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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한 장의 행복카테고리 없음 2023. 8. 11. 16:57
오늘은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림도 그린 행복한 날입니다. 이것은... 다, 오늘 부엌일을 안 한 덕입니다. 엄마의 콩국수와 민들레 나물을 먹고 기운이 났습니다. --- 저녁 먹고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벌써 자정이 넘었네요. 어느 겨울, 경복궁 근처. 각양각색 한복 입은 관광객들이 신기해서 입 벌리고 구경하던 제가 급히 사진을 찍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무표정한 군밤 파는 아줌마들을 지나치던, 한복 치마 자락을 들고, 춤추듯이 걷던 중국인 관광객 여성 두 명. 표정과 분위기의, 극명한 대조, 튀는 색깔들이 이루는 오묘한 조화.. 그 사진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먼저 펜화를 그리고나서 잠시 망설였다가 결국 수채화 물감을 꺼냈습니다. 붓을 들고 색칠을 시작하기 전, 펜화에게 말했습니다. '펜화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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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엄마의 충전카테고리 없음 2023. 8. 10. 00:40
남편과 코로나 걸렸다 나았습니다. 3 년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서 혹시 우리가 코로아 안 걸리는 슈퍼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건 아닐까까지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네요. 언제 어디서나 마스크를 챙겨 썼던 게 도움이 된 거였어요. 이번 여행에서도 조심했는데, 하필이면 공항에서 마스크 꾸러미를 잃어버렸어요. 공항은 붐볐고... 비행기도 만석이었고. 어디서 걸렸는지는 모르지만, 다행히 저는 열 없이 콧물과 약간의 기침 증상이었고요, 남편은 고열과 몸살, 기침, 콧물로 아주 고생하고 코로나 약을 복용해야했습니다. 증상이 다르니까 서로에게 악영향을 줄까 봐 각자 방을 쓰고, 어머니께 병을 옮기면 안 되기에 바짝 긴장하고 2 층에서 격리. 잠시 내려가 차를 끓이거나 음식을 갖고 올라와 먹고... 그렇게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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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지 못한 딸' 의 편지들카테고리 없음 2023. 8. 8. 00:05
몇 주 전, 이스라엘 어머니가 줌 채팅 중에 말했다. "너에게 조만간 소포가 하나 갈 거야. 네가 나에게 쓴 편지들이야. 내가 파일을 따로 만들어 계속 네 편지를 모아 왔는데, 이젠 너에게 돌려줘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어머니가 그 내 편지 파일의 존재에 대해 말할 때마다 해온 농담을 하셨다. "내가 왜 네 편지들을 곱게 보관했는지 알고 있지? 나는 네가 유명해진 다음에 사람들의 너의 전기를 쓸 때 네 편지를 비싸게 팔려고 했었어." 나는 그 농담을 아주 많이 들었다. 옛날에는 미래 시제였고 ("이 담에 사람들이 네 위인전 쓸 때 네 편지를 비싸게 팔거다"), 내가 그런 성공을 하지 못할 게 확실해진 뒤로부터는 과거 시제로 ("나는 네 편지를 비싸게 팔려고 했던 거였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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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슬픈 성과 성주의 이야기카테고리 없음 2023. 8. 4. 12:12
친구가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다.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만큼 특별한 경험이라면서 자기가 묵었던 성 (castle)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리셉션의 핑크 벨벳 소파와 보라색 카펫, 은촛대, 샹들리에, 섬세한 장식의 찻잔.... 에서 시작해 밖으로 나와 성 전체의 건물을 찍은 동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남편과 내가 1997 년에 묵었던 프랑스 남부의 13 세기에 지어진 성의 기억이.. 첫째 아이가 6 개월 무렵, 남편과 시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남편이 나의 생일이라고 서프라이즈로 프랑스 남부의 성을 예약을 했다. 언뜻 들으면 무척 잘 사는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같이 들리겠는데, 당시 우리 경제 상황은 그런 럭셔리 라이프랑은 전혀 거리가 멀었다. 사실은 어떤 벨기에 인이 그 성을 구입해 숙박업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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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엄마의 그림 그리기카테고리 없음 2023. 7. 31. 08:47
여행을 잘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번은 틈틈이 그림을 그려서 더 특별했던 여행. 휴대하기 쉬운 펜과 작은 수채화 팔레트를 들고 가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을 그릴 수 없이 바쁠 때도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주변을 관찰하였던, 그런 '그림 여행'이었습니다. 문구류를 무척 좋아하는 저에게는 꼭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펜과 종이가 항상 옆에 있어 끄적거릴 수 있다는 것이 든든하고 유쾌했습니다. 질감, 촉감, 색깔이 미세하게 다른 종이들을 손으로 만지고, 삭-삭- 팬소리를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그림 공책을 품에 안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그림을 그린 뒤에 찬찬히 살펴보며 쓰다듬고... 그렇게 종이와 펜과 붓과 맺은 '육체적 관계'가 행복했습니다. 그리면서 '왜 내가 원하는 색이 안 나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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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스웨터와 친정 어머니카테고리 없음 2023. 7. 24. 21:02
내가 병상의 시부모님을 응원해 드린답시고 벨기에에 급히 날아갔던 3 월, 나는—그리고 온 식구들은—-시어머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실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다. 항암 치료가 효과가 없어서 중지한 뒤 물, 요구르트 한 통, 단백질 음료 한 통이 어머님의 하루 식사. 피골이 상접하고,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수시로 구토를 하는 어머님의 모습은 곧 죽음을 앞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머님보다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일정을 연기하고 며칠 더 머물 게 되었다. 의사가 어머님은 당장 내일 돌아가실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다고 했지만,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싶었지만, 미국의 집에 친정어머니가 혼자 남아 계셔서 돌아갈 일정을 잡았다. 브뤼셀을 떠나기 전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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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드와 유젠 부부카테고리 없음 2023. 7. 22. 23:21
이제 곧 자연의 품을 떠나 도시로 돌아간다.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나가 종일 근처를 탐사했다. 나는 남편의 양해를 구하고 집에 머물렀다. 차, 커피, 차… 마시면서 한 자리에서 호수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자연의 위로가 필요했다. 오늘은 참 슬픈 날. 오늘 아침, 나와 무척 가깝게 지냈던 파리의 대학의 지도교수, 끌로드 교수님의 남편, 유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다. 끌로드 교수님은 내가 파리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 주셨고. 내가 학위를 마친 날, 손수 구운 파이와 샴페인으로 축하해 주신 마음이 따뜻한 분이다. 나는 끌로드 교수와 남편 유젠의 가족 여행을 함께 갈 정도로 친하게 지냈고 부모님도 교수님 내외와 인사를 나누고 카드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미국에서 에릭을 만나 사귀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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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아 리 여사 작품 콜렉션카테고리 없음 2023. 7. 21. 05:06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앞으로 한참 뒤의 일이겠지만!) 꼭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이제까지 엄마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옷들 중 아직도 내가 갖고 있는 옷들의 사진을 찍어 한 앨범을 만드는 일이었다. 나에겐 앙드레 김 보다 더 멋진….(음….. 엄마 이름을 뭐라고 할까?) 그래, ’앙드레아 리‘ 디자이너! 앙드레아 리 여사가 우리 삼 남매의 옷을 많이 만들어주셨지만 특히 내 옷을 많이 만들게 된 계기가 있다. 대학교 때 입고 싶은 분위기의 옷들이 있었다. 화려한 색상, 독특한 디자인의 옷들. 그런 걸 파는 데가 없었고, 판다고 해도 살 돈도 없었다. 그러나 그걸 엄마에게 이야기하니 엄마의 창의력과 솜씨를 다 살려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예쁘게 만들어주셨다. 상의에 레이스를 잔뜩 박은 보라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