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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수선화, 아버지.
    부모님 이야기 2019. 3. 11. 12:22



    나는 오랫동안 꽃을, 특히 화분이나 화병에 꽂힌 꽃들이 예쁘다고 느끼지 못했다. 


    화분의 꽃은 내가 관리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고, 화병의 꽃이 곧 말라서 버려질 것이라는 생각이 우선이니 꽃을 즐길 수 없었다. 결혼 초기에 남편에게도 나에게 꽃 선물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었다. 

    경상도 사나이같이 무뚝뚝한 나와 달리 시를 사랑하는 소년의 감수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연세가 든 아버지는 꽃을 무척 사랑했다. 아니, 아버지의 꽃 사랑은 그의 자연 사랑의 한 부분이었다. 아버지는 자연을, 웅장한 위용의 대자연만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존재--나무, 조약돌, 나뭇잎, 곤충, 들꽃----에 관심을 갖고 그 신비로움에 경탄하고 사랑했다. ‘city girl 인 나는 어려서는 그런 아버지가 이해가 안되었다.

    유학 가기 전 나와 아버지는 등산을 자주 갔다. 나는 빨리 관악산 정상의 산장에 가서 풋고추를 넣은 라면과 달콤한 커피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서둘러 산을 올랐지만 아버지는 마치 온 산을 다 품에 안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산을 탔다. 


    수시로 멈춰서 작은 돌, 돌틈에 비집고 나온 나무 뿌리, 인사를 하듯 서있는 큰 나무들의 모양새와 건강한 나뭇잎들을 보며 '아....' '야....'' 아...' 하고 경탄하며 시간 끌고,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의 전공인 18 세기 영시, 19 세기 낭만주의의 자연관, 마쓰오 바쇼와 윌리엄 워즈워스의 비교, 하이쿠, 중국 철학에서의 자연관을 이야기하시는 통에 나는 조갑증이 났다. 빨리가서 라면 먹고싶은데...


    어느 더운 날 산에 오른 날, 몇 걸음 안 가서 지쳐 불평을 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더운 날 산을 보는 것도 즐겁다, 계절마다의 자연의 변화를 느끼면서 사는 게 지복이라면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를 인용했던 기억이 난다. “계절이 지나는대로 그 계절 안에 살라. 계절의 공기를 마시고, 계절의 음료를 마시고, 계절의 과일을 맛보고, 매 계절이 주는 영향에 네 자신을 내맡겨라”  (Live in each season as it passes; breathe the air, drink the drink, taste the fruit, and resign yourself to the influence of the each). 일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오르던 관악산은 아버지가 사계를 경험하는 행복의 원천이 되었다.


    언젠가 아버지의 지인인 일본의 부자집에 초대를 받아 적이 있다. 최고급 호텔에 머물면서 끼를 산해진미를 먹고, 유명한 관광지를 구경하고, 저녁에는 파티가 열렸다. 아버지는 사흘 후에 슬픈 얼굴이 되어 나에게 말했다.



    “나는 내 책상이 그리워. 하루 종일 책 읽고, 엄마가 해주는 밥먹고, 동네 뒷산 다녀와서 목욕하고 나서 막걸리 한 잔 할 때가 제일 행복한데.." 라고 하며 당신은 '호의호식보다 책의 바다에서 하염없이 수영하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모르는 것을 배우면서 그 깨달음에 기뻐하는 학자, 아버지는 모든 면에서 윌리엄 워즈워스가 권면한 '소박한 삶, 고결한 사고' (plain living, high thinking) 을 실천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유명한 명소의 대자연을 대상화하면서 감탄하는 것보다는 삶에서 발견하는 소박한 자연과 소통하는 것을 즐겼다. 지금도 내가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 있다. 


    2011 년 아버지가 나에게 준 들꽃의 선물. 


    엄마가 건강에 이상이 와 응급실에 가야했다. 한번은 단기 기억상실증, 두번째는 혈압. 나는 당시 가족여행차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아이들과 남편은 먼저 미국으로 보내고 남아, 병원에서 엄마 간병하고, 집으로 와서 아버지를 보살폈다. 


    엄마가 퇴원하고 집에 돌아온 날, 나는 며칠간 밤 잠을 못자며 간병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처리를 하다 집에 돌아오니 긴장이 풀리며 허기가 느껴졌다.  엄마가 거실에 누운 것을 확인한 뒤 부엌으로 직행했다. 


    우리와 함께 차에서 내린 아버지는 무슨 일인지 집에 안 들어오셨다. 그러나 신경 안 쓰고 나는 서둘러 밥을 차려서 먹기 시작했다. 현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세요? 어디 다녀오셨어요?”


    나는 형식적으로 인사하고 밥을 계속 먹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를 방해하기가 미안하신 듯, 가만히 서 계셨다. 마치 점심시간 교무실에서 짜장면 먹고 있는 선생님 앞에 단정히 선 학생마냥. 내가 의아해서 아버지를 올려다보니, 아버지가 무엇인가를 든 손을 내미셨다.


    “팜펨아, 이거, 우리 아파트 들어오는 문 옆에 있는 화단의 관목들 밑에 있던 거야. 너무 아름답지?”


    뭔가 보니 아버지 손에 내 새끼손가락의 손톱만큼 작은 자주색 들꽃 하나가 사뿐히 놓여 있었다.
    어리둥절한 채 나는  "예쁘네요" 라고 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이 꽃, 너에게 주고 싶어. 이번에 엄마랑 나를 돌봐줘서 너무 너무 고마워. 내 마음을 받아줬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마음에서 뭔가 울컥 올라왔다. 뭐라고 말을 하면 눈물이 터질 거 같았다 나와 달리 너무도 순수한 아버지의 시선에 나는 말을 잊었다.


    지난 며칠 간 병원과 집을 오가면서 많은 일을 치루고 난 뒤 밥을 '퍼먹으면서' 나는 아직 질퍽한 현실에서 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노령 부모의 지병, 응급실의 쇼크, 고지서와 약봉지 꾸러미, 부모님만큼 낡은 아파트---모든 게 다 범벅되어 있는 현실을 뒤로 하고 나는 며칠 내 미국으로 돌아가야했다. 난 지쳤고 마음이 어두웠다.


    피곤함에 절은 탁한 눈으로 그저 나는 그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에만 골몰하고 있었으나, 같은 상황에서 아버지는--분명 나보다 더한 마음 고생을 겪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아파트 현관 구석에  피어 있는 들꽃에 시선을 두었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누구나 무심히 지나치는 꽃이 아버지에게는 딸에게 줄 감사의 마음을 실을 만큼 아름다웠던 것이다.


    아버지의 선물은 소박했지만 그의 사랑은—나에 대한 사랑, 꽃에 대한 사랑--은 너무도 순수하고, 꽃만큼 예뻤다. 나의 마음이 정화되는 것같았다. 모든 걱정이 다 아무 것도 아닌 것같고 뭐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같았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저 노인, 맑은 마음으로 평생을 살며 자기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에게 준 저 사람을 젊은 내가 지켜주고 싶다는 보호본능이 나를 불태웠다. 에너지 드링크를 사발로 들이키기라도 한 듯 기운이 났다. (그 후 모든 일을 다 잘 해결했다.)


    보랏빛 들꽃을 받는 순간, 나는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아버지의 시선’이다. 아버지 덕에 나는  아무리 현실이 구차하고 복잡하고 심난하게 만들지라도, 고개를 들어 돌아보면 우리 주위에는 아름다움이 존재하며, 그것은 우리를 현실에 전복되지 않게 잡아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오빠가 돌아가신 뒤에는 나의 꽃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꽃이나, 꽃병에 꽂혀있는 꽃이나, 친구들이 보내준 사진 속의 꽃들이나, 예쁘게 보였다. 결국은 덧없이 사라지고 마는 꽃과 우리네 인간의 삶의 유사성을 절실하게 깨달아서인가,  스러지는 꽃을 아쉬워하고  꺾어진 꽃이 죽을 거라는 안타까와 사랑하기를 거부하느니 잠시라도 꽃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찬송하고 즐기고 싶어졌다.



    아버지 병수발을 들게 된 후에 나는 완전히 변했다. 이제는 꽃을 사들였다. 자연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하루 종일 방에 갇혀 있는 게 안타까워서 뭐라도 아버지께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이기도 했다. 철쭉, 장미, 국화, 해바라기꽃, 맨드라미, 안개꽃, 튤립, 가리지 않고 샀다. 엄마도 정원에서 꽃을 꺾어 작은 유리컵에 넣어 아버지가 향기를 맡게 한 다음에 아버지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드렸다.


    아버지와 나는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한국 산에는 진달래가 한창일텐데요. 학교 주위의 개나리가 예쁘단다.  약수터의 철쭉이 그립구나. 아파트 단지 앞에 목련이 고왔어요. 오빠 묘소에 들어가는 길목의 매화가 너무 아름다웠단다. 설악산에 갔을  벚꽃이 눈처럼 흩날렸었지요..... 이야기만으로도 아버지는 생기를 찾았다. 


    어느  아버지는 큰 꽃 선물을 받았다. 나의 친구 쥴리엣이 아버지의 창가에 화분 정원을 꾸며준 것이다. 아버지 방의 커다란 창문 밖은 회색 울타리였고 바닥은 콘크리트,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아버지 시선이 머무는 곳이 썰렁한 회색 담이라는 마음에 걸려 언젠가 아버지를 위해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계획을 들은 쥴리엣이 '수발로 바쁜 네가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공사를 어느 세월에 하겠냐' 하더니만 , 꽃나무, 화분, 정원사를 데리고 와서 순식간에 예쁜 정원을 만들어주었다. 아버지는 매일 큰 창문 밖에 피어있는 각양각색의 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행복해하시면서 쥴리엣에게이리도 유쾌한 꽃무리와 함께하니 어찌 시인이 즐겁지 않겠냐라고 하시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아무도 그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지만 사실은 그것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 ‘수선화에서 나온 구절이었다. 


    시인의 감수성이 없는 나에게도 화단은 즐거움을 준다. 아침에 아버지방 창문을 열면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각양각색 꽃들이 생글생글 인사를 한다. 동글동글 이슬을 먹은 꽃망울, 풀포기를 뜯다가 분주히 도망가는 토끼,  만개한 꽃들 사이를 여유있게 윙윙 나는 벌들과 빠른 날개짓을 하는 귀여운 허밍버드도 아버지를 모두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는 자연의 친구이다. 덩달아 화분에 물을주고, 볕을 받게 이리저리 옮기고 청소를 하는 엄마와 나의 마음도 유쾌해진다. 



    어느 날 아버지가 ‘수선화’를 마음으로 번역했다며 들려주셨다. 아버지가 손을 못쓰시니 머리로 기억해서 번역한 것이다. (번역을 그렇게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아래가 아버지의 번역과 시 원문이다. 




    수선화 
    (강대건 역)


    하늘 높이 떠도는 구름장처럼
    계곡과 언덕을 외로이 떠돌아다니다가
    나는 문득 보았네
    호숫가 나무 아래,
    산들바람에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는 
    무성한 황금빛 수선화 한 무리를.


    은하수의 빛나고 반짝이는 별들처럼
    수선화는 호수의 가장자리를 타고 
    줄지어 한없이 뻗어나갔지.
    무수한 수선화가 머리를 살랑살랑대며 흥겹게 춤추는 것을
    한눈에 나는 보았네.


    물결이 그 옆에서 춤췄으나
    반짝이는 물결도 수선화의 환희를 당해낼 수 없었다네.
    그리도 유쾌한 꽃무리와 함께하니 
    어찌 시인이 즐겁지 않으랴.
    나는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네.
    그 수선화의 장관이 얼마나 귀한 생각거리를 가져다 주었는지를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내가 종종, 멍하니, 아니면 쓸쓸한 생각에 잠겨
    긴 의자에 누워 있노라면
    고독의 축복인 내 내면의 눈에
    수선화들이 번쩍 떠오르고,
    그러면 내 마음, 기쁨으로 가득차서
    수선화들과 함께 춤을 춘다네.




    Daffodils   
    (William Wordsworth)


    I wander'd lonely as a cloud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When all at once I saw a crowd,
    A host of golden daffodils,
    Beside the lake, beneath the trees
    Fluttering and dancing in the breeze.
    Continuous as the stars that shine
    And twinkle on the milky way,
    They stretch'd in never-ending line
    Along the margin of a bay:
    Ten thousand saw I at a glance
    Tossing their heads in sprightly dance.
    The waves beside them danced, but they
    Out-did the sparkling waves in glee: -
    A poet could not but be gay
    In such a jocund company!
    I gazed - and gazed - but little thought
    What wealth the show to me had brought.
    For oft, when on my couch I lie
    In vacant or in pensive mood,
    They flash upon that inward eye
    Which is the bliss of solitude;
    And then my heart with pleasure fills
    And dances with the daffodils.

    (*시의 첫머리를 '계곡과 언덕 위로 외로이 떠도는 구름처럼 정처없이 걷던 나' 라는 해석이 맞지 않냐, 아버님이 실수하신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그것을 고려하신 뒤에 현재의 번역을 택하신 것입니다. )

    단순한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풀어써보겠다. "하늘 높이 떠도는 구름장처럼" 계곡과 언덕을 외로이 떠돌아다니던 시인은 문득 호숫가 나무 아래에서 살랑살랑 춤추고 있는 무성한 황금빛 수선화 한 무리를 발견한다. 은하수의 빛나고 반짝이는 별마냥 호수의 가장가리를 타고 줄지어 끝없이 뻗어나가는 수선화들의 흥겨운 춤이 그에게 한눈에 들어왔다. 그 환희의 춤은 바로 옆의 호수의 반짝이는 물결의 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시인은 수선화가 주는 즐거움을 "이리도 유쾌한 꽃무리와 함께하니 어찌 시인이 즐겁지 않으랴" 라고 표현하는데, 매료되어 수선화 무리를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수선화 무리의 모습이 자신에게 엄청나게 귀한 재물--즉, 귀한 생각거리--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난 뒤, 시인이 긴 의자에 누워 종종,  멍하니 (vacant), 또는 슬픈 생각(pensive)에 잠기면,  그의 고독한 의식 속에 갑자기 속에 수선화 무리의 모습이 번쩍 떠오르고, 그러면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차올라 '수선화들과 함께 춤을’ 춘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꽃 화단을 만들어준 나의 친구 쥴리엣에게 인용한 구절은 "이리도 유쾌한 꽃무리와 함께하니 어찌 시인이 즐겁지 않으랴”로서 화단의 꽃들을 보며 기쁜 마음의 적절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아버지의 번역과 원문을 읽으면서 황금빛 수선화의 기억에 기뻐하는 시인의 묘사보다는 ‘종종’ ‘멍하니’ ‘슬픈 생각에 잠겨있는’이란 구절에 눈이 가는 것일까?

    아버지는 '슬픈 생각'에 잠길 많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 아들이 죽었고, 자신의 건강을 잃었고, 고향도 잃었다. 이제는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침대에 누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주위에서 아무리 병수발을 정성들여 한다해도 그가 매일 대면하는 것은 침묵과 절대적 고독과 우울함이다.


    아버지가 수선화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는 멍하니슬픈 생각에 잠겼을  수선화의 시인처럼 자연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기억을 통해서 기쁨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더 중요한 관점일 수도 있는데, '아름다운 자연을 떠올리면서 슬픔을 극복하는 시인'에게서 현재의 고통을 이겨낼 영감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가 평생 탐독하고 외우고 사랑한 많은 아름다운 시가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왜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에 관한 수많은 답을 제시해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시를 통해 얻는 진리를 수시로 나와 나누셨기때문이다. 


    그러나 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에 봉착한 아버지에게 시의 의미는 더 크다. 시는 노년의 슬픔과 불구의 고통 속에 아름다움과 진리의 창구이기 때문이다. 시는 매일매일의 양식처럼, 기도, 성경말씀처럼, 시는 아버지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아버지의 침대맡에서 많은 시를 읽어드린다. 한국시, 영시, 한시, 일본시...가리지 않고. 아버지는 자주 감동에 젖어 눈물 흘리신다. 

    얼마전 아버지가 김소월의 산유화를 읽어달라고 하셨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읽어드리니, '아...정말 좋구나...' 하시더니 일본의 김소월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가 생각난다고 하시면서 직접 읊으셨다.



    ‘동쪽 바다의 조그만 섬 바닷가 백사장에서
       나 울다 젖은 채로
       게와 어울려 노네’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팜펨아, 정말 너무도 아름답지 않니?’


    나는 의 아름다움보다는 그런 아버지의 그런 말랑말랑한 정서가, 그리고 아버지의 힘든 상황에서 여전히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그것에 열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 말을 잊었다.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에게는 '시'가 곧 '수선화'임을. 황금빛 수선화들이 외로운 워즈워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면, 수많은, 아름다운 시는 아버지 뇌리에 메아리치면서 아버지를 고독 속에서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80 대 때 아파트 현관이 들꽃을 소중하게 손에 담아 나에게 선물했던 아버지, 이제 90 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시를 사랑하고 시를 낭송하며 눈물짓는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아버지, 병마와 싸우면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진리를 찾으며, 진리에서 삶의 힘을 얻는 아버지, 그는 나에게는 불가사의이다. 아버지를 '시'에 비유하자면 단순한데 의미가 깊어서 여러번 읽고 음미해야하는 시일 것이다.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자꾸 읽게 되고, 읽으면 읽을 수록 즐거움이 느껴지는 시, 그게 나의 아버지이다.



    소양이 부족한 나는 이해가 안된다. 고난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통해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 고운 아버지를 계속 기리면서 늙다보면 늙은 어느 날, 아버지처럼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먼훗날 내가 늙어서 병약해서 침대에 누워 멍하니 슬픈 생각에 잠기는 날이 온다면, 지금의 아버지를 떠올릴 것같다. 고독과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보았고, 아름다움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은 아버지의 기억이 번쩍 떠오르는 순간, 늙은 나의 슬픈 마음은 나도 모르게 기쁨의 춤을 출지도 모른다. 수선화의 기억이 번쩍 떠오른 순간 워즈워스의 마음이 환희의 춤을 추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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