더 오래 오래 누릴 수 있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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