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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붓, 할머니의 먹부모님 이야기 2009. 2. 5. 01:53
오랫만에 아버지께서 붓글씨를 쓰셨다. 몇 달 전, 내가 이번에 미국 오실 때에는 아버지께서 붓글씨를 좀 써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엄마 아버지가 좋은 한지, 붓, 먹, 벼루를 구해서 미국에 가지고 오셨다. 엄마가 먹을 갈았다. 순식간에 온 식탁에 향기가 퍼졌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조용히 구경했다. 엄마는 먹 가는 내내 아버지께 정확한 조언을 해주셨다. '먹이 충분히 안 갈렸어요. 글씨가 흔들리네요. 좀 크게 쓰세요. 간격을 맞춰야겠어요...' 자녀를 먹여 키우느라 평생 수고한 엄마의 손. 아버지가 붓을 들어 힘찬 필치로 글씨를 쓰듯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엄마는 준비해주고, 기다려주고, 밀어주고,묵묵히 묵을 가셨다. 고마운 엄마. 먹을 가는 엄마 손과 붓에 먹을 묻히는 아버지의 손이 만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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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를 찾는 마음스치는 생각 2008. 9. 25. 00:04
(옛날 글입니다. 며칠 전에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가 글로 올리기로 약속했었는데, 뒤져보니 써 놓은 게 있어서 그냥 올립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정다운 스님의 덕을 단단히 봤다. “인생 십이진법”이라는 책. 한국 떠나기 전에 그 책을 가지고 온 식구, 친구, 친구 남편감, 맘에 드는 선배 형 인생을 점쳐 보고, 궁합까지 떠보곤 했다. 일분 일초가 아까와 헉겁지겁 사는 지금으로 보면 너무도 배부른 아이였던 것 같다. 바쁜 세상에 점을 치고 앉았다니. 그런데, 그 때 내 심정으로는 세상 일이 답답했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선택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란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확신이 안 섰?때문이다. 내가 내 인생의 능동적 주체라는 생각보다는 사회의 바퀴에 깔린 사람이란 피해의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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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의 혼자 생각스치는 생각 2008. 9. 17. 08:59
지금 깊은 밤이에요. 책 읽고 이런 저런 생각하다가 자기 전에 잠깐 글 올려요. 요즘 말이 별로 없이 조용히 사니까 이리 좋을 수가 없네요. 청소도 쉽게 하고, 아이들도 많이 도와주고, 밥은 여전히 대강해먹고, 아이들한테서도 좀 자유로워졌어요. 며칠 전에 '너희는 대학갈 돈이 없을 가능성이 크니까, 열심히 알아서 공부하라우~~. 근데 못해도 상관없다우. 그러면 동네 2 년제 대학 가서 열심히 하면 된다우. 늬들도 빚지지 말고 살고, 우리 부모들도 빚내서 늬들 공부시키는 일 없이 하자우~~' 하고 선언하고 저는 뒷전에 물러 앉았습니다. 9 살이고 11 살이면 혼자 알아서 할 때도 됬지 않았음둥? 그렇지비...그렇지비.... (말되 안되는 함경도 사투리 끝마무리.-.-) 살림을 못하긴 해도, 그래도 10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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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함께한 찬송스치는 생각 2008. 9. 15. 02:39
토요일: 오늘, 추석이라고 뭔가 하려고 별렀는데, (쎄시봉이 마당에서 바베큐 하겠다고 했었어요. 리노 네랑 동네처자네랑 부르자고 했는데) 제가 몸이 안 따라 줘서 큰 일을 벌릴 자신이 없어서 나중으로 미뤘습니다. 미국 추수감사절 때 뭔가를 하자고 했지요. 그리고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습니다. 기운 모으자. 모으자. 오늘, 아이들이 처자 댁에 가서 뭔가를 해서 제가 푹 쉴 수 있었어요. 감사하오. 이불 속에서 잠이 들락말락하는 중 쎄시봉이 큰 박스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한국에서 뭐가 왔다면서. 친구가 보내준 한과. 깜짝 놀랐어요. 생각지 않았던 선물. 벌떡 일어나 예쁜 보자기를 뜯고, 그 안에 색색가지 한과를 보고 저도, 쎄시봉도 탄성 지르고. (보자기 너무 예뻐서 나 머리 수건으로 쓰고 다닐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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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아, 나의 청소기야!스치는 생각 2008. 9. 11. 13:28
며칠 전에 동네처자가 새 청소기를 장만했습니다. 아주 깜찍하고 예쁜, 그러면서도 듬직하니 약간 로보트같은 분위기의 청소기였어요. 청소기를 새로 장만하고, 정말 일을 잘 하는 청소기와 사랑에 빠진 동네처자가 인간의 존엄성 운운하면서 감격해하는 거 들으면서 저도 덩달아 신났습니다. 저도 청소기가 참 좋거든요. (갑자기 마리가 나한테 장거리 이사가면서 청소기를 가져다 주려고 했던 거 생각나네. 그 무거운 걸.... 고마웠어요. 그 때 가져다 준 문방구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어요.^^) 옛날에 소피네 홈피에 올렸던 청소기 이야기 올립니다. (예전에 소피네 홈피에 올렸던 글들 가끔 올려달라고 한 친구들에 대한 답변이기도...^^) --------------------------------------- 사람마다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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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경기스치는 생각 2008. 6. 19. 00:11
친구들, 안녕? 요즘 일들이 많이 생겨서 못 들어왔어요. 블로그라고 열어놓은 지 얼마 안되어 방을 너무 오래 비우는 게 마음에 걸리는데.. 일이 바쁠 땐 그냥 돌진해야겠다 싶어서.. (흐..돌진이라고 하니까 웃기네요. 돌진이라고 하면 씩씩하게 달리는 모습이 상상되는데, 저는 산발하고 앉아 뭘 만들고 있었던 거거든요. 며칠 밤 새면서 했더니 머리가 어질어질...그래서 주말에는 종일 잤어요. 기운 좀 차린 뒤에 또 돌진~~...그리고 그 다음날 또 하루 종일 누워 쉬고...어제 일들이 다 끝나고, 기분이 좋아서 쓰는 거에요.) 아직 남아 있는 일들이 좀 있어서 새로 글 쓸 여가는 안 나고, 얼마 전에 교회 전도사님에게서 들은 이야기 옮겨두었던 거 찾아서 올립니다. 즐거운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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쥰이모스치는 생각 2008. 5. 28. 05:37
쥰, 우리 동네, 5 월, 기억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많이 그립수다. 올해 꼭 봤으면 했는데... 아기씨는 지금 몸이 어떤지? 코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입이 헐어 밥도 못 먹고, 배도 아프고--- 아기 엄마도, 아기씨도 너무 힘들었겠다. 아기씨가 어서 몸이 회복되어 다시 '계속 춤춰야해요' 하면서 놀기를... 오늘 어디 나가다가 큰 길에 활짝 핀 보라색 꽃 보고 이제 저 꽃이 지면 5월이 가는구나, 우리 아기씨 올해 못 보는구나 이렇게 저렇게 서러워 도로 들어가 사진기 들고 나와 찍었다오. 이렇게라도 꽃을 붙들어매야지.. 그립수다. 같이 이 길을 천천히 운전하던 때가 이 길 따라서 호수로 산책가던 때가... 밥 먹고, 걸어가 '우리 왔어요~'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게 가까이 살던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