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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는 날~~~카테고리 없음 2023. 2. 24. 01:36
오늘은 엄마와 병원 가는 날~~ 아침 7 시 현재, 엄마는 지금 트레드밀에서 아침 운동을 하고 계시다. 나도 아침 운동을 마쳤고 조금 있다가 엄마도 나도 샤워하고, 꽃단장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병원에 가려고 한다. 어머니가 다니는 병원은 생전의 아버지가 다니셨던 곳,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정기검진, 백신 접종을 위해서 꽤 자주 드나들었던 병원이다. 품에 안은 젖먹이 아기가 주사를 맞고 자지러지게 울 때 안절부절못했던 초보 엄마였던 나는 몇 년 뒤에는 고만고만한 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와서 번갈아가면서 접종을 할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병원의 고통을 감지하고 생떼를 부리거나, 아이들이 듀엣으로 울어댈 때 진땀을흘렸던 곳... 예측할 수 없는 대기 시간, 대기실에는 장난감이나 놀이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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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 이민자의 '미니' 대가족카테고리 없음 2023. 2. 21. 17:17
친척이란 참 소중한 존재이다.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에만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밥을 먹는 관계든, 자주 교류하면서 친하게 지내든, 함부로 끊을 수 없는 친척이라는 운명적 관계가 참으로 소중한 것임을 나는 핵가족 이민자로 살면서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결혼하자마자 멀리 떨어져사는 벨기에-한국 식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는 매년 번갈아가면서 벨기에-한국을 번갈아가면 방문했고, 양가 부모님들은 매년 미국에 오셔서 적어도 한 달씩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하셨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가 벨기에/한국을 방문하는 것보다 양가 부모님들이 미국 여행을 오시는 게 그들에게 더 즐거운 일이다 싶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한국 여행, 벨기에 여행 횟수가 줄어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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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동급생엄마 2023. 2. 18. 05:34
이스라엘 어머니,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나의 세 어머니들은 개인적으로는 모르는 사이. 남편과 내가 각자의 본국 (한국/벨기에)이 아닌 제3 국가에서 살다 보니 시댁/친정 식구들이 만나는 것이 어렵다. 1996 년, 미국에서 결혼식 때 시어머니와 어머니가 처음 만났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시아버지는 2016 년에야 처음으로 나의 부모님을 만나셨다. 친정 부모님이 우리 집에서 살고 계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시어머니와 엄마는 단 두 번 만나셨다. 나의 세 어머니들은 세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성격도 판이하게 다르고, 종교와 가치관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다. 평생하고 산 일도 다 다르다. 그들은 서로서로의 존재만을 알고 있었을 따름, 자신들의 삶이 바쁘다 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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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와 라이터카테고리 없음 2023. 1. 30. 01:36
작년 내내 많은 짐정리를 했다. 옷, 책, 부엌용품, 가구... 한국에서 부모님 집을 처분하면서 갖고 온 나의 옛날 편지들도 정리 대상. 유학을 떠난 뒤 7 년간, 그 후 결혼, 출산, 육아의 과정을 2002 년 정도까지 편지 또는 팩스로 보냈으니 편지들이 엄청 많았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편지만 왕창 썼던 듯... 새로운 세상을 설레임으로 경험하면서 나는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나를 믿고 보내준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결혼 적령기의 딸이 이스라엘에 간다는데 아무 소리 안 하고 격려해 주셨던 부모님, 그들 덕에 나는 '시집가야지!' '하필이면 이스라엘이냐!'라는 여러 사람들의 참견과 잔소리에 상처받거나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마음 편히 내 길을 갈 수 있었다. 나를 믿어준 부모님께 내 앞에 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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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의 어머니와의 작별 준비카테고리 없음 2023. 1. 27. 08:48
나는 지금 집에서 30 분 거리에 있는 beach town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흘 간의 휴가. 엄마의 권고와 축복으로 왔다. 엄마는 내가 맘 편히 여행을 갈 수 있도록 나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내가 잘할 테니까 내 걱정 말고 며칠이라도 너랑 에릭이랑 시간을 갖고 와라.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말고 그저 너만을 생각해라." 나는 엄마를 믿기로 했다. '요즘 엄마는 기침도 안 하시고, 피곤해하지도 않으시고 드물게 건강하신 편이다. 집에서 20 분 거리에 가는 거니까 필요하면 언제든 집에 올 수 있으니 괜찮을 거다. 해외가 아니고 시간대가 같으니 내가 수시로 연락을 할 수 있다, 엄마 방에 설치해 놓은 nanny cam으로 엄마의 안녕을 관찰할 수 있다...'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면서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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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크리스마스 스타킹카테고리 없음 2023. 1. 23. 08:18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나는 엄마로서의 책임감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곤 했다. 그러나 요리니, 인테리어니에 관심이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나는 아이들이 좀 큰 뒤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게 고역같이 느껴져서 슬슬 손을 떼었다. 크리스마스 시기에 해외/국내 여행을 계획해서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가족들의 관심을 분산시켜 은근슬쩍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삶의 사소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경향의 남편과 딸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어느 해 겨울, 나에게 묻더라. “우리는 트리 안 만들어?” (허걱!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아무 말 안 했다. 만들려는 계획이 없었기에 ‘곧 만들 거야!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안 만들 거야’ 라고 대답하면, ‘왜 안 만들어?’라는 더 무시무시한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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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졸업식카테고리 없음 2022. 8. 6. 16:51
아들이 올해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엉뚱'해서 우리에게 많은 웃음을 주었지만, 그 '엉뚱함'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는 아들. 아들이 가까스로 대학 졸업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미국의 명문 H 대나 Y 대에서 박사를 딴 것처럼 기뻤다. 길 한복판에서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대학 졸업식은 가지 않았다. 졸업식 당일, 아들 아이가 약간 아프다는 이유였는데, 사실은 남편과 나도 졸업식을 가고 싶지 않았었다. 장거리 운전을 하고 가서 주차지옥, 캘리포니아 더위가 부담스러웠다. 졸업식을 생략하자고 하니 부모를 위해서 졸업식을 가주려던 아들은 반색하는 눈치, 아들을 위해 졸업식을 가주려던 부모는 아들도 가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학교에서 하는 졸업식은 생략했지만 가족끼리 의미있는 의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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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죽음의 외줄타기카테고리 없음 2022. 8. 4. 15:48
의사에게서 엄마가 암이라는 전화를 받은 뒤 나는 다리에 힘이 빠졌다.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께는 어떻게 이 소식을 알리지... 그러나 사실대로 알려드려야 해...' 아버지를 수발들면서 여러 어려운 일을 겪는 내내 좌절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던 나인데, 엄마 암 진단은 나를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그것은 내가 엄마를 아버지보다 더 사랑해서가 아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엄마에 대한 사랑은 '크기'의 차이가 아니라 '성질'의 차이이다.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나를 태아로 품으신 동안 나와한 몸이었던 나의 분신이다. 엄마는 나의 생명의 기원이었고 내 삶의 주축이다. 그 엄마에게 암이 생겼다니 내가 흔들리는 게 당연하다. 나는 한참 동안 내 마음을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