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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어머니의 스웨터와 친정 어머니
    카테고리 없음 2023. 7. 24. 21:02



    내가 병상의 시부모님을 응원해 드린답시고 벨기에에 급히 날아갔던 3 월, 나는—그리고 온 식구들은—-시어머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실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다. 항암 치료가 효과가 없어서 중지한 뒤 물, 요구르트 한 통, 단백질 음료 한 통이 어머님의 하루 식사.

    피골이 상접하고,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수시로 구토를 하는 어머님의 모습은 곧 죽음을 앞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머님보다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일정을 연기하고 며칠 더 머물 게 되었다. 의사가 어머님은 당장 내일 돌아가실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다고 했지만,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싶었지만, 미국의 집에 친정어머니가 혼자 남아 계셔서 돌아갈 일정을 잡았다.

    브뤼셀을 떠나기 전 날, 어머님과 단 둘이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죽음을 가까이 앞둔 시어머님께 작별 인사를 고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별을 당겨하는 작별인사인지라.

    나는 슬픈 내색을 하지 않고 가능한 한 즐겁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평소 감정 표현을 자제하시는 어머님이 그걸 편해하실 거라서…

    그런데 약간 겉도는 듯한 우리의 대화가 갑자기 즐거워진 순간이 있었다.
    내가 어머님께 “어머니, 저 어머님의 옷 중에서 두어 개 갖고 갈 수 있을까요?”라고 여쭈었을 때였다.  

    어머님은 그 말에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눈이 반짝였다.

    “내 옷? 물론이지! 어차피 다 버릴 옷들인데 네가 뭐든 가져가면 난 좋지! “라고 하셨다.


    ——

    내가 어머님의 옷을 몇 점 받으리라 마음먹게 된 것은 이스라엘 어머님의 영향이 있다.

    이스라엘 어머님은 2016 년 남편이 떠나신 뒤 사별이 슬픔 속에서 남편의 유품 정리를 하느라 큰 어려움을 겪었다. 책상 하나만 해도 —-쪽지들과 노트들, 영수증, 사진…. 하나하나 검토, 분류, 처분— 몇 달 걸렸고 남편의 사무실과 개인 소지품들을 정리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했다.

    ”너무 힘들었어. 정리하고 버리는 게…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어려운 일을 시키면 안 되겠다 싶어서 짐정리를 하리라 마음먹었지. “

    라고 하셨다. 그래서 어머님은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물건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내가 이스라엘 집에 갈 때마다 어머님은 나에게 당신이 좋아한 책이라던가, 액세서리, 옛날 옷들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이건 너에게 주고 싶은데 넌 어떠니?’라고 묻거나 ‘여기서 네가 갖고 가고 싶은 것 있으면 뭐든 가져가라 ‘ 하시곤 했다. 내가 뭔가를 선택하면 이스라엘 어머니는 흐뭇해하시면서 그 옷, 책, 액세서리의 역사를 들려주셨다.

    이스라엘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모습이 좋았고,  나 역시 물건을 통해서 그녀의 기억을 함께 나누는 것은 참 의미 있었다. 나는 이스라엘 어머니의 옷들을 가끔 꺼내 입고, 여행할 때는 한 벌씩 챙겨간다. 평생 여행을 사랑했던 이스라엘 어머니와 마음으로 함께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어머니가 준 스카프는 친정어머니께 드렸고, 아주 유용하게 쓰고 계시다. 이스라엘 어머님은 자신의 물건이 잘 써지는 것을 알고 흡족해하신다.

    바로 그런 문맥에서, 즉, 시어머니도 분명 자신의 물건을 내가 의미 있게, 소중하게 쓴다면 좋아하실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옷을 몇 점 달라고 한 것이다.


    ——-



    시어머님의 병실의 옷장은 폭이 1 미터가 안 되는 아주 작은 옷장이었고, 몇 개 안 되는 얇은 셔츠, 두꺼운 셔츠, 스웨터, 바지들이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내가 어머님의 옷장을 열고 바라보고 있는데 병상에 비스듬히 누워 계시던 어머님이 침대 위에 매달려 있는 줄을 집고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키시고 침대의 기울기를 높이셔서 바로 앉으셨다. 내가 어떤 옷을 잡는지 궁금하셨던 것이다.

    “옷이 몇 개 없지? 요양원에 오면서 다 버렸어. 거기 있는 옷들도 다 낡아서 네가 가져갈 게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니까 제가 고르기가 더 쉽지요. 하하하. 제가 골라볼게요. 트렁크가 작아서 한 두 개뿐이 못 가져가요. “

    평생 절약정신으로 살아온 어머님의 옷들은 정말 다 낡은 옷들이었다.
    나는 너무 헤어져서 입지도 못하고, 시어머니 물건이라고 함부로 버리지도 못하여 옷장 깊숙이 모셔둘 옷이 아니라 매일매일 유용하게 입을 수 있는 스웨터를 집어 들었다.

    “어머니, 이 스웨터, 너무 좋은데요? 가벼워요. 색깔도 무난해서 다른 옷이랑 맞춰 입기 편할 것 같아요!”

    어머님이 반색하셨다.  흥분한 기색으로 조잘조잘 옷 설명을 해주셨다.

    ”그 옷, 10 년도 안 된 옷이야. 우리 집 앞 큰길에 있던 노인용품점 ’다마르‘ 알지? 지금은 없어졌지만… 거기 옷들의 특징이 가볍고 따뜻한 거였어. 내 친정어머니 옷들은 다 거기서 사곤 했었고, 빠삐 옷도, 내 옷도 거기서 많이 샀었어. 그 옷은 가을, 겨울 다 입을 수 있어서 내가 아주 애용하던 옷이야. 일할 때는 가벼운 옷이 최고잖아….”

    근래 듣지 못했던 어머님의 재잘재잘 수다를 들으니 어머니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님 낙상 이전, 코로나 이전, 암진단 이전, 암투병 이전, 요양원으로 이사오기 이전…. 모든 게 다 정상적이고, 편안하고 행복했던 때의 어머님의 모습이…
    아주 가깝지만 돌아올 수 없는 과거. 마음이 아파왔다.
    그러나 짐짓 유쾌하게 어머니께 말했다.

    ”맞아요, 어머님. 저의 엄마도 매일 그렇게 말씀하세요. 옷이 무거우면 일하기 불편하다고. 살림꾼들은 생각하는 게 비슷한가 봐요. 참, 어머니, 어머니의 스웨터, 제가 저의 친정 어머니 드려도 될까요? “

    어머님은 큰 서프라이즈 생일 선물을 받은 듯, “오오!!!” 하고 감탄하며 좋아하셨다. “물론이지! 물론이지! 나는 그러면 너무 좋지. 네 어머니가 내 옷을 입으신다면…”

    ”어머니, 저의 엄마는 작년에 돌아가신 쟈닌 이모님의 옷도 잘 입고 계셔요. 특별한 날, 차려입고 나갈 때 그 옷을 입으시고, 쟈닌 이모님이 주신 목걸이도 하고 나가신답니다. 엄마가 그 옷을 입을 때마다 우리는 쟈닌 이모님 이야기를 하지요. 이번에 가져가는 어머님의 스웨터도 분명 엄마가 애용하실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어머니의 스웨터를 볼 때마다 어머님을 생각할 거예요. “

    쟈닌 이모님이 주신 블라우스/재킷. 자세히 보면 아주 옛날 옷 (‘어깨뽕’이 들어가 있음 ㅋ). 그러나 천이 부드럽고, 전체적으로 참 멋있는 옷이다. 엄마와 나는 이 옷을 볼 때마다 ‘쟈닌 이모님은 멋쟁이였어’ 라고 칭찬한다.


    ”그래, 그렇구나. 네 어머니가 잘 입으시면 좋겠다.“

    시어머님의 기쁜 안색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나는 친정어머니께 드릴 스웨터 하나를 더 찾았다.  시어머님처럼 일할 때 거추장스러운 걸 싫어하시는 엄마가 쉽게 입고 쉽게 벗을 수 있는 가벼운 회색 스웨터.
    시어머님은 환한 표정으로 ‘네가 가져가서 참 좋다’라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스웨터를 가방에 넣은 뒤 나는 시어머님과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고,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미소 지으며 어머님 뺨에 키스를 하고 병실을 떠났다.
    슬픔, 아쉬움, 미안함 등 여러 감정에 힘들었다.
    그나마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나 했다는 것, 어머님이 진정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



    집에 돌아와 짐을 풀자마자 엄마께 시어머니 스웨터 두 점을 드렸다.
    엄마는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감탄했다.

    ”옷들이 참 가볍고, 따뜻하구나. 일할 때 참 편하겠다. 나갈 때 입어도 되겠구나. “

    엄마는 당장 손빨래를 해서 말린 뒤, 옷의 실정리를 해서 아주 말끔하게 새 옷같이 만드셨다.

    며칠 후 엄마와 외식을 하러 나가는 날, 엄마가 시어머님의 스웨터를 입으셨다.

    ”팜펨아, 이 스카프 알지? “
    ”아, 이스라엘 어머니가 준 스카프네요?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해에 이 스카프 선물을 받았었지. 근데 네 시어머니 스웨터에도 잘 어울리지 않니?
    난 이 스웨터가 정말 내 맘에 꼭 들어.  너의 두 어머니가 준 선물을 차려입고 나가서 맛있게 먹자. “

    나는 시어머니께 보여드리려고 어머니의 사진을 찍었다.
    남편으로부터 시어머니가 사진을 보고 아주 좋아하신다는 답장이 신속하게 날아왔다.


    시어머니의 스웨터, 이스라엘 어머니의 스카프

    한 달이 안되어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

    엄마는 여전히 시어머님의 스웨터를 아주 잘 입고 계신다.
    이른 아침 산책이라던가 갑자기 쌀쌀해지는 캘리포니아의 저녁 날씨에 안성맞춤이다.

    나는 엄마가 스웨터를 입은 모습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시어머님을 떠올린다.
    엄마는 엄마대로 시어머니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  
    엄마는 시어머니의 옷을 어루만지면서 ”팜펨아, 이 옷 참 예쁘지? 난 이 옷이 참 좋아. 네가 잘 가져왔다.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짐이 다 쓰레기가 되잖아. 시어머니도 당신의 옷이 아주 곱게 대접받고 사용되는 거 알면 좋아하실 거야”라고 하신다.  노인네들은 서로의 마음을 아시는 듯..

    엄마는 나를 통해 받으신 쟈닌 이모, 자클린 이모, 시어머니, 이스라엘 어머니로부터 받은 물건들을 참 소중하게 보관하시고 자주 사용하신다.
    그 덕에 그분들은 살아계신 분 들 이든 돌아가신 분 들 이든 우리의 삶에 가까이 존재한다.
    우리가 매번 똑같은 이야기들이지만 반복돼도 지겹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쟈닌 이모, 안락사 결정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거야. 남편을 그리 성심껏 모셨다며?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분이라서 안락사 택한 거겠지.”
    ”그래도 편하게 가신 게 다행이지. 쟈닌 이모가 너희들에게 쟈클린 이모 부탁한 거 생각난다. 큰언니가 막내 동생을 챙겨주는 거지. 그 마음이 참 곱지?”
    “쟈클린 이모는 어쩜 그렇게 성격이 밝니. 쟈클린 이모 생각하면 웃는 얼굴만 떠올라. 말은 안 통하지만 참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
    “이스라엘 어머니를 만난 게 너에게는 참 큰 행운이었어. 너에게 많은 영향을 주셨지. 참 고마운 분이야..”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 정도로..)



    쟈닌 이모님, 시어머님, 자클린 이모와 이스라엘 어머니는 다 나에게 ’ 어머니 연배‘의 어르신들이고 나에게 서로 다른 방법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준 분들인데 엄마와 그분들을 함께 추억하면서 나는 새로이 엄마께 감사함을 느낀다. 그런 아름다운 여성들이 나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기까지는 엄마의 기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40 년간, 내가 엄마 또래의 다른 여성들을 ’어머니‘로서 모실 때  그 관계를 인정해 주셨고, 한 번도 질투나 박탈감을 표현하지 않으신 엄마,
    그 덕에 나는 훌륭하고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성들과 깊은 연대를 나누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엄마는 언제든지 딸의 성장, 딸의 행복을 우선으로 두시기에 그렇게 선선히 뒤로 물러나 내가 다른 어머니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던 것..

    세월이 지나 나의 ‘어머니’들이 노쇠해졌고, 엄마는 또한 내가 어머니들이 힘들 때라던가, 위로가 필요할 때 내가 그들을 돌볼 수 있게끔 지원해 주셨다.
    최근에 들어서는 엄마의 지지가 있었기에 내가 벨기에, 이스라엘로 가서 어머니들을 뵙고 돌봐드릴 수 있(었)다.
    이제 엄마는 나의 어머니들의 낡은 물건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유용히 사용하며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그들이 나의 현재의 삶에서 존재하게끔 해주고 계시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신 뒤에, 나도 엄마에게서 배운 대로 엄마의 물건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유용하게 사용하고, 엄마를 이야기로 추억할 것 같다.
    엄마는 이야기 속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사실 것이다.
    나의 다른 어머니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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