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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쟁이를 찾는 마음
    스치는 생각 2008. 9. 25. 00:04
    (옛날 글입니다. 며칠 전에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가 글로 올리기로 약속했었는데, 뒤져보니 써 놓은 게 있어서 그냥 올립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정다운 스님의 덕을 단단히 봤다.

    “인생 십이진법”이라는 책.

    한국 떠나기 전에 그 책을 가지고 온 식구, 친구, 친구 남편감, 맘에 드는 선배 형 인생을 점쳐 보고, 궁합까지 떠보곤 했다. 일분 일초가 아까와 헉겁지겁 사는 지금으로 보면 너무도 배부른 아이였던 것 같다. 바쁜 세상에 점을 치고 앉았다니.

    그런데, 그 때 내 심정으로는 세상 일이 답답했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선택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란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확신이 안 섰?때문이다. 내가 내 인생의 능동적 주체라는 생각보다는 사회의 바퀴에 깔린 사람이란 피해의식이 컸다.  (이런 사고는 나중에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많이 바뀌게 되었다.)

    장래가 막막하니 점쟁이에게 가고 싶었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부모님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뭐, 나 혼자 장난삼아 가 볼 수도 있었다. 실제로 못 간 이유는 점쟁이가 재수없는 소리 할까봐 두려웠다. 그런 걸 보면 점쟁이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자부하면서도 속으로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스라엘에서 만난 친구들은 진한 터어키 커피를 마신 뒤에 커피잔을 뒤집어 들어 잔 밑에 남은 커피가 흘러내리는 모양을 보면서 점을 쳤다. 터어키 커피는 앙금이 많이 남기 때문에 잔을 거꾸로 들면 천천히 흘러내린다. 모두 그 과정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그 중에 볼 줄 아는 사람이 이렇궁 저렇궁 해석을 하는 것이다.

    주로 아랍 애들이 커피잔 점치기를 즐겼는데, 나는 걔들이랑 수다떠는 게 좋아서 노상 같이 앉아 있곤 했다. 아이들과 수다떠는 것만 좋았지 커피 점에는 관심이 없었다.  속으로 “이그...된장 국물 자국을 보면서 점을 치는 거랑 뭐가 다르노? 끌끌” 생각했다., 커피 앙금을 보고 점치는 것은 신빙성이 전혀 없었다. 할려면...음...정다운 스님의 십이진법 정도는 되어야지...

    어느 날 저녁 예의 그 커피 앙금 점을 치고 있는데,  좀 볼 줄 안다는 애가 주저리주저리 스토리를 늘어놓는 게 영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끼어들었다.

    “내가 손금 봐 줄까?”

    친구들의 반응이 즉각적인 환호로 나타났다. 자기들이 모르는 동양식 손금 읽기라는 것, 그리고 불도저 식으로 틀린 말이든, 맞는 말이든 마구 마구 주어섬기는 내 말주변이 뭔가 점을 잘 볼 것 같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정다운 스님의 책에는 손금 이야기는 없다. 단지, 정다운 스님의 책에서 내가 얻은 것은 ‘인생에 대해서 점치는 이야기를 하는 법,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어떤 주제를 다루는가’ 에 대해 좀 잘 알게 된 것이다.  성격, 건강, 재물, 학업, 연애, 관계.....그리고....그런 인생 전반에 대한 생각들은 문학공부의 기초가 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일간스포츠, 선데이 서울에서 읽었던 손금 이야기를 좀 멋있게 풀어놓으면 되었다.

    어차피 1년 동안 어울린 애들이니 성격이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각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바를 손금의 방향과 연결지어 대강 수다를 떨었다. 그랬더니 다 ‘맞네, 어쩜“ ”어머, 손금에 그게 다 나와?“ 해 가면서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진지한 얼굴로 손을 잡고 손금을 읽고, 눈을 마주치면서 ”생명선, 성공선, 감정선“을 설명하는 나는 내가 봐도 너무 박식하고 권위가 있어 보였다.-.-

    예루살렘에 처녀 도사 하나 났다~~

    그래서 생긴 문제가 내가 점을 잘 친다고 소문이 난 것이다. 특히 손금 읽기는 일류라고 파다하게 소문이 나서, 모임이나 파티에 가면 손금을 봐 달라는 사람이 줄을 섰다.

    아랍애들만이 아니었다. 유대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파티에 가면 구석에 아예 내가 손금 볼 자리를 마련 해 두는 경우도 있었다.

    “이래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주절주절해가며 남의 인생에 참견하는 것) 되나?”

    찝찝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울며 겨자먹는 식으로 손금을 봐야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손금을 실제로 알고 있었다면 별 문제가 아니었을텐데, 나는 실제로 손금 읽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모르면서 남의 인생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니...

    그런데 그럼에도 처녀도사로서의 위치를 굳건하게 했던 내 성공 비결 (-.-)을 공개하자면...

    처녀도사는 나름대로 어떤 식으로 점쟁이의 know-how가 있었다.

    첫째,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빨리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문제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아내냐가 관권이다. 처음에 잘 풀어내면 그 다음에는 상대방이 ‘self-service' 하듯이 플어낸다. 나는 구경만 해도 된다.

    예로 건강 문제.

    손을 부드럽게 쓸면서...찬찬히 들여다본다. 상대방은 내가 뭘 들여다보는가 궁금해한다.

    “여기...잔주름들이 많구나..건강이...”
    “내 건강이 안 좋은 거야?”
    “아니..딱..그건...아니고....이쪽으로 향하는 선들이...흠....장기에...”
    “나 대장이 좀 안 좋은데.”
    “그렇지..그건 이미 확실히 보이는 거고..”

    (손님은 이 순간에 점쟁이에게 반한다. 신뢰를 갖게 된다. 옴마...이 사람은 내 대장이 안 좋은 것을 확실히 찝어냈네! 용해라!)

    점쟁이 (나!)는 좀 더 건강문제를 다룬다. 시간끌기 작전이다.-.-

    “위가 말야..음..여기...이 선이....위가...신경성이..”
    “어? 나 위는 괜찮은데.”
    (날카로운 시선으로 손님을 째려보면서 누가 그걸 모르냐는 식의 메시지를 강하게 쏘아댄다.)

    “아니, 지금 위가 안 좋다는 소리가 아니야. 단지, 신경을 쓰고 그러면 가장 영향을 크게 받는 게 위장이라는 거지. 여기 봐봐. 큰 선이 뜨문뜨문 이어져 있고, 그 옆에 가는 선들이 보이지?”

    (참고...가능하면 촛불을 켠, 약간 어두운 방에서 해야 뭐가뭔지 잘 안보여서 좋다)

    손님은 반색한다.

    “맞아. 나, 신경을 좀 많이 쓰는 경향이 있어. 점점 더 예민해지는 거 같아.”

    (요즘 세상에 신경 안 쓰고 사는 사람이 어디있나?!)

    이런 식으로 나는 미끼를 던지고 손님은 미끼를 물고는 왕건이를 줄줄 풀어놓는 식으로 이야기가 되어 가는 거였다.

    둘째, 짐작을 해서 이야기를 한 게 사실과 전혀 상관없는 헛소리였음이 판명되어도 절대로 놀라거나 두려워말라. 다시 또 주워 섬기면 되니까.

    셋째, 한번 손금을 봐 준 사람은 절대로 봐 주면 안된다. 이것은 나의 뼈아픈 실수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지바라는 친구의 손금을 봐 줄 때였다. 내가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으흠. 결혼을 일찍하네.”

    했더니 지바가 좀 미안해하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어..음..저기...네가 지난번에 봤을 때는 나더러 결혼을 늦게한다고 했는데...”

    아이쿠. 두 번 째 보는 거구나.

    절대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다시 또 주워 섬기면 되니까..

    나는 뻔뻔을 가장하고 그녀의 눈을 보며 이야기했다.


     “지바, 네 생각에 스물 여섯이면 결혼을 일찍하는 거니, 늦게하는 거니?”

    “늦게하는 거지.”

    “그렇지? 내 입장에서는 스물 여섯이면 결혼을 일찍하는 것이야. 지난 번에는 내가 아마 네가 받아들이기 쉽게 네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 거였고, 오늘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 한 거야.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네가 26에 결혼한다는 거야.“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26에 결혼한다고 못을 박게 되었으니. 이후로는 나는 절대로 한번 손금 봐준 사람을 두 번 보지 않았다.

    넷째, 철저한 비밀 보장을 요구하라. 아무리 능변이라도 몇 개 안되는 손금을 가지고 열명, 열 다섯 명의 인생을 다 다채롭게 꾸며내기는 힘든다. 한소리 다른 사람한테 또하고, 또 다른 사람한테 또 하고---하는 식이다.

    나는 한사람 한사람한테 다짐했다.

    “인생을 논하는 사람이 손금을 가지고 장난처럼 웃고 떠들면 못쓴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고 혼자만 알고 있으라”

    고 하였다. 내가 도돌이표인양 비슷한 얘기를 이사람 저사람에게 한 것이 들통날까봐였다.  미안하게끔 친구들은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그냥 내가 기가막히게 잘 본다는 소리 정도나 했다.

    내가 손금을 안 보기로 결정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파티에 갔었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프랑스 애들이 주축이 되어 여는 파티였는데, 여러 나라 사람들이 다 모였다. 나는 파티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방 구석의 카펫에 방석들이 편안하게 놓여져 있는 곳에 인도 되었다. 손금 좀 봐달라는 거였다.

    키득키득 웃으면서 재미로 보는 일...그래서 몇 명을 봐줬다. 기다리고 서 있는 애들도 있었다.

    한 친구가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와서 앉았다. 이름이 “레바나”라고 했다. 탐색전을 벌인 지 얼마 안되어 나는 레바나가 중년 유부남과 사귀는 중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나는

    ‘중년 남자를 쫓아다니지 말아라. 네가 방황하는 이유는 인생에서 ‘안정’을 찾는다는 게 원숙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 건데, 그것은 결국은 너를 더 헷깔리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본전도 못 건지기 쉽다“

    하며 일반론을 구수하게 펼쳤다.

    그런데 레바나의 반응이 너무 ‘과격했다.” 간절한 눈빛으로 내 손을 덥석 잡으면서,

    “그럼, 어떻게 해야해? 말해 줘. 우리 관계가 어떻게 된데? 그사람하고 나하고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괴로워 죽겠어.”

    이것은 내 시나리오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도 장난으로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하룻 저녁 재밌는 소리 듣고, 다음 날 아침이면 다 까먹을 이야기라고 믿고 하는 손금읽기였는데, 어떤 여성이 나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청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당황해서 말을 못했다. 어떻게 해야하나. 내가 그냥 지어내서 이말 저말 하는 거라는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뭐라고 조언을 할 수도 없었다. 레바나는 내 손을 놔 주질 않았다.

    "나 너무 괴로워. 뭐든지 말좀 해 줘.”

    그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구석에 앉은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손금을 너무 잘 읽어서 그녀가 울음을 터뜨린 거라고 여기는 게 뻔했다.

    나는 정말 괴로웠다. 고통받는 한 인간을 이렇게 우롱한 내 자신이 너무도 싫어졌다. 그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해야겠길래 나는 떠듬떠듬 말을 했다.

    “나는 너의 인생을 읽을 수는 있지만 네가 어떻게 해야한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어. 손금은 변한단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내가 읽어 묘사하는 거일 따름. 이것이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너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인생을 바꿀 수 있어. 중요한 거는 네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일이라는 거야.....”

    레바나와 나는 손금의 이야기를 떠나 여성대 여성으로서, 친구로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레바나의 남자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지 않았을 말이나 행위를 하는 사람인데, 레바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분노가 느껴졌다. ‘그 넘’이 이 파티에 왔다면 내가 손금을 본답시고 그 사람에게 숨은 이기심이나 무책임을 낯낯이 공개할텐데 싶었다. 또 한편으로는 사랑이 아름답다지만 인생의 청사진에서 사랑과 결혼이란 건물만 우뚝 지어놓고 있는 레바나같은 여성이 쫓아다닐 경우에는 남성이 도망가고 싶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들의 문제고...나는 나의 문제로 고민했다. 레바나랑 이야기 나누는 내내 죄의식을 금할 수 없었다. 이젠 손금을 보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이럴 순 없다. 사람을 갖고 장난하면 못쓴다.

    그런데 정말 그 결심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준 일이 그날 밤에 생겼다.  

    파티가 깊어가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문이 열리면서 세 명이 들어서는데 서부 영화에서 술집에 악명높은 악당들이 들어설 때처럼, 잠시 휘이이이~~잉 바람이 부는 것처럼, 그들의 등장은 뭔가 새로운 기운을 몰고 왔다. 큰 키, 마른 체구, 긴 머리, 그리고 피곤한 듯한 날카로운 시선, 그들은 평범치 않은 기의 소유자들이었다. (나...점쟁이같은 표현 쓰고 있구나.-.-)

    파티를 주관한  이블린이

    “저사람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온 사람들인데, 그 중에 점을 아주 잘 치는 사람이 있다”

    며 나를 끌어 당겨 그 중 한 남자에게로 데려갔다.

    가죽잠바에 긴 생머리의 그 남자.
    셋 중에서 눈빛이 가장 날카로왔다. (나는 그 사람 눈을 보고 뱀 눈을 연상했다.)

    그는 이블린이 내 소개를 하자 마자 나를 아래 위로 훑었다.
    나는 그의 시선이 불편했다. 그가 마치 내 ‘영험한’ 능력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하려는 것 같이 느껴져서였다.

    그는 내 옆에 서있는 친구의 손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그 손금을 보고 뭐라고 하더냐고 물었다.
    도전적인 사람이었다.

    다행히 '강무당'의 열렬한 추종자인 친구는 이미 세뇌가 되어 “함부로 말 할 수 없다”고 일언지하로 거절했다. (“철저한 비밀보장을 요구하라” 라는 철칙!)

    휴---- 살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그가 다짜고짜 나에게 손을 번쩍 들어 손바닥을 내밀었다. 자기 손금을 보라는 거였다.

    휘웅~~~~~~

    갑자기 무협영화의 주인공이 허허 벌판에서 강한 적수와 대적을 하는 듯한...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도 긴 쌩머리에 가죽 잠바를 걸치고 있었으니...우리는 정말 정다운 맞수였다.

    단지...그 인간이 속으로 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속으로 덜덜덜덜 떨고 있었다.

    '아아. 큰일이다. 직접 테스트 하려는 꿍꿍이구나. 이거 정말 큰 일났네. 내가 틀리는 거 다 뾰록나겠다.'

    그러나, 나는 동양의 귀인, “썬데이 서울”의 생머리 처녀 점쟁이 아니던가!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앞으로 다시는 손금 읽는 놀이를 안 한다 하더라도, 이 상황만은 넘겨야했다!

    (남들이 자주 쓰는 말 한번 써보자. “한국의 국익이 달린 문제!” 란 말이다!!)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신 다음에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왜 안 돼?”

    “너는 이미 너의 인생을 알고 있어. 내가 왜 너의 인생을 봐야하니? 손금 읽을 줄 아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남의 것을 보지 않는 것 알잖아.”

    하고 둘러댔다. (나는 그런 소리 들은 적 한번도 없다.)

    그는 멈칫하더니 만족스런 표정이 되었다. 마치 적인가 아닌가를 살피는 상태에서 내가 아군의 암호를 댄 것 마냥, 나를 알아본 것이다.

    뱀눈의 아르헨티나 점쟁이가  ‘썬데이 서울 처녀 무당“을 알아본 것이다.

    우리는 소림사 주지와 황룡사 주지가 서로의 비범함을 알아보듯이..

    아니..

    소림사 주방장과 황룡사 주방장이 비법의 산채비빔밥 요리법을 알고 있음을 확인하고 서로를 인정해주듯이...-.-

    우리는 서로에게 무언의 연대의식이 담긴 눈빛을 쏘았다.

    “맞다. 우리들은 서로의 손금은 읽지 않지.”

    올라라라....나는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지만 큰 망신을 당할 뻔 한 것이니까.

    그 날 나는 철면피처럼 춤을 추고 떠들고 웃고, 웃기고 놀았다.
    그러나 머리 속으로는 내내 “다신 손금 안봐. 다신 안봐” 되뇌이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절대로 손금을 보지 않았다. 나중에 성경을 보니 점치기를 하지 말라고 써있더라. 안 본다. 안봐!

    유럽, 미국에서 여러 형태의 점치기가 점점 popular 해지는 것을 목격했다. 특히 점성술과 타로 카드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은 아주 높은 거 같다. 점성술을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돈을 쓰는 여성들이 많았다. 여성잡지를 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운세와 점성학은 직장문제, 결혼문제, 애정문제에 대한 분석과 예견을 해준다. 내 페미니스트 친구들 중에도, 기독교인 친구들 중에서도 점성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건 안 믿어. 그냥 재미 삼아 보는 거야’ 하면서도 그것을 통해 자기 삶의 조그만 돌파구를 몰래 찾고 있는 현대 여성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나는 손금을 보면서 여러 여성의 손을 만지고 그들의 눈을 보고 이야기 할 기회가 많았다. 그 중에는 한 번 재미보자는 마음으로 손을 내민 여성도 있었고, 자기의 고민을 지지하게 털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젊은 여성들의 고민은 대부분 남자 문제였다.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유와 독립을 커피처럼 마시고 살고, 남성과 대등한 관계로 사랑을 하고, 진취적인 모습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점성술에서 찾는 안정감은 무엇일까? 남이 나에게 내 인생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의존성이 ‘재미’라는 말 속에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 왜 우리는 남성과 다를까?

    남성들의 손금을 꽤 많이 보았지만, 그들은 정말 장난삼아 동양 여자애란 수다떠는 재미로 하는 것이었지, 자기의 고민을 내어 놓는 경우도 없었다. 장래에 내가 무엇을 할까, 내가 사귀는 여자랑 어떻게 될까를 묻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여자 문제로 절박하지 않았다. 기껏, 잠깐 진짜로 진지해 질 때는 자기가 오래 사냐 마냐와 ‘섹스’에 대한 선이 있냐 없냐 정도였다. 나는 나에게서 손금을 보는 여자 친구를 귀엽다는 듯이 내려다 보고 있던 남성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남성들이야말로 점을 정말 ‘재미로 보는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지바와 레바나를 생각한다. 레바나가 유부남과 결혼을 하게 됐을까, 아니면 그 남자가 자기의 운명적 사랑이 아님을 알고 헤어졌을까. 지바가 ‘우연히’ 스물 여섯에 만난 남자를 ‘운명이 점지한 사람’이라고 믿고 결혼을 하지나 않았는지, 아니면 아주 나이 지긋한 노처녀가 되어 나를 원망하고 있을지, 아니면 이미 이혼을 몇 번 하고서 손금을 만지며 다시 결혼할 운이 있나 계산을 하고 있을지...

    내 기억에 세월의 먼지가 뽀얗게 쌓인 뒤에도 나는 그들의 인생이 어떤 방식으로 펼쳐졌던 간에 내 장난이 그들의 인생에 나쁜 영향이 아니었기만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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