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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끌로드와 유젠 부부
    카테고리 없음 2023. 7. 22. 23:21



    이제 곧 자연의 품을 떠나 도시로 돌아간다.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나가 종일 근처를 탐사했다.
    나는 남편의 양해를 구하고 집에 머물렀다.
    차, 커피, 차… 마시면서 한 자리에서 호수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자연의 위로가 필요했다.

    오늘은 참 슬픈 날.


    오늘 아침, 나와 무척 가깝게 지냈던 파리의 대학의 지도교수, 끌로드 교수님의 남편, 유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다.

    끌로드 교수님은 내가 파리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 주셨고. 내가 학위를 마친 날, 손수 구운 파이와 샴페인으로 축하해 주신 마음이 따뜻한 분이다.

    나는 끌로드 교수와 남편 유젠의 가족 여행을 함께 갈 정도로 친하게 지냈고 부모님도 교수님 내외와 인사를 나누고 카드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미국에서 에릭을 만나 사귀기 시작한 뒤에 내가 제일 먼저 에릭을 소개해드린 분도 끌로드와 유젠 부부였다. 결혼 뒤, 우리는 자연스레 교수님 부부와 커플로서 교제하게 되었다.

    교수님 부부가 미국 여행 중 나를 만나러 오셨던 10 년 전,
    저녁 식사 후, 남성들은 앞에서 걷고, 나와 끌로드 교수님은 뒤 따라 걸으며 대화하던 중, 교수님이 나에게 말했다.

    “팜펨, 나는 이제는 네가 나의 제자가 아니라 여동생같이 느껴진다.  실제로 나는 나의 친언니보다 너한테 더 속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우정과 자매애의 고백에 많이 놀랐고,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후 몇 번 만나지 못했다.

    나는 친정아버지 수발로 경황이 없을 때 끌로드 교수님이 암투병이란 소식을 들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던 시기라서 나는 교수님께 딱히 따뜻한 격려의 말씀도 드리지 못했고, 얼마 후 교수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끌로드 교수님의 부고는 큰 충격이었다.
    치료가 잘 되어가고 있다고 하셨는데 68 세의 연세에 세상을 떠나시다니..
    항상 나의 멘토, 나의 큰언니처럼 내 옆에 존재하실 거라고 믿었는데…

    사랑하는 교수님이 투병을 하실 때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고, 뵙기는 커녕, 변변히 따뜻한 말 몇 마디도 못 해 드린 게 너무 죄송스럽고 한스러웠다.

    그 후 유젠과는 이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가 2018 년, 우리 가족이 유럽에 갈 때 나는 당일로 파리에 가서 유젠을 만날 계획을 세웠었다.

    유젠도 내가 온다고 기뻐했고, 우리는 어느 메트로 역에서 내려서 어느 식당에서 만날 것인가까지 정했는데,
    갑자기 나의 가족에게 응급 상황이 생겨서 나는 아쉽게도 파리 행을 취소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은 유젠을 못 만났다.

    유럽에 갈 때마다 한번 꼭 가서 뵈야지… 하면서도, 그리고 벨기에에 그렇게 여러 번 갔음에도, 연로한 시어른들 돌봐드리느라 급급해 유젠을 찾아뵙지 못했다. 너무 한스럽다.

    ‘유젠이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이야…’ 하고 비통해하고 있는 지금, 끌로드 교수님이 돌아가셨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다. 나는 어리석었다.

    유젠이 나의 부모님과 시부모님보다는 10 년 정도 나이가 젊으시니까 조금 더 오래 사실 것이라는 기대도,
    나의 급한 일들이 좀 정리되면 찾아가 뵈어야지 했던 생각도 어리석었다.
    내가 찾아갈 때까지 —-그게 언제인지 모르지만—-살아계시기를 바라는 바람은 요행수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왜 몰랐던가…

    정말 잘못했다. 선생님도, 유젠도 그렇게 뵙고 싶었는데…
    그렇다면  찾아가서 뵈어야 했었다.

    그게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나?
    아니었다.
    조금만 노력을 했더라면, 시간을 조정했더라면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는 블로그에 언젠가 ‘사랑에는 때가 있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렇게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리고 그렇게 그분들을 사랑하면서도, 사랑의 때를 놓쳐버렸다.

    사랑하는 이들이 떠난 뒤, 나는 그 큰 텅 빈자리만큼, 메꿀 수 없는 커다란 슬픔을 느끼고 있다.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
    꼼짝않고 수많은 획을 그으며 그림 그리는 오랜 시간 내내 끌로드와 유젠을 추모했다.



    사랑하는 끌로드, 사랑하는 유젠,
    편안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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