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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유품정리부모님 이야기 2018. 12. 3. 20:07
아버지가 떠나신 뒤 한 달이 지났다. 마음이 평안하다. 아직 장례식을 치루지 않았다. 12 월 중순에 온 식구가 다 모여 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장례식을 미룬 것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아이들이 (우리 애들, 조카들) 다 모일 수 있는 날짜를 잡기 위해서였는데 우리에겐 너무도 큰 도움이 되었다. 장례식의 절차에 급급하는 대신, 그리고 사망 후 사흘 후에 억지로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는 대신, 엄마, 언니, 에릭, 나는 며칠 동안 그냥 아버지 생각하고 마음이 가는대로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옛날의 일들,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 죽음의 순간 등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바다에도 두 번 가고,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며칠간 그저 아버지 생각만 했다. 아버지의 몸은 우리를 떠났지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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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웃어야 사나니...스치는 생각 2018. 12. 1. 00:50
술취했다가 토하듯이제가 요즘 글을 토하듯이 썼어요.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네요. (글을) 토한 다음에는 또 글을 쓰면 안되고해장을 해야지요~~ㅋㅋㅋ무거운 글 썼으니까 저도 좀 웃어야하겠습니당. 몇 년 전 친구 생일날 80 년대 주제로 옷을 입고 오라해서저는 있는 것들로 대강 줒어 입었는데에릭은 마땅한 옷을 못찾겠더라고요. 뭘, 그런 걸 갖고 신경쓰냐...하더니만 파티 가기 직전에 자기 바지 가위로 쓱~~ 자르더고꼴렛이 놀 때 쓰는 가발을 하나 빌려쓰고수건 하나 뒤집어쓰니..... 이런 롹스타가 탄생! 저도 신경쓴답시고 핑크 가발에 코걸이까지 했건만남편의 롹스타 빛에 가려서 깨갱~~ 평소에 에릭을 말없이 점잖게 남의 이야기 듣기만 하는 수학자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에릭이 등장하는 순간 다 아아~~!그날 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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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눈 것들부모님 이야기 2018. 11. 29. 14:16
사라 할머니는 이스라엘로 날 초청했던 오프라 교수의 시어머니이다. 나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찾아 뵈면서 아주 친하게 지냈다. 할머니는 만난지 1 년도 안되어 돌아가셨고 당시 할머니는 80세, 나는 27 세였다. 아래는 2002 년에 출판된 책에 수록되었던 사라 할머니에 관한 에세이를 기초로, 내 기억을 새로이하기 위해 부모님께 썼던 옛 편지를 참고해서 쓴 글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쓴 글이라 '수발'이 현재형으로 되어 있다) 사라 할머니 이스라엘 가족과 같이 생활하면서 나는 향수병이 더 심하게 도졌다. 아예 처음부터 기숙사에 들어갔더라면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만나고,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향수를 조금 더 객관적 시각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기숙사로 옮긴 이후에 나는 향수병이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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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치매에 걸려도 돼!부모님 이야기 2018. 11. 21. 11:38
어르신들이 다 그러하듯이 아버지는 치매를 두려워하셨다. 인지능력과 인격을 상실하는 것도 두렵고, 자식들을 힘들게 하게될까봐 두려워하셨다. 아버지는 18 세기 영국의 문필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이야기를 하곤 하셨다.스위프트는 유명한 고전 '걸리버의 여행기'의 작가로서 사회 비판과 풍자로 명성을 날린당대의 최고의 문필가로서 부와 명예를 축적했으나, 말년에 뇌졸증 후 우울증과 언어장애를 앓았고 3 년간의 투병 후에 사망하였다. 아버지는 그의 시종들이 치매로 인지능력을 상실하고 침을 질질 흘리는스위프트를 구경거리로 만들어 돈을 받고 그 추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치매라는무서운 질환이 가져온 한 뛰어난 작가의 드라마틱한 몰락을 한탄하셨다. 아버지는 사고로 침대 신세를 지게 된 이후에 자주 스위프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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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행복'이란?부모님 이야기 2018. 11. 19. 12:02
"나는 어려서 아버지의 서재에 빽빽이 꽂혀진 책들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저런 책들을 읽으리라 마음 먹었었어.그런데 결국 내가 책을 읽고 가르치는 선생이란 직업을 갖게 되었으니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 "전쟁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갔을 때 '철학' 과목을 듣게 되었어. 그 전에 내가 봤던 세상은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는 그런 잔인한 곳이었는데그런 끔찍한 세계랑은 판이한인간이 왜 사는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는인식과 지성의 세계가 존재하는 걸 발견했지.아...너무 행복하더라고....다시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위대한 사상가들의 글을 음미하면서 참 행복했어. 그 당시에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큰 특권이었어." "엄마가 나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지. 엄마 덕에 나는 많은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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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신음소리부모님 이야기 2018. 11. 17. 11:24
아버지가 병원에서 집에 돌아온 날 밤, 지난 닷새간 매일 밤 아버지 곁을 지킨 뒤에 나는 피로가 축적되어 있었고, 집에 왔으니 잠시라도 자고 싶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아버지가 밤에 자주 깨셨기때문에 집에서도 자주 깨실 가능성이 컸고, 그것은 내가 밤잠을 또 설칠 것임을 의미했다. 그래서 엄마와 언니에게는 어서 빨리 자서 새벽 4 시 경에 나와 교대 해달라고 하고 아버지 옆을 지킬 준비를 했다. 11 시 반 경에 잠자리에 드시기 전, 병원에서 준 약도 드렸고, 기저귀도 봐드렸다. 이제 아버지가 단 몇 시간만이라도 푹 주무시면 나도 푹 잘 수 있었다. 누적된 피로로 나는 눕자마자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않아 아버지 신음소리에 잠이 깼다. 아! 아! 아! 아! 이상하다.... 오늘밤 아버지의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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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아버지가 그립구나부모님 이야기 2018. 11. 16. 11:35
아버지가 가시고 수발이 임무가 끝났다.새로운 시작이다. 엄마와 집을 떠나 단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처음 며칠은 나에게 갑자기 주어진 많은 시간이 익숙지않았다.특히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게 너무도 큰 호사같이 느껴졌다.그리고 며칠 후 서서히 나의 특기, 버릇, 고질병인 멍때리기가 시작되었다. 뜬금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내가 아버지께 반항했던 십대 때 생각을 한다. 난 아버지랑 1 년간 말을 안했다.완전 투명인간처럼 무시했다.엄마도 아버지도 그런 나를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당시 아버지는 50 대 초반.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였다. 그 후 거의 40 년간 아버지랑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나는 아버지란 사람이 얼마나 섬세하고 감정 표현에 얼마나 서투른지 알게 되었고당시 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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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까짓 거.부모님 이야기 2018. 11. 14. 05:44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나 나는죽음이 너무 자연스러워 충격을 받았다.숨을 들이쉬었다 내 쉬는 것이 자연스럽듯이한번 내신 숨이 그냥 멈춘 것이었다.삶에서 죽음으로의 전이가마치 얕은 시냇물에 사이가 멀지 않게 놓여진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인양 쉽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죽음과 삶이라는 엄청난 분리가 이렇게 간단하다니.... 며칠 후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나는 이전에 찍었던 엄마 아버지 사진을 보았다.잠시 멈칫했다.아바지가 돌아가신 뒤에 찍은 사진과 아주 비슷하여서이다.아버지의 죽음 전이나, 죽음 후나.엄마 아버지의 모습이 한결같았다.엄마의 옷과 아버지가 덮으신 담요 색깔만 달랐다. 왼쪽은 1 년 전 겨울,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엄마가 아버지 옆에서 책을 읽어드릴 때 직은 사진이다.아버지가 편히 누워 계실 때 엄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