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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풀려도...카테고리 없음 2023. 11. 4. 01:20
한 달 넘게 블로그에 들어오지 못했다. 최근 들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 이전에는 전체적으로는 꽤 양호한 상태였었다. 나는 겉으로는 아무런 징후가 없고 (간암 초기의 특징), 암 치료를 받으시는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받고 계시지는 않다. 엄마의 영어 공부는 계속되고 있었고, 나의 스페인어 공부도 약간 고삐가 늦춰지긴 했지만 계속 진행되었고, 묵상과 기도와 독서는 일상의 지속적으로/간신히 일상의 중심과 균형을 잡아주었다. 지인들의 기도와 사랑의 지지도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의 날씨 예보는 한동안 쭉 '가끔 흐리나 맑음'이었다. 그러나 한 달여 전부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졌다. 매일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일들 때문이었다. 엄마는 노령이시라 몸에 작은 문제들이 (고열, 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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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윙크카테고리 없음 2023. 9. 18. 01:57
사촌이라기보다는 막내 동생처럼 가까운 J 가 문자를 보내왔다. 아버지 (나의 이모부)가 위독하셔서 급히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문자를 받고 답장을 하려는데 손이 떨렸다. 이모부는 나에게 참 소중한 분이어서였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긴 비행기 여행을 하는 J의 처지가 너무도 슬프게 다가왔다. 10 년 전, 오빠가 중환자실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나는 J 가 겪을 마음고생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 다음 날 새벽, 눈을 뜨자마자 평소에 하지 않는 일---전화기를 열고 카톡 문자를 체크했다. 이미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있었다. 엄마께 소식을 전해드리고 같이 울다가 문득 J 생각이 났다. 시간을 보니 아직 비행기 안이었다. 임종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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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우먼"카테고리 없음 2023. 9. 15. 00:26
(친구들, 제가 따로따로 소식을 전할 수 없어서 여기에 올려요) 아직 의사를 만나지 못했지만 이메일로 결과가 왔다. 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남편과 나는 침묵 속에 마음을 추슬렀다. 엄마께는 말씀드렸다. 꽤 담담하게. 엄마의 얼굴이 절망으로 무너지는 모습에 나 역시 잠시 흔들렸지만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 엄마가 나를 위해서 얼마가 강하신가를 잘 알고 있어서, 그 신뢰가 주는 평화가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언제 소식을 전하나가 고민되었다. 낮에 일할 때는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밤에 하면 아이들이 생각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을까? 여러 생각하다가 오후 늦게 두 아이 다 일을 마칠 무렵에 문자를 보냈다. "얘들아, 결과가 나왔어. 암이야. 다음 주에 선생님과 면담하고 어떻게 치료할지를 결정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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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알아이, 눈물, 전쟁카테고리 없음 2023. 9. 11. 14:54
MRI를 받았다. 두 번 눈물을 흘린 날. 시작은 아주 활기찼다.. 현관에서 어두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께 웃으면서 바이바이~~ 잘 다녀올게요 인사. 엄마가 억지 미소를 지으셨다. 엄마의 속생각이 다 읽혔지만 그래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딘가. 굿~~~! 병원에 내려준 남편에게 웃으면서 땡큐, 씨유레이러! 이른 시간, 한적한 대기실, 병원 직원이 굿모닝 인사한다. 나도 환한 미소로 답했다. 눈매가 서글서글한 간호사가 나를 탈의실로 인도하면서 '팬티만 빼놓고는 다 벗어야 하며, 귀금속이니 머리핀도 다 빼야 하며.....'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엄마가 엠알아이 받으실 때 탈의실과 검사실에 들어가서 도와드렸기 때문에 익숙한 절차. 방긋 웃으면서 '땡큐~~' 했다. 탈의실 문을 잠그고 옷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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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의 영어공부카테고리 없음 2023. 9. 8. 08:50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갑작스레 생긴 종양이 발견되었고 '암이 의심된다'라는 결과를 받았다. 엠알아이를 받아야 한다. '암'이란 병은 참 이상하다.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도, '암일 가능성'이란 말이 잠시 '죽음의 선고'와 같은 충격을 주니 말이다. 이제까지 나의 무수한 크고 작은 건강 문제에도 동요하지 않던 남편도 이번에는 놀라서 말을 잊었다. 나의 가장 큰 걱정은 엄마. 엄마는 내가 감기만 걸려도 걱정하시는데, 암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 처음 이틀간 머리도, 마음도 아주 복잡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간은 참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든다. 이제까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문제들---예를 들어, 내가 암투병을 하게 된다면. 암투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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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나들이카테고리 없음 2023. 8. 31. 02:12
샌디에고에 사는 친구이자 아우 C 부부가 멀리 이사를 간다.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지난번에 엄마를 모시고 갔던 산후안 카피스트라노 시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산책을 했다. 친구와 나는 20 년 전 인터넷의 한 포럼에서 만난 사이. 이제까지 만난 횟수는 다 합쳐서 10번이 될까? 그런데 자매애는 강력하다. 한 식구같다. 친구는 나의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고, 내가 엄마 껴안듯이 엄마를 꽉 껴안고, 엄마 팔을 자연스럽게 잡고 걷는다. 영어로 솰라솰라 이야기를 할 때도 남편을 ’에릭’이라고 부르지 않고 또렷한 한국어로 ‘형부‘라고 부른다.^^ 봄메 여사는 평소 낮에는 휴식을 취하시는데, 딸과 같은 C 와의 만님을 위해 나들이를 함께 해주셨다. C를 만나시겠다는 일념으로 며칠 전부터 낮 스케줄 조정하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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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록 산파카테고리 없음 2023. 8. 24. 10:03
2023. 06. 남편의 지도교수였던 J 교수로부터 문자가 왔다. '팜펨, 드디어 나의 수상록이 완성되었다. 그 수상록이 나올 수 있게 해 준 당신에게 정식으로 책을 증정하기 위해 저녁 초대를 하고 싶다'라는 내용. 남편과 나는 샴페인을 들고 가 J 교수의 출판을 축하드리고 책을 받아왔다. ----- 80 대 후반의 J 교수는 근 30 년 전, 남편을 미국에 초대해 남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분이다. 당시 같은 대학에 visiting scholar 자격으로 왔다가 우연히 남편을 만난 순간, 나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구애를 하고... 이렇고... 저렇고... 하다가 우리는 28 년을 함께 해왔다. J 교수가 나와 남편을 소개시켜준 것은 아니지만, 남편과 내가 만날 수 있는 우연은 그가 남편을 초대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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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힐러리-그림치료- 남편이 만든 빵카테고리 없음 2023. 8. 22. 07:54
주말에 (토요일 저녁- 일요일) 멕시코와 남가주에 태풍 '힐러리'가 올 거라는 뉴스에 모두 긴장했던 며칠이었습니다. 남가주 지사가 남가주 비상사태를 미리 선포했을 정도로 큰 피해가 예상되었고, 비상사태에 대비해 준비를 하라는 권고 문자들과 이멜들이 왔습니다. 저희도 응급 상황에 대비해서 바테리들을 준비하고, 손으로 충전하는 라디오를 구입하고, 시에서 주는 모래주머니도 얻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모래주머니는 단 몇 시간 만에 동이 나서 못 받아옴) 토요일 아침, 평상시처럼 엄마와 호수 산책을 나갔습니다. 바람 한 점없이 고요했습니다. 곧 태풍이 온다는 게 믿기 어려우리만치, 평상시보다 더 고요했어요. 토요일 오후에 가벼운 바람이 약간 분 것말고는 태풍의 조짐이 없었습니다. 본격적 태풍이 예고되었던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