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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균형
    스치는 생각 2021. 7. 19. 08:55


    2018 년, 브러셀에 가족 여행을 왔을 때 아주 아주 아주 힘든 일이 생겼었다.
    아니, 아주 힘든 일이 있었음을 발견했다고 해야 맞겠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로 놀랐고, 미안했고, 안타까웠고, 아팠다.

    원래는 브러셀 가족 여행이 아니라 남편과 나, 단 둘이 퀘벡 여행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부부 여행이 아니라 가족 여행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전면 수정해서 ‘가족 여행’이라는 구실로 아이들과 브러셀에 왔는데
    암스테르담에서 브러셀 도착하는 날, 큰 일이 터졌고
    2 주 내내 마음 고생하고,
    다시 계획을 수정해서 아이들과 런던에 가서 다들 마음을 추수린 뒤 집으로..

    두 번 바뀐 뒤죽박죽 일정, 비행기 표를 구할 길 없어
    아들, 딸, 나와 남편, 다 따로따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와서
    엘에이 공항에서 만났던, 말도 안되게 고생스럽고, 뭐든 촉박했고, 바로 하루 앞을 제대로 계획할 수 없덨던 여행.

    그 여름을 떠올리거나 당시 찍은 사진을 보면
    내 삶에서 가장 막막했던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고
    아픔이 고스란히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때 머물렀던 에어비엔비 숙소에 다시 돌아왔다.
    브러셀의 에어비엔비가 동이나서 (남편이) 5 주간 묵을 수 있는 집을 찾기가 힘들어서였다.
    우리 선택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이 이 집이 우리 일정에 딱 맞게 비어 있었다.

    ——

    폭우로 벨기에에 대홍수가 난 날, 이사를 했다.
    비에 홈빡 젖어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면서
    ‘그 집에 들어갈 때 내 마음이 어떨까?’ 하는 걱정스러운 궁금함이 들었다.

    두꺼운 열쇠를 세 번 돌려 아파트의 무거운 철문을 여는 순간,
    거실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시에 과거가 확 밀려왔다.
    아들이 앉아있던 베란다, 딸이 누워 있던 소파, 늦게 일어나는 아들 방의 꼭 닫힌 문, 딸아이랑 꼭 껴안고 이야기를 나눴던 침대…
    분명 빈집에 들어온 건데 집이, 방이, 거실이, 욕실이 다 아이들을 연상시킨다.

    지난 3 년간 하도 많이 생각했던 2018년, 우리의 둥지, 그래서인지 마치 계속 살아온 집인양 익숙하기만했다.

    이사한 날, 일이 많았고 우리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피곤이 약이었다.

    곤한 잠을 자고 일어나니 밤새 내리던 비가 멎었다.
    거실에서 혼자 조용히 커피를 마시면서 지난 3 년을 반추했다.



    ‘과거가 과거여서 다행이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과거가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가.
    힘들었지만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 덕에 완전한 평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고통없이, 불안감없이 과거를 담담히 돌이킬 수 있는 현재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무겁고 진지한 생각에 오래 빠져 있었다.

    신기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이 정리가 되었고, 마음이 무거워지기는 커녕 되려 가벼워졌다.

    결국 나는 창밖을 보면서, ‘오늘 날씨 참 좋다’ ‘쓴 커피 맛처럼 맛있는 맛이 어디 있을까’라는
    쓰잘데없는 가벼운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내가 그렇게 하찮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발견한 순간,
    내가 과거의 아픔에서 자유로워졌음을 깨달았다.

    ‘아…시부모님 돌봐드린다고 온 여행에서 내가 마음의 정리를 했네..’

    과거의 일들을 정리하지 않고 마음에 쌓아두었을 때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마냥 삶의 걸음걸이가 뒤뚱뒤뚱 거리는데,
    앞으로는 발걸음이 좀 더 가볍게, 균형도 잘 유지하면서 걸을 수 있을 것같았다.

    이렇게 가끔, 버릴 거 버리고, 거둘 거 거두며 마음의 청소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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