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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치는 생각 2021. 7. 19. 17:53

    벨기에에 오자마자 우리는 아버님이 웃지 않으시고 말씀을 안하신다는 사실에 적지 않이 놀랐다.
    아버님은 원래부터 좀 걱정이 많으신 성격이긴해도, 바로 그런 부정적 성향을 십분 활용해 농담도 잘 하시고
    대화를 즐기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봉쥬르, 아버님!” 하고 인사를 드리면 “글쎄….” 라고 하시면서 얼굴을 찡그리시고
    아버님이 어디가 불편하신가에 대한 대화 몇 마디 주고 받은 뒤에 혼자 가만히 우울한 생각에 잠기어 계시곤 했다.

    친정 아버지도 넘어지신 뒤 몸을 못 쓰게 되시자마자 극심한 우울증에 걸리셨던 적이 있어서
    시아버님의 우울함이 생소하지 않다.

    그러나 팔을 가슴 높이로 올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장애의 상태가 심각했던 아버지와 달리
    시아버님은 정상적으로 걷는 것만 못하실 따름, 웬만한 것은 다 아주 천천히 하실 수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 바이러스 면역을 받은 식구들이 아버님께 인사차 자주 들르기에
    작년처럼 시부모님 두분만 고립되어 외로운 것도 아닌데
    아버님은 왜 우울하실까…

    며칠 시어머님을 도와 아버님을 돌보면서 아버님을 우울하게 만드는 몇 가지 원인을 파악했다.

    가장 큰 원인은 통증이지만 그 외에도
    기억력 감퇴,
    약물 복용,
    독립성과 자율성의 상실,
    청력 상실,
    청력 상실로 인한 의미있는 대화의 부재

    등이 아버님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는 것이 파악되었다.

    아버님은 원래부터 청력이 안좋으셔서 가장 강력한 보청기를 사용하시는데, 그래도 사람들과 대화하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버님을 돌봐드리는 어머니와 단둘이 사시는데 어머님은 워낙 형이상학적 주제에 관심이 없으시고
    그런 주제에 심취하는 것을 약간 경멸하시는 경향이시다.
    (예를 들어 내가 돈이 안되는 글쓰기 하는 것에 비판적이셨고, 아버님이 책을 쓰실 때 몸을 움직이지 않고 글을 쓴다고 비판하셨다)
    어머님이 아버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지만, 아버님의 육체적 건강을 위한 노력이지, 아버님의 정신적/마음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그닥 없으시다.
    시부모님의 대화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음식/약/용변/통증의 주제에 국한되었고,
    아버님은 할 이야기가 없어지셨다.

    친정 아버지를 모실 때 내가 배운 것은
    정신/마음의 건강보다 몸이 건강이 우선인 것은 사실이나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라는 말이 진리)
    몸의 건강에 집중하다보면 그것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마음의 건강을 도외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분이 좋아야 건강을 위한 노력이 덜 힘들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은 채, 그냥 하루하루가 그저 육체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투쟁이라면
    환자는 ‘살 맛이 안나는 상황’을 사는 거고 간병인은 ‘일할 맛이 안나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아버님이 전신을 못쓰는 상황에서도 돌아가시는 순간 직전까지 유쾌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의 관리’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독여주는 사람이 없이 그저 육체적 병과 씨름을 하고 있는 아버님은 살맛을 잃은 것이다.

    ———————————————

    며칠 전에 조카들이 인사를 왔었을 때였다. 20 대 초반의 조카들이 할아버지께 인사를 온 게 기특했다.
    그러나 여러사람이, 귀가 안들리는 아버님과 대화가 불가능하니까, 아이들은 할아버지께 간단히 인사를 드린 뒤
    아버님의 안락의자 옆의 소파에 앉아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인사를 드리고 씽~ 하고 나가는 대신에 할아버지 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기특했다.

    그러나 아버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1 시간 여, 손자 손녀들은 자기들끼리 수다를 떠는데 바빠 할아버지의 표정을 읽지 못했다.
    아버님께 살짝 여쭈었다.
    “괜찮으세요?”
    “피곤하다. 소리가 너무 커.”

    보청기를 낀 아버님은 그들이 대화가 왕왕 울리는 소음이고 고역이었다.
    몇 년전까지만해도 아버님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아버님 포함 네 명,
    이제는 세 명이 대화를 해도 잘 못들으신다. 잘 안들리고, 보청기 특성상 사람 목소리가 여럿이 나면 울려 들려서 소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님이 소변을 보셔야한다고 하고 젊은이들을 부엌으로 내보냈다.

    아버님이 ‘고맙다’라고 하시더니, 한숨을 푹 쉬시면서

    “힘들다….”

    라고 하셨다.

    병환으로, 연세로, 청력 상실로 아버님이 겪고 있는 외로움이 그 절실한 한마디로 표현되었다.

    ———

    아버님의 상황을 인지하고 아버님과 어떻게든 대화를 나눠보려고 할 때 우리를 방해하는 복병이 있었다.
    수시로 아버님의 말을 가로채서 끝맺음을 하는 어머님과 이모님.
    두분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말을 할 기회가 있으면 신이 나시는 것같았다.

    사실, 그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줌으로 부모님과 채팅을 할 때마다
    아버님이 말을 하려할 때 어머님이 대답하셔서 안타까웠다.
    우리가 갑갑해할까봐 도와주시려는 건가 했지만, 그보다는 어머님이 말씀을 하고 싶어서인것같았다.
    아버님이 말씀을 하시려고 노력할 때는 그대로 두어야하는데,
    어머님은 아버님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심지어 아버님의 기분, 생각에 대한 질문까지척척 대답해버리신다.

    남편은 예전부터 그게 늘 불만이었다.
    화상채팅을 하는데 아버지가 입을 결 기회가 한번도 없다면서 어머니께
    “아버지가 대답하게 두세요” 라고 했지만
    어머님은 그때만이지 이후에도 번번히 아버님 대변인 역할을 했다.

    이번에 온 뒤에도 아버님이 말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상황을 번번히 겪으면서, 나는 시댁에 ‘출근’했다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내 소중한 하루가—-아버님과 대화를 하려고 온 짧은 여행 중의 소중한 하루— 낭비된 것같은 그런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러나 며칠 전에 아버님과의 대화가 방해받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이전에는 별다른 생각없이 아버님 ‘근처’에 앉아서 아버님과 대화를 나눴다면
    이제는 의자를 아버님 정중앙 앞에다 놓고, 아버님과 눈맞춤을 하면서 대화를 한다.
    그렇게 아버님과 나와의 시선을 직선으로 연결하고, 몸을 가까이하여 대화를 하면
    사람들이 마치 우리가 끈으로 연결이라도 된 듯히 함부로 그 끈을 끊지 못했다.
    잠깐 대화에 끼어들까, 아니면 인사를 할까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은
    우리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냥 나가곤 했다.
    그래서 아버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버님의 눈은 반짝거리고,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우리의 대화?
    아버님 옛날 이야기부터, 아버님의 가족 이야기,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역사 이야기 등등 다채롭고, 재밌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아버님은 더 이상 ‘구석에서 고통과 걱정에 찌들어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님을 억압하는 노년, 질환이라는 현실을 잠시 잊으시고
    젊은이처럼 말씀하셨다. ‘기가 살아난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아버님의 변화가 흐뭇했다.

    아버님은 “요즘 내 기억력이 나빠져서 걱정이야. 나는 기억을 하려고 이렇게 쪽지를 만들어서 이름들을 외워왔어”면서
    아버님이 계속 들고 외우시는 노트를 보여주셨다.



    “예전에는 내가 이름들을 다 기억했는데, 아, 작년부터 기억이 안난다. 내가 이제 다 된거야.”

    나는 아버님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팍 무시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버님, 이름들은 다 잊어요. 안쓰면 잊는 거지요. 이렇게 노트를 해서 외우시고 하시는 거 보니까 대단하시네요.” 라고 칭찬을 해드린 뒤에

    “아버님, 이름을 기억못해도 사건을 기억하실 수 있으면 되어요. 어떤 사건의 기억이 떠올리는 그 순간의 생각, 감정, 이런 것들을 기억하실 수 있으면 되어요.
    계속 생각하시고, 생각나시는 거 적어보시고, 그때 이름 생각도 해보시고, 기억 안나면 찾아보시고…그렇게 연습하면 되는 거에요.
    아버님은 이미 참 잘 하고 계시네요.”

    나는 나의 친정 아버지도 ‘단백질’이라는 말이 영어로 기억이 안나셔서, 그 말을 기억하기 위해서 별별 노력을 다 기울였었다는 이야기와,
    아버지도 평생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노트를 하셨었고, 친정 어머니도 지금까지 계속 노트를 하신다고 말씀드렸다.

    “네 아버지도 그러셨어? 어머니도?”

    하며 반가워하셨다.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에게 친밀감이 많이 느껴지시는지 어느 순간에는
    “너의 아버지랑 나랑 이야기를 나눴으면 우린 친구가 되었을 거야. 근데 너의 아버지는 영문학 교수였으니 영어를 잘하셨지?
    내가 못하니 참…” 하시면서 상상과 현실이 섞인 고민을 하시더라는…^^)

    최근에 대화를 하면서 느낀 것은 시어머님은 여전히 손자 손녀들에 관심을 많이 쏟고 계시지만
    시아버님은 손자 손녀 이야기에는 흥미가 없으신데 나의 친정 아버지와 친정 어머니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

    어제, 남편은 친구와 자전거 여행을 갔다.
    오늘은 시부모님과 내가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날, 발걸음 가볍게 20 분 걸어 ‘출근’했다.

    봉쥬르 인사에 아버님은 고통을 호소하셨다.

    ‘얼마나 힘드시겠어요…잠은 몇 시간 주무셨어요. 용변은 잘 보셨어요..
    오늘은 제가 면도 도와드릴께요. 면도 하시니까 더 핸섬하세요.
    아버님, 이거 크리스챤 디오르 로션이네요? 와.. de luxe! ‘

    이렇게 자잘한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니가 오늘은 점심을 부엌에서 드신다고 하네요.
    아버님 고생하신다!
    천천히 걸으시면 잘 하실 수 있을 거에요.’


    아버님이 계시는 거실에서 식탁까지는 정상 걸음으로 15 보 정도 되지만 계단이 있어서 허리가 아픈 아버님게는 아주 힘든 노선이다.

    ‘너무 고통스러워’

    라고 불평하셨지만, 어머님이 강력하게 권하셔서 결국 의자를 끌고 천천히 걸으셔서 식탁까지 도착하셨다.

    ‘밥 맛이 없어’

    라고 불평하셨지만 잘 드셨다.

    나도 맛있게 먹으면서 어머니와 아버님께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두분의 갈등의 원인이 되는 일이 있는데, 그 주제를 조심스럽게 건드려서
    두분이 서로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다투시게끔’ 유도했다.
    (이건 거의 family therapy 같은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상담원과 가족이 대화를 같이 나누는 것)
    마치 큰 산불을 방지하기 위해서 화재장비를 동원한 가운데 선재적으로 불을 내고 진화하는 것마냥
    ‘유도된 다툼’은 큰 싸움의 방지를 목적으로 한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각기 다른 시각을 열정적으로 주장하셨고,
    나는 그때마다 약간 설명을 겻들여드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조금 더 쉽게끔 해드렸다.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속이 시원해지고,
    상대방의 말에 반박을 하면서 억지를 부리는데도 그게 밉지 않은 상황,
    서로 우기고, 버티고, 상대를 넘어뜨리력 하는 그런 대화의 씨름을 하다보니 웃을 일이 얼마나 많던지.
    어머니와 아버님과 나는 탁자를 치면서까지 웃었다.
    완벽한 화해는 아니지만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비틀지 않고 그대로 들어준 것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은 분명했다.



    식사 전까지만해도 식탁 의자가 불편하다고 식사 후 당장 안락의자로 돌아갈 것같이 말씀하셨던 아버님은
    2 시간을 우리와 함게 이야기를 나눴다.
    근래에 없었던 일이다.

    아버님이 거실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시는 동안, 어머니와 나는 또 여성만이 통하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한 시간 동안?

    말씀을 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뭔가 보고 깜짝 놀라셨다.
    뭔가 싶어 뒤돌아보니

    아버님이 서 계셨다.



    없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최근에 아버님은 고통때문에 거실 의자를 안 떠나시고, “여보, 물!” “여보 약!” “여보,화장실!” 하고 어머니를 부르시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물을 무척 자주 마시시고, 약도 많이 드시고, 소변도 자주 보시기때문에
    어머니는 쉴새없이 거실에 들낙날락 하셔야한다.
    아버님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서 그냥 받아들이고 일을 하시지만
    아버님이 짜증스럽게 부르실 때는 어머니도 짜증나기 마련이었다.
    안락 의자 버튼 누르는 것까지 어머니가 해주시길 기다리시는 아버님,
    당연히 거실에서 부엌까지, 지팡이나 바퀴의자를 밀면서 가실 때 어머님의 도움을 기대하고, 필요로 하셨다.

    그.런.데,
    아버님이 아무도 부르지 않고
    혼자 고통을 무릅쓰고, 안락의자 버튼을 누르시고 일어나셔서, 천천히 박퀴 의자를 잡고 일어나셔서, 조심, 조심, 조심 조심,
    한발자국씩 걸어 부엌의 우리엑까지 왔다는 것은…..

    아….성경의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에 비길만한 그런 큰 경사였다.

    아버님은 우리가 ‘아아!’ ‘어머!’하고 놀라서 바라보는 모습을 은근한 미소로 받아주셨다.

    여기까지 왜 이러고 오셨냐고 어머니가 물으시니까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셨다.
    그럼 갖다 드릴까요 하고 여쭈니,
    아니…내가 계단을 내려가겠다고 하시곤 손잡이를 잡고 내려오셨다.

    이제까지 본 적이 없었던 아버님의 밝은 표정, 고통을 의식하지 않는 몸놀림.

    아버님은 다시 식탁에 앉으셨고, 우리는 또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아버님 발, 손을 맛사지 해드린 적은 있지만 등 마사지를 해드릴 기회가 없었던 차에
    (항상 안락의자에 기대 앉아 계셨으므로)
    이참이다 싶어서 아버님 목과 등을 부드럽게 마사지 해드렸다.
    이렇게 부드러운 몸의 마사지가 아버님의 영혼을 사랑으로 어루만져주게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걸 믿음)…

    저녁 늦게 남편이 자전거타기, 샤워, 휴식을 마친 뒤 부모님 댁에 왔다.
    나는 남편이 부엌에 들어서는데, 마치. 친정 부모님과 함께 있는데 사위가 들어오는 것같은 착각이 들었다.
    남편은 아버님이 식탁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근래에 본 적이 없는 아버님의 밝은 표정에 더더욱 놀라했다.

    숙소로 돌아오려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니 아버님이 ‘굿나잇’ 인사 대신 여러 번 ‘고맙다, 고맙다’라고 인사하셨다.

    남편이 나오면서 나더러 “아버지가 뭐가 고마운 거냐”고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그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도 아버님께서 정확히 뭐가 고맙다고 하시는지 모르겠기에.

    남편에게 뭉뚱그려 대답했다.

    “오늘 웃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는 거같아.
    우리 엄청 많이 웃었거든.
    웃음이 진짜 명약이야.”

    아버님만 명약을 드셨나, 아니다, 나도 아버님 덕에 웃음이라는 명약을 한사발 들이킨 것같다.
    어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내내 기운이 나고 행복하다.
    아버님께 조금이라도 긍정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주는 희망이 나를 기쁘게한다.
    앞으로도 웃음의 보약을 많이 많이 지어드려야지….











    (2017 년, 시부모님이 미국 오셨을 때 시아버님과 나의 친정 부모님은 우리 결혼 후 처음으로 만났다.
    두 아버님은 간단히 인사하고 말씀을 나누지 않았지만, 친정 아버지는 이후 여러번 ‘에릭 아버님, 참 선한 분이신 게 보인다. 참 좋은 사람인 것같다’ 말씀하셨다.
    이번에 시아버님께 그 이야기를 하니까 ‘내가 뭐….’ 하시면서도 흐믓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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