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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기도
    스치는 생각 2021. 7. 29. 23:04


    3 주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말을 많이 한 여행이었는데도 마치 기도를 오래 한 피정을 다녀온 듯
    정신이 맑고 몸도 예상보다 훨씬 더 가뿐하다.

    그 이유는 여행 중 글을 많이 쓸 수 있어서였다.
    블로그에 올린 글이 열 개가 넘고, 그냥 따로 쓴 글도 여럿이다.
    매일 아주 바빴지만 아침 일찍, 저녁 늦게 생각을 글로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고,
    숨가쁘게 지나가는 순간들을 잡아서 기록하고
    이미 지나가 버린 일들을 다시 기억해내 글로 옮긴 덕에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시간을 잡으려 허둥지둥하는 꼴이 아니라,
    내가 시간의 고삐를 잡고, 삶의 주체로서, 내내 평온한 마음으로 지냈다.

    글쓰기의 기도 효과.

    매일 기도를 하면서 건강한 ‘기도 근육’을 키워나가다보면
    번잡스럽고 불완전한 삶의 한 가운데에서 평화를 회복할 수 있듯이,
    매일 글을 쓰면, 가끔 방정식 문제처럼 어렵게만 느껴지는 삶의 문제가 어느 새 풀리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고민거리가 주, 몇 달, 머리에 도사리고 있어도
    담담히 관조하며 다스릴 수 있다.

    또한 글쓰기는 기도와 마찬가지로 마음에 기쁨 (joy)와 감사함 (thankfulness) 을 회복시켜준다.

    언젠가 어떤 독자께서 나의 글이 쉽게 읽힌다는 평과 함께,
    ‘그런데 팜펨 님은 글에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세요. 아시죠?’ 라고 한 적이 있다.

    알고 말고다.
    나의 글에는 ‘감사’라는 단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글의 주제가 새로운 생각없이 그저 내내 ‘감사’인 것같아서 쑥스러움마저 느낀다.
    내가 ‘감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평소 기본 500 단어로 글을 쓰는 나의 보잘것 없는 어휘력의 탓도 있겠지만,
    실제로 나는 ‘감사함’이란 감정을 아주 자주, 많이 느끼고, 그걸 표현하고 살기 때문이다.
    문자를 할 때도, 친구와 대화를 할 때도, 그리고 기도를 할 때도 감사하다는 표현을 자주한다.
    어쩌겠나…감사한 걸.

    기도도 마찬가지.
    밤마다 나와 손잡고 같이 기도를 하는 남편은 나에게
    “당신은 매사에 기도를 감사합니다로 시작해서 감사합니다로 끝내더라” 라고 했다.

    기도를 하고 글쓰기를 할 때
    나는 아주 자주, 그 행위를 하는 동안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인식의 변화를 체험한다.
    내 마음의 눈이 열리면서, 사물을 가둬두고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부수고
    자유롭게 사유하니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마치 특별한 투시 안경이라도 써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빌딩의 철근을 궤뚫어보기라도 하는 듯,
    기도와 글쓰기는 사물과 현상 저변에 존재하는 삶의 진리, 가치, 의미를 발견하게 해준다.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진리’는—나의 경우—주로 ‘감사할 이유의 발견’과 맞물려있고,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이 된다.
    동시에 내가 감사함을 느끼고, 감사할 이유를 인식할 수 있는 그런 정신적/ 영적 상태라는 사실 자체를 나는 감사드린다.

    그래서 글쓰기이든, 기도이든, 나는 감사, 감사, 감사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이다.

    ————————————-

    내 기도가 항상 감사기도는 아니었다.

    옛날, 하나님 믿은 뒤 얼마 되지 않아서는 나의 기도의 목적은 주로 골칫거리의 해결,
    마음의 고통에서의 해방이었다. 즉, 기도를 통해 내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께 다 올려드리고”)
    고통을 내 마음에서 떨쳐냄으로서 고통을 극복을 하려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삶의 경험이 축적되고 기도의 연륜이 쌓여가면서 서서히 변화가 왔다.
    아직도 분명 ‘하나님 뜻에 맡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라는 태도는 변함이 없지만
    하나 달라진 것은 애써 나를 고통과 고난에서 해방시키겠다는 목적으로 기도를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고통 중/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rejoice in sufferings” 로마서 5:3),
    옛날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런 역설적인 진리의 심오한 의미를 이해하면서였다.

    고통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그리고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약이 될 수도 있다.
    고통은 더 큰 고통을 잉태할 수도 있고, 반대로 축복을 잉태할 수도 있다.
    연약한 나는 될 수 있는 한 고통을 당하고 싶지 않고, 어떻게든 고통을 피해가고 싶지만,
    정작 나의 삶에 고통이 주어졌을 때, 고통을 통해서 얻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고
    그래서 고통은 ‘축복의 잉태’임을 굳게 믿는다.

    고통의 시간은 정신없이 직진하는 인간을 멈추게 하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등의 문제를 숙고하게끔 만든다.
    고통은 우리가 고통이 현실을 직시하고 삶의 과녁을 정확히 하게끔 만들어주고,
    영적, 지적, 정서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해준다.
    고통이 주는 혜택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나약한 인간인 내가 고통을 자처할 이유는 없겠지만,
    고통이 온다해도 담담하고 당당할 이유는 명확하다는 소리이다.

    고통을 이/겨/내/서 감사한 게 아니라, 고통 /중/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이다.
    고통의 바다 한 가운데에서 표류를 하거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막막함 속에서도
    새로운 인식으로 희망이 솟아나고, 기쁨이 회복되는,
    즉 ‘고통 중에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얼마나 고무적이며 신나는 일인가!

    그래서—남편 말대로—-나의 기도는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난다.

    오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친정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도,
    아버지 수발을 드는 3 년 내내,
    아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도,
    어머니가 길에서 쓰러졌을 때도….
    나의 기도는 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로서 시작했고,
    하나님께 오랫 수다 기도를 떠는 과정에 감사, 감사, 감사를 외치고,
    감사함으로 기도를 마무리 지었다.

    참 놀랍게도, 시간이 지나 옛날 일을 돌이켜보면,
    당시 고통 중/에/서도 감사 기도를 하던 내가,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시간의 경과 속에서만 보여지는 그런 축복을 새롭게 발견하곤한다.
    (다른 이들의 소중한 삶의 이야기와 맞물려있기 때문에, 나 혼자 간직할 그런 이야기들이다.)


    ——

    기도가 내 마음의 눈을 열어 삶에 흐드러져있는 감사의 이유를 깨우쳐주고, 감사를 표현하는 통로가 되듯이
    글쓰기도 또한 나에게 감사할 이유를 발견하게 해주는 계기이자,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통로이다.

    글을 쓰다보면 저절로 새로운 시각이 열리고, 현실이 선명하게 인식되며,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삶의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파악하게 된다.
    글을 쓰기 위해 멈춰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감사할 이유가 너무도 많다.
    아무 것도 아닌 일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고통의 순간 조차 감사의 원천이 된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 글쓰기를 하면서
    삶의 의미와 행복은 꼭 ‘고통이 없을 때’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고통 ‘속/에/서’ 발견된다는 알게 되었다.
    ‘고통의 삶’보다 더 두려운 것은 ‘고통이 없으나 무의미한’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그것이 어떤 모습이고, 어떤 방식이든—-다 celebrate 할 축복이다.
    그런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글쓰기,
    그래서 나는 글 쓰는 내내 감사, 감사, 감사를 되뇌인다.

    글을 많이 쓸 수 있었던 브러셀 여행,
    글쓰기를 한 덕에 3 주라는 짧은 시간을 두 배로 살아낸 듯해서 참 감사하다.
    글쓰기를 통해 내 내면의 평화가 잘 유지된 덕에 여러 사람과 온전히 소통할 수 있었고,
    가끔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만져줄 수도 있었다.
    그것도 참 감사하다.

    캘리포니아의 나의 둥지로 돌아와
    새벽에 깨어 글을 쓰는 이 순간,
    고요과 평화가 감사하다.

    잠시 나의 벗들을 상상해본다.
    이 글을 읽으면서,
    ‘팜펨, 잘 다녀왔구나’ ‘안전히 다녀와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겠고
    ‘네가 감사 감사 감사하고 사는 이유가 그거구나’며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도 있으리라.
    또한 ‘에구…또, 또, 복잡하게 생각하네. 좀 쉽게 살아라…’ 하고 사랑의 핀잔을 주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나의 독백을 읽어주고 생각의 과정에 참여해주는 친구들이 감사하다.
    글을 통해서 공감과 우정을 쌓을 수 있음이 감사하다.





    (글쓰다보니 아침이 되었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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