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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치는 생각 2021. 7. 18. 01:50

    폭우를 뚫고 에어비엔비 이사를 했다.
    남편이 비가 약간 수그러졌을 때 시동생이 빌려준 전기 자전거를 타고 (빨리 달릴 수 있으니까)
    어머님 댁에 잠깐 들렀다가, 바지가 너무 젖어서 드라이어에 말리고, 자전거 안타고 우비 입고 걸어 돌아왔다.
    ‘비가 대단하네…’

    우리는 이사를 하느라 바빠 뉴스를 못 들었다가 시동생 집에 저녁 먹으러 갔을 때 벨기에 동남부를 강타한 폭우와 홍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쌍동이 조카들이 마르세이유에 캠핑을 갔다가, 어제부터 현재 홍수 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에서 캠핑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홍수로 취소되어—-캠핑 하고 있는 중에 물난리 났으면 큰일이었겠지요—-무사히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온 식구들이 마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환영하듯이 큰 환호로 맞이했다.

    시동생의 여자친구가 제가 비건이라고 맛있는 비건 요리를 해주었다.
    아이들 다섯에, 한 아이는 남자친구 데려오고, 우리 부부, 자기들 부부—-10 인 식사를 차리느라 엄청 고생했을 것이다.

    식탁에 크기가 고르지 않은 바겟빵들이 놓여 있었는데, 알고보니 요즘 베이킹에 심취해있는 시동생의 작품!


    에릭은 바겟을 뚝 잘라 한입 맛보고 “야! 맛있다!” 하더니만
    질긴 바겟빵 입에서 오물오물 녹여먹으면서 갑자기 장모님 이야기를 꺼낸다.

    “장모님도 베이킹 좋아하셔. 재료 양, 시간, 온도를 정확히 재서 하시는데, 온수매트에 놓아 반죽을 부풀리셔.
    몇 번 계속 만드시면서 우리집 오븐에 딱 맞는 그런 레시피를 만드셨어”

    남편의 뜬금없는 장모님이야기에 감사하게도 시동생은 ‘아, 그래?’ ‘그렇구나’ 하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저녁을 먹고난 뒤 시동생이 작은 천 꾸러미를저에게 건네주면서 “This is for you” 라고 했다.
    열어보니 빨아쓸 수 있는 화장지우는 패드와 에센셜 오일 한 병.

    전혀 기대치 않았던 선물을 받고 “와~~” 하고 좋아하는데

    시동생이 “I made this in class” 라고 말했다.
    수업? 이걸 만들었다고?
    제가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는 기색이 역력하니까,

    “I made this….You know, with a sewing machine.” 이라고 하며 계면쩍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래도 금방 이해가 안되어

    “What? What? You made this? Really?”라고 다그치듯이, 확인하려는듯이 물었다.

    시동생이 싱긋 웃으면서 (원래 시동생 특유의 농담 스타일로) 이건 자기 첫 작품이라서 아주 비싼 거라고 했다.

    세상에,…그 귀한 것을 나에게 주다니!

    나는 너무 감동해서 “아아아~~~!” 하고 막 비명질렀다.

    (함 보세요~~)


    시동생의 부인이

    “너무 예쁘지? 난 질투가 난다. 그 중요한 첫 작품을 너한테 주다니!” 라고 농담을 하더니만
    남편이 패드를 만들고 자기가 에센셜 오일을 골랐다면서, 남편도 자기도 제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했다.

    너무 좋지!!!
    This is the best!!
    고마워!!!!!
    어머니랑 랄라랑 나랑 다 나눠서 쓸께!

    시동생과 동서와 제가 막 기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던 남편이 패드를 잡고 꼼꼼히 살폈다.

    “와, 대단하다, 어떻게 재봉틀 배울 생각을 했어! 숨겨져있던 재능이 요즘 다 나오네.
    꽃도 심고, 빵도 굽고, 재봉틀질도 하고. 잘 만들었다” 라고 칭찬을 하더니

    아앗,

    갑자기 또 ‘장모님 자랑’으로 기수를 돌릴 줄이야.

    “장모님이 이거 보면 되게 좋아하실 거야. 남자가 이렇게 잘했냐고.
    장모님도 재봉틀질, 바느질 참 잘하시거든.
    바지든 셔츠든 스웨터든 문제가 있다 싶다?
    (남편이 고개를 푹 숙이고 어머니께 바치는 시늉을 한다)
    ‘어머니, 플리즈~~!’ 하고 부탁을 드리면,
    하면 그걸 완전히 깔끔하게 새옷처럼 만들어 놓으시는 거야.
    바느질, 재봉틀질만이 아니라 디자인을 하셔.
    옷들도 많이 만드셨어.
    (잠깐 숨을 고르면서 드라마틱하게 만들 뜸을 들인 뒤)
    웨딩드레스도 만드셨잖아.”

    폭풍 칭찬.
    착한 시동생은 또, ‘와, 그래? 그렇구나. 웨딩드레스도?’ 하면서 남편의 장단을 또 맞춰 주었다.
    다행히 남편이 “장모님이 네 작품 보면 깜짝 놀라고,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실 거야” 라고 함으로써
    한번에 엄마와 시동생을 동시에 칭찬함으로써 훈훈히 마무리 지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식탁을 주먹으로 쳐가면서 웃었고, 껴안고 사진을 찍었다.
    여러모로 감사하고 행복한 날이었다.

    고등학생, 대학생 조카들은 한 지붕에 살면서 서로서로 만날 시간도 없이 바쁜데
    우리랑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내어 줬고
    비건 요리, fruit salad, 블루베리 파이에,
    24 시간 동안 천천히 만든 바겟빵,
    끊임없이 나오는 차, 커피, 와인, 맥주..,

    작별을 할 무렵에는 바겟빵과 음식이 포장되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손수 만든 선물까지.

    우리는 마음이 밝아졌다.
    브러셀에 와서 처음 크게 웃었고 시름을 잊고 즐겁게 대화를 나눈 날이었다.
    점점 사라져가던 브러셀의 ‘홈, 스위트 홈’을 다시 찾은 듯해서 기뻤다.

    이제까지 우리에게는 브러셀의 ‘홈’은 시부모님 댁이었다.
    40 명-50 명이, 어머님이 며칠간 손수 만드신 음식들을 먹으면서
    북적거리면서 파티를 하는 대가족이 모임이 이뤄지던 곳이 부모님 집이었다.

    그러나 시부모님이 연세를 잡수면서, 또한 젊은이들이 점점 바빠지면서 큰 모임은 점점 뜸해졌다.
    아버님이 편찮아지신 뒤로는 거실을 침실로 쓰기에 가족 모임이 불가능해졌다.
    부모님이 연세와 함께 집도 늙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큰 공사는 가능하지 않고, 작은 공사는 진척이 안되고…
    아래층 살던 이모님은 안락사로 돌아가시고
    옆집 사는 이모님도 많이 늙으셨고..

    그래서 브러셀의 우리의 ‘홈’은 더이상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고향이 될 수 없었다.
    그저 풀어야되는 문제.

    브러셀에 온 뒤, 형제/누이와 그 배우자들이 자주 만나면서 새로운 ‘홈’이 생성되고 있다.
    지난 30 년간 결혼,직장, 여러 이유로 부모님의 터전을 떠나 자기만의 터전을 만들었던 형제/누이는
    부모 부양의 과제를 같이 풀기 위해 다시 뭉쳤고, 얼굴보고 대화하고, ‘부모님 없이’ 우리끼리만의 모임을 하면서
    서로서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형제 누이는 여전히 잘 어울리는, 그리고 같이 있을 때 행복한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미국에 돌아가면 시누이 부부, 시동생 부부와 나눈 행복한 기억이 우리를 긍정적으로 지탱해줄 것같다.
    우리가 이렇게 친하고, 서로를 위하고 아껴주는 관계이고
    부모님을 어떻게든 잘 모시겠다는 목적을 같이 하고 있으니
    앞으로 서로 도와가면서 잘 해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머님 아버님이 만들어주셨던 아름다운 가족관계,
    이제 스스로 노년이 되어 배우자와 자녀들을 둔 자식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대를 이어나갈 것이다.
    자녀들이 화합해서 살아가는 것,
    그게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일 것이다.
    부모님께 그 선물을 드리기 위해, 며느리로서 나도 꾸준히 노력을 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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