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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아, 당신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세요
    카테고리 없음 2021. 7. 6. 17:54



    언니가 귀한 휴가 시간을 나를 위해서 내어 주었다.
    언니와 엄마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나는 시댁에 왔다.

    몸이 불편하신 아버님, 아버님 수발로 지치신 어머님께 사랑을 듬뿍 드리고,
    앞으로 두분이 사시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덜 들 수 있게 해드릴 게 없는가 살펴보고,
    폐 수술 이후에 몸이 많이 쇠약해진 시누이, 심장이 안좋은 형을 찾아가보고…
    이렇게 노년을 맞은 온 식구를 만나는 것으로 여행 일정이 채워져졌다.

    남편과 나는 틈틈히 우리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우리의 삶도 좀 돌아보고 미래 계획도 다져보기로 했다.

    ———-

    1 년 반만에 하는 여행인 것도 있지만 코로나 이후에 공항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간 적이 없는지라 매사가 새로웠다.
    남편은 나랑 여행하는 게 기쁜지, 비행기 여행 중, 자주 나의 손을 잡고, 웃음으로 눈은 가는 실눈이 되어, ‘아아아아~’ (작게) 외쳤다.

    비행기가 뜨기 직전에 엄마 온수 매트에 물을 채우지 않은 것, 뚜껑을 재대로 닫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엄마 밤에 차게 주무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어 모바일 서비스를 이용해서 문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그 서비스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단다.
    마음이 아주 불편했다.
    (벨기에에 도착하자마자 연락해보니 엄마는 별탈없이 잘 주무셨다.)

    엄마 온수매트 걱정한 거 말고는 편안한 여행이었다.

    브러셀 공항 도착—벨기에 축구 팀이 선전하는 비엠더블유. 한국의 ‘붉은 악마,’ 그리고 벨기에의 ‘Red Devil,’ 어떻게 응원팀 이름이 똑같은지..한국인/벨기에인 커플은 어찌 하라고… (바로 이 생각에서 꼬리를 문 또 다른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이 자동차를 지나면서 나는 한국의 ‘진도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벨기에 공항 입국하면서 뭔 진도개? —그 이야기는 나중에.)




    —-

    숙소에 짐을 풀었다.
    7 월 한달 벨기에 날씨가 ‘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 (rain, non-stop!) 인데
    나는 비를 원래 좋아하거니와, 숙소의 특성상 내가 비를 완전히 즐길 수 있을 것같았다.
    창이 넓고, 천장에도 태양광 창이 있고, 테라스까지 있다.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식탁에 오이가 놓여있다.

    남편이 으스댄다.

    ‘오이 사왔어~~ 내가 당신을 잘 알지~’ 

    정답!
    나는 오이가 필요했다.
    엄마의 양념잠에 찍어먹을 오이!
    나의 여독을 단 한입에 날려버릴 양념장과 오이!
    (넛츠와 피넛버터까지 넣어 단백질도 보강한 맛있는 엄마표 양념장!)

    시댁에 가기 전에 테라스에서 오이, 밥, 김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충전을 했다. 


     



    식사 후 걸어서 시부모님 댁에 찾아갔다.

    조용한 부모님 집.
    귀가 잘 안들려서 화상으로 채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버님은 우리를 실제로 보고 너무도 좋아하셨다.

    우리가 선물 가방을 열자 어머님이 "너희는 또 산타클로스니?" 라고 하셨다. 이것저거 오랜 시간에 걸쳐 모은 선물들에 부모님이 감사해하셨다. 아버님을 가장 기쁘게 한 선물은 '신발'이었다. 발이 많이 부어서 정상적 신발을 신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쉽게 신고 벗을 수 있는 편하고 가벼운, 노인용품 가게에서 산 신발이었다.

    마음에 드시는지 아버님은 잠옷에 신발을 신으신채 방을 왔다갔다 하시고 화장실도 다녀오시고, 벗지 않으려고 하셨다.

    어머님과 아버님과 차와 과일과 케이크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일어나셔서 냉장고를 열고 찬장을 열면서 주섬주섬 물건들을 꺼내셨다.  '이거 좀 가져가라' '이거 가지고 갈래?' '이건 너희들이 좋아할 것같아' 하시면서...

    스프를 끓여 냉동시킨 것, 햄, 치즈, 새우, 쵸콜렛, 차, 커피, 과일....

    이 많은 물건 중에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갈까 재빨리 스캔하고 있는데 남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 왜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요?"

    (왠 짜증? 나는 깜짝 놀랐다.)

    어머님은 약간 변명조로, '슈퍼 가서 사는 김에 하나 더 집은 거야. 먹으면 금방 다 없어져' 라고 하시더니만 '녹차는 필요 없니?' '팜펨이 이 메이커 커피 좋아했던 생각이 나서 샀다' '이 와인은 선물받은 건데 우린 안 마셔' 하셨다.

    남편은 마치 어머니가 성가시게라도 한 듯이 미간을 한껏 찌뿌리더니만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 많아요. 이렇게 필요 없어요."

    덧붙여 ‘팩트’ 폭격을 가한다.

    “아시잖아요? 나랑 팜펨  비건 다이어트 해요. 햄, 치즈 이런 거 안 먹어.”

    나는 경악했다. 저 무레함이라니?

    자신에게 바리바리 챙겨준 어머님이 마치 자신의 비거니즘을 배려하지 않기라도 한 듯한 저 불손함이라니?  고맙다고 해도 모자란 상황에...

    어머님은 “아..그렇지…그럼, 과일이랑, 채소, 냉동 채소요리들 좀 가져가라”고 하셨다.

    남편의 대답,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다 들고가요. 우리 건 우리가 알아서할께요”


    와….이게 뭐냐, 당신!

    나는 경악했다. 어머니가 통돼지 한 마리를 주신 것도 아니고, 얇은 햄 팩 하나, 치즈 팩 두 개를 주신 건데, 어쩜 저렿게 차갑게 거절을 할 수 있단 말인가...1 년 반만에 만나는 팔순의 어머님을 다정하게 챙겨드려도 모잘라는 판에, 저런 언어의 만행이라니!

    비거니즘만해도 그렇다. 나는 고기를 싫어해서 안 먹는다 하지만....아까 공항 라운지에서 바쁘게 왔다갔다 하면서 각종 고기 요리 찾아 잡순 게 누구셨지?  기내식의 소고기, 치즈 플래터의 치즈들 싹싹 다 비우시지 않으셨던가? 당신?!!!

    오늘 에어비엔비 숙소에 도착한지 한 시간이 안되어, 내가 잠에 골아 떨어졌을 때 밖으로 나가 나를 위해 오이를 사온 그 정성을 생각하니 시어머니께 하는 태도가 더 매정하고 불손하게 느껴졌다.

    이것도 어떤 면에서 '출가외인' 시나리오네....ㅠ  '아들 키워봤자 소용없다'가 진리임을 증명하는 남편의 행동.

    나는 어머니께 

    “저도 비건이지만 어머니가 사두신 햄이랑 치즈 보니까 오랫만에 먹고 싶네요.”

    라고 하고 앉아서 바겟빵에 버터를 듬뿍 바르고 햄과 치즈를 넣어서 먹었다. 

    “옛날에 먹던 jambon gruyere sandwich 맛이 그대로 나요. 와 넘 맛있다!” (진짜 맛있었음)


    남편도 내가 먹는 것을 보더니 좀 있다가 (내 두배의) 큰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그러나 어머님께 무례함과 냉정함의 지조를 지키겠다고 작심을 했는지 맛있다는 소리 한마디가 없었다.

    어머님은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너무 너무 너무 좋아하셨다.

    나는 숙소에 돌아오기 전, 툴툴거리는 남편의 의견을 묵살하고 어머님이 주고 싶어하셨던 것들을 가방에 많이 챙겨 넣었다.

     

    ---------------------------------------

    숙소에 돌아와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옛날같으면 남편에게 내 주장을 ‘이성’’논리’로서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그게 효과적이지 않음을 알기에 신사임당이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현명하고 다정한 톤으로,

    ‘우리 좀 바뀌어야할 것같아. 어머님이 뭐 주고 싶어하시면 그거 받아드리는 게 도리인 것같아.” 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긴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당신은 크고 작은 애정의 표현으로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한다.  고맙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처럼 당신을 챙겨주지 않는다. 한가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아들 사랑은 부인으로서 나의 사랑보다 더 본능적이고,이타적이며, 더 따뜻하다는 것이다. 내가 어머니보다 당신을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독립적 개체로서  운명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때문에 희생적이거나 이타적인 사랑을 나눌 수가 없다. 즉,  우리의 사랑은 어머니의 아들 사랑과는 깊이와 결이 사뭇 다르다. 

    자기를 잘 안 챙겨주는 부인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것까지 챙겨서 해주려고 애쓰는 당신은 왜 자기를 지극정성 섬기는 어머니께 무례하고 매정하게 하는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도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어머니에 대한 연민은 물론이고, 감정 이입이 되었는지 섭섭함마저 느꼈다. 우리 아들이 이담에 당신처럼 행동한다면 너무 슬플 것같았다.' 

    라는 나의 이야기를 남편은 주의깊게 들었다. 

    ' 여보, 우리가 아들 며느리 보고 좋아서 뭔가 해주려할 때, 아들 며느리가 '왜 이런 걸 줘요' '필요 없어요' '라고 귀찮은 듯 표현하면 우리 마음이 어떻겠어?  상처가 되잖아? 우리 오늘 저녁 행동이 그랬어. 그런 태도는 어머님께도 상처가 되지. 그러니까 웬만하면 어머님이 주시는 거 감사히 받고, 아닐 경우에는 공손하게 이유를 설명하던가 해야할 것같아."

    “나는 당신이 어머님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 우리가 코로나를 뚫고 여기로 온 것도 부모님 아껴서잖아. 그러나 말로 다정하게 표현하지 못하잖아? 어머니도 마찬가지인 것같아. 말로는 표현을 못하시니까 이거 저거 챙겨주시는 거지."

    "......."

    "우리가 어머님이 주신 거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머님의 사랑의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표현을 해드리면 어머니가 얼마나 기쁘시겠어. 예로,  ‘엄마 정말 준비 많이 하셨네’ ‘엄마, 아버지 수발로 바쁘신데 우리한테 이렇게 신경 쓰셨어요’라던가,
    '오랫만에 오늘 하루는 비건을 포기하고 고기랑 치즈를 좀 먹어야겠어요' 라던가, 아니면 '엄마 근데 제가 요즘 비건 다이어트를 해서요' 라던가...어떤 식으로든 어머니의 정성을 인정하고, 우리가 그걸 감사해함을 분명히 표현하면 좋겠다 싶어.”

    남편은 내 말을 완전히 이해를 한 듯했다.

    ‘맞네…’ 라고 하더니 미소를 띄고 고개를 식탁에 박았다.

    (고개를 식탁에 받는 행위는 남편이 감사함이라던가 '항복' '동의'를 표현하는 나름의 방식으로 엄마가 저녁을 사주신 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할 때라던가, 나와 토론 뒤에 나에게 동의함을 표현할 때, '쿵'하고 작은 소리가 날 정도로 식탁에 머리를 박는다.--이 행위 조차 말로 표현하는 게 쑥스러워서 몸으로 때우는 케이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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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은 사랑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머님과 다를 바 없었다. 부모님께만이 아니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다정하게 말할 줄을 모른다. 어색해하고 쑥스러워서 퉁명스럽게 말한다. 어려서는 몸으로 놀면서 때웠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면서는 아이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함에 섭섭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아빠의 마음을 아이들에게 전해줘야할 때가 왕왕있다. 오죽하면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장인에게 이야기하듯이 하라' 고 하다가 급기야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듯이 하라'고 했겠는가... 아이들과 중요한 대화를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할 때처럼 자기 생각과 감정을 똑똑히, 겸손하게  이야기한다면 아이들은 아빠의 사랑을 더 깊게 느끼고 아빠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싶어서였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생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남편이 제대로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게 하루 아침에 이뤄질 일은 아니겠지만, 더 이상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뒤 남편이 후회할 일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병마와 고독과 싸우는 노년의 부모님께는 자식의 관심, 따뜻한 애정의 표현, 독려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리바리 싸들고 오거나, 정기적으로 부쳐드리는 선물만큼이나, 아니, 그 어떤 선물보다도 사랑의 표현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이번 여행, 남편과 내가 우리가 떠난 뒤에도 시부모님의 마음에 오래오래 울림과 여운을 주는 사랑의 말을 많이 많이 해드리리라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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