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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갑: ‘망했다’를 축하하는 나이
    스치는 생각 2021. 7. 9. 03:43

    얼마 전부터 딸아이가 ‘엄마 환갑 해야지!’ 하며 계획을 세웠다.

    여러 사람 초대하고 케이터링해서 크게 할까? 아니면 집에서 조촐하게 할까? 물었다.

    당연히 간단하게 하는 거지!
    코로나 시대에 무슨 파티냐!

    딸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며칠 후에는 엄마를 미역국과 환갑 떡을 꼭 먹여야겠단다.

    떡은 오케이, 미역국은 No!

    미국에서 자라 환갑잔치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딸아이가 사명감을 갖고 내 환갑을 차려주려고 하는지 기특했다.

    다시 며칠 후, 환갑 기념으로 온가족이 한복을 입자고 한다.
    그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남편은 25 년 전에 맞춘 한복이 있다.
    나는 몇 해 전 맞춘 한복—-내가 원하는 대로 ‘로동당 간부가 입을 법한 촌스러운 색상의 한복’-이 있고
    어머님은 스스로 만드신 모시 개량한복이 있다

    딸아이는 자기와 오빠만 한복을 대여하면 되겠다며
    엘에이나 가든그로브에 대여점이 있어 알아봤더니 대충 150 불-200 불 정도인데 지원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오케이!

    며칠 후에 또 다른 계획을 들고 나왔다.
    이왕이면 한복입고서 전문 사진가한테서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때 내가 보증금을 걸어둔 사진사가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작년에 결혼한 친구가 미국에 신혼여행을 올 때 선물로 2 시간 패키지를 예약해뒀었다.
    친구는 코로나때문에 신혼 여행을 생략했고, 그 패키지를 어쩌나 했는데 이참에 환갑사진을 찍으면 좋겠다 싶었다.

    친구의 사진은 야외 촬영으로 예약했었지만 어머니 모시고 찍는 환갑사진은 스튜디오가 좋을 것같았다.
    얼굴, 피부, 덩치가 각양각색인 다인종 가족, 삼세대가 한복을 입고 바닷가, 호수, 공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사람들에게 볼만한 구경거리가 될 게 뻔하니 말이다.

    ———

    사진을 찍기로 한 뒤에 갑자기 너무 설레었다.
    이 얼마나 오랫만의 스튜디오 사진인가!
    딸이 해외로 2 년간 파견을 가게 되어, 앞으로 아이들과 다 함께 스튜디오 사진을 찍는 건 어려울 것이다.
    참 귀한 기회다.

    갑자기 예뻐보이고 싶은 열망이 들었다.
    ‘여성의 얼굴 관리는 책임’ 이라고 했던 친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었는데,
    그 친구 결혼사진을 보니 대학교 때보다 더 탄탄하고 예뻤던 게 생각났다.

    그래, 관리를 해주면 예뻐지는 거야…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어서 얼굴 관리를 해서 10 년 젊어보여야지!
    팩을 사서 일주일에 세 번이나 했다.
    엄마께도 강요하다시피 팩을 씌워드렸다.

    참 안 좋은 게, 예전과 달리 관심을 갖고 얼굴을 보니 부족한 게 눈에 많이 띄였다.
    화장으로 감출 수 없는 늘어진 피부, 주름, 잡티…
    바로 며칠 전까지만해도 휘리릭 화장하는 바람에 알아보지 못했던, 60 년의 세월의 흔적을 나는 알아보게 되었다.
    내 얼굴, 많이 망가졌구나.

    (이게 다….스튜디오 사진의 탓이다.)

    아이들 한복을 대여해왔다.
    요즘 한복은 파스텔 색조의 고상한 분위기.
    나는 분홍 색깔이 진한 약간 촌스러운 ‘로동당 아줌마 스타일,’
    남편도 ‘로동당 간부가 집에서 환갑 잔치를 할 때 입을 듯한’ 그런 옛스럽게 화려한 스타일,
    아이들 한복과 같이 놓으면 한복이 남북 대결을 하는 것같다.

    그러나 다행히 한복의 ‘남북 화합’이 이뤄졌다.
    엄마 한복 덕에.
    엄마가 디자인해서 한땀한땀 만드신 개량한복은 아이들의 신식 한복과도 잘 어울렸고, 우리의 ‘로동당 한복’과도 잘 어울렸다.


    ——

    스튜디오 사진은 아침 11 시에 찍기로 예약 되었다.
    10 시 20 분에는 나가야하는데,
    정성들여 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질할 시간이 부족했다.
    왜냐…
    남편이 9 시 반에 일어나는 바람에 침실에 붙어있는 욕실의 화장품과 드라이어등을 소리내어 사용할 수가 없어서였다.
    미리 준비성있게 다른 곳에 옮겨 두었다면 파운데이션이라도 좀 정성들여 바를 수 있었을 것을..
    남편이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모든 게 늦어졌고, 늦어지니 서두르고, 서두르다보니 챙겨두었던 귀걸이를 집에 두고 스튜디오로 갔다.

    스튜디오 가는 길에 남편에게 투정했다.
    당신때문에 내 머리 손질할 시간이 없었고 귀걸이도 두고 왔다고.

    운전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자신의 탐스러운 (대)머리를 뒷좌석에 앉은 나를 향해 뒤로 쑥 들이대며 말했다.

    “왜 당신은 머리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려?
    나도 오늘 머리 손질했는데, 난 2 분 걸리던데?”

    (면도기로 밀었으니ㅠ)

    ——


    스튜디오에 가서 손질을 해야지…생각하고 화장품과 고대기를 가방에 던져 넣었었는데
    아뿔싸.
    스튜디오에 거울이 없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사진관에 거울이 없다니?

    생각해보니 내가 본 사진사의 훌륭한 사진들은 다 야외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석양에, 바위에, 파도에, 풀밭에, 공원에…
    내가 야외에서 찍고 싶지 않다니까 자기도 작은 스튜디오가 있는데 거기서 찍겠냐고 묻던 조심스러운 억양이 떠올랐다.
    아, 스튜디오는 자주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었구나!

    스튜디오는 거울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제대로 앉을 곳도 없었다.
    머리를 손질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니까 건물의 구석에 화장실이 있고 거기에 거울이 있단다.

    어떻게든 내 머리를 구원해보겠다고 화장실로 가니,
    남녀 공용 화장실인데 퀴퀴한 냄새가 나고….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전등이 안 켜지고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전부였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한복 입고 긴 머리를 다듬고 있는 나의 모습은 귀신,
    (처녀귀신이 아닌 환갑 귀신 ㅠ)
    이건 아니다 싶어서 머리손질을 포기하고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딸아이가 안스러워하면서 전화기를 거울삼아 들어 비춰주는데
    하악….
    머리는 뻗치고, 귀걸이없는 귀는 심심하고, 눈화장은 짝재기, 그것도 모잘라
    얼굴이 극심하게 번들거린다.
    안하던 팩을 일주일에 세 번 한 결과.
    이 머리로 한복을 입고, 스튜디오 사진이라니…
    안하던 노력을 하면서 기대했던 이벤트인데,
    자자손손 대대로 남을 사진인데…
    한숨이 나왔다.

    나의 독사진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조명을 조절해야한다며
    앞에 서보란다.

    내가 하얀 휘장을 배경으로 사진기를 바라보며 선 순간,

    아….!!!!!

    소리가 들렸다.

    일주일에 팩 세 개 쓰면서 관리한 나의 젊어진 미모에 감탄하는 ‘아!’ 가 아니었다.

    엄마의 한숨 소리였다.

    ‘평소에는 머리 손질 잘하는데, 오늘은….’ 혼잣소리를 하시는 게 들렸다.

    딸아이는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와서 삐진 내 머리를 옮겨본다.
    저 뒷편에서 또 “아아!!” 깊은 탄식 소리가 들린다.

    “그 머리 아무리 해도 잘 안되는구나…”

    어머님의 깊은 탄식이었다.

    (망했다…. 표정이 바로 이것!)


    (엄마는 예쁘심)

    (머리를 간신히 진압했음. 그러나 억지로 웃다가 입에 경련이 나는 순간.)

    (아들은…. 면도도 안하고 나타나심 ㅠ 어차피 망한 거 뭐….)



    항상 긍정적인 나는 식구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농담삼아

    “아, 오늘 망했어. 이 머리때문에!” 라고 했는데,

    갑자기 사진사가 “하하하” 웃으며 끼어들 줄이야.

    “어떤 날은 정말 머리가 말을 안듣는 날이 있어요. 사진 찍는 날 그러면 참….” 하는 거다.

    왠만하면 사진사가 고객의 아름다운 미소를 뽑아내기 위해서
    겉으로라도 “You look good! Your hair is ok!” 라고 할법도 한데
    내 머리가 오죽 한심했으면…

    그 순간 모든 결론이 났다.
    내 머리는 나도 포기하고 사진사도 포기한 머리때문에

    환갑 사진, 망했다.

    돈들여 한복 빌린 것도 실패.

    얼굴 경련나게 웃으면서 쉴새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내내 ‘망했다’ 생각을 했다.



    ———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아주 궁금하다.
    내 사진은 이미 잘나오리라 기대하지 않는데,
    내가 진짜 궁금한 것은
    다섯 명이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이다.

    여러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조합을 이뤄 사진을 찍다가 맨 마지막에 다섯명이 함게 서라고 해서 섰다.
    스튜디오가 워낙 좁아서 사진사와 우리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바로 코 앞에 사진사가 서 있는데 어떻게 전신 사진이 나올까 의구스러웠다.

    사진사가 “온 가족이 껴안으세요!” 라고 주문한다.
    이 정도 껴안았으면 되었다 싶은데도 사진사는 더 붙으라, 더 세게 껴안으라 요구했다.
    결국은 비비고 겹치고 그래서 가능한한 작은 ‘가족 무더기’를 만들어야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포즈가 살아있으면서 같이 어우러지는 그런 가족사진이 아니라
    한 가족이 귀신보고 공포에 빠져 꼭 껴안은 듯한 포즈…
    아까 화장실의 그 환갑 귀신?!

    어머니와 아이들과 남편과 한 무더기가 되어, 경련이 나게 웃으면서 생각했다.

    가족 사진도 망했다….



    ————-

    사진 찍고 나서 나오는 길에 순두부 집이 보였다.
    계획에 없었지만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온 식구가 식당에 갈 수 있는 기회다 싶었다.
    다들 맛있게 먹었다.
    잘 먹으니, 스튜디오 사진은 다 잊었다.
    온 가족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저녁에 환갑 떡 케이크로 축하했다.
    떡은 예뻤고 맛있었다.

    (baker 께서 happy birthday 가 아닌, happy anniversary 라고 적어주심. 케이크, 너마저….oh, well..)

    엄마, 남편, 아이들과 함께 떡을 나누면서 행복했다.

    바로 몇 시간 전, 머리 스타일 엉망으로 스튜디오 사진도 엉망이었던 게
    이미 다 재밌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껄껄껄~~

    그러고보면 환갑이란 나이는 참 헛된 숫자가 아니다 싶다.
    60 년 동안 많이 망해본 결과, 잘 웃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너무 잘하고 싶었고, 원하는 것들이 내 생각대로 안 되는 일을 많이도 경험해보았고
    시간이 지난 뒤에 그게 별거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게 셀 수 없이도 많다.
    완벽함을 이루는데 집중해서 순간을 즐기지 못하던 옛날 버릇도 나이 먹으면서 고쳐졌다.
    뭔가 뜻대로 안되어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큰 문맥의 시간 속에서 순간을 볼 수 있기에
    안타까움에 휩싸이거나, 생각이 복잡해져 안달하는 일이 적어졌다.

    1 시간이라는 시간이 옛날에는 그냥 1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그 시간은 곤두박질 달음질을 해버려 1 년의 의미를 갖기도 하고,
    10 년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망했네’ 하고 돌아서는 순간, 바로 그것이 ‘추억’이 되어버리고,
    내가 살아 있는 한, 삶의 모든 일들은 살아서 생기는 귀한 일이며 소중한 추억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더 이상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망한 것같이 보이는 사진을
    바로 1 년 후에는
    “이때만해도 젊었네!” 라고 찬탄하면서 바라볼 거라는 사실.
    설사 사진이 귀신같이 나오고, 귀신에게 놀란 듯한 사진도
    흐뭇한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니 사진을 찾는 날,
    나의 삐진 머리와 번들거리는 늙은 거죽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스튜디오에 거울을 구비하지 않은 초보 사진사를 탓하는 대신에
    환갑에 나이 하나 더 먹은 61 세의 노인이
    1 년 전의 환갑사진을 볼 때의 마음가짐으로,
    아직 거울을 준비하지 못했지만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어 사진사로서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
    젊은 서진사를 귀엽게 봐주고,
    넉넉한 미소로
    사진이 담고 있는 망한 순간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 귀한 순간들을 celebrate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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