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
빅토리아 이야기 (1)--아버지의 간병 도우미부모님 이야기 2019. 2. 20. 01:42
아버지가 병상에 누운지 며칠 안되어 나는 도우미 없이는 아버지를 돌볼 수 없음을 깨달았다. 목욕할 때 아버지의 안전을 위해서는 힘이 좋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도우미는 어떻게 구하는 거지? 찾아보면 정보를 얻을 수 있겠으나 나는 당장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빅토리아가 떠올랐다. 그녀는 멕시코 출신의 미국 시민자로서 10 여년 전 아이들이 다니던 유치원의 청소부/요리사였다. 연락없이 지내다가 전화하는 것도, 요양 도우미 경험이 없는 그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세뇨라, 혹 요즘 바빠요? 요즘 우리 집에 일이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데, 물론 돈을 지불할 것이고요….”빅토리아가 나의 말을 막았다."뭐든지 하겠습니다. 제가 언제 갈까요?" 너무도 고마웠다. ..
-
나는 시간을 훔친다모성- doodle 2019. 2. 15. 07:08
(2018 01--아버지 돌아가시기 1 년 전의 글) 아버지 병수발은 아버지의 생명의 시간을 연장해보려는 시간과의 싸움이지만 그것은 또한 내가 나만의 시간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돌봄이가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게 어렵다는 것, 그게 병수발과 육아의 공통점이다. 그래서 나는 수년 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육아를 통해 터득한 교훈, 즉 ‘시간은 나지 않는다. 고로 내가 시간을 내야한다’를 현재의 삶에 적용하려고 애쓴다. 시간을 ‘내다’와 ‘나다’는 획 하나 ‘ㅣ’ 의 차이일 따름이나, 그 획 하나는 한 인간이 시간의 주체이냐마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삶의 주체이냐마냐를 가늠짓는다. 시간이 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피동적 태도라면 시간을 내는 것은 능동적인 태도이다. 두 표현이 시사하는 시간관의 본질적..
-
죽어가는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키스와 허그.부모님 이야기 2019. 2. 13. 06:38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쓴 글) 나는 아버지에게 스킨쉽을 자연스럽게 자주한다. 아침에 아버지가 눈을 뜨자마자, 면도가 끝난 뒤, 휠체어에 앉아서 간식을 잡술 때, 침대에 앉아서 티비를 보실 때, 뜬금없이 아버지의 몸을 만진다.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드리고, 머리 마사지를 하고, 손가락 마사지를 하고, 발 마사지를 한다. 자주 아버지의 어깨를 꼭 껴안기도 한다. 뺨, 이마에 가볍게 뽀뽀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마치 아가들에게 하듯이 쬬—옥 소리를 내며 입술로 뺨에 도장을 찍듯이 꾸욱 누른다. 아버지와의 망설임없는, 잦은 스킨쉽을 보고 간병도우미가 물었다. “아버지를 참 편하게 대하네요. 어려서부터 아버지랑 친했나봐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57세인 내가 구순의 아버지한테 자유스레 뽀뽀를 하니말..
-
나디아 할머니 (3)--영주권과 갓블레스유부모님 이야기 2019. 2. 8. 02:08
나는 할머니가 요리를 할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예술가같은 살림꾼 할머니의 작품이니까. 맛과 색깔의 향연을 그냥 꿀꺽 먹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 (사진들은 1 년 후, 영주권 심사에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어느 날 나디아 할머니가 우리집에서 모든 일을 마친 뒤, 할머니의 다음 일터-- 근처의 한 중국인 가정의 베이비시팅--에 차로 모셔드리던 길이었다. 할머니는 편지 봉투 몇 개를 꺼내면서 미안하지만 대강 어떤 편지들인지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가끔 우편으로 서류들을 받으면 나에게 갖고 와 읽어달라곤 했다. 평소에는 주말에 남편이 집에 오면 모아 뒀던 편지를 읽어달라고 하는데, 당시 남편은 여행 중이었다.무심코 받아 읽어보니 별로 중요하지 않..
-
나디아 할머니 (2)--문맹 할머니와 버지니아 울프부모님 이야기 2019. 2. 7. 00:45
나디아 할머니는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에게 감사, 하나님께 감사. 요리할 때 후추, 치즈, 소금, 파프리카 등 각종 양념을 후르륵 치듯이 이야기 할 때마다 중간 중간에 갓블레스유 갓블레스유를 외친다. 무슬림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평생 고생을 해서 매사에 감사함을 뼈저리게 느껴서 그런 것같다. 우리집에 들어오는 순간, '이렇게 여기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당신같이 좋은 분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식으로 매사에 감사 감사 감사. 입을 열면 긍정의 말만 튀어나오는 할머니. 나도 평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를 본 뒤에 깨달았다. 나의 감사하는 마음이 잔잔한 호수같이 평안함과 같았다면 그녀의 경우는 잔잔한 호수에서 감사함의 숭어가 퐁퐁..
-
나디아 할머니 (1)--70 세의 위장결혼?부모님 이야기 2019. 2. 6. 04:42
크리스마스 며칠 전, 오전 11 시 경 벨이 울렸다. 문을 열기도 전에 나의 기척에 문 밖에서 설레는 외침이 들린다. "야 히얼? 땡스갓 땡스갓!” 아, 나디아 할머니구나! ( ‘You are here! Thank God, thank God!’) 이란 소리였다. 할머니는 북아프리카 출신으로 아랍어가 모국어이고 불어는 조금 하지만 영어는 미국산지 18 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서툴다. "나디아!! 어떻게 왔어요? 누가 데려다 줬어요?" 걸어오셨단다. 다리를 저는 할머니는 자기가 일하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부터 50 분을 걸어 우리집에 온 것이다. 손에는 커피, 쵸콜렛, 쿠키 등의 선물을 들고. 너무 반갑고 고맙고 안스러웠다. 평생 불편하고 고된 삶을 살아온 76 세의 나디아 할머니가 나에게 선물까지 들고 오다..
-
세상의 모든 요양보호사들께 감사와 축복을...부모님 이야기 2019. 2. 2. 10:16
(2017. 09) 나의 친구 'ㄱ'는 현재 요양병원에 있다. 그녀는 소뇌위축증--소뇌가 점점 축소되면서 평형감각의 상실, 언어장애, 음식장애, 용변장애, 시력상실의 증상을 나타내는 희귀한 불치병--을 앓고 있다. 아마 그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날 것이다. 'ㄱ' 는 내내 침대에 누워있고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는 게 침대 밖을 벗어나는 유일한 순간이다. 유쾌하고 기지가 넘치던 그녀가 젊은 나이에 침대에 갇혀있다는 것이, 또한 점차적으로 증상이 악화되어 결국은 말을 못하게 되고, 기저귀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음식을 삼키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가슴아프다. 아버지 기저귀를 갈때나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녀를 생각한다. 오십 초반의 나이에 아버지와 같은..
-
"엄마, 아버지보다 엄마가 먼저야" --팔순 엄마의 자아찾기부모님 이야기 2019. 2. 1. 01:12
아버지 수발을 들면서 내가 내내 걱정한 것은 엄마의 건강이었다. 고혈압인 엄마가 무리하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하지? 졸지에 한국에 못돌아가게 된 상황에 우울증이라도 걸리시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이미 엄마는 7-8 년 전에 건강에 적신호가 와서 응급실 신세를 졌고 그후에는 우울증을 겪지 않았던가. 엄마는 2009-10 년에 우울증을 겪었다. 나는 함경도 또순이로 항상 긍정적이고 강한 엄마가 우울증을 겪는 것이 너무도 놀라웠다. 그러나 엄마를 어떻게 도와드릴까 싶어 엄마의 평소의 삶을 찬찬히 관찰하면서 좀 더 일찍 우울증이 오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라 싶었다. 책임강이 강한 살림꾼 엄마는 평생 알뜰살뜰 아끼고, 새로운 것 시도하고, 응용하고 개발하는 그런 열정적인 살림지기였다. 우리 삼남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