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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 일간의 아들의 방문/ 3 대의 행복/ 어머니의 사랑
    엄마 2021. 3. 28. 07:10




    아들이 작년 말에 집에 왔다. 자기 동네에서 코비드 검사를 했지만 할머니의 안전을 위해서 집에 오자마자 자가격리.
    아들과 딸의 방 사이의 욕실은 테이프로 문틈을 다 막고 욕실/화장실을 아들 전용으로 했다.
    삼시세끼는 물론이고 여러 차례 간식까지 온 식구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갖다 바치고
    아들은 하루에 한번 차고에 있는 home gym 에서 2 시간씩 운동을 하는 것으로 감금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크리스마스에도 자가 격리가 끝나지 않아 우리는 1 층 식탁에서, 아들은 2 층 자기 방에서 식사를 했다. zoom 을 켜서 얼굴을 보며 밥을 먹었다.


    몇 달 동안 마스크를 쓴 채 봐왔던 아들이 zoom에서 마스크를 벗고 인사를 하는 순간, 우리는 다 탄성을 질렀다.
    우리집에 예수님이 오시다니!
    코로나로 나갈 일이 없고 면도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둔 수염탓!

     
    아들이 자가 격리가 끝난 뒤에 찍은 가족사진—-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예쁜 마스크를 쓰고 찍었음.


    할아버지 성묘!


    저녁 식사...운동 후 몸에 열이 나서 덥다고 하는 아들은 저런 무례한 복장으로 식탁에 앉는데, 예전같았으면 잔소리를 했을지도 모르나 (잔소리를 했을지 안했을지 모르겠음)
    지금은 그래,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것만해도 고맙다...하고 그냥 냅둠.



    할머니는 사랑하는 손자 손녀가 함께 있으니 얼굴에 매일 꽃이 핀 듯하셨다. 장성한 손자 손녀와 한지붕밑에서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은 코로나바이러스때문에 가능했던 것. 감사. 감사. 감사.


    아들은 아들대로 편안히 휴식을 했고, 우리는 아들이 잠시 집을 방문할 때는 나눌 수 없었던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감사 감사 감사.


    남편과 나의 25 주년 결혼기념일에 엄마와 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었음도 큰 축복, 감사 감사 감사.


    아이들과 산행도 함께 하고


    아들이 82 간의 휴가를 마치고 자기 아파트로 돌아가기 전, 딸의 생일 축하, 아들과의 작별인사, 작년에 못간 휴가와 올해의 휴가겸 여러 의미를 담아 근처 도시에 휴가를 떠났다.

    아들은 정원에 역기를 설치하고 하루에 한번씩 강도높은 운동을 하고 (우리는 그걸 유리창을로 구경하고 ㅋ)


    아빠와 딸은 1일 1회 자쿠지 사용 철칙을 준수하시고 (벨기에산 맥주는 필수)


    바닷바람 맞으며 달리기—-딸과 남편.


    남편은 요즘 꽂힌 취미—새 구경—생활.


    중년에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됨을 장려해주는 의미에서 난 그의 사진을 찍고....그걸 본 딸이 ㅍㅎㅎㅎㅎ 하면서 이층에서 찍은 사진.
    잘 찾아보면 웅크리고 사진 찍는 곰같은 아줌씨 하나 보일 것임.


    내게 행복했던 시간, 틈틈이 책을 읽었음. 갖고 간 책 중 두 권은 두번째로 읽었고, 여행 떠나는 날 아침 친구에게서 받은 책 중 두 권을 읽었음.


    보드 게임도 하고


    당구도 쳤음
    (팜페미 2 연승! 나에게 친절하게 당구채 잡는 요령과 룰으 배워준 사람들을 다 꺾었음.)
    당구에 대한 sweet 한 기억을 유지하게 위해 이제부터는 절대로 당구채를 잡지 않을 것임)



    어머니도 이번 여행을 많이 즐기심.

    엄마 입장에서, 그리고 엄마를 돌보는 나에게도 잠자리가 바뀌는 여행은 항상 걱정거리.
    목욕탕, 침대가 다 새로와서 어르신께는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위험할 수도 있기에.

    그러나 온수매트와 운동 기구 (요가매트, 요가 ring, 요가 band, foam roller) 를 챙겨간 덕에 엄마도 건강히 잘 보내실 수 있었음.
    평소 ‘내가 건강해서 딸에게 폐를 안끼치고, 건강해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하리라’는 사명감에 불타시는 어머님은
    아침 저녁으로 간단한 필라테스/요가를 성실하게 하심.
    심지어 플랭크는 1분 30 초를 가볍게 넘기심. 그것도 시범을 보이는 각이 완전하게 잡힌 조교님 자세로!
    이번 여행지에서도 하루도 안 쉬고 운동을 하시고
    깨어계시는 시간에는 열심히 책 읽으시고, 일기 정리하시고, 공부를 하심.
    다섯 시간 쉬지 않고 책상에 붙어계셔서 내가 뜯어 말렸어야할 정도.


    ‘엄마는 홍콩 암흑가의 숨은 권력자인 백두 할마시가 장부정리를 하는 듯한 분위기’ 라는 놀림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신 백두 할마시...


    연로하신 펠릭스옹에게도 의미있는 여행이 되었음.
    (참고로, 펠릭스옹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호’가 있음. ‘야옹.’ㅋㅋㅋ)

    야옹님께서는 바다를 보고 약간 두려워하는 눈치였으나 매일 조심스럽게 정원을 탐사하고
    ‘나 잡아봐라~~ ‘라고 놀리기라도 하는 듯 휙휙 나르는 작은 새들을 보며 이를 갈면서
    젊음을 회복하는 눈치였음.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따님의 22 세 생일.




    22 세 딸의 생일이 한층 더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을 축하해주는 나의 87 세 어머님이 함께 하시기에.
    성장하는 딸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렇게 성장해버린 딸을 둔 늙어가는 ‘막내딸 팜펨’을 한결같이 응원해주시는 아주 늙은 엄마의 사랑을 느끼기에...



    엄마에게 참 감사하는 것은
    평생 나에게 많은 것을 배워주셨지만 요즘 지난 몇 년간 함께 살면서
    내게 정말 필요했던 것——환희와 감탄의 사랑—을 다시 일깨워주시는 것임.

    내가 아이들 보면서 ‘와~~~!!’’ 하는 사랑을 느껴본 적은 참 오래되었음.
    아이들을 사랑했고 이런저런 고민해가면서 어떻게든 잘 키우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지만
    아이들 보면서 ‘와우....!’ 하는 그런 환희는 일상적인 감정은 아니었음.
    그리고 그게 정상인 줄 알았음.
    물론 어린 아이들 보면 여전히 와우!! 하고 신기해하고 즐거워하고 그러지만
    점점 커가는 나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어쩌다 볼 때나 ‘와!’ 하고 반가워하는 정도
    평소에는 대부분 흐믓하게 미소를 주는 식이었음.


    그러나 2015 년부터엄마와 함께 살면서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었음.
    엄마는 큰 손자 손녀들에게도 여전히 ‘환희의 언어’를 사용하심.

    그래서 깨달음.
    엄마는 홍콩 암흑가의 대모는 아닐지 모르나, 분명 교육의 고수임은 분명하다는 사실.

    교육의 ‘고수’는 아주 간단하 철칙을 갖고 있었음.
    복잡한 교육 이론, 심오한 인간에 대한 고찰 뭐 이런 거 없음.
    그냥 ‘사랑하심’.

    아이를 보면 볼 때마다 감탄하고, 즐거워하시고, 감사해하심.
    아이들은 할머니 앞에서는 우줄해지고, 착해짐.

    할머니 생각에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있을 겨우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으심.
    효과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서 한발 후퇴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삼가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아주 명료하시기 때문에 이리저리 돌려이야기하시지 않으심.

    ‘이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면 좋겠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시니 불필요한 논쟁도 없고, 진심만 전해짐.
    ‘올바르게 고치겠다’는 마음보다 사랑의 마음이 전해지니
    아이들이 얼마나 좋겠는가.

    생각해보면 엄마의 그런 사랑의 교육의 수혜자는 바로 나였음.
    엄마는 내가 커가는 내내, 내가 아이를 나은 엄마가 되었어도, 내가 환갑이 되어가는 나이가 되었어도
    엄마의 나를 향한 눈은 내내 ‘환희’로 가득차있음.

    지금까지 여러 차례 엄마는 나를 바로잡아주셨지만 나를 마구 흔들어대면서 고치려고 하지 않으셨음.
    엄마는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셨고
    내 생각을 많이 받아들이시기도 했음.
    엄마는 엄마로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런 엄마 덕에 나도 좀 더 나은 쪽으로 변할 수 있었음.
    나는 엄마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걱정한 적이 한번도 없음.
    나는 그냥 멈마는 나를, 언니를, 오빠를 있는 그대로, 엄/청 사랑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을 따름.

    나의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음.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사랑’일까?

    현명한 엄마보다는 사랑의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게 엄마였음.

    나는 기억함.
    나도 아이들을 보면서 감탄하고, 즐거워하고, 신기해한 적이 있었음을...
    엄마가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 나에게 어느 정도 친숙한 이유는
    내가 바로 그러했기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랬음.
    아이들 존재 자체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환희하던 그 마음.

    어쩌면 그 경이로움에 찬 환희가 그게 부모의 초심일지도 모름.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이유로 그런 초심을 잃어가게 되는 것이고.

    엄마랑 같이 살면서 나는 ‘초심’을 회복해가고 있음.
    엄마의 손자들에 향하는 기쁨의 시선을 볼 때
    내가 잊고 살았던 기쁨의 불꽃이 다시 피어나는 듯함.
    그래서 참 행복함.
    나의 삶이 감동과 감사로 가득하기에.

    나는 아직도 엄마께 배우고 있음.
    모성은 죽는 날까지 현재 진행형이라
    엄마는 눈 감으시는 날까지 나에게 엄마로서 나에게 사랑과 가르침을 주시는 존재,
    마찬가지로 나의 딸에게도 나는 그런 존재일 것임.

    엄마랑 같이 살면서 나는 좀 더 편안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음.
    그게 무척 감사함.





    할머니, 나, 나의 딸이 같이 찍은 손.
    내 딸의 손처럼 희고 부드럽고 곱기만 했었을 20 대 엄마의 손은 쭈글쭈글하고 거친 손으로 변하였음.
    세상맛을 좀 보아 거칠어진, 올 환갑을 맞는 나의 손은 20-30 년 후에는 엄마의 손처럼 늙어지리라.

    내가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
    나와 아이들이
    내가 엄마가 나에게 그러하듯이, 내가 엄마에게 그러하듯이
    인간 세상에서, 인간끼리 느낄 수 있는 사랑 중 가장 완전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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